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 견문록/한국의 산

(100대명산)노랑단풍물로 색칠해진 속리산의 10월

simpro61 2011. 10. 25. 02:18

 

    

     금강산을 가보지 않아도 금강산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산 전체의 봉우리는 모두 화강암으로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고 산기슭은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소금강이라 불리는 속리산.

     천년고찰 법주사와 정이품송이 있는 속리산으로의 산행은 설레임으로 늦은 밤잠을 설치게끔 하였다.

     어릴적 소풍을 눈앞에 둔 철부지마냥 속리산으로 향하는 마음은 광주에서 속리산까지의 긴 여정도 전혀 낯설지 않게 하였다.

     마치 연어가 자기고향으로 회귀하듯이 자연스럽게 나를 속리산으로 부른 것은 다름아닌 백두대간길의 부름이었다.

     충북보은군, 괴산군과 경북상주시와의 경계를 이루며 국립공원지정 한국8경의 하나인 속리산으로의 산행은 분명 내겐 행운이었다.

     오늘산행은 광주원산우회의 1484차 충북보은속리산 우복동천 1구간 산행으로 친구 셋과 동행했다.

     오늘 속리산코스는

     A코스 : 갈령 - 형제봉 - 천왕봉 - 신선대 - 문장대 - 소석문 - 법주사 (15KM, 7시간)

     B코스 :  화북탐방센터 - 문장대 - 신선대 - 비로봉 - 세심정 - 법주사 (10KM, 5시간)으로 짜여져 있지만

     B코스가 짧아서 문장대에서 관음봉을 들렀다가 다시 문장대로 올라와 신선대 비로봉 세심정 법주사로 이어지는 코스를 새로 만들어 나섰다.

     그러나 문장대에서 관음봉으로 10월6일부터 출입금지가 되고 문장대에 오르려는 수많은 인파들로 인하여 계획을 다시 수정,

     비로봉에서 천왕봉까지 올랐다가 다시 법주사로 하산하는 코스로 수정하였다.  

 

     [10:04]애시당초 오늘 산행의 B코스는 밤티재가 들머리였으나 속리산을 많이 다녀온 회원님이 화북코스를 추천해서 문장대를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인

     화북코스로 갑작스레 변경이  되었다.  화북탐방지원센터에서 문장대까지는 3.8KM로 1시간30분정도면 오를 수 있다한다.

     반대로 법주사에서 문장대까지 오를려면 왕복 약12KM에 시간도 7시간정도 걸린다하니  얼마나 이 코스가 인기있는지 알 수가 있다.

     산의 오름도 급경사길이 거의 없어 어린아이들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오르는 코스가 되겠다.

 

                              탐방지원센터로 올라가는 길목의 단풍나무가 화염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햇빛이 스며들어오는 나뭇가지 사이로 줄줄줄 핏물이 흐르는 단풍이 모든 사람들의 넋을 놓게 만든다.

                              산 아래가 이러하니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얼마나 장관이겠는가. 벌써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울렁거린다.

 

     버스는 우리를 내려놓고 되돌아서 가버린다. 밀려드는 차량들로 길은 차와 사람들로 홍수를 이루지만 서로 양보하고 싫증내고 짜증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살아가는 세상에서 모두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만 가득한다면 인간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화북탐방지원센터가 있는 이곳은 충북 보은이 아니고 경북 상주시다.

     상주엔 견훤성이 있다. 견훤성은 곳곳에 있지만 이곳의 견훤성은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가 상주의 사불성을 근거로 세력을 키워 일개 농사꾼에서 장군과 성주가

     되었다가, 견훤이 완산에 후백제를 건립한 후에도 상주에 머물렀으며 왕건의 고려로 망명할때까지 상주에 있었는데 그때의 사불성이 견훤성이 아닌가 싶다.

     속리산을 오르는 전 코스의 안내도를 보면 문장대에 오르기만 하면 법주사를 중심으로 타원형의 능선코스로 모두 법주사로 하산하는 코스가 주코스이다.

 

                           산행거리는 화북탐방지원센터에서  천왕봉거쳐 법주사탐방지원센터까지 12.4KM에 주차장까지 1.5KM를 더해서 14KM이다.

                           산행시간은 점심및 휴게시간 제외하고 약 6시간 30분정도 걸리는 코스이다.

