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명산)이태의 남부군 흔적을 따라 유안청계곡으로 가는길...(기백산~금원산~유안청계곡)

2011. 7. 5. 15:00한국의 산 견문록/한국의 산

 

장마철이라 비가 왔다 갔다 한다.

한번 비가 오면 억수같이 퍼붓어 산을 좋아하는 님들에겐 산행을 망설여지게 하지만

가끔 우중 산행도 해 볼만 하다는 것이 최근 나의 생각이다.

장마비가 아니라 이슬비처럼 내리는 비를 맞으며 산의 정상에 오르다 보면 

비구름은 발아래에 머물고 난 그 비구름 위에서 비를 뿌리는 신선이 되는 것이다.

그런 상상이 비가 올지 모르는 7월2일 토요일에  나를 산으로 이끄는 힘이 되었다.

 

이번주도 빛고을 토요산악회와 같이 경남함양군과 거창군에 걸쳐 있는 기백산에서 부터

금원산을 거쳐 현성산까지의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의 코스는 모두 3코스다.

여기서 난 이태의 남부군에 나오는 500여명의 빨치산들이 집단으로 깨를 할딱벗고 목욕했다는

그 실화속의 유안청계곡이 있는 B코스를 타면서 그들의 흔적을 찾아 가기로 했다.

 

  A : 용추주차장~도수골~기백산~책바위~동봉~금원산~문바위~선녀폭포~휴양림주차장(6시간30분)

           B : 용추주차장~도수골~기백산~책바위~동봉~금원산~유안청계곡~선녀폭포~휴양림(6시간)

           S : 용추주차장~도수골~기백산~책바위~동봉~금원산~현성산~마애불~선녀폭포~휴양림(7시간)

           ☞ 산행시간은 A코스 약 2.5km/h, B코스 쉬엄쉬엄, S코스는 약3km/h 기준. 

 

 

 

 (09:46)장수사 일주문이다. 그렇다면 장수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그 어디를 봐도 절의 흔적은 없고 절 터만 있다.

그리고 일주문이라면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문인데 사방으로 못들어가게 쇠줄로 처져있다. 하지만 난 항상 절을 지나치면

일주문을 통과하여 나의 방문을 부처께 고하고 들어간다.

 

 

장수사에 얽힌 이야기

장수사는 1500년전인 신라 소지왕9년(서기487년)에 각연조사에 의해 창건된 고찰로 지리산과 덕유산에 산재한

수많은 사찰들을 말사로 거느렸으며 이곳 심진동계곡에만 무려10여개의 암자를 둔 대찰로서 계곡 어디에서나

염불소리가 들렸다 한다.

해인사에 버금갈 정도의 규모의 절로 기거하는 승려의 숫자도 200여명이 넘었으나 강희19년(1680년) 첫번째

화재를 입고 다시  복원하기를 두번이나 했지만 6.25전쟁때 장수사뿐만 아니라 이계곡의 암자가 모두 불타버려

지금은 장수사의 흔적만 알 수 있는 일주문만 덩그렇게 남아 옛 영화를 추억으로 남겨주고 있다.

 

 

 

 

덕유산 장수사 조계문이라 쓰여있다.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지금의 용추사는 이 장수사에 딸린 조그만 암자였지만 6.25때 모두 소실되어

1959년 용추사를 중건하여 지금의 용추사로 불리운다. 이 일주문은 1702년(숙종28년)에 건립된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반적인

일주문이 그리 크지 않은 보통의 맞배지붕으로 만들어지는데 비해 이곳의 일주문은 화려한 다포계 팔작 지붕의 양식을 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한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비교는 못한다.아래 좌로부터 지리산법계사, 무등산증심사, 모악산금산사, 삼신산쌍계사의 일주문이다.

비교의 겻눈질을 열심히 해대지만 기둥이 특별히 크고 지붕을 붙잡고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보조기둥이 더 있다는 것 외에는 그리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덕유산장수사 조계문                                 지리산법계사 일주문                                무등산증심사 일주문

 

 

                                             모악산금산사 일주문                                       삼신산쌍계사 일주문

 

 

 

(09:52)지금 지나가는 이 자리가 장수사의 터가 있던 자리다. 넓다란 분지위에 지금은 양봉하는 이의 일터가 되었다.

 

 

사실 제목을 이태의 남부군 흔적을 따라 유안청계곡으로 가는 길이라

썼지만 실은 이태의 남부군에 나오는 빨치산의 근거지는 지리산이다.

