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 견문록/한국의 산

(사찰여행)하늘아래 첫 사찰 지리산 법계사와 천왕봉 성모석상.

simpro61 2012. 1. 12. 06:44

 

 

 

  절에 가기위해 약4km에 2시간정도 산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면 누가 절에 갈까?

  매번 중산리탐방안내소쪽으로 해서 지리산 천왕봉으로 2시간정도 땀을 뻘뻘흘리며 올라가다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지점이 있다.

  하늘아래 첫 사찰인 지리산법계사에 다다르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의문이다.

  이렇게 높은 곳에 왜 절을 지었을까? 라는 의문은 두번째다.

  교회나 성당은 최대한 민가에 가깝게 지을려고 노력하고 또 대부분 도심 한가운데에 있지만 사찰만은 그러한 인간세계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도량은 깊어진다는 생각으로 산으로 계곡으로 멀리멀리 숨어든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처음 불교가 들어온 삼국시대때는 민가근처에 평지가람을 세워 포교와 신도교화를 했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이후부터 평지가람이 점차적으로 산지가람으로 변해가고 그후로 도심지역의 사찰은 모두 폐찰되고 깊은 산중으로

  옮겨간것은 삼국시대이후 정치, 사회적인 이유가 있다고 한다.(아래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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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계사로 가기위해서는  지리산중산리탐방안내소까지 가야한다.

            대형버스로 온 경우에는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25분정도 걸어와야 하며 승용차편으로 올때는 이곳까지 들어와서

            4,000원의 주차료를 지불하고 소형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구 매표소입구로 가면  차단기가 내려져있는 안내소앞

            구 매표소앞에 줄지어 선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법계사 경내버스를 타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므로 오는 순서대로 조용히 맨 뒷사람에 이어 줄을 서면 된다.

            경내버스는 평일엔 1시간에 1대씩 오전7시부터 오후6시까지, 주말이나 휴일엔 30분에 1대씩 오전6시부터 오후6시까지

            운행된다고 한다.(4월~11월까지)

            동절기인 12월부터 3월까지 출발시간은 같고 막차만 오후5시로 한 시간 당겨진다.

 

            요금은 정해진 금액이 없다. 법계사로 가는 신도들을 나르는 셔틀버스이기에 절에 갈려면 그냥 타도 되지만

            순수하게 사찰을 갈려고 경내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법계사 관계자나 신도외에는 거의 없다.

            대부분 경내버스가 운행되는 순두류입구로 법계사에 올라 천왕봉이나 다른 등산코스를 타는 산님들로 보면 된다.

            그러므로 미안함때문이라도 시주금을 내고 타면 된다.

           

            하물며 절에 가서 부처님전에 절을 올리더라도 불전함에 시주를 하고 바깥에 있는 석탑에 기도를 드려도

            불전함에 시주를 한다.(물론 강제사항은 절대 아니다. 절에서는 시주를 요구하지않는다.)

            그 시주라는 개념도 우리가 상상하는 만원단위의 금액은 아니고  최소한 버스를 타며 지불하는 금액정도를 말한다.

            물론 시주개념이므로 더 내도 부처님은 절대 노하시지 않는다.

 

 

경내버스를 안타고 걸어서도 법계사로 갈 수 있다.

구 매표소앞에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을 곁눈질하고

그냥 지나쳐 야영장입구까지 걸어가 법계사 3.4km

이정표를 보고 좌측으로 올라가면 된다.

 

여기서 법계사까지3.4km구간의 난이도는

칼바위지나 장터목갈림길까지 1.3km는 산책수준으로

약27분걸리고 그후 법계사까지 2.1km는 상급수준으로

겨울철에는 1시간20분정도 여름철이면 2시간정도 걸린다.

 

경내버스를 타고 순두류로 해서 올라가면 어떨까?

매표소앞에서 순두류까지 3km를 버스로 이동하여

다시 법계사까지 2.8km를 걸어 올라와야 한다.