                           그럼 지금부터 속리산 화북코스로 문장대에 올라 신선대 비로봉 천왕봉 법주사까지 가는 산행을 시작해 보자.

 

     탐방지원센터에서 올려다 본 속리산...저 봉우리는 어디일까 아마 신선대로 추정되나 초행길이라 아직 확인불가다.

    오른쪽의 봉우리의 웅장한 암벽으로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저곳은 또 어디일까.. 위치상으로 문수봉이지 않나 싶다.

 

     [10;22]20여분동안 긴 오르막을 오르면 나타나는 산행안내도..이 안내도를 보면 문장대에 올라 천왕봉까지 거의 한일자(一)자 능선길임을 알 수 있다.

     즉, 문장대까지 오르기만 하면 다음부터는 큰오르막이나 어려움없이 완만한 능선을 따라 천왕봉을 거쳐 법주사로 내려설 수 있는 난이도 하급 산행으로

     친구랑, 애인이랑, 또 부부간에 아이들 손 잡고 가볍게 오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물과 간식과 등산화는 필수품이니 꼭 구비하고 올라가야 한다.

     그래도 부족하면 신선대에 휴게소가 있기에 거기서 왠만한 배고픔은 해결할 수 있다.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다. 지도상으로는 거의 직등코스로 굉장히 힘들 것 같지만 등산로는 지그재그로 그 경사각을 엄청 줄여놓아 아주 편하게 갈 수 있다.

     지도만 본다면 지리산 화엄사에서 노고단에 올라서는 직등코스처럼 어려울 것 같았으나 실제로 올라서니 아기자기한 등산로가 하염없이 문장대까지 이어진다.

 

     [11;00]바위끼리 도미노게임을 하고 있다. 맨아래 바위는 제풀에 넘어져 있고 세번째 바위는 반쪽의 힘으로 힘겹게 버티고 있다.

     몸뚱아리가 작아도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저 바위에 이름을 붙혀주고 싶은데... (그래 지렛대바위라 불러주자. 나를 지렛대로 문장대까지 날아가렴...)

 

     [11;15]완전 깜놀이다. 산에 오르는 수많은 산님들 중 학처럼 고운 수녀복을 입은 수녀님이 보인다.

     그 수녀님의 신발은 등산화였지만 등산복대신 수녀복을 입고 가벼운 배낭차림으로 문장대에 오르고 있다.

     사실 이 수녀님뿐만 아니라 문장대로 오르는 인파중에는 운동화에 청바지차림의 연인들과 학생들 , 아이들 손잡고 나선 엄마 아빠들,

     그리고 우리들의 부모님들이 계시다.

     그만큼 쉽게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에 치여 속도를 내기 어려워 2.1km오는데 1시간 10분가량 걸려 그것이 좀 아쉽다.

     단풍구경왔는데 오르는 내내 단풍보다 사람구경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11;30]문장대로 올라서는 마지막 길목에 우뚝솟은 문수봉... 나뭇가지에 걸려 조망이 어려워 바위위를 기어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잘생긴 여인의 속눈썹마냥 나뭇가지가 일품인 바위와 봉긋한 젖무덤처럼 보이는 두 봉우리..

 

      잎이 다 떨어져버린 수풀사이로 생생하게 보이는 소나무의 늘푸름은 극명하게 대비되고 혀늘 낼름거리는 바위가 인상적인 문수봉.

 

     그리고 쭉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장쾌한 하늘금...

 

     문수봉에서 보이는 곳까지 한 바퀴 빙둘러 보자.

 

     [11;38]문장대까지 600m남겨놓고 시원하고 깨끗한 계곡물이 흐른다.. 조릿대사이로 난 도랑을 타고 흐르는 물의 근원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낙동강의

     물줄기를 이루어 남해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은 분명하지 않는가.

 

     [11;51]문장대앞 안부의 또 다른 봉우리는 출입금지다. 여기서 사방팔방으로 길이 갈라지나 우린 문장대를 거쳐 관음봉으로 가기에 엄청난 인파를 헤치고

     우측길로 들어서지만 200여미터정도 이어진 문장대 답사인파에 놀라 뒤에 붙어 줄을서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한참을 망설였다.