남덕유산에서 육십령을 거쳐 금원산으로 들어와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전설적인 빨치산의 수장인 이현상의 직속부대인 남부군의 종군기자인

이태가 체험한 빨치산 삶의 극히 일부였던 유안청계곡에서의 한 장면을

보러 가면서 거창하게 이름을 붙혔봤다..

 

20여년전에 읽었던 책이지만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거의 동시대의 수기로

발간후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자신의 수기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태백산맥에서 이태의 수기를 인용했다는 인용문이 있기에 시끄러웠어도

조용히 넘어간 사실도 있다.

 

필자도 남부군이 나오기전에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빨치산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어떻게 이리도 소상히 알았을까 라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는데 남부군을 읽으면서 그 남부군의 일원이었던 이태가 자신의 수기를

조정래에게 참고용으로 쓰라고 주어서 그리도 소상하게 표현했다는 것을 

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기백산 정상까지는 4.2km로 2시간 30분이 걸렸다.

 

 

                     기백산 들머리를 지나 산으로 오르는 길은 이렇게 너덜길이다. 어제까지 내린 비로 도숫골 계곡을 따라 기백산으로

                     오르는 길은 질척거리지는 않았지만 돌위에 남아있는 비의 흔적으로 인해 조심스럽게 밟고 가야 한다.

 

 

(10:17)산으로 오르는 내내 우측 도숫골 계곡에서 순도높은 물소리가 귀를 잡아 끈다. 잡아당기는 손길을 따라 도숫골로 내려서는

나는 이미 일행과 한참을 뒤 떨어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계곡을 냅두고 가는 것은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서늘한 기운이 내 온몸을 휘감아 돈다. 계곡 가득 물기를 머금은 이끼낀 바위들이 나의 발바닥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도숫골계곡에서 울려퍼지는  소리의 근원지이다. 이 자그마한 폭포에서 나오는 소리가 날 계곡위에서 여기까지 이끌었다.

 

 

 

 

                                           숲속에 숨어 보이기를 꺼려하는 도숫골의 아름다운 비경을 내 카메라에 옴팡지게

                                           담아 끄집어 낸다.

 

 

계곡에서의 비경을 담고 해찰하기를 5분여..비에 젖은 오솔길을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를 벗삼아 부지런히 따라 올라간다.

 

 

(10:50)2km를 올라오는데 1시간 가까이가 걸렸다.

완만한 경사길을 이렇게 오랜시간 걸려서 올 정도로 체력이

부실한 것은 아니고 자연과 동화되어 그들의 속삭이는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오다보니 늦는것이다.

머 빨리 갈 일있는가?

이렇게 여유부리며 산을 오르는 것은 나의 오래된 방식이다.

 

산을 오르면서 나무와 풀들이 주고 받는 이야기도 듣고 풀벌레와 산새들이

주고 받는 이야기도 들어가며 오르다 보면

속세에서 부터 이고 지고 온 삶의 무게들을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내려놓고 간다..

그러면 비운만큼 산은 똑같이 채워준다.

아니 그 이상으로 나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물하고

삶을 지탱해 가는 에너지를 채워준다.

 

 

자그마한 도랑을 지나가면서 왼쪽을 보니 누군가가 석축을 쌓아놨다. 그 속내를 들여다 볼 엄두를 못내고 이렇게 멀찌감치 떨어져

그 석축의 비밀을 알아 보고자 했지만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난 요상한 나무 한 그루에 그만 깜빡 잊어버렸다.

 

 

                     나무 밑둥이 짤려나간 나무가 덩그렇게 서있다. 마치 발없는 유령처럼 서서 흐느적거리는 모습에 적잖이

                     놀라 잠깐 혼란에 빠졌다. 주변을 둘러봐도 이 나무의 뿌리는 적어도 내 눈에는 안보인다.

                     덩굴에 꼭 붙들린 채 바람이 부는데로 흐느적 거리는 모습이 영낙없는 유령나무다.

 

 

                                           정말이다..누군가가 나무를 이렇게 매달아 놓은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매달아 놓은다 해도 어떻게 덩굴에 걸어 놓았을 것인가.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증거를 남겨 놓을 수 밖에..(믿거나 말거나...)

 

 

(11:14)20여분 정도를 계속 올라갔다. 벌써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시간을 보니 간식을 먹어도 될 시간이다.

이미 일행과는 상당히 떨어졌을 것이다. 근처 암시런 바위위에 걸터 앉아 늦은 간식으로 허기를 때운다.

 

 

(11:25)약3km를 올라오는데

1시간 30여분이 지났다.

