염상구의 철교와 소설 태백산맥속의 벌교 이야기

2013. 3. 22. 08:05전라남도 견문록/보성 견문록

 

소설<태백산맥>문학관에서 벌교여행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받았다.

작가 조정래는 순천 조계산 선암사에서 태어났지만 벌교상고 교사로 근무한 부친으로 인하여 벌교 북초등학교 4학년 부터 광주 서중에 입할할 때까지 벌교에서 살았다.

선친 조종현 선생의 8남매중 넷째로 태어나 벌교에서는 벌교상고 근처 3칸짜리 기와집에서 10명의 대식구가 올망졸망 살았다고 하니

그 행적을 따라 우선 벌교상고와 염상구의 철교, 벌교역, 벌교시장 을 둘러본 다음 태백산맥의 거리를 따라 올라가며 보성여관, 금융조합, 엠원고지, 벌교읍사무소, 소화다리, 횡갯다리, 김범우의 집, 회정리 교회 , 작가가 어렸을 때 살았던 집 등을 찾아 보기로 한다.

 

 

일단 지도를 잘 보고서..

결론적으로 맨 마지막에 나오는 조정래 생가(조정래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졸업때 까지 산 곳)는 찾지 못했다.

지도상의 위치가 회정리 교회에서 나와 홍교방향으로 우측에 있다고 표시되어 있지만, 사실은 반대로 터미널 방향에다

결정적으로 홍교방향 우측이 아니라 좌측이었다. (혼란을 막기위해 벌교여관에 붙은 지도를 다시 바꿔야 할 것이다.)

 

 

태백산맥 문학관을 나와 터미널앞 로타리를 돌아서 벌교역쪽으로 방향을 잡다보면 처음으로 나오는 곳이 바로 벌교상고이다.

지난해까지 벌교제일고등학교였으나 올해 신학기부터는 전통을 계승하기위해 벌교상고로 다시 전환했다고 한다.

요즘같은 시절 상업고등학교 한번 찾아볼려면 여자상고 외에 남자상고는 귀하신 몸이 되어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글쓴이의 학교도 명문 상업고등학교였다. 그러나 지금은 인문고로 전환하여 그 명맥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엄연히 학교명이 틀려

전통의 계승보다 상고와 인문고간 동문간의 단절은 오지 않을까 걱정되기는 하다.

 

 

벌교상고는 작가의 부친인 조정현 선생이 교편을 잡던 곳이다.

작가가 기억하는 벌교에서의 어린시절은 부친이 교사였다고 하더라도 8남매와 부모 등 무려 10명의 대가족이 한 지붕 아래서 살았기에

힘든 것은 다른 또래의 아이들과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당시 궁핍했던 시절, 60명의 학우들 중 5명 정도만 제대로 점심을 먹고 나머지는 대개 굶었다고 하며, 작가는 김길평이라는 친구집에 드나들며 쌀누룽지를 얻어먹곤 했다하니, 때깔 번지르한 옷소매로 입을 닦으며 서로 씨익 웃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김길평이란 친구의 집은 김범우의 집으로 묘사되어 어린 조정래의 머리에서 현실로 튀어 나오게 되었다고 하니, 벌교상고를 나와

어서 빨리 김범우의 집으로 달려가고만 싶어진다.

 

 

한편 벌교를 장악했던 염상진은 하대치, 안창민 등과 함께 쫓겨 가게 되었지만 진압군의 세력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궁벽한 율어면을 점령한다. 그리고 그들은 율어면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한 후 해방구로 선포하고 조직과 세력을 정비하게 된다.

 

군경 진압군은 벌교를 장악했던 좌익 세력을 몰아낸 후, 청년단의 도움을 얻어 마을에 남아 있는 좌익 세력과 부역자들을 찾아 내기 위해 힘쓰게 되며, 그 바람에 마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좌익과 우익으로 서로 갈라지고 원한이 겹치게 되고, 반란군과 함께 산 속으로 가 버린 입산자 가족들은 온갖 곤욕을 치르게 된다.