     이곳까지 와서 문장대에 오르지 않으면 속리산에 온 의미가 반감이 되는데... 하지만 우린 문장대에 안오르고 관음봉으로 가기로 하고 기나긴 줄을 옆으로

     빠져나와 새치기 아닌 새치기를 하는 동안 내내 뒤통수가 뜨끔뜨끔한 것을 느꼈다.

     그래도 입은 살아가지고 '죄송합니다. 우린 문장대에 안가고요~ 관음봉 가걸랑요...'를 수십번 외치고 양해를 구하며 전진해야 했다.

     그러나 문장대 안부에 올라 우리가 가야할 관음봉쪽으로 눈길을 돌리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무심한 출입금지 안내판이다.

     문장대옆으로 내려서는 등산로는 10월6일부터 안전시설 미비로 폐쇄되었다.

 

     29일날은 광주 빛고을토요산악회와 속리산코스를 다시 탄다. 그때 상오리 - 문장대 - 법주사코스를 타면서 문장대에 오르기로 하고 계획을 수정

     관음봉대신 예정에 없던 천왕봉코스를 추가하여 적절하게 산행거리를 추가하게 되었다.

 

     그래도 문장대앞에서 그냥가기가 아쉬워 두 표지석앞에서 사진을 남겼다.

     좌측의 거대한 문장대 표지석에는 상주출신 박찬선 시인의 속리산 문장대란 시가 새겨져 있다.

    

     속리산 문장대

     도는 사람을 떠나지 않았는데 사람이 도를 멀리 하였고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세속이 산을 떠났네

     하여 이름 붙혀진 속리산 문장대 1054m

     구름속에 갈무리 져 운장대라 하다가

     세조가 이곳에 올라 시를 지었다 하여 문장대라 했으니

     우러러 우주의 장대함을 보고

     구부려 품류의 번성함을 살핀다는 기묘의 극치

     정상에는 알이 부화한 둥글게 파인 곳이 있으니

     태초 생명탄생의 신비를 일러주도다.

     동쪽으로 칠형제봉 문수봉 신선대 비로봉 천왕봉이 이어졌고

     서쪽으로 관음봉 묘봉이 솟았으며

     비껴서 낙영산과 도명산이 다가선다.

     남쪽 아늑한 곳에 법주사를 앉혀 법맥을 잇게 했으니

     빼어난 기품 호연의 기개여

     조물주의 조화여 오! 선계의 아름다움이여

     박찬선 글

 

     道不遠人 人遠道  山非離俗 俗離山
     도는 사람을 멀리하려 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 하려드는구나.
     산은 속세를 떠나려 하지 않는데
     속세는 산을 멀리 하려드는구나
     - 고운 (孤雲) 최치원 (崔致遠) -

     위 시에서 나온 ~하여의 인용시다.

 

     [12;14]문장대의 모습은 오늘 겉모습밖에 볼 수가 없다. 알이 부화한 둥글게 파진 곳을 봐야 하는데..

     문장대에서 법주사로 바로 하산하는 코스도 있으며 천왕봉을 거쳐 하산하는 코스도 있다.

     발디딜틈도 없이 빽빽히 들어선 안부엔 궁둥이 붙히고 밥먹을 자리도 없다.

     하여 천왕봉쪽으로 가는 길목의 아무데나 전망 좋은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하고 천왕봉방향으로 허기진 배를 위로하며 출발한다.

 

     [12;22]저만치 내려다 보이는 문장대의 모습과 줄지어선 문장대 답사객들...

     아이구...29일날 속리산2차 답사시 또 문장대에 저렇게 줄이 서 있으면 또 어쩔것인가... 토요일이니 좀 괜찮지 않나 싶으나 두고 볼일이다.

 

     먼 발치로 법주사가 보이고 그 너머 운무사이로 우뚝솟은 산은 어디일까...그 방면은 계룡산 방면인 것 같은데 알수가 없다.

 

     바위틈사이로 뿌리를 내리고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는 소나무와 기묘하게 생긴 바위봉우리.. 마치 속리산 산신이 데리고 다니는 호랑이모습을

     영낙없이 빼 닮았다.  바라보고 있는 곳은 아마도 속리산 법주사 반대방향...즉, 화북코스로 올라오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

 

     [12;32] 마치 책을 쌓아놓은 듯한 청법대근처에 서너명 엉덩이를 깔 자리가 있다.