 

버스이동시간 15분과 순두류에서 법계사까지 1시간30분.

1시간45분의 이동시간이 걸려 버스대기시간를 더하면

칼바위쪽으로 오는것과 비교해서 큰 차이는 안나겠다.

하지만 순두류쪽 등로는 장터목갈림길에서 법계사로 오르는

난이도 상급코스길보다  훨씬 편하고 힘들지 않는 길이라고 한다.

 

 

    로타리대피소 화장실옆으로 올라오는 길이 순두류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거리는 2.8km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1시간30분정도.

   버스하차지역에서 매표소까지 3.0km에 거리는 시간은 1시간정도.

   순두류로 경내버스를 타지 않고 처음부터 걸어온다면 5.8km에 약2시간 30분정도를 걷는것이 된다.

 

   중산리방향의 길이 지루하다면 하산시에 순두류로 걸어내려가 임도를 따라 중산리매표소로 걷다가 내려오는

   경내버스를 타거나 그렇지 않으면 순두류에서 1시간정도 걸으면 중산리매표소가 나오니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며

   걷는 재미도 느껴볼수 있겠다.

   법계사는 로타리대피소에서 천왕봉방향으로 50여미터 더 가면 일주문이 나온다. 

 

(위에서 받아)

그렇다면 절이 산중으로 숨어든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찰, 그 속에 깃든 의미<김현준>] 와 [가람, 절을 찾아서<정각>]

를 종합해보면 모두 네가지의 이유로 말할 수 있다.

 

첫째, 聖地신앙 또는 領地신앙의 영향이다고 한다.

즉, 국가 태평을 기원하는 호국사찰로서 기도가 가장 효과를 발휘할

신령스러운 장소에 사찰을 지었기 때문이다.

 

둘째, 선종의 유입과 교종의 쇠퇴의 영향이다.

즉, 교리를 통한 수도를 중심으로 하는 교종이 도심지역에 있었다면

참선을 통한 성불노력을 중요시한 선종은 통일신라시대인 821년

(현덕왕13년) 도의 선사가 당으로 부터 남종선을 도입한 이후

장흥가지산 보림사 등 구산선문이 정착되면서 선종이 크게 부흥하면서자연스럽게 참선을 하기 위하여 사찰을 깊은 산중으로 가게 하였다.

 

세째, 풍수지리에 따른 산천비보설의 영향이다.

즉, 풍수지리설의 대가 신라 말기의 고승 도선(道詵 827-898)은

형이나 지세는 국가나 개인의 길흉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인체의약한부분이나 아픈곳을 뜸뜨듯이 나라도 쇠약하거나 흉한

부분을 뜸대신 절이나 탑을 세워놓으면 나라가 융성해 진다고 하며

전국을 돌며 절을 세울곳을 선정했다.

넷째, 조선조의 숭유억불 정책때문에 도심근교의 사찰들을 대부분

폐쇄하여, 결과적으로는 산속의 사찰들만 남게 되었다.

 

 

  법계사 적멸보궁.

  법계사는 조계종 해인사의 말사이며 544년(신라진흥왕5년)에 인도에서 건너온 연기조사가 전국을 두루 돌아다닌 후

  천하의 승지(勝地)라 하여 터를 잡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며 창건하였다.

  같은해 연기조사는 법계사 동북쪽에 대원사를 세우고 구례 화엄사와 연곡사도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법계사터는 용이 사리고 범이 웅크린듯한 산세로 좌우로 급박하게 짜여져서 오직 동남쪽으로만 트여있어 동이 틈과 동시에

  지기와 천기가 조화를 이루며 화합하는 곳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곳인 해발 1450m에 세워졌으며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이 망한다는 전설에 의해

  고려말인 1380년(고려우왕6년) 이성계에 패배한 왜적 아지발도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1405년(조선태종5년) 정심선사가 중창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과 1908년 다시 왜놈들에 의해 불타버리고 1938년 청신녀 신덕순에 의해 중건되었으나   6.25전쟁때 다시 소실되어

