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명산)호남 알프스의 조망이 아름다운 길 2편(진안 삼장봉-내처산동 그리고 천황사)

2011. 6. 20. 22:21한국의 산 견문록/한국의 산

 

호남알프스란 전북 완주군과 진안군에 걸친 산줄기로 주로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사를

들머리로 하여 종남산~서방산~위봉산~원등산~연석산~운장산~구봉산 등 7산의 마루금을

차례로 이어서 진안군 725번 지방도인 절연재나 양명주차장, 양명마을, 또는 8km 정도 더

연장하여 795번 지방도인 고남재를 날머리로 하는 산행코스를 말한다.

 

호남알프스의 특징은 종남산~서방산 서편으로 만경평야의 광활한 모습이 펼쳐지고,

연석산~운장산~구봉산 구간은  호남알프스의 백미라 할 수 있는데,  구름이 항시 길게

드리워져 자신의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雲長山, 그 운장산에서 바라본 조망은

상봉이라 일컫는 중봉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맑은 물과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연석산,

동쪽으로 9개의 암봉을 거느리고 있는구봉산을 이으면서 육산의 장쾌함과 바위산의 힘찬

분위기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고 한다.

 

게다가 무진장으로 불리는 무주 진안 장수 일대의 수많은 봉우리뿐만 아니라 남으로 지리산

주능선과 동으로 덕유산 주능선, 그리고 전주를 지나 서해의 산야까지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13:06)상여바위에서 바라본 서봉의 모습이다.

 

 

동봉이 손에 곧 잡힌다. 운장산은 이렇게 서봉과 중봉, 동봉이 나란히 삼각점을 이루고 서있다.

그 삼각점의 중심에 있는 운장대가 있는 중봉이 운장산의 정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오묘한 위치에서 좌로 서봉을 우로는 동봉을 거느리고 있는 군왕의 자리에 있기에 그렇다.

 

 

동봉으로 가다보면 우측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능선이 보인다.

아마도 저기 보이는 능선너머가 구봉산이 아닐까 생각된다.

 

 

                      (13:10)그 옛날 축성한 석성의 흔적이다. 운장산 정상에서 동봉을 따라 성을 쌓은 흔적이 지금은 수백미터

                      정도만 흔적이 남아있다 한다.

 

 

(13:12)서봉에서 동봉으로 가는 길은 매우 위험하다.

이렇게 군데군데 밧줄을 부여잡고 가야만 한다.   

                                               

 

                      (13:25)무등산 입석대에서도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바위틈새로 보이는 속세의 모습은 언제봐도

                       그 두께가 참으로 얇다. 저 속세로 난 길을 따라 가다보면 또 다른 산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13:26)

운장대에서 600m를 왔다.

구봉산까지는 7.7km로

이 산까지 가는 A,S코스 님들은

벌써 이 곳을 스쳐 지나갔으리라.

 

이곳까지 오면서 식수를 약1리터를

소비했다.

나머지 식수는 700ml짜리 한 통이다.

 

그 한통으로 7.7km의 산행은

무리인 듯 싶다.

구봉산이라면 아홉개이 봉우리를

차례로 보인다는 것인데

 

현재의 몸상태나 시간관계상 그리고

식수문제로 여기서 내처사동으로 하산은

당연하다.

 

 

 

(13:27)운장산 동봉이 삼장봉이다. 보는 바와 같이 해발 1133m로 운장대의 1,126m보다7m가 높다.

그래도 정상대접을 못받는 것은 왜일까? 조망은 운장대나 삼장봉이나 모두 훌륭하다. 그렇지만 구름이 머무는 운장대가 훨씬

아름다워 보이고 서봉과 동봉을 꼭 좌청룡 우백호처럼 거느리고 우뚝 솟아 있어 대표이름을 거기에 뺏긴것이 아닌가 추측해

볼 뿐이다.