     이곳까지 오면서 전망좋고 자리좋은 곳엔 어김없이 산정에서 즐기는 오찬이 벌어지고 있다.

     새벽밥먹고 옆지기들이 바리바리 쌓아준 도시락을 꺼내놓고 따끈한 라면국물에 막걸리로 허기진 배를 위로하니 세상부러울 것이 없다.

     산에서 먹는 오찬은 혼자 먹을때와 여럿이 먹을때의 분위기가 사뭇다르다.

     혼자일때는 아무리 진수성찬이어도 그릇을 비우기가 어렵고 여럿이 먹을때는 소찬이어도 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식탐이 있다.

     평소 산행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때마다 절반은 남겨가지고 돌아와 옆지기에게 혼난적이 많다.

     새벽에 일어나 좋다는 반찬에 현미밥지어서 챙겨주면 깨끗히 비우고 와야 정성에 보답하는 것이지라고...그렇지만 남은 음식을 산에다 버리고 갈 순 없잖는가.

 

     [13;13]오찬시간이 길어졌다. 경치좋고 공기좋은 속리산의 한 봉우리에서 먹는 점심은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시간가는줄 모르게 하였다.

      약30분 정도의 오찬을 즐긴후 바로 위의 전망좋은 바위위로 올라가 청법대를 배경으로 툭터진 사방을 둘러본다.

 

     滿山紅葉...말그대로 '온통 산이 빨간단풍으로 물들다.'인데 빨간단풍은 듬성듬성보이고 노란단풍으로 금강계곡은 물들어있다.

     속리산의 단풍은 빨간색보다 노란색이 훨씬 더 많아 滿山黃葉이라 부르는 것이 맞겠다.

     내장산과 백암산 단풍이 산 전체가 붉은색으로 활활 타올라 마치 유화를 보는것 같다면 속리산의 단풍은 단아한 노란단풍으로 수채화를 보는 것 같다.

 

     문수봉에서 한 바퀴 둘러본 것과 또다른 멋이 있다. 문수봉에서 바라본 방향은 소백산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길이었다면

     이곳에서 바라보는 방향은 덕유산 지리산방향의 백두대간길이다.

 

     한 바퀴 빙둘러보며 이 땅의 아름다운 산들을 마음껏 즐겨본다.

 

     가야할 방향의 경업대가 보인다. 강한 남성의 상징처럼 속리산 산기슭에 우뚝 솟은 입석대의 굵은 핏줄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 이 길이 백두대간길이기에  더욱 실감난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태백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1400km를 종횡으로 이어지며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는 거대한 산맥으로 남쪽으로 내려서서는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 등 한반도의 명산들이 모두 들어서 있으며 10대강의 발원지를 품고 있다.

     한반도를 만들어내며 서해 평야지대를 병풍처럼 둘러쌓은 백두대간길중 하나인 속리산 문장대에서 천왕봉까지의 길을 지금 우리는 걷고 있다.

 

     [13;29]문장대에서 천왕봉방향으로 1.2km를 오면 신선대(1026m)가 있으며 거기에는 신선대휴게소가 있다.

     이곳이 속리산국립공원 소속의 휴게소인지 아니면 개인매점인지 불분명하다.  국립공원소속이라면 휴게소란 이름보다 산장이란 이름이나 대피소로

     불릴 것인데 왠 휴게소?...살짝 들여다 보니 동동주를 파는 것을 보면 공원소속은 아닌 것 같고 개인이 운영하는 매점이 분명하다.

     이게 왠말인가? 국립공원내에 개인이 운영하는 매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 산은 개인소유란 이야기다. 불명확한 출처에 의하면 속리산의 대부분의 소유자는

     법주사 등 개인소유라 한다. 그런 휴게소들은 법주사나 개인에게 임대료를 내고 운영하는 개인매점인 것이 맞다는 것이다.

     문장대에도 1976년부터 휴게소가 있었다 한다. 소유자와 국립공단간의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끝에 보상금을 지불하고 몇년전에 철거되었다하며

     또 문장대도 개인소유의 임야다. 속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훨씬 전 부터 문장대 일원의 약417만 제곱미터의 임야는 대구소재의 K학교법인이 1951년 

     취득하여 지금까지 소유하고 있다 한다. 개발도 못하는 국립공원지역내의 문장대임야가 개인소유이듯이 다른 휴게소들도 마찬가지로 임야소유자가 있어

     무분별한 임대와 난개발로 인한 관리미흡으로 국립공원이 가지는 청결하고 깨끗한 이미지에 반하여 환경저해시설로 낙인받고 있다.

