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28. 00:44ㆍ한국의 산 견문록/한국의 산
눈 내리는 겨울 담양 금성산성에 올라
천년의 세월동안 꼿꼿하게 흐트러짐 없이 서있는
소름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산성의 기세와 선조의 기개를 느껴 본다.
대륙을 휘감고 돌아간 진시황의 만리장성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지만
당으로부터 고구려를 지켜낸 천리장성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천인단애의 암벽위에 솟아 자연적 지형지물을 이용한 천혜의 요새인 금성산성 십오리길.
훗날 왜구로부터 전라도땅을 지켜내기위한 처절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산성길을 따라 수도 없이 뛰어다녔을 의병들의 거친 숨소리와 발자취를,
갑오동학혁명군의 녹두장군이 피를 토한 고함을 외쳤을 소리의 흔적을 찾아보고
한국전쟁때는 회문산 가마골 등의 빨치산들의 왕래길 거처로도 사용되었을 보국사터까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려 금성산성의 수많은 아픔들을 보듬고 같이 겪어보며
그시절 그 함성소리를 듣기위해 크리스마스날 친구들과 담양 금성산성에 올랐다.
때 맞추어 겨울눈도 어제 오늘 호복하게 내려주어 조망의 즐거움도 같이한 뜻깊은 산행이 되었다.
광주에서 금성산성입구인 담양 금성면 원률리 담양온천까지 가는 길은 우려와는 달리 어제 제설작업을 완료하여
4륜구동차의 뒷바퀴로만 열심히 굴리고 와도 충분할 정도로 가뿐했다.
번개산행이다 보니 문자 한 통 안날렸지만 오전9시 광주 금호패밀리랜드앞에는 나를 포함 3명의 친구들이 크리스마스 번개산행을 위한
들뜬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가슴벅차게 달려왔지만 오기로 약속했던 한 친구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참석을 못한다고 밤늦게 메세지가
왔다한다.
그래도 혹시 올지 모를 다른 친구들을 기다리며 20분을 더 허비하다가 단촐하게 셋이서 패밀리랜드앞을 출발한다.
금성산성을 올라가는 길은 다양하다.
순창쪽에서는 강천산군립공원으로 들어와 좌측으로 금강계곡을 따라 376봉을 거쳐 광덕산을 지나 시루봉거쳐 동문으로 들어와도 되고
우측으로 병풍바위에서 깃대봉으로 올라 정상인 왕자봉을 거쳐 1,2형제봉을 지나는 호남정맥길을 따라 북문으로 해서 들어갈 수도 있으며
산길이 여의치 않으면 현수교를 지나 구장군폭포까지 온 다음 동문이나 북문옆의 승낙바위쪽으로 해서 금성산성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담양쪽에서는 담양온천옆으로 난 금성산성 주차장으로 해서 들어가도 되고(입장료는 사람은 없고 소형차2,000원 대형차5,000원)
주차장에서 연동사로 오르는 길을 따라 연동사 주차장에 세워놓고 연동사 동굴법당을 보고 금성산성으로 가도 된다.
주차료가 아깝다면 담양온천에 차를 주차하고 온천 뒷길로 올라도 되고, 담양온천 앞을 지나 200여미터정도 가면
우측으로 차단막이 내려서 있는 임도길을 따라가다 금성산성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그 길이 호젓하고 걷기에 좋다면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걸어가도 된다.
그렇게되면 담양댐호수를 구불구불 돌아 회향루라는 담양댐 수몰지역 망향정자가 나오고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서문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한다. 그 길은 가보지 않았으나 금성산성 서문 보수공사를 하기 위한 자재들이 그 임도길로 들어다니므로
아마 서문근처까지 길을 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10:10)우리는 입장료를 2,000원 지불하고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금성산성으로 오르는 아주 고전적인 산행을 나섰다.
우연히도 문흥백두산악회 회장님 일행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보니 이런 인연도 있나..거기도 오늘 번개로 금성산성이 잡혔나 보다..
그러고보니 빛고을토요산악회도 크리스마스이브인 어제 번개산행으로 금성산성이 잡혔었다.
따라가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지만 밀린 회사일로 뭄뚱아리를 쪼갤수가 없어 오늘 친구들이랑 그 아쉬움을 달랜다.
(10:23)13분정도 눈쌓인 임도를 따라 900m정도 올라가면 간이 매점이 나온다.
옛날엔(10년전) 이곳까지 차를 가지고 올라왔는데 지금은 주차장이 있는 입구에서부터 차량출입을 통제한다.
큰애가 유치원 다닐때 유치원 현장학습을 금성산성에서 했는데 그때 이곳까지 차로 올라와 아이 손을 잡고
금성산성으로 올랐던 기억이 떠 오른다.
이곳에는 연동사 동굴법당에서 바로 올라오는 샛길과 요사채쪽으로 내려가는 임도길이 나오고 산성쪽으로 좀 더 올라가면
연동사로 내려가는 조금은 위험한 숲길도 있다.
그러나 연동사를 거쳐 오르는 것보다 금성산성을 한바퀴 돌아본 뒤 하산하면서 연동사 동굴법당을 둘러보기를 강추한다.
하산길에 처음 나오는 연동사 가는 숲길로 내려가 요사채로 내려가지 말고 오른쪽에 있는 노천법당과 삼층석탑을 본 다음
그 위에 있는 또다른 동굴법당을 둘러보고 왼쪽으로 난 숲길로 빠져나와 산 능선을 타고 우측(임시화장실)으로 가면
간이매점쪽으로 빠지는 숲길로 나오고 좌측으로 가면 조그만 임도가 나오는데 그 길을 따라 쭉 나오면 매점앞까지 오르는
큰 임도와 만날 수 있다.
(10:27)2분정도 더 오르면 나오는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150m정도 가파른 숲길을 내려서면 연동사로 갈 수 있다.