 

 

삼장봉에서 내려서며 바라본 운장대와 서봉의 모습이다.

 

 

(13:33)B코스와 S코스의 갈림길이다. 여기서 각우목재까지 오후1시40분이내에 도착 하여야 하지만 이미 늦었다.

여기서 40여분을 더가야 각우목재지만 식수도 부족하고 또 구봉산까지 약 7.6km를 오후 5시까지 갈 자신도 없다.

지금 출발해도 오후6시경에 도착을 하여 나 혼자 산행이면 어찌어찌해서 가볼 요량이지만 일행들의 하산시간이

오후5시로 정해져 있어 내처사동으로 발길을 돌린다.

 

 

(13:41)내처사동으로 내려서는 길은 그다지 힘들여 걷는 길이 아니다.

이렇게 성인 허리높이의 산죽과 부드러운 흙으로 이루어진 완만한 능선길이다.

지금까지 숱하게 산을 다니면서 하산길을 수없이 만났으나 이렇게 편안한 하산길은 처음이다.

너덜길도, 가파른 계곡길도 암릉길도 아닌 걸으면서 풋풋한 흙냄새가 베어나오는 오솔길이다.

 

 

(13:44)손으로 나무를 쓰다듬으며 걸어간다. 나무와 내가 교감을 하는 순간이다.

 

 

                      이나무는 왜 이리 피부가 벗겨졌을까? 이런 나무를 광주 금당산에서도 본적이 있다. 새하얗게 껍질을

                      벗고 속살을 드러낸 상처입은 나무..나에게 이렇게 대답해 준다.. 오랜 풍파세월 버텨온 껍질을 벗어 던지고

                      나의 알몸을 보여 주듯이 난 떳떳하다..너도 떳떳하니?

 

 

(14:22)이렇게 반가운 얼굴들이....난 외로이 산을 타는 것을 즐겨 하지만 또 그 외로움이 지나치면 병이 된다.

내처사동으로 하염없이 나무랑 숲이랑 이야기하며 거닐다 보니 공주아빠님 일행이 쉬면서 마치 나를 기다리듯이 환영해준다.

공주아빠님 일행은 오늘 피암목재에서 출발하여 서봉, 운장산, 동봉을 거쳐 내처사동으로 빠지는 C코스를 타고 있었다.

C코스역시 내처사동으로 오후4시까지 가면 되므로 이렇게 시나브로 산을 즐기면서 가는 여유작작한 산행을 하고 있었다.

 

 

(14:23)산길은 금새 어두워진다. 후레쉬가 터져야 사진이 찍힐 정도로 숲이 우거져 있다.

 

 

아름다운 오솔길을 콧노래 불러가며 거니는 꿈을 꿔본적이 있는가.

실제로 이 길은 이렇게 콧노래 부르며 걸어가는 길이다.

 

 

                      나무에 기생하며 자라는 버섯이다..

 

 

(14:37)내처사동 주차장까지 다 와서 내려온 봉우리를 쳐다본다. 앞봉우리가 동봉이고 뒷봉우리가 운장대다.

서봉은 운장대에 가려 안보인다.

 

 

(15:05)출발시간인 오후4시까지는 1시간의 여유가 있다. 이렇게 계곡물에 발담그고 막걸리에 수박썰어 먹는 재미도 솔솔하다.

 

 

공주아빠님이 그런 여유작작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막걸리 2잔에 벌겋게 얼굴이 상기되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여지없이 찍혀버렸다..

공주아빠, 공주엄마, 꽃비님 등이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을 때 슬그머니 자리를 떠서 계곡으로 내려오며서 봐 두었던

야생화들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15:20)길섶에 자란 야생화들을 찍으며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다.

 

 

                      높이가 15m나 되는 300년된 소나무다.

 

 

이 소나무 밑의 너럭바위위에 몸뚱아리를 뉘고 소나무 가지 사이로 뵈는 청명한 하늘빛을 쳐다본다.