     하지만 목마르고 배고픈 길손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제공하는 주막집으로서의 운치는 있어보이나 조용해야할 국립공원내의 산 정상에서 술판이 벌어지고

     도때기시장같은 소란스러움으로 조용히 산 길을 걷는 훨씬 많은 수의 산님들에겐 운치보다 더 아픈 상처로 와 닿는 광경일 것이다.

 

     [13;35]신선대에서는 경업대를 거쳐 법주사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다. 임경업장군(1594~1646)이 무예를 익혔다는 신화의 장소 경업대.

     네모 반듯한 돌기둥은 임경업장군이 맨 손으로 일으켜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경업대는 천왕봉을 거쳐 하산하는 코스로 가다보니 스치듯 지나가며

     멀리서 입석대만 조망하고 만다. 경업대의 벼랑바위에 올라서서 법주사금강골을 향해 호령하고 있었을 임경업장군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14;01]신선대에서 비로봉으로 가는 길엔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로 비좁은 협곡을 지나야 한다.

     오다가다 마주치면 어떻하나...그래서 서로 옷깃을 스치면 그것도 인연인지라 서로 눈인사 손인사로 미소머금고 지나가는 아름다운 길이다.

     협곡을 지나자마자 눈앞에 펼쳐지는 금강골...푸른산에 노란 물감을 군데군데 찍어놓은듯한 아름다운 모습에 모두들 감탄사를 연발한다.

 

     [14;08]비로봉을 지나고 있다. 하늘금을 이루는 수많은 산줄기들이 바라보이고 그들을 바라보는 큰바위얼굴같은 비로봉..

 

     가야할 속리산주봉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비로봉엔 지금 낙엽과 단풍이 서로 들자리와 날자리를 앞다투워 시새우고 있으며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의연하게 서있는 소나무만이 그 푸르름을 잊지않고 있다.

 

     비로봉의 멋진 바위모습들...

                                                               

 

     [14;14]비로석문. 비로석문이라는 표지판은 없고 대신 입석대와 천왕봉의 거리표시가 있는 이정표가 있다.

 

     [14;22]천왕봉까지 600m남은 지점에서 상고암쪽으로 해서 법주사로 하산하는 코스가 오늘 우리가 타는 산행코스다.

     우리 네 친구들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가다가 신선대휴게소에서 두 친구가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한 친구가 우리를 뒤쫓는다고

     숨이 턱에 차게 앞질러가 천왕봉 못간 헬기장까지 갔었다.(헬기장은 이정표에서 천왕봉쪽으로 300m가면 있다.)

     중간에 그런 사실을 직감하고 부지런히 핸드폰을 잡았으나 불통지역은 왜 이리 많은가. 우리 세명은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고 있고 한 친구는

     헬기장까지 가서 우리가 걸어온 길을 조망하고 있다가 통화가 되었다.

     서로위치를 파악하다 우리가 내려가고 있다는 말을 법주사로 하산하고 있다고 착각한 친구가 또 헬기장에서 이정표까지 냅다 달려온다...(아이구...)

     불행중 다행으로 이정표가 있는 자리에서 네명이 다시 만나고 헬기장에서의 조망을 즐기지 못한 나머지 세명은 먼저 다녀온 친구에게 다리쉼을 하라 해놓고

     맨몸으로 헬기장까지 내달린다. 여기까지 왔는데 걸어온 길을 확인하는 멋진 조망터가 있다는데 300m 더 갔다 오는것이 무슨 대순가.. 

 

     [14;27]300m를 5분도 채 안걸려서 갔다. 역시 뒤돌아보니 지나온 행적이 뚜렷하게 보인다.

     속리산을 다른 말로 구봉산이라고도 한다는데 우리 뒤로 5개 봉우리가 보이며 눈앞에 보이는 천왕봉까지의 거리는 300m밖에 안된다.

     여기서 두 친구가 29일 속리산2차탐방에 참석을 못하는 관계로 두 친구를 위해서 속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300m를 또 내달린다.

