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자진 폐교했던 수피아 여학교/양림동 둘레길
수피아 여학교
광주 최초의 근대식 학교는 1904년 광주 최초의 교회로 설립된 양림교회 설립자 배유지 선교사에 의해 1908년 선교목적으로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를 설립한 것이 최초이다.
서울에서는 1885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연희전문학교, 1906년에 애덤스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대구 계성고에 이어 여학교로는 1908년 광주에 세워진 것이다. 당시 이러한 학교들은 선교사들이 선교목적으로 한국에 왔다가 병원을 설립하고, 이어 학교를 설립한 것으로 이어진 것이 보통이었으며, 수피아 여학교는 선교사들이 모여 살던 동네에서 한두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시작된 것이 정식 학교로 까지 발전한 풀뿌리 교육의 산실인 것이 특색이다.
이러한 수피아여학교는 1907년 미국 선교사 유진 벨의 사택이 있던 지금의 사직도서관 일대에서 예배를 보면서 몇 명의 여학생들을 가르친 것에서 시작하여, 다음 해인 1908년 남학생을 위한 숭일 학교와 여학생을 위한 수피아 여학교를 설립한 뒤 한동안 특별한 이름 없이 교회내의 ‘광주여학교’ 정도로 불리다가 미국의 한 부인이 자신의 여동생인 스피어(Speer)를 애도하는 뜻에서 기부한 자금으로 1911년 수피아홀을 준공했는데 이것이 수피아 여학교라는 교명의 기원이 됐다.
수피아 여고를 들어가면 처음 만나는 것이 강당이다.
지난 2008년 개교 100주년을 맞았으며 역사가 깊은 학교만큼 오래된 근대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어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일부러 찾아와 둘러보는 공간이다.
*광주3.1 만세운동 기념탑
강당앞에는 동상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광주 3․1 만세운동 기념탑이다.
당시 수피아 여학교는 기독교신앙과 신문물 전파 말고도 학생들에게 민족의식 고취와 지역문제에 많은 관심과 기여를 하도록 교육했다. 1919년 삼일 만세운동에 수피아 여학교에서 많은 참여자가 나온 것이 바로 그것이다.
교사2명과 21명의 수피아 여학교 학생들이 당시 삼일 만세운동으로 일본 경찰에 끌려가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그러한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5년에 건립했다.
또한 수피아 여학교는 기독교의 유일신앙에 토대를 둔 학교였던만큼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1937년에 자진 폐교할 정도로 의식있는 학교였으며 훗날 다시 교명을 되찾는 과정에서도 많은 부침이 있었던 학교였다.
*커티스 메모리얼 홀(유진벨 선교사 기념교회)
이 기념 동상을 바라보다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커티스 메모리얼 홀이 보인다.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159호인 이곳은 미국 테네시주 잭슨의 커티스씨가 코닐리어 커티스를 기념하여 선교사들의 기부금으로 1924년에 지어졌다.
초기에 이 건물은 건축 헌금 기증자의 이름을 따 코넬리아 커티스 기념교회라 불렀지만 지금은 유진벨 선교사 기념교회라 명칭을 바꿨다.
1895년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로 한국에 온 유진 벨(Eugene Bell,한국명 : 배유지)은 나주,목포,광주 등 주로 전라도에서 활동하며 많은 학교와 병원, 교회를 세웠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광주 기독교 병원과, 양림교회, 광주 숭일학교와 수피아 여학교로 그러한 유진 벨 선교사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유진 벨 선교사 기념교회로 명칭을 변경하게 된 것이다.
1923년 건축을 시작해 이듬해 완공된 이 교회는 반지하 건물로, 아래층은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와 선교사 숙소로,윗층은 주일 오전 사역을 마친 선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예배 드리는 장소로 활용됐다.
1955년에 광주전남선교의 아버지인 배유지 목사를 기려 배유지 기념 예배당이라고 명명하였고, 현재는 예수피아교회로 예배가 진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규모는 작지만, 변화가 풍부하고 건축수법이 우수한’ 이 회색 벽돌건물의 위층은 예배실, 아래층은 선교부 아동들의 학교로 쓰였다고 한다. 언뜻 보기에는 건물이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창문의 구조가 오랜 서양식 건물의 구조를 띠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피아 옛 강당
학교 안으로 좀 더 들어가 보면, 수피아 옛 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적벽돌 건물로 지어졌으며 광주 근현대사, 건축사, 여성교육사에도 의미가 있다.
1937년 자진폐교에 이어 수피아 여학교의 모든 건물과 부지는 조선총독부에 몰수되었으며 그 후 1942년부터 1943년 12월까지 광주공립상업실수학교로, 1944년 5월에는 광주의학전문학교가 여기서 개교하여 해방 뒤까지 교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미군정시절에는 광주에 주둔한 미군들의 막사로도 잠시 이용되었다가 해방되는 해 9월 이 학교 출신자로 훗날 민주화운동에 큰 족적을 남긴 조아라 여사 등이 금정교회에서 재교교 모임을 가지면서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했고 결국, 미군정청의 허가를 받아 이듬해 4월 학교 지위를 되돌려 받았다. 그리고 1947년 6월 미군이 떠난 뒤에 숭일학교에서 잠시 머물던 것에서 원래의 학교 자리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수피아홀
이곳에서 오른쪽 산 쪽으로 올라가면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158호로 지정된 수피아홀이 있다. 수피아홀은 미국 스턴스 여사(Mrs. M.L.Sterns)가 세상을 떠난 친정 동생(Jennie Speer)을 추모하기 위하여 기증한 5,000불로 세운 건물이다. 당시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붉은 벽돌이 아니라 회색 벽돌로 지은 것이 특징이다. 광주 지역 개신교 선교의 근거지이자 여성 교육의 요람으로 꼽히는 수피아 여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윈스 브로우 홀
수피아 여고에서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면 윈스 브로우 홀이 있다. 이곳은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370호로 지정된 곳으로 윈스 브로우(Winsborough) 여사가 받은 생일 헌금으로, 건축을 전공한 남장로회 마틴 스와인하트(Swinehart한국명 서로득) 선교사가 건축하였다.
이 건물은 1927년에 준공되었으며 현재는 수피아 여중 본관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수피아 여학교를 나와 지도에 있는 푸른길을 따라 소설가 황석영의 '장길산'집필지, '징소리'의 소설가 문순태 거처,
'첫사랑'의 극작가 조소혜 거처 등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거처나 집필지라는 표지판이라도 세웠더라면
찾아다닌 보람이라도 있었겠지만 아무런 흔적을 찾을 수 없기에 양림동 둘레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은 수피아여고의 윈스브로우 홀을
마지막으로 다시 양림교회 방향으로 내려오면 된다.
양림동 둘레길 이야기
12.무등산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카페. T-브라운 카페
양림동 둘레길 지도 : 광주남구청제작
(글 : 포토뉴스코리아, 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탐험대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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