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의병장 김덕령장군의 충장사/광주시티투어

2013. 8. 26. 06:30광주 견문록/광주 견문록

광주견문록

2,000원으로 즐기는 광주시티투어 5코스 

임진왜란 의병장  김덕령 장군의 충장사

 


2,000원으로 즐기는 광주시티투어 5번 째 코스는 김덕령 장군의 사당인 충장사이다.

김덕령장군과 무등산은 뗄레야 뗄수가 없는 인물로 어렸을 때 부터 담력과 용력이 뛰어난 김덕령은 무등산에서 무술을 연마하고

백마능선에서 말을 달려 활쏘기 연습을 하는 등 수 많은 족적을 무등산에 남겼다.

무등산에서의 그 흔적들을 요약하면

1.충장사옆 이치장군대(梨峙將軍臺)설화   2.원효계곡의 치마바위 전설  3.지왕봉의 뜀바위 전설   4.중봉 삼밭실 전설

5.장불재의 의병활동지  6.의상봉의 비마족바위 전설  7. 주검동 제철유적지  8.주검동 김덕령장군 비문 9.금곡동 시검바위 등이

있으며 그외 무등산을 벗어나면 광주 북구 말바우 시장의 말바우 지명유래 등이 있으며, 광주의 대표적인 거리 충장로라는 이름은 

바로 김덕령 장군의 시호인 충장에서 비롯되었다.

 

 

광주시티투어버스 운행 안내

 

○ 운영기간 : ’13. 5. 11(토) ~ 11. 24(일)

○ 운행주기 : 매주 토.일요일(코스별 1일 1회) 운행

○ 운행코스 :

- 역사문화 탐방코스 : 국립518묘지 - 양산보의 소쇄원(점심) - 김윤제의 환 벽당 - 무등산 호수생태원 - 김덕령 장군의 충장사 -

                         양림동역사문화마을(문화해설사가 하루종일 같이 이동하며 해설한다. 탐방시간은 7시간 30분)

 

- 박물.전시관 코스 : 국립광주박물관 - 시립민속박물관 - 광주시립미술관(점 심) - 전통문화관 - 의재미술관

 

- 탑승장소/시간 : 광주종합버스터미널 09:20 광주역 09:30

 

○ 이용요금 : 2,000원 ※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 1,000원

 

※ 역사문화 탐방코스 입장료(소쇄원1,000원 ) 식비 등 개인별 부담

※ 박물.전시관 코스 입장료(시립민속박물관, 시립미술관 500원)

 

○ 사전예약제 운영

예약 전화 : 062-233-3399(광주관광협회)

인터넷 예약 : http://utour.gwangju.go.kr(광주문화관광포털)

※ 이용하실 분은 반드시 사전에 예약해야 합니다.

(탑승 1일전 17:00까지 사전 예약)

 

 

충장공(忠壯公)은 1568년(선조 2년)에 출생하여 1596년(선조 30년)에 옥사하였다.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혁 덕홍과

더불어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6백여 명을 모집했다. 형제는 막내 덕보에게 집안을 맡긴 채 의병 부대를 이끌고 당시 전라감영

소재지인 전주로 올라갔다.

 

전주에 다다랐을 때 형 덕홍이 병석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김덕령을 집으로 돌려보냈고 형 덕홍은 그 다음 날 벌어진

금산(錦山)전투에서의 의병장 고경명(高敬命) 휘하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이듬해인 1593년, 형의 전사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마침내 세상을 떠나자 고을의 뜻 있는 사람들이 명망 높은 김덕령에게 의병을

일으키자고 권유하자 김덕령은 담양부사와 장성현감을 찾아가 의병을 일으킬 뜻을 전하니 그들은 전라감사 이정암에게 김덕령을

추천했고 전라감사가 이를 받아들여 다시 조정에 보고하니 조정에서 종군을 허락하고 무기까지 내려주었다.

이에 김덕령은 담양으로 내려가 상복을 입은 채 격문을 돌려 5000여 명의 의병을 모았다.

이에 광해군은 익호장군(翼虎將軍)을 내렸고, 선조는 충용군(忠勇軍)의 군호(軍號)를 내리는 한편 형조좌랑을 제수하였다.

 

 

27세가 된 1594년 1월 의병을 거느리고 담양을 떠나 순창을 거쳐 남원에 이르러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4월에는 운봉과 의령을 거쳐

진주에 도착하여 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郭再祐)와 더불어 도원수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영남 방어작전을 펼치기도 하고,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던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도와 거제도에서 수륙합동작전을 전개하는 등 눈부신 활약으로 수많은 왜적을 무찔렀다.

 

 

충장사내의 모과나무

 

 

1596년(선조 30년)에는 이몽학이 홍산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간신들이 충장공과 관련이 있다고 무고하여 6차에 걸친 엄형을

당하고 옥중에서 춘산화연곡(春山火燃曲)을 남기고 29세의 나이로 운명했다

당시 선조가 김덕령을 국문한 내용이 선조실록에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선조 : 너는 역적 한현, 이몽학의 무리와 결탁하여 나라가 위급한 틈을 타 반역을 꾀했다. 이제 숨김없이 사실대로 고하라.

김덕령 : 시시비비는 분명해야 하거늘 어찌 조금이라도 감추겠습니까. 신은 나라를 위해 친척을 작별하고 선영을 버리고 온갖 고초를

겪었습니다. 나라에서는 오히려 상을 베푸셔야 할 것입니다. 신이 헛된 이름을 지녔기에 적도들이 신을 시기하고 모함한 듯합니다.

7월 14일에 도원수의 명령에 따라 적도들을 치기 위해 달려갔으나 이미 진압되어 본진으로 돌아간 것밖에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당시 유성룡(柳成龍)은 그의 죄란 역도들이 찍어다 붙인 것에 불과하니 시일을 두고 자세히 조사해야 한다고 건의했으나

선조는 김덕령 같은 자는 고문을 당하다가 죽어도 괜찮다는 극언까지 하였으며 이덕형(李德馨)을 비롯하여 의병대장 곽재우,

영천군수 홍계남(洪季男), 김덕령의 부장(副將) 최담령 등도 반란군들이 동조자라고 무고했지만 모두 풀려나고 유독 김덕령만이

죽음에 이르도록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결국 옥사하고 만 것이다.

 

1661년(현종 3년)에 신원되고 병조참의에 추증되었으며 1678년(숙종 5년)에 벽진서원(碧津書院)에 합향되었다. 이듬해에

병조판서에 가증되고 벽진서원에 의열사(義烈祠)로 사액하였다.

1788년(정조 13년)에 충장공(忠壯公)의 시호를 내리고 이듬해 좌찬성으로 추가 증직하였다. 

1974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장군의 묘하에 충장사(忠壯祠)를 건립하여 성역화하였다. 부인은 흥양이씨(興陽李氏)로

그의 부친은 첨정대록(僉正大祿)을 지냈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 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탐험대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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