     가면서도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우리 베낭을 베개삼아 자리를 지키고 있을 친구에게 미안해 진다.

     그 친구는 천왕봉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우리가 행여 법주사로 하산한 줄 알고 냅다 뛰어내려 왔기에 우리만 보고 온다는 것에 약간의 죄책감을 가졌으나

     비밀로 하자는데 말을 맞추고 아주 태연스럽게 다녀오기로 했다..ㅎㅎ

 

     헬기장에서 바라본 걸어온길의 좌우180도 조망

 

     [14;40]또다시 300m를 5분도 안걸려 도착했다. 천왕봉(1058m)이 주는 느낌은 문장대(1018m)와 사뭇 다르다.

     속리산의 최고봉(崔高峰)은 천왕봉이 맞지만 속리산의 대표봉은 문장대이지 않나 싶다. 문장대의 후덕한 안부와 그 사이에 우뚝솟은 바위정상은

     속리산 최고의 전망대역할을 하며 뭇사람들을 넋놓고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있으나 천왕봉은 날파리때로 오래 머물러 있게 하지를 않는다.

     비록 날파리때가 조망을 방해하고 있으나 천왕봉정상에서의 조망은 과히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천왕봉에서 문장대방향의 조망.

     1400km에 이르는 백두대간은 속리산 천왕봉에서 다시 갈라져 한남금북정맥을 만들어낸다.

     8명, 8경, 8대, 8석문으로 8이란 숫자로 국립공단지정 한국8경에 조선8경까지 그 모든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속리산.     

     첫째, 속리산은 구봉산, 속리산, 소금강산, 광명산, 지명산, 이지산, 형제산, 자하산 등 8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둘째, 천황봉,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 수정봉 등 8개봉이 있고,

     셋째, 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신선대, 봉황대, 산호대의 8대가 있으며,

     넷째, 내석문, 외석문, 상고내석문, 상고외석문, 비로석문, 금강석문, 상황석문, 추래석문의 8개의 석문이 있는 속리산은 지금 노랗게 물들고 있다.

 

     [14;50]천왕봉을 내려서면서 이제 본격적인 하산이다. 비로봉에서 천왕봉못가 상고암방향을 하산하는 코스는 원래부터 있던 바위에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바위들을 깎아서 만든 돌계단...시설물을 설치하면 자연은 보호할 수 있으나 이렇게 인위적으로 돌을 조각하여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한 이해심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 철재나 목재로 바위위에 구멍을 뚫어 계단을 고정시켜놓는 것이나 그러한 것을 배제한 채 자연그대로의 바위에 계단길을 만들어

     놓은 것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15;30]속리산 금강골을 타고 흐르는 이 계곡수는 금강을 이루고 낙동강을 흘러 군산앞바다까지 흘러간다. 속리산의 계곡물들은 한반도를 남서로 가로 질러

     한 쪽은 낙동강을 통해 남해로, 또 한 쪽은 금강과 백마강을 통해 서해로 흘러가는 긴 여정의 출발점이다.

     이 시리도록 차가운 물로 잠시 땀을 닦아내며 법주사로 이어지는 기나긴 계곡길을 지루하도록 내려간다.

 

 

     [15;34]상환석문이다. 천왕봉을 출발한지 40여분만에 상환석문까지 왔다.

    

     빛의 삼원색이 무엇이던가?  빨강,초록, 파란색인데 오늘만큼은 파란색을 노란색으로 바꾸어 보자. 그럼 겹치는 한 가운데엔 아무것도 없는 백색이 나온다.

     빨간색과 초록색을 합치면 노란색이 된다.  색의 삼원색은 빨강,노랑, 파란색이므로 빛에 비치는 것과 물감으로 칠 한 것의 차이점은 흑이냐 백이냐의

     차이만큼 크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흑이냐 백이냐의 논란보다 눈에 보여지는 색에 충실하고자 한다.

 

     가히 눈으로 보는 것 하고 사진으로 보는것 하고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몸서리치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 처연하게 아름다운 단풍들의 색감을 똑딱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아내지 못함이 정말 애석하기만 하다.

 

     속리산 단풍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상환석문에서 세심정까지의 단풍코스.

     그 빛의 삼원색과 색의 삼원색에 퐁당 빠져보자.