 

 

벌교상고를 나와 벌교역쪽으로 가다보면 부용교라는 다리가 하나 나온다.

우회전 하면 벌교읍사무소쪽을 가고 좌회전 하면 중도방죽으로 이어진다. 다리가 나오자마자 비보호 좌회전하여 차를 적당한 곳에

대 놓고 철교와 중도방죽을 바라본다.

 

 

"순천에서 광주로 뻗어 나간 철로의 벌교포구를 잇는 철교 중앙에 땅벌과 그동안 쌍칼이란 별명이 붙은 염상구가 서로 등진 채 수영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중략) 철교의 교각은 모두 아홉 개였는데, 그들은 중앙 교각 위에 서 있었다. 기차가 '뙈액~' 기적을 울리며 검은 괴물처럼 철교로 진입했다. 그 순간 기차와 그들과의 거리는 교각 네 개의 간격으로 좁혀졌다." (<태백산백> 1권 188쪽)

 

철교 아래 선창에서 물건을 훔치다 들킨 염상구가 일본 선원을 죽이고 도망쳤다가 해방과 함께 돌아와 '살인'을 '독립운동'으로 바꿔치기하고 청년단 감찰부장이 되어 깡패 왕초 '땅벌'과 담력을 겨루는 바로 그 철교이다.

 

 

철교의 교각이 아홉개라고 하지만 유심히 쳐다보지는 않았다.

그저 소설에서 염상구를 가장 멋지게 부각시켜준 곳이 바로 이 철교위의 담력싸움이었으니...

 

벌교역 플랫폼이 보이고

 

 

 

벌교의 양심적 지주이자 유지로 주민들의 신망이 두터운 김범우는 무고한 사람들까지 처단되고 고문을 당하는 등 고통을 받게 되자 희생을 줄여 보려고 많은 노력을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총살을 당하고 만다.

그렇게 흉흉해진 민심을 돌리고 혼란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수습위원회를 구성하게 되고, 일제 때는 친일파였고 해방 직후에는 제헌국회의원이 된 최익승이 수습위원회 대표로 뽑히게 된다.

 

김범우는 국회의원인 최익승을 찾아가 읍민들의 희생을 줄이도록 호소하였으나, 오히려 좌익을 두둔하는 빨갱이로 몰려 경찰서에 구속되었다가 순천으로 송치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좌익세력의 우두머리 염상진의 동생 염상구는 청년단 감찰부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양효석, 송성일 등 우익 희생자 아들들과 함께 멸공단을 조직, 밤이면 입산자 가족들을 찾아다니며, 부녀자, 노인을 가리지 아니하고 잔인한 보복을 한다.

 

 

 

세상이 다 알게 친일을 했던 자들이 무슨 명목을 붙여서든지 애국의 탈을 만들어 쓰려고 급급한 판에 염상구 정도의 이력변조는

아주 양심적이었는지 모른다(<태백산맥> 1권 189쪽)

 

 

이곳은 제2부용교

 

 

 

이 과정에서 하대치의 아버지 판석 영감이 목숨을 잃는다. 아들 정하섭이 좌익에 가담한 덕으로 좌익 세력이 벌교를 장악했을 때, 악덕 지주로 처단되지 않고 살아남은 양조장 주인 정현동은 다시 군경찰이 들어오자 빨갱이로 몰려 경찰서에 갇히게 되고, 수습위원장 최익승은 정현동을 빼내주는 조건으로 양조장 지분 절반을 차지하고 정현동은 벌교에 진주한 토벌대의 후원회 회장을 맡게 된다.

한편 벌교경찰서에 구속된 김범우가 순천 경찰서로 송치되자 그의 부친 김사용은 김씨 문중의 힘을 빌려 아들을 석방시키고 벌교경찰서장 남인태를 다른 지역으로 전출시켜 버린다.

 

 

 

마침 벌교역을 떠난 기차가 광주로 가기위해 철교를 지나고 있다.