여기까지는 급경사길이 아니어

그리 힘들지 않고 올라왔다.

 

하지만 남은 1.3km의 길은 상당히

가파르다.

속도를 내 보지만 자꾸 고개가 땅으로

쳐박히기만 한다.

 

여기서부터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전혀 안들린다..

귀막고 부리나케 올라간다.

 

 

(11:57)나무사이로 기백산 정상이 보인다. 여기서 일행의 후미를  드디어 만났다. 후미 일행을 책임지고 리딩하는 산악회 회장님을

비롯한 몇몇분의 일행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기백산 정상에서 있을 점심 만찬에 참여하기 위해 쏜살처럼 날아간다.

 

(12:09)10여분을 헐레벌떡거리며 올라왔지만 아직도 정상까지는

200m가 남았다.

 

정상앞에서는 항상 가파른 길로 이어진다.

그만큼 정상은 쉽게 허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동안의 산행에서

익히 느꼈지만 오늘 기백산의 정상은 한글 산이름 그대로 상당한 기백이

느껴진다.

기백(箕白)이라함음 하얀색 삼태기란 뜻인데 멀리서 보면 하얀 암벽이

삼태기 모양을 닮았다 해서 붙혀 졌을까?

그런데 기백산의 옛이름은 지우(智雨)산으로 비를 잘 아는 산이란 뜻인데

그렇다면 비와 그만큼 친한 산이란 뜻으로  속에 항상 비속에 있다라는

뜻에서 불리워진 것 같다.

지금의 기백산보다 오히려 지우산의 명칭이 반가운 것은 빗물을

머금은 구름이 산을 넘어가는 지금 이 순간때문이다.

 

 

(12:13)저 바위위에만 올라가면 정상일까?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네발로 마지막 한걸음을 내딛는다.

 

 

바위위에 올라 아무것도 안보이는 운무속에서 서서히 내 시야속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봉우리들..

산골짜기를 따라 불어오는 바람은 이렇게 빗물을 가득담은 구름을 나의 몸에 촉촉하게 문대고 휘리릭 지나가 버린다.

그 감흥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골똘하게 했을까..

구름에 가려 속세는 보이지 않고 이렇게 산봉우리만 희미하게 보인다.

반대로 산봉우리가 구름에 갇혀있고 속세의 모습만 보였다면 그 신비의 문을 열어젖히기 위해 또 노력을 해야 하지만

지금 이순간은 우리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속세는 뵈이지 않고 신비의 문으로 들어가는 신선의 세계만 보인다.

 

 

기백산의 신선에게 방문을 허락하는 메세지을 보내야 한다.

내 카메라는 모니터가 캠코더처럼 360도 회전하는 캐논 파워샷 A640이다. 한국에 막 출시되었을 무렵 예약주문을 통해 구입했

는데 당시에는 디카로서는 유일하게 1000만화소를 표현하는 최첨단 카메라 였다. 지금도 난 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속속들이

알고자 노력하지만 아직도 이 카메라에 대해서 모르는게 너무 많다. 단 한가지 아는것은 이렇게 셀카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 몸에 촉촉한 빗물을 문대고 휘리릭 지나가 버리는 구름을 냅다 쫒아가본다.

 

 

                     (12:17)그렇게 5분여를 구름과 사랑놀음을 하다 다시 기백산의 정상으로 난 이 샛길을 따라 나의 육신을 움직인다.

                       

 

                      (12:22)기백산 정상표지석이다. 보통의 산에서 보는 표지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다..

                     기백이라는 한글 발음대로 이 표지석을 만들어 갖다 놓은 함양군청의 어느분의 기백이 대단함을 느껴본다.

                     백두대간이 남덕유산에서 남동쪽으로 흘러 진양기맥을 따라 월봉산을 만들고 여기서 다시 말발굽모양으로

                     갈려 거창쪽으로 금원산 기백산을 만들고 함양쪽으로 거망산 황석산을 만든다.

 

                     여기 기백산은 51년 7월 남부군의 김흥복이 이끄는 승리사단이 정상부근에 거점을 마련해 놓고 함양군 서하면에

                     있는 경찰지서와 백전면에 있는 경찰지서를 습격하고 백운산을 넘어 장운산으로 넘어가 버린 역사의 현장이다.

 

 

기백산 정상에서 바라본 책바위다. 책바위는 누룩덤(누룩바위)라고도 불린다. 봐도 차곡차곡 쌓아놓은 책더미 같다. 그런데 저 높은 곳을 어떻게 올라갔을까? 나도 거기를 올라가야 한다. 대체 어느 신선이 거기서 책을 보다가 놔두고 갔는지를 알아봐야 하니까....또 언제 다시 오는지도 물어봐야 하니까....