 

     [16:00]세심정이 다 와 간다. 이곳은 신선대에서 내려서는 길과 비로석문에서 내려서는 길이 만나는 지점이다.

     이끼 가득낀 나무다리의 초록색이 주는 남다른 정감이 발을 붙잡는다.

 

     모두들 여기서 세족들 하느라 부산이다. 산 전체가 노랗게 물들어 버린 속리산 세심정근처의 자그마한 폭포를 가로막고 있는 저 돌덩이를 어떻게 치워버릴순 없나?

     멋들어진 폭포를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비껴보는 애석함이 절절히 묻어난다.

 

     13세기에서 14세기경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심정절구.

     당시에는 이곳에 약400여개의 암자와 토굴 등이 있었다 한다. 그곳에서 공부하는 많은 고승과 도인, 학자들에게 나라에서 음식을 제공했는데

     이런 자연석을 깎아 만든 절구에다 곡식을 넣고 빻아서 음식을 만들었다 한다.

 

     세심정이 있던 자리.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세심(洗心)이라는 정자가 있었을까? 아니면 산행에 지친 마음을 여기서 씻으란 말일까.

     그런말과는 달리 여기 세심정에는 세심휴게소가 있어 식사나 막걸리로 산행의 피로를 씻는 곳이 되어버렸다.

 

     [16;15]마음을 깨끗하게 닦는다는 세심정은 문장대로 바로 오르는 코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축대에 붙혀놓은 현수막을 보니 속리산 단풍은 절정이 10월27일로 되어있어 29일날 속리산2차 산행의 출발을 기쁘게 하고 있다.

    

     [16;20]세조가 법주사에서 국운의 번창을 기원하는 대법회를 연 후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약사여래의 명을 받고 온

     월광태자라는 미소년이 나타나 피부병이 곧 완쾌될 것이다라고 말한 후 사라졌다는데 신기하게도 그 후 몸의 종기가 깨끗히 없어졌다 하여 목욕소라 불린다.

 

     목욕소 바로 옆의 주목. 마치 하늘을 우러러 뿔을 치켜뜬 코뿔소를 닮았다.

 

     [16;30]세심정에서 법주사까지 이어지는 포장도로는 2.7km나 이어진다.

     17:00까지 주차장 집결인데 40분정도면 법주사를 둘러보고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발바닥이 불이날 정도의 스피드로 내려가지만 그 끝이 보이지를 않는다.

     단풍의 터널을 지나가지만 마음이 바뻐 제대로 감상을 할 수 없다. 빠르게 흝고 지나가면서 흐린날씨에 단풍들을 담으려니 비전문가 솜씨로는 택도없다.

 

     [16;49]법주사가 눈앞이다. 여기를 그냥 지나치느냐 아니면 둘러보느냐의 심한 갈등에 빠진다.

     15분에 세심정을 출발하여 2.7km를 34분만에 주파했다. 순전히 법주사를 둘러보기 위한 무리수였지만 시간이 빠듯하다.

     세심정에서 법주사까지의 거리만큼(약2.3km)을 더 내려가야한다.

     산길이 끝나는 세심정에서 아스팔트도로를 따라 무려 5km정도를 걸어나와야 대형주차장까지 갈 수 있다.

     혹시라도 날머리를 법주사로 하면 걸어나가는 이 무료할 정도로 지루한 단풍길을 넉넉한 마음으로 돌아보며 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할 것 같다.

     하여 10여분만에 법주사를 둘러보기로 하고 총총걸음으로 법주사 경내로 들어선다.

     법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로 진흥왕 14년(553)에 의신조사가 창건하였고, 그 뒤 혜공왕 12년(776년)에 진표가 새롭게 고쳐 지었으며

     그 뒤로 진표의 제자들에 의하여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통일호국금동미륵대불.

     황금80kg을 입힌 금동미륵대불. 1939년에 시멘트로 조성중에 6.25동란을 만나게 되어 중단되었다가 1963년 박정희국가재건회의 의장과 이방자여사의 시주로

     복원불사가 재개되어 1964년에 시멘트미륵불이 완성.회향되었다.

     그후 1986년 붕괴일보직전인 미륵불을 해체하였고 1990년 청동불로 다시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2000년엔 한.일 월드컵의 성공개최와 세계평화를 발원하며

     검푸른 청동녹을 벗겨내고 개금불사를 개금불사를 시작하여 2002년에 금동미륵대불 회향대법회를 개최하였다.