금성산성과 연계해서 연동사 동굴법당도 보는 일석이조의 역사체험길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조금만 수고를 더하면 볼 수 있으니
반드시 하산길에 연동사를 들러 나오는 코스로의 산행을 추천한다.
(10:32)그곳에서 5분정도 더 오르면 나오는 안부에서 담양온천으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나온다.
이리보니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것보다 조금 가깝게 보이지만 그 길은 걷기에 편한 임도가 아니고 숲으로 난 등산로이므로
둘 중 편한길을 선택해서 오면 된다.
이정표너머 현수막에는 내년 새해 해돋이 행사를 담양 금성산성 충용문에서 하는데 금성산성지킴이 동자암에서 주최하고
동사모와 신도회에서 후원하며 오전7시 떡국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걸려있다.
해돋이도 보고 떡국도 먹고 그리고 이 멋진 금성산성도 둘러보고 관심있는 분들은 금성산성 해돋이 행사에 꼭 참여하기를 바란다.
(10:40)차단기가 내려져있는 곳에서 출발하여 30분정도 걸려 보국문앞까지 왔다.
약2km정도 되는 거리를 30분만에 도착하였으니 우리가 빠른가 아니면 거리가 잘못되어 있는가?
아마도 금성산성 겨울 눈산행에 대한 들뜬 기분으로 모두들 최고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었기에 발걸음이 꽤나 가벼웠을 듯 하다.
보국문을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충용문도 보인다.
금성산성은 삼한이나 삼국시대에 최초로 건립되었다고 하나 문헌상 최초의 기록은『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고려 우왕 6년(1380) 왜구침입에 대비해 성을 개축하면서 산성이름을 '금성(金城)'이라고 한다는 기록이 첫기록이다.
당시에는 왜구가 금성산성에서 잠시 머물렸다는 기록도 있으며 임진왜란을 격으면서 일부 건물이 소실되고,
동학혁명 당시인 1906년에는 일본군과 관군에 의해 대장청 및 민가, 창고등 군사시설이 완전히 소실되었다고 한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마지막으로 금성산성에서 20여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식량원조를 위해 나섰다가
전북 순창군 쌍치면에서 친구의 밀고로 체포 되었다는 아픈 역사의 상처가 배어있는 산성이다.
보국문을 지나면 충용문까지 다시 성길이 이어진다.
즉, 보국문이 있는 곳은 1차 수성지인 외성이고 충용문이 있는 곳부터 본격적인 산성은 시작된다.
금성산성은 전라남도 기념물52호였지만 역사적인 가치가 인정되어 1991년 사적353호로 변경지정되었다.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를 하여 1409년(조선 태종9년)에 개축하였고 임진왜란때 파괴된 것을 1610년(조선 광해군2년)에 성곽을 고치고
내성을 처음 쌓았다. 그후 1653년(조선 효종4년) 성첩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註釋
성첩(城堞):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병을 쏘거나 친다.
(10:52)충용문.
보국문이 정면3칸에 측면1칸의 우진각지붕을 얹은 누각이라면 충용문은 정면3칸에 측면2칸의 팔작지붕을 얹은 중층누각으로
두 문루의 건축양식이 서도 다르다.
산성 인근의 5개현(담양,창평,동복,옥과,순창)을 관리하였고 유사시를 대비하여 군량미 2만여석을 해마다 비축해 오던
호남 최대의 철웅성이자, 장성의 입암산성, 무주의 적상산성과 더불어 호남의 3대산성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성안에는 곡식 1만 6천 섬이 들어갈 수 있는 군량미 창고가 있었으며 객사, 보국사 등 10여 동의 관아와 군사 시설과
동서남북의 4곳에 누각이 있었으나 1894년 동학농민혁명운동 때 모두 불타 없어졌다.
1994년부터 성곽복원사업을 착수하여 외남문·내남문의 누각과 서문·동문을 복원하여 외남문의 누각은 보국문(補國門),
내남문의 누각은 충용문(忠勇門)이라 명명하였다.
앞으로는 성곽 보수와 나머지 2곳의 누각을 비롯해 동헌 등 관아 시설, 대장청 등 군사 시설, 민속촌 등을 조성하여
금성산성을 호국안보 학습장으로 복원할 계획이라고 하니 몇년후에 펼쳐질 금성산성의 새롭고 멋진 모습을 벌써부터 기대해본다.
그리된다면 지금보다 수십배가 넘는 많은 사람들이 금성산성을 찾게 될 것이고 서문근처까지 이어진 임도를 잘 활용하여 접근성을 높혀주고넓다란 주차시설까지 만들어 민속촌을 만든다면 담양군의 관광수익에도 많은 공헌을 할 것으로 보인다.
우진각지붕 : 지붕면이 전후좌우로 물매를 갖게 된 지붕양식으로 지붕면 높이가 팔작지붕 보다 높게 되어 있는 해인사 장경판고 등이 있다
팔작지붕 : 가장 아름다운 구성미를 지닌 지붕으로 곡면이 특이하여 부석사 무량수전, 통도사 불이문 등이 있다.
충용문의 열린 문으로 들어서면서 수 백년전 역사의 현장으로 지금부터 들어간다.
충용문에서 바라본 보국문(외남문).
아마 바로 앞에 있는 담장이 성첩인 듯..
우리는 충용문을 지나 좌측으로 난 성곽길을 따라
노적봉 - 철마봉 - 서문 - 북문 - 연대봉 - 동문 - 시루봉 -
내성동문 - 동자암 - 충용문으로 돌아오는 6,486m에 이르는
외성길을 따라 간다.
이곳에서 별장(別將)을 지낸 가선대부(嘉善大夫) 국문영(鞠文榮)의 비가 있는 묘소와 위령탑을 지나 보국사를 지나 서문과 북문으로
오를수 있고 동자암을 지나 내성동문을 거쳐 시루봉이나 동문으로 갈 수도 있다.