  초막을 짓고 창건당시부터 유일하게 남아있던 삼층석탑을 지키오다 불자와 신도들의 발원으로 1981년부터 불사를 일으켜

  현재 대웅전과 삼신각 극락전 등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일제시대 왜놈들에 의해 천왕봉에서 법계사로 흐르는 맥을 끊기위해 박아놓은 철심을 제거하여 전시해 놓았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을 따로 모시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시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부처의 사리와 정골(頂骨)을 나누어 봉안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양산 통도사, 강원도 오대산 중대,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지리산법계사는 인도에서 건너온 연기조사가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며 창건하였으므로 그 역사를 달리한다.

 

적멸보궁 경내의 단 뒤로는 창문으로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삼층석탑을 향하여 나있으며 여기서의 예불은 삼층석탑을 향하여

올리는 예불이다.

 

 

산신각(山神閣)  

산신각에는 지리산 여산신(女山神) 마고선인(麻姑仙人)을

모시고 있다.

지리산에는 노고단(老姑壇)이 있는데 신라의 화랑들이

이곳에서 수련을 하면서 탑(塔)과 단(壇)을 설치하고

천지신명과 노고(老姑)할머니께 나라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했다는데 그 노고(老姑)할머니가 여기 모신 산신이다.

노고는 바로 마고(麻姑) 선인(仙人)을 가리키므로

지리산 산신은 여자산신이다는 것이다.

마고산신에 대한 전설은 한신계곡에도 여러개 있다.

한신계곡 너덜겅의 돌을을 하룻밤새에 천왕봉에서 날라주었고

가내소폭포에도 마고산신의 셋째딸 지리산녀의 전설이 있다.

 

          

 

중산리천왕사에 있는 천왕봉성모석상(聖母石像)

우리 민족의 삼신(三神)사상에 바탕을 둔 큰할머니의

상징으로서, 40여년 전까지만 해도 천왕봉에 있는 성모사에

있었다고 한다.

이 성모석상(聖母石像)은 지리산신의 상징이자,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민속신앙의 상징으로

40대 신라 여인상으로 추측되고 있다.

 

지리산은 신라시대에는 삼산오악신(三山五嶽神)의 하나로,

고려시대 때에는 남악(南嶽)으로, 조선시대 때에는

사악신(四嶽神)의 하나로 숭배되어 나라차원에서 제사를 지냈다. 이와 같은 지리산에서 이 성모석상은 지리산을 지키고 상징하는 여산신(女山神)으로 간주되어 여러 왕조에 걸쳐 제사를 지냈다. 

 

신라말 송도 왕건의 어머니가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산신에게 빌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훗날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태조

왕건이다.  왕건의 어머니는 아들이 고려태조가 된 뒤 위대한 어머니를 상징한 신으로 탄생되면서 천왕봉에 그녀의 석상과

마애불상을 모신것이 성모석상의 기원이다.

 

그러나 이후 성모석상은 수난을 겪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 수난은 1380년(고려 우왕 6년)에 일어났다.

이성계가 지리산 북쪽 관문인 인월에서 2천여 명의

왜구를 섬멸하였는데, 이때 왜구 패잔병들이 지리산으로

도망가 천왕봉 성모석상을 칼로 쳤고, 이어 2㎞ 남쪽의

법계사를 불태웠다.

 

이때 성모석상은 왜구들의 칼에 목이 잘려 머리와 몸통이

절벽 아래로 내던져졌다고 한다. 외국인에 의한 첫 수난이었다.

 

그 다음에는 조선시대인 1558년 음력 4월, 천연(天然)이라는

승려가 성모석상이 사람들을 현혹시킨다고 하여 주먹으로

부수었다.

이 사건은 성모석상이 고려 말 왜구에 의해 일본도로 훼손된

이후, 내국인에 의한 첫 번째 수난이었다.

 

세 번째 수난은 일정(日政) 때 다시 일본인들에 의해서였다. 그들은 사당을 부수고 성모상을 절벽 아래로 굴려 떨어뜨렸다.

