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장성호, 타이거즈의 영원한 신화여!

2015. 12. 9. 06:00야구 이야기/프로야구

 

 

해태의 전설 장성호가 은퇴했다.

서울 충암고를 졸업하고 19962차 지명 6번으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해 15시즌을 뛴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로 입단과 동시에 주전 1루수를 꿰차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에 일조했으며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암흑의 타이거즈 시절, 팀 사정상 현금 트레이드로 타이거즈의 영웅들이 떠날 때도 홀로 팀에 남아 그 어려운 시기를 독야청청 타이거즈 명맥을 이어나간 전설이다.

 

1998년부터 9년 연속 3할을 기록하고 10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 세 자릿수 안타, 4할이 넘는 출루율, 5할에 가까운 장타율 등 양준혁과 더불어 2000년대를 대표하는 대타자로 20년간 그가 남긴 성적은 2,064경기 7,084타수 2,100안타 타율 0.296 홈런 221, 타점 1,043으로 해태에서 5시즌, 기아 9시즌, 한화 3시즌, 롯데 2시즌 KT 1시즌을 거치며 2000년 출루율, 2002년 타격과 출루율 1위에 오른 것이 개인기록 최고로 통산 기록에서 보듯 꾸준함은 장성호의 대명사였다.

 

국가대표를 대표하는 좌타자로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동메달의 주역이기도 했으며 정교한 타격으로 스나이퍼(저격수)’란 별명도 얻었다. 80년대를 주름잡았던 좌효조’(장효조), ‘우종모’(김종모)를 빗대 밀레니엄 시대 장성호를 좌성호로 불러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였다.

 

 

(장성호 통산기록 자료출처 : http://www.statiz.co.kr)

 

그는 올 시즌 819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안타 1개를 추가하며 통산 2,100안타를 기록했다.

양준혁의 2,318안타에 이어 두 번째 기록을 보유했는데 그 기록이 중단돼 아쉽기만 하다.

양준혁의 기록을 유일하게 깰 선수로 지목받았던 장성호는 승승장구하던 KIA 시절인 2007년 메이저리거 최희섭의 영입으로 외야로 밀려나 10년간 100안타를 기록했던 안타 생산율이 뚝 떨어졌다.

당시 조범현 감독은 장성호의 천재성보다 좌투수에는 우타자를 내보내고 우투수에는 좌타자를 내보내는 철저한 플래툰 시스템으로 장성호를 이용했다.

가장 확실한 3할 타자를 벤치에 앉혀놓고 가동한 우타자들은 2009년 나지완이 잠깐 반짝했을 뿐 하나같이 명함도 못 내밀고 스러져만 갔다.

이승엽처럼 가만 놔둬도 될 타격천재를 시스템에 옭아맨 대가는 비참했다.

 

2009시즌부터 조감독으로부터 외면받은 장성호를 팬들은 그라운드에 나올 것을 외쳤지만, 조범현은 외면했고 코치들로부터도 외면받았다. 누구 하나 그의 중용을 주장하는 코치가 없었다. 결국, 2010시즌 들어서도 장성호를 2군으로 내려 보내자 팬들은 들불처럼 일어나 조범현 감독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장성호는 2,000안타에 259개를 남겨놓은 시점이었으며 200홈런도 5개를 남겼다. 1,000타점에도 118개가 남았으며 100도루에도 고작 4개를 남긴 시점이었지만 조범현은 철저히 장성호를 외면했다.

 

양준혁이 2,318개의 안타를 기록하고 이미 은퇴했으니 장성호는 자신의 15년 통산 평균 안타인 120개씩만 때렸어도 올해 양준혁의 기록을 넘었을 것이며 부상 없이 이종범 나이까지만 뛰었어도 3,000안타는 기록했을 선수이다.

 

조범현 감독 시절 3년을 허송세월한 장성호..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화와 롯데를 거쳐 다시 그를 부른 것은 조범현이었다.

 

 

 

정들었던 타이거즈에서 한화로 이적해 잠시 옛 기량을 회복하나 싶었지만, 다시 롯데로 트레이드돼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고 KT로 오기 전 2014시즌을 거의 통째로 쉬며 선수생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KT로 이적해서도 부상으로 49경기에 그친 것이 마지막으로 20년간 땀에 전 유니폼을 벗었다.

 

장성호는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40(77년생)세가 되는 노장이지만, 아직도 현역에서 펄펄 나는 NC 이호준(76년생), LG 이병규(74년생), KIA 최영필(74년생) 한화 조인성(75년생) 임경완(75년생)44세까지 공을 던진 송진우와 류택현을 본다면 그리 많지도 않은 나이다. 더군다나 해태에 같이 몸을 담았던 이종범도 43세에 은퇴했다.

 

하지만 장성호가 은퇴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올해 입은 부상으로 재활하게 되어 팀에 큰 보탬이 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고 젊고 유망한 후배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하니 장성호의 마음 씀씀이가 대견스럽기만 하다.

 

비록 냉엄한 프로의 세계에서 후배에게 밀리고 감독에게 배척당해 한화, 롯데 KT를 전전한 비운의 스타지만, 아직도 그의 이름은 타이거즈 팬들의 뇌리에 영원히 남아있다.

굿바이 장성호, 타이거즈의 영원한 신화여!

 

(글 : 포토뉴스코리아, simpro)

(사진 : 기아타이거즈,  http://sports.media.daum.net/sports/baseball/newsview?newsId=2015120807315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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