보국문에서 서문 - 북문 - 동문 - 남문으로 이어지는 일주코스는
약 6.4km에 산책걸음으로 5시간정도 걸리고,
보국문에서 서문까지 이어진 숲길은 약1.8km에 편도1시간,
보국문에서 북문까지 이어진 숲길은 약2.0km에 편도1시간이
걸린다고 이정표에 나와있으나 북문까지의 시간은 좀 더 걸릴듯..
그리고 보국문에서 동자암거쳐 동문까지는 약1.5km.
걸리는 시간은 40분.
각자의 체력과 취향에 맞게 코스를 잡고 가면 된다.
성벽사이로 보이는 보국문(외남문)
금성산성은 성축시 주변에 널려있는 수성암인 정판암(구들장으로 많이 이용되는 돌)을 절석하여 축성한 산성이다.
이정도 산성을 지을 물량의 돌이었으면 아마 성안에 있는 암벽 하나는 통채로 없어졌을 듯 하며 그곳에서 부터
등짐지어 날라 축성한 선조들의 피와 땀이 어린 현장을 직접 걸으며 보니, 보는것 마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노적봉을 오르는 성곽길을 따라 가다보면 이렇게 보국문을 보는 최고의 전망포인트가 나온다.
이곳 금성산성은 2009년 5월 MBC특별기획역사드라마
선덕여왕 오프닝을 포함한 1,2회의 주요촬영지이기도 했다.
당시 주인공 미실이 고현정과 선덕여왕에 오른 이요원,
신구 등 유명 출연진과 스텝 등 200여명이 촬영장비와
셋트 등을 이고지고 날라서 촬영했다하니 그 수고와 노력에
그시대 최고의 드라마가 나왔지 않나 싶다.
그때 선덕여왕때문에 술집등이 장사가 안되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듯이 선덕여왕 드라마의 인기는 과히 메가톤급
이었다.
(사진출처:뉴시스통신사 newsis)
가다가 다시 한번 돌아볼 정도로 멋진 조망에 감탄을 금할 수 없고...
노적봉아래 낭떠러지위에 3미터 가깝게 돌을 쌓아올려 산성을 만들고 수백년 흘러도 끄덕없게 만든 선조들의 건축기술에 또 한 번 놀라고..
노적봉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수 많은아픔의 역사를 고스란히 목격한 심지 곧은 소나무의 멋진 모습에도 놀란다.
(11:08)노적봉에서 바라본 담양호와 추월산. 그리고 그 너머 하늘금은 영산기맥길.
註釋 : 영산기맥
백두대간이 장수와 함양의 경계를 이루는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이 분기하여 내려오다가 진안 조약봉에서
다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갈라져서 이 호남정맥이 내려오다가 내장산의 소죽염재와 상왕봉 사이의 순창새재로 내려서기 전의 530봉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내려서면서 좌측으로 영산강과 우측으로 동진강을 가르며 내려서면서
입암산(626m), 시루봉(649m), 방장산(742.8m), 벽오봉(640.4m), 갈미봉(579m), 문수산(621.6m), 두루봉(441.5m), 소두랑봉(470m),
구황산(500m), 고산(528m), 고성산(546.7m), 월랑산(458m), 태청산(593.3m), 장암산(481.5m), 분성산(318m), 장군봉(430m),
불갑산(518.2m), 모악산(352.3m), 금산(305.0m), 군유산(405.0m), 발봉산(181.0m), 영태산(135.0m), 감방산(259.0m), 병산(130.7m),
마협봉(288m), 기봉(264.6m), 승달산(318.9m), 국사봉(283m), 대봉산(252m), 지적산(187m), 대박산(155.4m), 양을산(156m),
유달산(230m) 등을 거쳐서 목포시 충무동 다순금 마을앞의 목포만으로 가라앉는 도상거리 약157.4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우리는 이제 노적봉에서 내려서 철마봉으로 오르는 산성길을 타고 올라간다.
노적봉 건너편의 추월산을 지나는 하늘금은 호남정맥길이다.
금성산성에서의 호남정맥길은 추월산을 지난 정맥길이 담양호를 한바퀴 돌아 강천산으로 와서 제1,2형제봉 능선길을 거쳐
북문으로 들어와 금성산성의 산성산, 운대봉과 동문옆 시루봉을 거쳐 광덕산으로 빠져나가는 길이다.
여기서 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금성산성 들머리인 주차장입구에서 문흥백두산악회의 회장님 일행을 만났으나 우리가 먼저 지나왔고 본진을 이곳에서 만났다.
고교후배이자 산악대장인 문흥동 백두산악의 대표 석해경과 그 일행들과 만나 북문까지 동행을 하게 되었다.
호남정맥 : 금남호남정맥이 진안 주화산에서 갈라져 내장산 강천산 무등산 가지산 조계산을 거쳐 광양외망포구에서 맥을 다하는
약430km의 산줄기
성곽길을 걷다보면 철마봉으로 바로 오르는 경사길이 나오나 눈길에는 많이 위험하므로 조금 더가면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이 나온다.
그 길로 올랐다 내려오면 되지만, 나는 여기서 우회하지 않고 아이젠을 차고 바로 철마봉으로 올라 우회길로 내려왔다.
친구들과 석사장일행은 위험하다며 오르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려 서문에서 만날때까지 잠시동안 헤어지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다.
(11:30)철마봉 정상은 수십명이 앉아서 도시락을 먹어도 될 정도로 넓다.
사방팔방으로 툭 터진 조망을 원없이 보고 소나무에 묶어놓은 철마봉 정상표시쪽으로 내려가면 된다.
그곳에서 바라본 조망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좌로는 노적봉과 지나온 성곽길의 아름다운 길이 보이고 금성면의 비닐하우스단지 그리고 무등산까지 시원하게 조망되며
가운데로는 건너편의 추월산과 보리암이, 우측으로 담양호의 십자수로까지 조망된다.
철마봉에서 바라본 담양호.
철마봉에서 원없이 아름다운 산하를 조망하고 철마봉 정상표시가 붙어있는 소나무쪽으로 하산하면 산성길과 다시 만난다.