 

 

(12:42)책바위아래에서 점심 만찬을 즐겼다. 빗물을 머금은 구름속에서 먹는 만찬은 말그대로 축축함 그 자체였지만 다행히 비는

떨어지지 않아 편하게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다만 구름속에 갇혀있다 보니 식사시간중에 땀이 식으며 한기를 느꼈다는  것이다.

만찬을 즐기고 책바위에 빈몸으로 올랐다. 책바위를 지나 가는 길은 없다. 그래서 바로 아래 배낭을 내려놓고 카메라만 달랑 들고

구름속에 가려진 책바위에 쓰여진 글씨를 찾아 두손 두발을 사용하여 오르기 시작했다.

 

 

(12:52)책바위를 한바퀴 빙 돌아 봐도 어느 신선이 놔두고 갔는지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책바위를 또 아무리 살펴봐도 어떠하 글도 안보인다. 틀림없이 신선들만의 언어로 쓰여있고 또 그들만의 흔적을 남겼을 것인데

속세의 인간인 내가 그들의 언어를 안다면 나도 신선이 된다는 이야기다...ㅎㅎ

하지만 지리산 자락의 삼신봉에서 본 쇠통바위와 이 책바위와의 공통점은 있다. 추측컨데 언제가 하늘의 문이 열리기 전에 책바위에

써진 주문대로 하늘에서 열쇠가 내려와 쇠통바위에 꽂히면 하늘의 문이 열리며 아름다운 선녀들이 땅으로 내려와 온세상을 선과

사랑으로 가득찬 세계로 만들어 갈것 같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나무를 본적이 있다..분재소나무에서..분재소나무의 확대판처럼 멋지게 생긴 소나무가 남쪽을 향해서 손을 뻗고

무언가를 열심히 갈망하는 모습이다. 그 무엇을 손에 쥐어줘야 하는데 줄것이 없으니 내 몸뚱아리라도 주고 싶다.

 

 

이리 찍어놓으니 꼭 분재소나무에 앉아 있는 인형같다.. 나 뿐만이 아니라 한 사람을 더 받쳤다. 

 

 

                    어느 산에를 가나 이렇게 비밀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 있다. 그 좁은 통로를 지나칠려면 온 몸을 부대끼며

                    지나가야 한다. 책바위에서 못들은 신선들의 이야기가 이 통로를 통해 지나가면 들을 수 있을까?

 

 

(13:14)전망이 좋은곳에 이렇게 나무로 전망대를 만들어 놨다. 사실 전망대 없는 그 자체가 훨씬 자연스럽다. 오히려 인위적인

전망대가 더 볼성사납다.

차라리 없으면 가다 바위위에 올라 두발로 버티며 쭉 펼쳐진 산을 조망할 것인데..전망대라는 본래의 목적보다 산님들이 편하게

점심만찬을 즐기는 자리로 변모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전망대에 오기전에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던 자리에서 보는 것이

훨씬 더 조망이 좋고 모든 산세가 한눈에 보이는데 굳이 길 중간에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은 세금낭비의 전형이다.

 

 

기백산에서 금원산으로 가는 길에 나의 눈길을 끌었던 야생화와 달팽이..

달팽이가 있던 나무를 손으로 만지며 나무와 교감을 나누려다 깜짝놀라서 바라봤더니 이렇게 손가락길이의 달팽이가 먼저 나무와

교감을 나누고 있어 양보하고 그냥 지나친다...

 

 

(13:46)수망령으로 내려서는 임도까지 내려왔다. 임도를 건너 금원산으로 올라서는 길을 따라간다.

 

 

여기까지 기백산 정상에서 2.4km지만

1시간20여분이 걸렸다.

중간에 책바위에서의 만찬시간을 포함하였으니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1시간정도 걸린 것 같다.

급경사길도 없고 능선길을 따라오는것 치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금원산까지는 1.6km

남았다.

 

 

                                                            

 

 

(14:14)헬기장 너머로 금원산 동봉이 보인다. 기백산에서 금원산까지는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오르내리며 왔다.

 

 

                     헬기장에서 정자까지 내려가는 길목에 이렇게 나무계단용 목재를 우측으로 쌓아놨다.

