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빛 사랑초 핀 양림동 우월순 선교사 사택

2014. 11. 4. 06:30광주 견문록/광주 견문록

 

한 달에 한 번 집에 오는 큰 아이가 부산으로 되돌아가는 햇빛 따스한 일요일 오후.

버스시간까지 다소 여유가 있어 광주 근대문화의 보석같은 마을 양림동을 가게 되었다.

양림동을 주말에나 일요일을 이용해 자주 가지만, 매번 갈 때마다 느낀 것은 유명세에 비해 사람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마을은 조용하고 손님을 맞이 할 음식점들은 대게 문을 닫았으며 거리엔 사람보다 지나가는 차가 더 많아 보인다.

어쩌다 많은 사람이 보이면 십중 팔구는 광주양림교회라는 교회명을 세곳이나 쓰는 교회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로,

그럴 때만 조금 양림동은 부산을 떨지만, 이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양림동은 다시 깊은 고요에 빠져든다.

 

 

 

광주 양림동 우월순 선교사 사택 앞에 핑크빛 사랑초가 피어났다.

큰 아이와 엄마는 양림산에 올라갔고 우월순 선교사 사택 주위를 배회하다 만난 꽃이다.

잎이 여지없이 하트모양이다. 그래서 꽃이름이 사랑초일까?

 

 

사랑초는 옥살리스라고도 하는데 보통은 사랑초라 부른다고한다.

괭이밥 아니냐고 물었더니 숲 해설가 하는 친구가 '사랑초'라고 우문현답을 해 준다.

심장같은 아름다운 잎과 꽃을 볼수 있기때문으로, 꽃말은 바로 '당신을 버리지 않을께요'.

 

꽃말처럼 예쁜 사랑초가 우월순 선교사 사택앞에 소담스레 피어났다.

개체수는 많지 않지만, 단연 군계일학이다.

 

 

 

산책나간 중전과 큰 아이를 기다리면서

가녀린 사랑초와 핑크빛 사랑을 나눠본다.

 

 

우월순 선교사 사택.

지금으로 부터 110년 전인 1904년 12월 25일 양림동(지금의 사직도서관)배유지 목사의 임시사택에서 광주 최초의 예배를 드린

광주 선교부는 1905년에는 진료소도 개소하였는데 배유지 목사의 임시사택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주중에는 배유지 목사의 사택을

임시 진료소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 선교 진료소인 제중원(훗날 광주기독병원)의 책임은 의사 놀란이 맡았으며, 놀란 다음으로 1908년 합류한 우월순(윌슨) 선교사가

진료소를 맡았다. 이곳은 그 우월순(Wilson) 선교사의 사택으로 1920년대에 지어졌다고 하지만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며, 광주에 현존하는 양식주택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곳에서 우월순 선교사는 1925년 나환자 치료를 위한 전문 진료소를 만들었고 이를 계기로 애양원이 탄생하였다. 정사각형 모양으로 1층은 거실, 가족실, 다용도실, 부엌, 욕실이 있고, 2층은 사생활 공간으로 침실을 두었다.

벽은 회색벽돌(225㎜×110㎜×55㎜)을 사용하여 네덜란드식으로 쌓았고, 내부는 회반죽으로 마감을 하고 고막이 부분은

화강석을 쌓아 처리하였으며, 지하의 통풍과 채광을 위해 정면부분에 십자형 구멍을 두는 장식벽돌쌓기를 하였다.

개구부는 모두 반원의 아치형으로 만들었고 창대부분은 벽돌 마구리 세워쌓기를 하였다.

창은 이중창으로 외부는 열개창, 내부는 오르내리창으로 구성되어있다.

허리돌림띠 (String Course)를 사용하여 1층과 2층의 구분을 주었으나 지하층은 구분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현관 2개의 기둥상부에는 1층과 2층에 각각 6켜 내쌓기의 주두장식이 되어 있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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