이 철교 아래가 벌교천으로 중도방적을 유유히 흐른다. 아홉개의 교각에서 이제 네 개가 남았으니 누가 먼저 뛰어 내렸을까?.

이 결투에서 진 땅벌은 그날 밤 옛 부하 몇 명의 전송이 아닌 그들의 감시속에서 고리짝만한 크기의 가방 하나를 들고 광주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태백산맥>1권 187~189쪽)

 

 

 

 

소설속의 '중도방죽'은 일본인 중도(中島-나카시마)의 이름을 따다 붙인 간척지 방죽의 이름이라고 한다.

중도라는 사람은 실존인물로 철다리 옆에 있는 마을에 살았다고 하며, 작가는 소설에서 방죽 쌓는 공사장에 동원된 조선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워따 말도 마씨요. 고것이 워디 사람이 헐 일이었간디라. 죽지 못혀 사는 가난허고 가난헌 개돼지 겉은 목심덜이 목구녕에 풀칠허자고 뫼들어 개돼지맹키로 천대받아 감서 헌 일이제라. 옛적부텀 산몬뎅이에 성 쌓는 것을 질로 심든 부역으로 쳤는디, 고것이 지아무리 힘든다 혀도 워찌 뻘밭에다 방죽 쌓는 일에 비허겄소.(중략) 골 빠지게 일얼 혔음스롱도 고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웂소. 그 애롭고 피맺히는 일얼 가난허고 배곯은 조선 사람들이 손으로 혔다는 것만 확실허제. 근디 기맥히게도, 방죽을 다 쌓고 본께 배불리는 놈덜언 일본놈덜이었다 그것이요." (<태백산맥> 4권 306쪽)

들판을 한스럽게 바라보면서 방노인이 자신에게 했던 애기를 되새겨 가며 이지숙은 일부러 방죽을 걸어 선수머리까지 갔다가 되 짚어

돌아오며 방노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대목이다

 

 

"이틀이 지난 벌교역 앞마당에는 사람의 목 하나가 내걸렸다. 폭이 60센티 정도고, 길이가 2미터 정도 되는 나무판이 받침목으로 비스듬하게 세워졌고, 그 꼭대기에 머리카락을 위로 모아 묶은 목이 매달려 있었다. 그 아래로 붙은 종이에는 큼직큼직한 글씨들이 씌어있었다. 악질 빨갱이 염상진 사살."(<태백산맥> 10권 341쪽)

 

 

벌교역 광장은 <태백산맥>에서 지역 유지들이 모여 국회의원을 전송하고, 신임 계엄사령관을 환영하는 등 각종 행사와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로 묘사되고, 염상진의 목이 내걸리며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게 되는 곳이다.

염상진의 목이 벌교역 광장에 걸리자 소문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 호산댁과 아내 죽산댁의 오열과 경찰과의 몸싸움,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염상구가 내 뱉은 말 "요런 개좆겉은 새끼덜아, 살아서나 빨갱이제 죽어서도 빨갱이여! 당장에 못 띠내리겄어!"라며 죽어서 형을 인정하는 대목은 소설의 백미로 지금까지 잔잔한 감동을 준다.

 

 

 

벌교에 왔는데 벌교역 앞 벌교시장을 보지 않고 가면 오지 않은 것일까?

 

 

벌교는 꼬막과 더불어 키위, 딸기 등이 유명한 곳이다.

키위 한 가마에 일만 원...ㅎ 차를 역전에 대 놓고 얼른 한 가마 사가지고 벌교시장을 둘러본다.

 

 

꼬막가격은 물어보지 못했다.

 

 

벌교 참꼬막

 

 

벌교역을 지나 태백산맥 거리로 들어섰다.

차를 공용주차장에 대 놓고 보성여관부터 들러보았지만, 보성여관은 별도로 포스팅을 한다.

벌교여행을 하면서 김범우의 집, 현부자네 등과 달리 현재까지 영업을 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마신 황차의 추억도 새롭기 때문이다.