                     그다지 다니기에 불편한 길은 아닌데 이곳에다 나무로 계단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행정관청에서는

                     이 곳이 나무계단이 필요한지 안하지는 모를 것이다. 누군가 틀림없이 등산의 편의성을 위해 민원을 제기하였을

                     것이고 또 산을 관리하는 지자체에서는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등산객들의 편의도 도우고 또 점수도 따고 일거양득

                     으로 설치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금 지나가는 이길에는 이런 나무계단이 전혀 필요가 없다..

 

 

(14:17)정자주변에서 한창 나무에 브라켓트를 설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엄청난 자재를 쌓아놓고 사방 팔방으로 나무계단을

설치중이다.

이렇게 쉬어가게끔 정자도 만들어 놓고 .... 참 좋은 세상이다. 1300m가 넘는 산의 꼭대기에 이렇게 정자를 만들어 놓고 쉬어가라면서

산님들을 붙잡을려면 주위에 샘이라도 있어야 할 것인데..암만 찾아봐도 그런 샘도 없다.

그래도 혹시라도 비가 오면 훌륭한 대피소 역할도 하고 또 앉아서 식사도 할 수 있게끔 배려해준 지자체에 고마움을 느낀다.

 

 

유한청폭포로 내려가는 길이다.. 그런데 동봉으로 올라가서 유한청폭포로 내려가는 2코스를 우리는 타야한다.

공사를 하고 계시는 분들이 3코스는 훨씬 더 길단다..그리고 예까지 왔는데 동봉거쳐 금원산을 보고 가는게 좋지 않겠냐고 꼬드긴다.

네..네..사실 여기서 유한청폭포로 내려가는 줄로 잠시 착각했다. 지도를 꺼내놓고 다시 들여다 보니 동봉에서 내려가는게 맞다.

 

 

                    정자에서 금원산으로 오르는 길은 좀 가파르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렇게 나무계단을 설치하는 공사가 진행중이고 일부구간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오르면서 보니 비가 많이 오면 흙이 모두 씻겨 내려갈 것 같은 생각이 든다..거기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지 관리하는 것도 그 만큼 중요하다.                        

 

 

 

           (14:29)금원산 동봉에 있는 돌탑이다. 금원산 정상과는 약250m떨어져 있지만 조망은 금원산보다 훨씬 뛰어나다.

          금원산 정상은 수풀에 갇혀 사방이 전혀 안보이지만 이렇게 동봉은 사방팔방이 확트여 굳이 금원산 정상으로 삼아도

          전혀 손색이 없다. 동봉의 넓은 바위위에 육신을 눞히고 새파란 하늘위에 떠있는 구름을 여유있게 바라본다.

 

 

멀리 보이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이 현성산(965m)이다. S코스를 탄 님들이 금원산을 거쳐 저 산으로 가다 정상못가서 안부갈림길에서  지재미골로 하산하여 마애불상 - 문바위쪽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14:30)내가 걸어온 길이 쭉 펼쳐져 있다. 우뚝솟은 봉우리가 기백산이다. 기백산에서 여기 금원산 동봉까지 능선길을 따라 4.73km

거리를 걸어왔다. 장수사 일주문에서 출발하여 기백산까지 4.2km까지 2시간 30분이 걸렸고 기백산에서 금원산 동봉까지 4.7km를

점심시간 포함하여 2시간 8분만에 도착하였다. 일주문에서 기백산까지는 완만한 오르막에다 1.3km를 남겨놓고 가파른 오르막으로

변하다 보니 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기백산에서 금원산 동봉까지는 완만한 능선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오다 보니 점심시간

포함해도 빠른 페이스로 내려왔다.

 

 

앞에 보이는 산 너머가 월봉산이다. 왼쪽 끄트머리가 칼날봉이고  그 너머가 덕유산 능선길에 있는 남덕유산이다.

저 남덕유산에서 6.25전쟁때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허리가 끊긴 북한군의 주력부대와 남한에서 활동하던 남로당대원들 그리고

이른바 빨치산으로 불리우는 헐벗고 굶주린 민중들이 후퇴를 거듭하며 육십령을 넘어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지나가는 산이 이곳

금원산이다.

 

 

(14:32)금원산 동봉에서 제2코스인 유안청폭포가 있는 유안청계곡으로 들어선다.

이쪽으로 가는 길은 이현상이 이끄는 남부군이 이태가 소속된 승리사단과의 만남을 위해 내려간 길이다...

남덕유산에서 육십령을 넘어 금원산을 지나 이 중봉을 거쳐 눈에 안띄는 유안청계곡으로 가는 이현상의 길...