하지만 금새 등줄기가 시원해지며 오싹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이 자리는 내가 누울곳이 못된다..

버스정류장의 길다란 간이 목재의자에 몸을 누위고 20여분의 달콤한 낮잠을 즐긴다.

내처사동으로 하산한 C코스 나머지 님들이 모두 하산하였다. 이제 구봉산거쳐 천황사로 하산하는 A,S코스 님들을

마중하러 가야한다.

오후 3시50분에 천황사가 있는 곳으로 출발한다.

 

 

(16:34)이 코스로 내려오는 님들은 오후5시까지다. 아직 시간이 넉넉하여 빈몸으로 카메라만 달랑들고 천황사까지 걸어갔다.

천황사에는 수령이 800년이 넘은 전나무가 있다하여 그의 정기를 좀 받아갈까 해서 마실 나가듯이 나갔다.

 

 

주차장에서 천황사까지는 약 600m로 맨몸에 운동화신고 가는 길은 전혀 부담이 없어 이렇게 가다가 다람쥐랑 놀고도 간다.

 

 

(16:36)천황사 대웅전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사찰의 대웅전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천황사는 원래 신라 헌강왕 원년(815년)에 무염선사가 창건하고 고려시대 의천대사가 중창하고 조선시대에 혜명스님이 다시

중창한 절로 대웅전은 전,후면에만 기둥위에 평방을 돌리고 기둥위와 그 중간에 각각 공포를 배치한 다포계의 양식이면서

맛배지붕으로 되어있다. 맛배집으로서 전,후면에만 공포를 배치한 것은 흔하지 않다 한다.

여느 사찰과는 달리 너무 조용하고 인적도 없다. 풍경소리도 안들리고 예불소리도 안들린다. 그리고 범종도 없다.

금산사의 말사지만 전혀 절같은 분위기가 안나는 천황사는 이렇게 고색창연한 색깔을 잊고 무색으로 버티고 있었다.

 

 

          돌부처상 뒤로 보이는 명부전..

 

     대웅전 아래 한단 낮은 축대 위에 자리한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목조 맞배지붕 건물로, 1601년(선조 45)에

     창건되었다. 1939년에 조성된 『명부전중수기(冥府殿重修記)』에 따르면 창건 후 1832년(순조 32)에 중수되었으며,

     그 후 1985년에 설선당과 함께 중수되었다.

     건물은 낮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얹고 그 상부에 원형기둥을 올린 주심포계 건물로 전면에 띠살창을 단장하고

     단청으로 장엄하였다.

     건물 내부는 뒷벽과 맞닿은 ㄷ자형 불단 위에 목조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 10구, 판관ㆍ사자ㆍ

     장군 각 2구, 동자상 12구가 봉안되어 있으며, 건물 대들보에는 운룡문이 장엄되어 있다. 중앙의 지장보살은 앉은

     높이 96㎝, 무릎 폭 75㎝로 경직된 신체와 도식화된 옷자락, 상호에 비해 세장한 신체 등에서 조선후기 불상의 특징을

     엿볼 수 있으며, 도명존자ㆍ무독귀왕 이외 시왕의 권속들에서 소조상(塑造像)의 자유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천황사 명부전 내부

                                   명부전 내부의 모습은 촬영할 수가 없어 인터넷에서 퍼왔다.

                             (사진출처)한국전통사찰관광정보

 

                      공포는 내.외 3출목을 두어 비교적 복잡한 형태로서 외부제공은 세장한 양서형으로 되었고

                      내부제공은 초각하여 연꽃을 새겼다.

 

 

                         

                      내부 불상위로는 간략한 보개를 설치하고 그 위로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공포및 가구의 수법 등으로 보아 조선조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금산사의 말사인 천황사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름이 천황사여서 일제치하때는

                     천황사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했다 한다. 17세기경 이웃의 주천면에서 이곳으로 절을 옮겨왔다 한다.      