다행히 성모석상은 산청에 사는 한 처녀의 노력으로 천왕봉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네번째 수난은 1945년 11월 성모상의 보쌈사건이다.

성모석상이 비를 내리게 하는 영험이 있다고 믿은 지리산자락의 산청군 삼장면 내원골 어느 농부가 밧줄과 이불보자기에

성모석상과 마애불상을 보쌈하여 가지고 가 버린 것이다. 그후 두달위 성모상은 다시 천왕봉으로 돌아왔다.

 

다섯번째 수난은 1972년 봄 천왕봉에서 철야기도를 마친 종교인들이 성모석상을 두 동강 내어 마애불상과 같이 가져가 버려

천왕봉에서 천년세월 삭풍을 견뎌내며 하늘과 맞닿은 천왕봉을 지키고 있던 성모석상은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그후 1986년 1월에 천왕사주지인 혜범스님이 현몽하였다하며 진주 비봉산자락에서 머리부분을 찾고 잘려진 몸통은

그해 5월 지리산통신골에서 발견하여 정성으로 복원하고 시멘트로 봉합하여 중산리 천왕사에 안치하였으나 16일만에 또 없어져

주지스님이 다시 간절한 기도끝에 47일만에 절 앞쪽 대나무숲에서 찾아내어 다시 안치한 후로 천왕봉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성모석상과 같이 나란히 있던 마애불상의 자취는 지금까지도 찾을 수 없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법계사 산신각의 마고산신에 대해 이야기하다 이야기가 조금 다른 곳으로 흘렀으나 성모석상이 천신의 딸인 성모마고의

여덟번째 딸인 팔도무당이라는 설과 삼신할머니 그 자체라는 설이 있어 마고산신을 이야기하다 같이 다루게 되었다.

(흑백사진은 1973년 천왕봉에서 김경렬님이 찍은 사진이고 성모석상내용의 출처는 김경열저 다큐멘타리 르포 지리산.)

 

                

                      법계사는 어사 박문수에 얽힌 설화도 있다.

                  박문수의 어머니가 법계사에서 주목껍질을 벗겨 즙을 짜서 밥을 지어 먹고 즙으로 목욕을 하면서 천일기도를 올렸는데

                  지극정성에 감동한 부처의 어머니인 문수보살이 아들을 하나 주겠다 해 자식을 얻어 키운 아들이 바로 박문수라고 한다.

                  문수란 이름도 문수보살을 의미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전한다.

 

 

 삼층석탑(三層石塔, 보물 제473호) 

 법당 왼쪽에 위치한 이 탑은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탑으로 이 탑과 적멸보궁 앞쪽에 있는 문창대의 기암은 일본의 후지산과

 일직선상에 놓여있다고 한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와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이 망하고 일본이 일어나려면 법계사가 망해야 한다라는

 전설에 의해 왜놈들은 법계사를 불사르기위해 총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법계사를 불지른 왜놈 아지발도는 결국 운봉전투에서 이성계의 활에 맞아 죽으니 전설이 틀림은 없을 것이다. 


 

 

 

극락전에 모셔진 불상은 아미타불

불교도의 이상향인 서방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사찰 당우중 하나로 아미타전이나 

무량수전이라고도 한다.

대게 아미타불을 주불로 좌협시보살은 관세음보살,

우협시보살은 대세지보살을 봉안한다.

극락전의 모습은 여느 사찰과 다름이 없다.

 

 

 

 

 

 

 

 

 산신각앞에는 샘물이 있다.

 로타리산장옆의 샘물은 꽁꽁얼어 나오지 않으나 이곳의 샘물은 밑에서부터 솟아올라 석수조안에

 냉기가득한 샘물이 가득 넘쳐난다.

 물맛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시원하여 물 한바가지를 숨도 안쉬고 마셔버렸다.

 삼층석탑옆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이름들은 아마...아주 오래전 호기가득한 사람들에 의해 새겨진 듯..