일행들과 5분정도 떨어졌기에 부리나케 걸었지만 여성들까지 낀 석사장 일행들을 따라 잡을 수가 없다.
나는 분명 서문쪽으로 난 산성길을 걷고 있지만 사람들의 목소리는 뒤쪽 계곡아래에서 들려온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는가? 잠시 두리번 거리며 철마봉쪽으로 난 길을 다시 올려다 보지만 사람들의 흔적은 전혀없다.
다만 눈길에 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에서 이쪽으로 가는 길이 서문으로 가는 길임에는 확실하지만 같이 온 친구들과
석사장 일행들의 흔적은 분명 오른쪽 계곡아래에서 들려온다.
아마 그쪽으로도 서문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음이 분명하지만 툭 터진 금성산성 조망을 제대로 감상하고 가자면
그냥 지금 보이는 산성길을 따라 계속 가면된다.(나중에 서문근처에서 그 길로 내려서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먼저 서문에 도착한
친구들의 말이 눈길에 급경사여서 상당히 힘들고 애먹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혹시 철마봉근처에서 길이 헷갈리거든 무조건 직진하자)
철마봉에서 담양호를 바라보며 한 바퀴 빙돌아 오면 이렇게 만리장성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 나온다.
내려서는 길은 지독한 너덜길이지만 눈이 제법 많이 쌓여있어 푹신한 것이 내려섬에 지장이 없다.
우측으로 보이는 빨간선은 아까 철마봉에서 직진하지 않고 오른쪽 계곡길로 내려서면 내려오는 길..
아이젠을 착용하면 괜찮으나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서 상당히 고생했다는 후문이다.
겨울철 등산에는 설사 눈이 오지 않더라도 반드시 아이젠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지극히 기본적인것이다.
서문근처의 망루역할을 하는 곳.
그러나 반대편에서 보면 굳이 저렇게 높이 쌓지 않아도 올라갈 수 없을 정도의 낭떠러지다.
보면서 그 웅장함에 기가 압도당하는 저 멋지게 생긴 망루끝까지 나가 보았지만 위험표지판도 출입제한 표지도 없다.
성곽길이 끝나는 곳에 출입을 금하는 안내판이나 안전시설이라도 설치해 놔야지 그렇지 않고 폭설에 강풍이라도 불면
아마 생각없이 산성길을 걷다 추락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밑에 있는 성곽도 마찬가지..끝에 아무런 위험표지판도 없다.
그래서 서문으로 내려서는 이 길에서는 성곽 밑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그러다 가끔 아주 가끔 성곽위로 올라 저 멋들어지도록 늘씬하게 빠진 금성산성의 모습을 보면 된다.
서문근처에는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흔적이 있다.
자재창고인지 임시 사무실인지 조그만 창고가 한 채 있고 서문의 돌들은 오랜 풍상세월을 겪지 않은 깨끗한 색깔들이다.
그 옛날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추운 몸을 잠시 쉬었을 지도 모를 천연동굴도 있고 밥을 지어 먹었을 계곡물은 지금 담양호로 흘러든다.
(11:57)서문
금성산성의 모든 문은 이렇게 크게 지워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말이나 소가 산꼭대기까지 오를 수 없을 정도로 경사가 있기에 식량이나 각종 물자도 등짐지어서 날랐을 것이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물론 차도 올라갈 수 없기에 이정도크기의 성문은 필요없을 것으로 보이나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다보니
성문의 보존및 원할한 물흐름을 위해 성문의 너비를 넓힌 듯 하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보지는 못했다. 왠지 나가면 못 들어올 것 같아서...
철마봉에서 1.2km를 내려왔으나 남문인 보국문까지 표시된1.8km는 성곽길이 아니고 보국사터를 지나 남문으로 가는 숲길을 말한다.
남문에서 산성길을 따라 서문까지 오려면 2.6km를 1시간 47분 걸려 걸어와야 한다.
우측의 이정표도 서문에서 보국사터까지가 1km이고 남문까지 가려면 보국사터에서 800m를 더 가야한다.
철마봉쪽으로 표시된 남문1.8km의 화살표는 보국사터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아니면 거리를 2.6km로 바꾸어 놓던가.
이제 우리는 북문으로 간다.
북문을 가기위해서는 철마봉에서 내려간 만큼 올라가야 하므로 만만한 고도는 아니지만 600미터만 더 가면 북문이 나온다.
문흥백두산악의 석사장일행은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하니 아쉽지만 여기서 헤어져야 한다.
우리는 밥먹고 난 다음 배부른 상태에서 북문으로 오르는 급경사길을 오르고 싶지 않다.
대부분의 산행에서는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가장 애매하고 고민이다.
배는 고파오는데 밥을 먹자니 눈앞에 까마득히 올라설 봉우리가 걱정이고 안 먹자니 배는 고파 척추뼈에 배가 붙을 지경이고....
(12:25)서문을 출발한지 25분만에 600m를 올라 북문에 도착했다.
시간당 1.5km밖에 못 가는 속도지만 충용문에서 노적봉으로 오르는 길 보다 더 힘들게 느껴진다.(아이고 배고파~~)
여기서도 보국사터로 해서 충용문으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있다.
그렇다면 충용문을 지나 노적봉 - 철마봉 - 서문 - 보국사터- 충용문으로 코스를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충용문 - 노적봉 - 철마봉 - 서문 - 북문 - 보국사터 - 충용문으로 또 다른 코스를 만들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일주산행코스 하나...이렇게 만들면 금성산성으로만 훌륭하게도 3개의 코스가 나오겠다.
그리고 보국사터에서 기와조각 찾기와 동자암에서의 티타임과함께 금성산성지킴이의 무술시범도 보고...약수터에서 물도 마시고.
그렇게 2012년 6월달에 있을 친구들 산악회의 정기산행때 참고로 할 자료를 만들게 되었다.