                    

 

 

 

 

 

박헌갑의 전설이 전하는데
천황사는 본래는 주천면 운봉리 안정동에 있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원래의 그 절터가 명당이라고 하여

무주의 박헌갑이라는 사람이 절 뒤에 묘를 썼다. 그러자 절에 있는 우물이 끊기고 쥐떼가 나와 절 안팎을

휩쓰는 이변이 생겼다.
이에 승려들이 박씨에게 묘를 옮길 것을 간청했으나 박씨는 권세를 앞세워 거절했다. 그 후 천황사는

폐사되고, 박씨는 벼락에 맞고 묘는 폭우에 떠내려갔다고 한다. 그 뒤 1871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재건하였다

 

                      수령800살인 높이 35m에 둘레가 51m인 전나무다. 천연기념물 495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전나무 중 규격이 가장 크고 나무의 모양과 수세가 매우 좋은 편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한다.

 

 

                      이 전나무의 정기를 부등켜안고 마음껏 받아간다.

 

 

담장너머로 보이는 천황사 대웅전

 

 

                      천황사 해우소

 

 

천황사 부도.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는 것으로 시신을 화장한 후 나오는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천황사 대웅전에서 150m정도 떨어진 밭가의 산기슭에는 2기의 부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부도는 3단으로 이루어진 8각 기단(基壇) 위로, 역시 8각을 이루는 탑신(塔身)을 얹은 모습이다.

탑신의 지붕돌은 윗면의 여덟 모서리 선이 뚜렷하고, 처마는 물결치듯 여덟곡선이 이어지고 있다.

꼭대기에는 납작한 돌 위로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을 올려 놓았다.

오른쪽의 부도는 두단의 사각받침 위로 탑신을 얹었다. 탑신은 달걀 모양의 몸돌 그 위로 지붕돌을 올려 놓았다.

지붕돌의 처마는 곡선을 이루며 양끝에서 한 껏 위로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꽃봉오리 모양을 한 머리장식을

올려 놓았다.

세운 시기는 왼쪽의 것을 조선시대 후기로 보고 있고,

오른쪽의 것은 탑신의 몸돌 앞면에 ‘애운당대사지탑(愛雲堂大師之塔)’이라고 새겨 놓아,

‘애운당’이라는 호를 가진 승려가 활동하였던 때인 조선 현종 또는 숙종 때에 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

 

출처: Daum문화유산

 

 

 

(16:46)천황사에서 갈지교까지 나오는 600m의 길은 한적하고 호젓하게 걸어나오기 부담이 없는 길이다.

 

 

 

(16:50)정천면 갈용리까지 걸어나오며 수많은 야생화들과 교감을 한다.

 

 

마을 옆길로 난 개울가엔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른다.

 

 

(17:00)드디어 A,S코스 님들이 모두 하산하였다. 예정된 시간대로 모두 하산하였으나 그중 베테랑급 회원님이 사고를

당하여 119구급차에 의해 진안에 있는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한다.

다행히 산에서 우리 회원님들의 응급조치와 빠른 후송으로 큰 부상없이 치료를 끝냈다  하여 무척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산은 절대 혼자 다녀서는 안된다는 것을 오늘 사고로 새삼스레 느꼈다.

만약에 나 혼자 가다 그런 사고가 생긴다면 꼼짝없이 고립되거나 응급조치가 늦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호남알프스의 처음과 끝을 가보지 못하고 이렇게 중간만 잘라먹고 끝내기엔 너무 산이 아름답다.

산길을 내내 걸어가면서 지리산능선과 덕유산 능선길을 조망하면서 참으로 산세가 좋고 조망이 아름다운 산이라는

것을 느꼈다.

 

다음에 좋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호남알프스 전구간을 종주해보고 싶은 의욕이 앞서는 것은 그만큼 이 산이 주는

느낌이 강렬 해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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