(유한청의 이름은 잘못된 표시다. 유안청이라는 이름이 맞다.)

 

 

(14:58)수백명의 남부군들이 지나갔을 이 길을 60여년이 지난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길을 걸어갔을까? 그들의 영웅인 김일성이 반드시 자신들을 데리러 올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고 이태의 남부군에는 쓰여있다. 그러나 그들이 신처럼 믿었던 김일성은 1953 년 7 월 민족적

비극을 마무리하는 휴전 협정문서에서 각 상대방 후방에 남겨진 물자와 장비의 철거, 심지어 전사자의 시체발굴과

반출에 관한 조문까지 협의하고 조문으로 남겼지만 후방에 남겨져 있는 살아 있는 자신들의 군인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그들은 이런 이현상부대를 그들의 주력부대가 아닌 전쟁의 도구보다 더 못한 쓰레기로 처리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철저히 이용만 당하고 결국 배신까지 당한 남부군은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1953년 9월18일  지리산 반야봉 남쪽 빗점골에서 남부군의 총사령관인 이현상이 사살되면서 그 끝을 맞는다.


 

(15:03)이 자리에서 이현상은 함양군 일대를 바라보며 지리산을 가는 길을 탐색했으리라..

숲길을 지나다 갑자기 전망이 확트이며 시원하게  함양군 일대가 내려다 보이는 자리에서 나도 그때의 이현상이 되서 읊조려본다.

(음..앞으로 1시간이면 승리사단과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내려갈 수 있겠서..동무들은 어찌 생각하우? 자자..동무들 힘내자우..

지리산이 코 앞이야..)

 

 

                      (15:06)바위틈에 깊이 뿌리를 박고 버티고 서있는 나무.. 이나무를 보면서 이현상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동무들 이 나무를 보라우..이렇게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있잖소?  우리도 반드시 수령동지께서 찾으러

                      올끼야..그때까지 우린 이 나무처럼 여기에 뿌리를 박고 열심히 항거하며 살아있어야 하우.)

 

 

(15:50)동봉을 출발하여 임도까지 내려오는 1.8km를 1시간 10분정도 걸려왔다.

여기서 건너편 이정표가 서있는 숲길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6.25전쟁 무렵에도 이 임도는 있었을까? 그렇다면 이현상부대는 이길을 따라 최단거리로 지리산으로 접어 들었을 것이지만 밝은 대낮에 그런 무모한 행군은 안했을 것이고 숲길로 난 유안청계곡을 계속 따라갔을 것으로 보여 임도가 6.25전쟁 이전에 있었냐 없었냐라는 생각은 별 문제가 안되었을 것 같다.

 

 

계곡으로 들어서자 마자 약수터라고 만들어 놓은 조그만한 샘물이다. 바위툼에서 흘러나온 물을 받아놓은 표주박모양의 돌그릇이다.

이현상부대도 이 길을 지나며 바위틈으로 흐르는 물을 손으로 받아 마셨을까? 그렇지만 이 계곡은 물의 수량이 풍부하고 또 지천에

실도랑이 있어 물걱정은 크게 안했을 듯 하다.

 

 

                    유안청폭포로 들어서기 전에 쭉쭉 뻗어 있는 전나무들을 보니 또 피로가 금새 풀린다. 이곳을 지나치면서

                   느끼는 향기는 산림욕장에서 느끼는 독특한 그 향기다.

 

 

                     (16:08)드디어 그리고 그리던 유안청폭포에 도달했다. 유안청폭포의 옛이름은 가섭동폭이었다 한다.

                     옛날 금원산에 있는  가섭사에서 비롯된 것을 조선시대에 들어 유생들이 지방 향시를 목표로 공부하였던

                     유안청(儒案廳)이 자리해 유안청계곡이라 불리었다. 혹은 거창유씨가 처음 터을 잡은 곳이라하여 불리었다고도 한다.

                      

 

이현상의 인민여단 혁명지대는 이태가 있던 승리사단과 이곳에서 2달만에 다시 합류를 한다..철쭉꽃이 만발했던 민주지산에서 헤어져

7월의 한복판에서 다시 만나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여기서 이태는 그들의 영웅인 이현상을 처음으로 본다. 315부대와 승리사단 그리고 이현상의 남부군까지 남한 빨치산의 최대,최강병력인 약 500여명이 이자리에 모였다고 이태의 남부군에서는 밝히고 있다....

1990년에 상영된 정지영감독의 안성기, 최민수, 이혜영 , 최진실 등이 출연한 영화 남부군에서의 집단목욕씬은 역사의 현장인 이곳이

아니라 장수군 장안산 덕산계곡의 덕산용소에서 촬영했다.