북문은 이렇게 생겼다. 서문처럼 넓고 높거나, 충용문처럼 멋들어진 팔작누각도 없고, 보국문처럼 심플한 우진각지붕이 있는 누각도 없다.
그저 사람 두명 포도시 비켜갈 정도로 비좁고 낮은 성문...그 흔한 대문도 없다.
금성산성은 산 자체가 천혜의 요새며 산성이다. 굳이 멋있게 누각을 설치하고 마소가 드나들 정도로 성문을 넓힐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저 병사들이 등짐지고 통행하는데 불편만 없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낮은 성문으로 인하여 이곳에서 수없이 치러졌을 임진년의 왜군과 의병들의 전투, 그리고 갑오년의 동학농민과
관군들간의 전투가 피아 모두에게 막대한 상처를 주었을 것으로 보여 성곽이라도 좀 높았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지만 이렇게 성문위에 걸터 앉아 밖을 내려다보니 아래로는 제법 높은 망루가 있어 안에서 보기와는 많이 다르다.
이 좁은 통로가 산성으로 공격하여 들어오는 적군들을 사지의 구렁텅이로 몰고가는 아가리인 것이다.
앞에 보이는 똑같은 높이의 봉우리가 강천산 1,2형제봉이다.
575봉으로 올라선 호남정맥길이 강천산 1,2형제봉을 거쳐 이곳 북문을 지나 앞으로 가야할 산성산 운대봉 시루봉까지 지나가며
광덕산으로 빠져 나간다.
강천산에서 올라오면 우측으로 병풍폭포 못가서 병풍바위쪽으로 깃대봉에 올라 강천산 주봉인 왕자봉을 거쳐 능선길따라
이곳 북문으로 들어와서 정맥길따라 시루봉거쳐 광덕산으로 빠져나가도 되고
현수교까지 더 걸어와서 우측 현수교 올라가는 길로 해서 왕자봉으로 올라 북문으로 들어와도 된다.
아니면 반대로 병풍바위 건너편 좌측에 있는 금강계곡으로 올라 376봉 425봉 493봉을 차례로 거쳐 광덕산에 올라 시루봉쪽에 있는
동문으로 금성산성에 올라와도 된다.
(12:30~12:55)드디어 허기진 배를 달랠 시간이다.
금성산성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2시간20분동안 4.6km를 걸어올 때까지 물 한 모금, 간식 하나 먹지 않고 왔다.
아마 한여름 이정도쯤 되면 배낭의 물이 절반은 소비되었을 것이고 간식도 두어차례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힘들긴 해도 옷에 땀 한방울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날 계속 영하권의 날씨를 보이고 찬바람도 불어와
땀이 나면서 바로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땀을 흘리지 않으니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물도 필요하지 않다.
단지 오르는 길에 착용한 아이젠으로 인해 묵직한 허벅지근육과 종아리 근육과 발바닥만 피곤할 뿐이다.
북문지나 강천저수지(2호수) 갈림길에 있는 산행안내도는
금성산성위주가 아니라 강천산 위주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부터는
호남정맥이 지나는 강천산의 주요 등산로이기 그렇다.
그래도 가끔 나오는 이정표는 모두 담양군에서
제작설치한 것으로 등산객을 위한 편의는
담양군에서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천산에서 오면 병풍바위에서
좌우로 난 등산로를 타고 능선길을 거닐며
금성산성의 동문과 북문으로 올 수도 있지만,
강천사를 지나 현수교아래를 통과하여
구장군폭포까지 와도 비룡폭포와 연대암터를 지나
금성산성 동문으로 올수 있다.
그러고 보면 강천산으로 해서 금성산성으로 오는 코스는
지도에서 보면 참으로 다양함을 알수가 있다.
산성산(연대봉)에서 바라본 광덕산으로 이어진 호남정맥길..
광덕산 뒤로 급격히 가라앉아 보일듯 말듯 한 332봉을 거쳐 담양 금과면의 고만고만한 봉우리로 맥을 이어가다 무등산에서 갑자기
치솟아 1000봉우리를 만들고 조계산거쳐 광양 백운산에서 마지막 힘으로 1000고지봉을 만들고 남해바다로 사라진다.
산성산(연대봉603m)은 강천산과 금성산성을
통 틀어 최고봉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산성산이라는 이정표나 표지기를
보지 못하고 근처에 이렇게 삼각표지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지도마다 산성산의 위치도 제각각 다 틀려서
제대로 된 정보를 알수가 없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위치가
제일 높고 보이는 모든 봉우리들이 발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멀리 동문으로 이어진 성곽길을 따라가다 우뚝솟은
운대봉(북바위)도 보이고 그곳에 멋들어지게 생긴
낙락장송 한그루가 희미하게 보이는 이곳은 산성산이 분명하다.
우측으로는 강천산 1,2형제봉의 모습이 보이고...
그리고 좀 더 나가 강천산의 깊은 계곡과 좌측으로 왕자봉과 그 밑에 깃대봉..
강천산계곡을 딱 가로막고 있는 무이산(567.5m)과 우측으로 신선봉이 보이고..
좀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광덕산이 보인다.
운대봉(북바위)를 거쳐 내성동문으로 가는 길이
흰 눈으로 인하여 아주 뚜렷하게 보인다.
동문이나 광덕산으로 가려면 북바위 못가서
사람들이 올라오는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가야되며
계속 직진하여 북바위를 넘어서 가는 길은 없다.
그곳은 운대봉의 꼭대기로 낙락장송을 지나 올라가는 길이
눈길이라면 상당히 미끄럽기에 조심하여야 한다.
나의 블러그 친구인 power님이 지난 12월4일 북바위에서
눈길이 아님에도 할머니등산객에게 길을 비켜주다가
발을 헛디뎌 무릎인대를 다쳐 헬리콥터로 병원으로 후송된
사고가 난 곳이기도 하다.