 

 

김범우의 모델은 실존인물로 바로 작가 조정래의 외삼촌 박순동씨라고 한다.

박순동은 OSS요원출신으로 귀국해서 미군 통역관을 지냈다고 한다. 이렇게 OSS요원을 지낸 외삼촌이 있었기에 비록 벌교라는

조그만 읍동네에서 일어난 이야기지만 국제적 감각이 풍부한 인텔리전트 김범우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태백산맥>문학거리에는 이렇게 소설속 주인공이야기가 곳곳에 있어, 심심하지가 않다.

 

 

염상진은 율어를 해방구로 선언하고 토지의 무상배급 등을 실시하여 농민들과 소작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영화 <태백산맥>은 김범우역에 안성기, 염상진역에 김명곤, 염상구역에 김갑수가 열연하였다.

소화역 오정해, 정하섭역 신현준, 심재모역 최동주, 염상구 어머니인 죽산댁역 정경순, 염상구 부인인 외서댁역 방은진이 열연했으며,

임권택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1994년작.

 

 

 

중도방죽 건설에 동원된 하판석의 아들 하대치.

염상진을 추종했던 하대치 등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염상진의 무덤 앞에서 새로운 투쟁에의 결의를 다지고 어둠속으로 사라져간다.

며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 주인공.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남도여관은 실제 건물로 당시부터 보성여관이란 이름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이 남도여관도 별도로 포스팅할 예정이다.

 

 

멀리 보이는 것이 보성여관.

그외에도 본정통에는 일본식 건물 형태가 간혹 보인다.

 

 

보성여관 바로 옆에 있는 벌교초등학교는 <태백산맥>에서 벌교남국민학교로 나오는 곳으로 손승호와 이지숙이 교사로 근무한 곳이며,

벌교를 장악한 빨치산들이 인민재판을 열고 계엄군에 의해 점령되었을 때는 열병식을 갖는 장소로 묘사된다.

 

 

금융조합이라는 것이 결국은 돈 장사이고 보면 그의 이재(理財)솜씨는 멋 불는 것 보다 한 수가 더 앞질러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태백산맥>1군 284쪽)

 

 

금융조합은 벌교농민상담소로 운영되다 현재는 완전 비어있다.

하지만 소설속 건물이자 몇 채 안 남은 일본식 건물이기에 보존가치는 높은 것으로 보여 이렇게 태백산맥문학거리를 빛내고 있는지

모른다.

 

 

금융조합 근처에는 벌교읍사무소가 있다.

문학기행 1번지 벌교라는 자부심을 읍사무소 앞에서도 만날 수 있다.

 

 

부용산 공원에서 바라본 벌교읍사무소,

좌측 인도부근이 청년단 건물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부용산 공원에 대한 안내도가 걸려있을 뿐이다.

"어쩜 벌교 사시면서 청년단을 모르세요? 나 같이 타향살이하는 사람도 아는데, 공원아래 목욕탕 2층이잖아요."(<태배산맥3권 116쪽)

김범우가 다방아가씨에게 청년단 건물이 어디냐고 묻자 대답한 말로, 청년단은 염상구가 자애병원 간호원을 고문하여 안창민이 그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것을 알아낸 곳이고, 솥공장집 딸 윤옥자의 가방속에 빨갱이들의 편지를 몰래놓고서 빨갱이 혐의를 뒤짚어 씌워

그녀를 겁탈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헐리고 공원이 되어 소설속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부용산공원은 계엄사령관 심재모가 벌교읍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 종합지휘본부를 차리고 그 위의 고지를 M1고지라 불렀다.

M1고지가 한글로 부르면 엠원 또는 앰완으로 된다. 그런 앰완고지(M1고지)를 벌교주민들은 애망고지라고 부른다고 한다.

 

 

 부용산 시비가 있는 부용정까지 가기엔 상당한 발품을 팔아야 하기에 이곳에서 그냥 벌교 본정통을 조망해 본다.