며칠전부터 내린 비로 20여m에 이르는 폭포에서 퍼붓는 물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두명의 사진 작가가 하루종일 진을 치고 서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사실 이번 산행에 금원산에서 부터 유안청계곡을 따라 이동 했을 이현상의 흔적을 따라 가면서 민족상잔의 아픔을 몸소 체험해 보고

싶었다.

나의 부친은 이현상의 남부군이 활동한 지리산이 있는 구례경찰서의 순경으로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에 투입되어 수십차례의 교전을

하였다. 어린시절부터 부친께 들은 이야기지만 지금도 새롭다. 부친의 전투 무용담에는 이현상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이제는 고인이 되셨지만 지리산 전투에서 서로 피아간에 몇번이라도 마주쳤을 이현상의 흔적에서 나의 부친의 흔적을 찾고 싶어서

여기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부친께서 유명을 달리하기 전에는 사실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돌아가시고 난 다음부터는 왠지 부친에 대한 그리움이 앞서

지리산쪽 으로 가는 산행에는 가급적이면 무조건 참석한다. 젊은 청춘을 나라에 바쳐 온 지리산을 누볐을 부친의 행적을 더듬어

가보고 싶기때문이다.

 

 

내가 서있는 이자리가 우측사진의 폭포 바로 앞에 있는 바위위다..아마도 이현상은 이바위위에 서서 수백명의 부하들이 목욕을 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자리에서 연설을 했을지도 모른다. (동무들..그리고 말을 잇지 못했으리라..)

 

 

                                           유안청폭포의 가슴속으로 들어가서 그 사연을 들어보자.

                                           먹먹한 그리움이 온 가슴에 적셔온다. 가슴이 아린다. 쏟아지는 물이 고독에 젖은

                                           이현상의 눈물처럼 보인다. 그는 이 폭포수 앞의 바위위에서 아마도 소리없는 눈물

                                           을 흘리며 소리없이 울부 짖었을 것이다. 그를 배신한 공산주의와의 잘못된 만남을

                                           슬퍼하며 ...

 

 

(16:29)유안청2폭포다. 폭포물을 받는 둥근 소가 스무말들이 통만하다 하여 용폭(龍瀑) 또는 자운(紫雲)폭포라고도 한다.

3층폭을 이루는 길이150m에 이르는 와폭과 직폭이 있다.

3층을 통과하면서 물보라라 뿌옇게 일어나면서 햇빝에 투영된 무지개가 뜨고 그 색깔이 자주빛을 띈다 해서 자운폭포라 했을까?

엄청난 수량으로 미끄러지듯이 내려오는 물줄기를 담는 둥근소에서 울리는 소리는 영낙없는 용(龍)의 소리다.

 

 

(16:34)유안청계곡을 벗어났다. 동봉을 떠나 유안청계곡을 따라 이현상의 흔적을 따라 내려오면서 그의 부하들과 같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알몸으로 목욕했던 유안청폭포에서 차갑고도  시린 느낌을 발을 통해 가슴으로 전달받아 느껴보기도 하면서 3.75km를

2시간정도 걸려 내려왔다.

 

이현상의 남부군은 이태의 승리사단과 만나 유안청폭포에서 목욕을 한 후 해질무렵에 그곳을 떠나 위천면, 마리면, 안의면을

통과하여 산청군 생초면과 신원면의 접경에 있는철마산까지 새벽에 도착하는 놀라운 기동력을 보인다. 그후 산청 합천 함양군

일대를 좌충우돌하면서 버티다가 8월16일 오후 산청군 경호강을 넘어 지리산 달뜨기능선을 바라보며 웅석봉의 어느골짜기로

들어선다.

무려 700여명의 대 병력이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후로 53년 9월18일 지리산 빗점골에서 이현상이 사살될때가지 2년여를

지리산 아흔아홉골을 누비며 처절한 전투를 한다..무엇을 위해..누구를 위해 ..왜..그들은 그렇게 처절하게 전투를 했어야 했나..

그리고 이름모를 계곡에서 죽어만 가야 했을까..지금도 수천 수만의 영혼이 지리산 아흔아홉골을 떠돈다 한다.