처음 이곳에 올라올때부터 대체 어떤 곳이기에
산 잘타기로 소문나고 전북 무명산의 길라잡이이자
네비게이션인 유명산쟁이 블러거 power님을 다치게 하였는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그 얼굴 한번 보고 싶어 여기까지 왔다.
이제 그녀석까지 남은 거리는 얼추 100미터정도.
기다려라..simpro가 간다.
(13:28)운대봉이고 북바위라고도 부른다....
이 멋진 낙락장송은 멀리 산성산에서 부터 조망되어 성곽길을 안내하는 중요한 등불이 되어주었다.
마치 어둡고 캄캄한 바다에서 등대를 보고 항로를 잡듯이..
이곳으로 강천사계곡의 구장군폭포에서 바로 오르는 등산로도 있으며 그 길은 위에서 보니 상당한 경사도를 보인다.
소나무를 지나 운대봉정상으로 가기위해서는 양쪽으로는 벼랑끝인 아주 좁다란 길을 지나야 한다.
아마 power님이 발을 헛딘 곳은 이 곳이 아니고 소나무근처에서 길을 비키다 여기서 보면 우측으로 헛디딘 듯...
일단 그 멋진 녀석앞에서 power의 친구 simpro가 왔음을 알리고...
조금 위험해 보이는 미끄러운 암벽을 올라 운대봉정상으로 올라선다.
정상엔 길이 없음을 알리는 경고판이 있고 더이상 오르거나 갈 곳은 없다.
운대봉정상에서 강천산과 금성산성의 최고봉 산성산(연대봉)을 뒤로 한채 .
그 멋진 낙락장송을 위에서 째려보며 아직까지도 기브스를 풀지 못하고 병상에서
다른 블방친구들의 산행기를 보고 있을 power님의 빠른 쾌유를 기원해본다.
운대봉을 보려거나 강천산계곡으로 내려가려면 좌측으로 난 길로 올라서고 그렇지 않고 계속 직진하면 동문으로 간다.
운대봉앞 갈림길에서..
동문방향으로 300여미터 더 가면 강천산 계곡으로 갈 수 있는 갈림길이 나오고...
그곳에서도 300여미터를 더 올라가면 동문이 나온다.
(13:51)동문은 축단 상부에 주초석이 일부 드러나 있어
문루가 정명3칸에 측면1칸이었음을 알수 있다고 한다.
협축의 성벽을 따라 형성된 옹성이 있고 그 끝부분에
높게 쌓은 망대가 있다.
가로 6.25m, 세로 2.5m의 긴 네모꼴이며 높이는 2.7~3.8m로
외곽의 성벽에 비해 높다고 한다.
1999년에 옹성과 성벽을 보수하였다.
옹성(甕城) : 성의 문을 보호하고 성의 방비를 튼튼하게
망대(望臺) :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세운 높은 대로
금성산성에서는 동문의 망대가 유일하다고 한다.
동문에서는 시루봉을 거치지 않고 산허리를 휘감고 돌아 내성동문으로 바로 가는 길이 있다.
시루봉을 넘어서 가기에는 상당히 위험한 로프구간이 있으므로 눈이 내렸다면 가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나의 친구들도 시루봉으로 올라가는 저 계단위까지 올라갔다가 눈쌓인 암벽길을 보고 망설이다 뒤돌아 내려가서
산허리로 난 길을 따라 내성동문을 통과하여 동자암으로 내려가 버렸고 홀로 남은 난 시루봉으로 난 위험한 암벽길을
네발로 기어서 올라가야 했다. 여기서 잘못하면 천인단애의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만다.
눈길이 아니어도 정신을 바짝차리고 최대한 낮은 자세로 네발로 기어서 발끝이 닿은 부분의 안전을 확인하면서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초행자이거나 여성분, 노약자, 어린이들은 눈길이라면 더더욱 가지 말아야 한다.
다행히 이 암벽을 타고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시루봉 정상에서 반대편으로 하산하는 길 역시 만만치 않은 로프구간이다.
시루봉으로 오르는 계단과 뒤돌아서 편안한 숲길로 가는 친구들...(최대한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시루봉(515m)정상이다.
시루봉에서 보니 갈 길과 온 길이 아주 뚜렷하게 보인다.
내성동문으로 내려서는 길도 앙상한 가지사이로 흰 눈길이
선명하게 보이고 내성도 아주 뚜렷하게 보인다.
멀리 내성안에 우뚝솟은 장대봉도 조망되고...
멀리 담양호와 추월산도 보인다.
뒤돌아 보면
운대봉의 낙락장송까지 확연하게 보인다.
시루봉에서 본 걸어온 산성능선길...
시루봉을 넘어 내성으로 내려가야할 길...
시루봉너머로는 산성이나 길의 흔적은 없고...
아마 산 자체가 훌륭하게 쌓인 자연의 산성이지 않겠나 싶을 정도의 낭떠러지다.
내려서는 암벽길에서 발을 헛디디면 바로 저 아래로 추락하고 만다.
최대로 긴장하고 최고로 조심하면서 가야할 시루봉으로 넘어가는 길....(절대로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다.)
이렇게 로프가 설치되어있고 빨간 리본도 매달려 있어 길을 잃지는 않을 듯하고....
위를 올려다보면 또 올라갈만 하고...(난 재미있었지만 다른 분들은 재미없을 수도 있다. 내려서는 좌측으로는 천길 낭떠러지다.)
시루봉을 넘어 또 다른 봉우리를 오른다음 뒤 돌아보면 아찔한 시루봉의 모습이 다가온다.
또 내려서는 길엔 유격훈련장 같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최근 완주 장군봉에서 이보다 더 위험한 로프코스를 탔기에 면역이 되었나...끼야호~~라는 괴성까지 부르면서 내려온다...
아마 이 길로 들어서지 않은 두 친구들은 모를 것이다...얼마나 스릴있고 잼나고 유쾌, 상쾌 ,통쾌한지를...ㅎㅎ
점심때 처음으로 물을 마신뒤...이 봉우리에서 건너가야할 봉우리와 넘어온 시루봉을 보면서
모처럼 긴장의 끈을 내려 놓는다. 아직도 뜨거운 보온물통속의 블랙커피를 한 잔 마시고...
