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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에 싸인 정철의 송강정

simpro61 2014. 12. 24. 06:30

 

송강정

송강의 후손들이 1770년에 죽록정이라 부르던 것을 고쳐지어 송강정으로 불렀다.

 

 

 

 

 

 

송강 정철은 대사헌인 50세 때 동인세력의 탄핵을 받아 담양 창평으로 낙향. 죽록정에 머물며 식영정과 서하당을 오가며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지어 중앙정부로의 복귀를 강하게 표현했다.

진도군수 뇌물사건으로 동인파의 탄핵을 받아  40세 때 낙향해 4년간을 창평에서 지내다가 선조의 부름을 받고 올라갔다가

다시 낙향했으니 벌써 두번 째 낙향이다.

 

註)진도군수 뇌물사건 : 선조 11년 5월, 진도 군수 이수(李銖)의 행뢰(行賂 : 뇌물 주는 일) 사건으로 옥사(獄事)가 벌어졌는데,

정철이 이수를 두둔하다가 동인의 홍가신(洪可臣), 이발( 李潑) 등의 탄핵을 받아 면직 되어 담양 창평으로 낙향한 사건.

 

 

 

 

 

50세의 송강 정철. 당시 나이로는 살 만큼 살았다고 하겠다.

무슨 욕심이 있어 사미인곡을 지으며 선조가 다시 부르기를 갈망했을까?

성산별곡에서 노래했듯이 서하당의 주인 김성원의 삶이 부러워 그저 이곳에 눌러 앉았으면 정치인으로 송강보다

문인으로의 송강을 더 기억했을 것인데...

 

정철과 정여립으로 대표되는 호남 문신의 동.서인의 당파와 기축옥사는 없었을 것을...

동시대를 살아가며 문학으로 교류하고 시를 읊으며 신선처럼 살았을 것을....

 

 

(글 : 포토뉴스코리아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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