 

 

벌교읍사무소와 채동선음악당은 같이 붙어있다.

채동선은 정지용의 시 고향에 곡을 붙인 분으로 그 음율에 매료된 이은상이 <그리워>를, 박화목이 <망향>을 각각 작사했다고 한다.

채동선(1901~1953)은 보성출생으로 경기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가 1924년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으며, 독일

슈테른쉔 음악학원에 입학하여 바이올린과 음악이론을 전공하였다. 그 후 1929년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악리와

실기를 가르쳤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애창되는 가곡이 <망향>으로 1979년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벌교읍사무소에서 벌교천쪽으로 걸어가면 다리가 하나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소화다리이다.

1931년 철근콘크리트로 건설되었으며, 당시부터 부용교라는 이름이 있었으나 언제적부터 소화다리라 부르기 시작했고,

지금은 부용교라는 다리보다 소화다리로 더 유명해졌다.

"소화다리 아래 갯물에고 갯바닥에고 시체가 질펀허니 널렸는디, 아이고메 인자 징혀서 더 못 보겄구만이라.. 사람쥑이는거 날이

날마동 보자니께 환장 허겄구만요 (<태백산맥>1권 66쪽)

이렇게 이 다리에서는 좌익과 우익이 번갈아 벌교를 점령했을 때 마다 총살이 이루어진 다리로 묘사되고 있다.

 

 

 

소화다리를 건너 벌교터미널 방향으로 내려가면 좌측 산 기슭으로 교회 십자가가 달린 어린이집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소설속 회정리 교회로 지금의 대광어린이집으로 바뀌어 있다.

 

 

학교를 그만두게 된 이지숙이 야학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 이곳이다.

"이 일은 이, 이 이는 사, 이 삼은 육, 이 사 팔..." 모두의 목소리가 조화롭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지숙은 그 울림이 슬픔인 듯 서러움인 듯 가슴을 적셔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가난이란 육신을 배고프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배고프게 만드는 것이다.(<태백산맥>4권 100쪽)

 

 

 

마지막으로 지도에 조정래 생가로 표시된 곳을 찾아야 하는데, 결국 못찾고 말았다.

지도상에는 분명 회정리 교회 부근으로 되어 있는데, 근처 식당 주인에게 물어봐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와 저쪽 검은 기와지붕 어딘가가 생가겠죠? 라고 말하니 어디서 찾을 것인가.

암만 근처를 샅샅이 뒤져봐도 조정래 생가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검색해 본 바로는 회정리 교회에서 나와 벌교터미널 방향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우측으로 국민슈퍼가 있는데

그 골목안에 있다고 하니, 엉뚱한 곳에서 찾지 말고 반드시 국민슈퍼골목으로 들어 가시기를...

 

그리고 작가는 조정래 생가라는 곳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순천(옛 승주군) 조계산 선암사 부주지이자 시조시인이었던 조종현씨의 차남으로 선암사에서 출생하여 초등학교4학년부터

광주서중에 입학할 때 까지 약3년간 벌교에서 살았기에 생가라는 표현보다 조정래가 어린시절을 보낸 집이 더 맞을 것이다.

 

이제 벌교의 보성여관과 홍교, 김범우의 집을 제외한 읍내의 들를 곳은 1차로 가 보았다.

아직 가 보지 못한 벌교 외곽은 훗날 소설<태백산맥>속으로 들어간 벌교여행 2부에서 찾아볼 생각이며, 다음에 찾아 나설 곳은

바로 80년전 오성급 여관이었던 보성여관으로 가 본다.

 

1편 소설태백산맥속으로 들어간 벌교여행/프롤로그

2편 벌교여행도 식후경/태백산맥 현부자네 꼬막정식

3편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에서 길을 묻다

4편 소설 태백산맥의 시작점 현부자네 와 소화의 집

 

 (글 : 포토뉴스코리아 simpro) 트위터http://twitter.com/huha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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