깊은 심호흡으로 마음속에 가득 담긴 뜨거운 정열을 내 뿜는다.
정열없이 글을 쓰는 블러거는 없다. 뜨거운 정열을 가진 진짜 블러거는 병상에서도 글을 쓴다고 한다.
이 뜨거운 정열을 토해내 금성산성 시루봉에서 열을 좀 식히지 않으면 정말이지 호남정맥길을 타 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놈의 정열을 좀 식혀야 했다...아직 가야할 길이 많기에 ...
두번째 봉우리로 내려 오늘은 아직까지 아무도 가지 않는 눈길을 헤쳐 내성의 끝으로 올라선다.
내성의 끝엔 시루봉가는길이 위험하다는 표지판만 댕그렇게 서있다.
눈 길이 아니고 초봄이나 여름, 가을엔 이 길로 가는 산님들은 쾌 될 듯하다.
겨울 눈길엔 다소 위험하지만 금성산성 산행길에서 유일하게 스릴넘치는 이 구간의 길은 색다른 멋으로 다가온다.
내성동문역시 북문처럼 안에서 보면 얕으막하다.
내성동문에서 남문인 충용문까지는 500여 미터로 내성동문을 지나
동자암쪽으로 난 오솔길을 내려서면 우측의 사진처럼 장대봉을 한 바퀴 빙돌아온 내성의 줄기를 다시 만난다.
그곳엔 또다른 문루가 있었을 내성서문이 나오고.
바로 옆엔 언제인지 모르지만 무너져 내린 성의 흔적도 있다.
금성산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이루어진 산성으로 내성의 길이는 859m이고 넓이는 16,478평에 이른다.
조선시대 후기에 편찬된 호남읍지와 호남진지라는 책자에는 내성에 여러채의 건물이 있었다 하며
책임자의 집무실인 동헌, 관사인 내아, 무기를 보관한 화약고와 연환고, 군사들이 사용한 장교청과 승대장청.
그리고 세개의 문(三門)과 젖갈 등을 보관한 장사(醬舍) 등이 있어다 하나 1894년 동학농민운동때 대장청등 일부가 불타고
1906년에는 일본군에 의해 남아있던 다른 건물들이 모두 불태워졌다 한다.
그리고 내성이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 발각되지 않고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암문(暗門)도 있다 한다.
곧이어 대한불교 화엄종의 말사인 동자암이 나오고..
안락수선당(安樂修禪堂)이라 쓰여 있는 건물앞 나무의자에는 먼저 간 친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자암(호국승군 무예전수관)에는 청산스님과 보리스님이 다물정신을 받들고 호국승군무예를 전승하고자
황룡, 청룡, 구봉스님 등 동자승들에게 낮에는 무예를 가르키고 밤에는 학문을 가르키는 문무도량을 만들어 나가고 있으며
금성산성 지킴이로써의 본분과 호국승군무예의 전승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청산스님과 보리스님은 부부간이며 큰아들이 황룡스님, 작은아들이 청룡스님, 막내딸이 구봉스님이며
두 아들 스님은 오전에는 인터넷으로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무예공부를 한다하며 최근에 동자암을 사랑하는 동사모와 신도회에서
최소한의 전기생산을 위한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해 주었다고 한다.
무예시범때 쓰일 음악과 통신용 베터리의 충전을 위한 아주 최소한(400w급)의 전기 생산용 태양광 발전시설의 도움도
자연환경을 해치는것에 미안한 심정을 토로했다하니 진정한 금성산성 지킴이로 거듭 나시길 기원해 본다.
동자암건너 약수터까지는 50여미터..
물은 한 겨울 영하권의 날씨이나 이상하리만치 차갑지가 않다.
보통 이 정도 높이의 약수는 차갑기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더군다나 영하의 날씨임에도 약수는
약간 미지근한 느낌이 들 정도로 마시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충용문에서 동자암까지는 약 50여미터..
별장(別將)을 지낸 가선대부(嘉善大夫) 국문영(鞠文榮)의 비와 묘소를 지나면
금성산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탑이 있고,.
(14:35)걸어온 산성길의 안내도도 있다.
금성산성 주차장에서 오전 10시10분에 출발하여 보국문에 10시40분에 도착하였고,
충용문을 10시55분에 출발하여 금성산성을 한 바퀴 빙돌아 다시 충용문까지 6.3km를 3시간 40분 걸렸서 왔다.
안내도에는 5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오나 그것은 보통걸음으로 산책길로 나섰을 때의 시간인 듯하고 보통체력이상의 성인이면
모든 봉우리를 다 올라보고 점심식사도 맛있고 넉넉하게 먹으면서 4시간 이내면 금성산성을 한 바퀴 돌 수 있겠다.
(14:35)충용문의 우측길을 보면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성곽은 안보이고 무성한 잡초만이 그 길을 덮고 있다.
가운데 성을 세웠을 기초의 흔적은 보이나 성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 것은 성이 여기서 크게 ㄷ자로 휘어지고
무성한 잡풀에 가려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오후들어 따듯한 햇볕이 금성산성을 온통 포근하게 감싸 양지쪽의 눈은 다 녹았다.
이제 보국문을 거쳐 하산하면서 연동사를 거쳐가는 것만 남았다.
내려서는 길에 오후도 늦은 시간이 다 되어가지만 지금에서야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 금성산성이 얼마만큼
우리와 가까이 있는지를 알 수있게 한다.
(14:55)보국문을 나선지 10여분만에 연동사로 내려서는 길을 만나고
이곳에서 연동사로 내려가는 150미터의 가파른 산길을 미끄러지듯이 내려간다.