북한정권에 버림받고 남한의 수많은 산중에서 산화해 버린 그들의 비통한 영혼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 

 

이렇게 같은 민족끼리 좌니 우니 하며 갈라서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고 또 좌든 우든 살기위해 빨치산이 되어야

했던 수천의 양민들의 그 처절했던 삶의 역사적 사실을 지리산을 오르는 우리들은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금원산 자연휴양림입구다. 유안청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이렇게 가두어 두고 쉼터를 만들어 놨다.

 

 

(16:35)산막(방갈로)이 죽 늘어서 있다. 얼추 세어 보아도 20여동이 넘는다. 단독 산막도 있고 복층 산막도 있어 가족 휴양지로

손색이 없다.

가까운 금원산까지 4km밖에 안되니 이곳에 짐을 풀고 산보삼아 금원산에 올랐다가 정자가 있는 곳에서 유안청계곡을 따라가는

3코스로 내려와도 손색이 없는 등산코스가 되겠다.

 

 

오늘 날씨는 무척 덥다..산정상으로 오르는 길엔 고온다습한 날씨덕에 땀도 많이 흘리고 또 물도 많이 찾았지만 이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는 일가족을 보니 그 청량한 오후의 휴식이 내것이 아닌냥 부럽다.

 

 

(16:39)내가 나를 보니 얼굴이 벌겋게 탔다. 산속은 거의 전구간이 숲길이다 보니 모자를 쓰는것 자체가 불편해서 배낭에 쑤셔 박아놓고

안썼더니이렇게 얼굴이 조금 탔다. 갑자기 맥주가 간절히 당겨서 중전에게 전화통을 붙잡고 맥주 몇병 사놓을 것을 부탁하며 찍었다. 

 

 

(16:54)차가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 근처에 있는 선녀담이다.

하늘에서 세명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다가 그 아름다움에 취해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목욕을 하며 놀다가 천상으로 돌아갈 시간을

놓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선녀담 바위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바위가 되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저 위에 있는 바위가 그 바위다.

선녀가 숨어있는 바위..보이신가? 선녀의 알몸이?...

 

이렇게 오늘 나의 부친과 지리산에서 한 두번은 조우했을 이현상의 남부군의 금원산 유안청계곡에서의 흔적을 따라 가봤다.

 

 

이현상(李鉉相) 

1906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났다.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때인 1925년 조선공산당 창설에 참여하였다.

1927년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입학한 뒤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산하 학생부원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반일 동맹휴학을 주도하다가 일제의 대규모 공산당 검거 때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출옥 후

박헌영(김삼룡() 등과 함께 경성콤그룹을 결성하였다. 일제 말기에는 지리산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였고, 8·15 광복 이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참여하였다. 공산당이 남조선노동당으로 개편된 뒤 연락부장 등의

요직을 맡아 활동하다가 남한에서 공산당 활동이 불법화되자 월북하였다.

1948년 북조선노동당의 결정에 따라 다시 남한으로 내려왔다. 지리산으로 들어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빨치산

투쟁을 전개하였다. 1951년 북한당국에 의해 공식적으로 남한 빨치산의 조직인 남부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각 도당 유격대를 남부군 사령부에 소속시키는 등 조직적인 투쟁을 전개하다가 1953년 휴전 이후

군경 합동으로 실시된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때 사살당하였다.

 

오늘 산행은 장수사 일주문 -----------기백산----------------금원산동봉-------------자연휴양림------------선녀담(주차장)

                     (09:46)          4.2km     (12:22)         4.7km         (14:30)        3.75km       (16:34)       1.5km        (16:54)

이렇게 14.15km를 7시간 10분여만에 도착했다. 물론 이 시간에는 점심시간, 간식시간 2회, 유안청폭포에서의 물놀이 등을 모두

포함한 시간이다. 넉넉하게 쉬엄쉬엄걸으며  풀들과 나무들의 대화, 풀벌레와 산새들의 대화,책바위에 숨겨진 신선의 비밀스런

문구도 들여다 보고 이현상의 남부군의 이동경로를 따라 이태의 남부군에 나오는 500여명의 빨치산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깨벗고 목욕했다는 유안청폭포에서의 옛 흔적도 찾아가며 부친에 대한 추억까지도 되새겨봤다.

7월16일엔 또 부친과 이현상이 수십번 교전을 치렀을 지리산에 간다. 올해 들어서 지리산 자락은 네번째 방문이다.

바래봉, 중산리에서 천왕봉 거쳐 대원사로, 청학동에서 삼신봉거쳐 쌍계사로, 이번엔 백무동에서 천왕봉거쳐 다시 백무동으로 간다.

그때까지 부친이 어린시절부터 내게 들려주던 지리산에 관한 이야기들을 정리하며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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