 지울수가 없나 보다.

 

 

 극락전 삼층석탑옆에서 바라본 문창대의 기암..

 저 기암과 삼층석탑과 일본 후지산은 일직선상에 있어 서로 상극이라고 한다.

 

 

  법계사 극락전에서 바라본 중산리...그리고 운해가득한 산너머 까마득히 보일 것 같은 일본의 후지산..

 

 

 삼층석탑을 떠 안고 있는 바위의 이곳저곳은 이름으로 상처투성이고...

 남명이 쓴 유두류록에는 이 바위에 쓰여진 글자를 보고서 대장부의 이름은 마치 푸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아서,

 사관이 책에 기록해 두고 넓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입에 거론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구차하게 원숭이와 너구리가 사는 숲 속 덤불의 돌에 이름을 새겨 영원히 썩지 않기를 구한다.

 이는 나는 새의 그림자만도 못해, 후세 사람들이 날아간 새가 과연 무슨 새인 줄 어떻게 알겠는가?

 두예(杜預)의 이름이 전하는 것은 비석을 물 속에 가라앉혀 두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의 업적만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비꼬았다.

 

 

  매주 토.일요일 오전11시부터 오후2시까지 했던 무료급식 장소는 오늘 썰렁하다.

  지금시간이 토요일 12시33 분인데 예전에 각종 포스팅에서 봤던 무료급식소는 오늘은 없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큰 것을 좋아한다라는 속설도 있듯이 공짜술과 공짜밥은 유난히 맛있는 것이 사람이다.

  몇해전부터 법계사에서 불자들과 등산객들이 시주한 것을 다시 등산객과 신도들에게 나눠주는 점심공양이 있었는데

  재료는 넉넉하나 자원봉사할 손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이 현실로 온 모양이다.

  평상시에도 점심때면 200그릇정도가 공양으로 나간다고 하는데 그정도면 자원봉사의 손길도 최소5명은 되어야 할듯.

  등산하기 바쁜 산님들이 공양얻어먹고 돌아서기도 바쁜데 자원봉사할리는 없고 그렇다고 점심시간에 맞추어 자원봉사하러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법계사로 올라오는 수고를 할 자원봉사자도 많지 않고...이래저래 고민이었을 것인데..

  오늘 그 맛좀 보려고 일부러 점심도 안먹고 있는데...

 

 

 

 

  법계사를 나선다.

  나는 지금 2012년 1월7일 임진년 첫 산행으로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면서 법계사에 들른 것이다.

  법계를 나서면 다시 속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하지만 지리산은 산 전체가 법계나 마찬가지이다.

  하늘과 맞닿은 산. 지리산... 그 속에서도 용이 사리고 범이 웅크린듯한 산세로 좌우로 급박하게 짜여져서

  오직 동남쪽으로만 트여있어 동이 틈과 동시에 지기와 천기가 조화를 이루며 화합하는 곳. 법계사....

  

  그 법계사에는 지금 범종이 없다.

  산사의 새벽을 깨우는 종소리와 저녁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져야할 법계사에 범종을 만들기위한 불사가 진행중이다.

  법계사 대종불사 모연문이 법계사입구에 세워져 있다. 대종불사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종에 이름을 새긴다고 하니 법계사를 들러

  지리산 천왕봉으로 오르는 불자님들은 하늘아래 첫 사찰 적멸보궁 법계사의 대종불사에 이름을 올리시길 바란다.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지리산 천왕봉

   그 아래 하늘아래 첫 사찰 지리산 법계사로 땀흘려 올라

   적멸보궁 삼층석탑과 문창대와 일직선을 그어 일본 후지산을 노려보고

   점심공양 자원봉사의 기쁨을 누리고 순두류 아름다운 산길을 살펴 내려가면

   산책과 예불, 봉사를 한번에 해결하니 이보다 더 즐거운 주말이 어디 있겠는가.

 

  (글,사진 : 포토뉴스코리아, 굿뉴스피플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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