     3만여명의 불자의 시주금과 연인원4500명이 동원된 금동미륵대불엔 황금80kg이 녹아있다. (허걱. 지금시세로 무려 54억정도 되는 금이 입혀있다.)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

     553년(신라진흥왕14년)에 처음 건립되었다. 임진왜란때 불타 소실된 것을 1626년(조선인조4년)에 다시 지었고 1968년에 완전 해체하여 복원공사를 하였다.

     팔상전은 건축물이 아니라 목조탑이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목조탑건축양식으로 내부 기둥과 기둥사이 4면에 석가여래의 일생을 담은 8상도가 모셔져있어

     당시 5층목탑을 팔상전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높이만 22.7m에 이르는 석조와 목조를 통 털어서 현존 최고높이의 탑이다.

 

     팔상전 내부촬영은 금지되어있다. 그래서 먼 발치에서나마 흐릿한 줌으로 찍다보니 촛점도 안맞고 엉망이다. 내부사정이 궁금한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문화재 촬영금지보다 알 권리가 더 우선이 아닌가 싶다. 왜 촬영을 막을까. 이미 인터넷으로 내부사진은 수도 없이 떠돌아 다닌다.

     법주사 대웅보전 앞에 있는 쌍사자석등(보물 제 5호)은 720년(신라성덕왕19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간지주와 법주사석조

     당간지주는 종파를 표시하기위한 특정한 색깔의 깃발을 건 장소로 1006년(고려목종7년)에 조성되었다하며 당백전을 주조하기 위해 대원군의 명에 의해

     철거 수거되었다가 1910년(순조)경 복원한 것을 1972년 다시 복원하였다 한다.

     법주사석조는 720년(신라성덕왕19년)에 만들어졌다 하며 당시 법주사의 3000여명의 스님들이 마실 물을 저장하였다 한다.

 

     법주사 석연지(보물 제64호)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8각의 받침석위에 3단의 굄과 한 층의 복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식한 간석을 놓아 거대한 석연지를 떠받쳐

     마치 연꽃이 둥둥 뜬 듯한 모습을 표현한 걸작품이라 한다. 쌍사자석등과 더불어 당시 석조조각기술이 얼마나 섬세하고 빛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법주사마애여래상(보물 제 216호)

                   높이가 6m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은 고려시대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17;00]약10여분에 걸쳐 법주사를 둘러보았다.

     비록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사진찍기로 밖에 둘러보지를 못하여서 법주사의 속모습까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대웅보전도 먼 발치에서 밖에 보지를 못하고 쌍사자석등도 역시 먼 발치에서 보고 말았다. 

     60여동의 건물과 70여개의 암자를 거느렸던 미륵신앙의 요람 법주사의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1호)과 대웅보전(보물 제915호), 철확(보물 제1413호),

     희견보살상(보물 제1417호), 원통보전(보물 제916호), 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 대웅보전 (보물 제915호)과 본존불(보물 제1361호) 등 수많은 보물들과

     약사전 삼성각 명부전 등의 세부적인 내용도 들여다 보지 못하였다.

     반쪽짜리 법주사의 탐방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29일에 있을 속리산2차산행때 보지못한 나머지 보물들을 몽땅 끄집어 내야겠다.

     [17;06]일주문을 지났다.

     아직도 대형주차장까지는 1.2km정도 남았다. 발바닥에 불이나게 걷고 또 걸었지만 주차장은 보이지 않고 빠져나가는 차량들로 도로는 꽉 막혀있다.

     도착예정시간인 17시를 훨씬 넘겨  17시25분이 다되어 도착하였다. 세심정을 16시15분에 출발하여 주차장까지 1시간10분동안 죽어라 내려왔다.

     법주사를 둘러본 시간이 10분이니 꼬박 1시간동안 약5km를 거의 뛰다시피 내려왔다. 양발바닥에 물집이 다 잡혔다.

     29일에 있을 속리산 2차 산행때도 법주사를 둘러보고 이 주차장으로 내려온다. 지루할정도로 길기만 한 포장도로를 또 어떻게 내려올 것인가가 숙제가 되었다.

     베낭에 스케이트보드를 넣어가지고 갈까?...아니면 인라인스케이트?...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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