눈도 안 쌓인 보국사에서 이곳까지 귀찮다는 이유로 아직 아이젠을 벗지 않은 우리는 별 탈없이 내려갔지만
일찌감치 아이젠을 벗고 룰루랄라 이곳까지 내려온 친구는 150미터쯤이야 내려서다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그 무거운 몸이 브레이크가 안 걸린다고 한다..ㅎㅎ 그 덕분에 아이젠을 늦게 벗은 나는 지금까지 발목이 아프다.
(15:00)비탈길을 5분정도 미끄러져 내려오면 노천법당과 동굴법당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오고
요사채도 들러보고 싶지만 다시 올라올 일이 까마득하여 훗날을 기약하기로 하며 노천법당으로 올라선다.
비탈길을 내려서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삼층석탑이 나오고 강화도 보문사의 눈썹바위를 닮은 바위가 나온다.
이곳에 있는 연동사지삼층석탑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00호로 사찰내 여러곳에 흩어져 있던 부재를 모아 1996년에 복원하였다 한다.
연동사지 지장보살상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88호로 세종실록지리지에 고려문종때 사람인 담양출신 이영간이
어렸을때 연동사에서 공부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연동사는 이미11세기경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지금 지장보살상과 삼층석탑이 있던 곳이 연동사지로 지금은 노천법당과 동굴법당으로 새로이 불사가 되어있다.
이와 비슷한 바위는 강화도에 있는 보문사의 눈썹바위가 있다.
그 눈썹바위밑에 있는 거대한 암벽에 마애불을 조각해 놓은 스님들의 불사에 대한 위대한 업적을 보고 놀란적이 있지만
이곳 역시 보문사와 비슷한 모양의 눈썹바위가 있고 그 밑에는 마애불과 비슷한 지장보살 노천법당이 있으며
보문사의 석굴법당과 비슷한 동굴법당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문사의 눈썹바위 마애불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좌측의 노천법당을 지나 동굴법당쪽으로 난 길을 오르면 우측사진처럼 동굴속에 있는 법당이 나온다.
아마 연동사에서는 백제때 부터 금성산성을 축성하다가 희생된 수 많은 병사들을 비롯하여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희생되어
연동사가 있는 계곡의 이름이 이천골로 불리워지듯이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된 2,000여명의 극락왕생을 빌었을 것이고
금성산성이 왜군에 의하여 폐성 되면서 연동사도 폐찰되지 않았을까라는 견해가 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범우고(梵宇攷), 동국여지지(東國輿 地志)등의 문헌에 의하면 연동사는 17세기 이후에 폐찰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현세에 이르러서는 1894년 12월2일부터 20일까지 금성산성에서 치러진 동학농민의병과 관군과의 전투에서 수장인 녹두장군 전봉준을
잃고 일방적으로 유린되어버린 동학농민의병들의 넋도 폐허가된 연동사지에서 어느 이름없는 스님이 극락왕생을 기도했을 것이다.
절이 폐찰되면서 다른 건물들은 모두 불타 없어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조로 된 지장보살상과 삼층석탑은
현재까지도 남아있다고 하니 천년고찰의 연동사의 명맥은 유지되고 있다 하는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절이름도 연동사라고 부르고있고 수백년동안 황폐화되고 폐허가 되어 지장보살상과 다 쓰러져 사방에 부재로 나뒹군
삼층석탑이 전부였던 연동사지를 1997년경부터 현재의 주지인 원행스님이 터를 닦고 동굴법당과 노천법당 요사채를 세워
오늘에 이르렀다 한다.
이천골(二千骨) : 정유재란시 2천여명의 아군과농민 및 왜구의 시체가 쌓인 곳
동굴법당을 지나 좌측 산 위로 난 길로 올라 능선이 나오면 우측 간이 화장실이 있는 쪽으로 가면
동학농민혁명군 전적비가 있는 간이 매점으로 나갈수 있으며 좌측 능선길로 접어들어 조금 내려가면
좌측으로 좁다란 임도가 나오고 그 길을 따라가면 처음 출발할때의 넓다란 분지가 있는 큰 임도로 나온다.
(15:30)차단목이 내려서 있는 금성산성 들머리이자 날머리로 나와 주차장으로 가면서 바라본 금성산성 장대봉과 시루봉의 모습이다.
오전 10시10분에 이곳을 출발하여 금성산성을 한 바퀴 돌아오는 약 10.4km에 연동사로 돌아온 0.6km의 길을 포함하여 약 11km의 길을
5시간20분 걸려왔다.
조선시대때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왜구에 맞선 이 지방 의병들의 본거지로,
갑오년 동학농민혁명때는 전봉준 녹두장군을 위시로 농민혁명군의 처절한 전투의 현장으로,
한국전쟁때는 회문산과 가마골을 근거지로한 빨치산들의 주된 활동무대였던 강천산과 금성산성으로의
5시간에 걸친 아주 짧은 역사나들이는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영화와 아픔을 보듬은 유구한 역사의 현장이
오래되어 빛바랜 필름처럼 압축되어 눈 앞에 찰라의 순간처럼 빠르게도 지나가 버렸다.
과거 이 나라를 지키기위해 쓰러져간 수 많은 넋들과 새로운 시대를 열기위해 쓰러져간 수 많은 민중들의 넋.
그리고 좌우로 편을 갈라 서로간에 죽이고자 시퍼렇게 눈을 치켜떴던 동족상잔의 아픈상처를 어떻게 어디서부터 위로해야 할까.
오늘 그 역사의 현장을 잠시나마 걸으면서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되새겨보고 그들의 발자취를 애써 찾아 걸어 보았다.
어쩌면 전봉준 녹두장군의 격문읽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릴 것 같은 내성위의 시루봉에서 녹두장군의 흔적도 찾아보고
또 뜨거워진 나의 정열도 잠시 식혀보았다.
눈 내린 겨울 금성산성의 역사길을 걸으면서 내 뒤를 밟아 이곳을 찾아올 수 많은 사람들의 여정을 미리 밝혀두어 오시는 걸음들이
아주 편하게 왔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안고 글을 맺는다.
(금성산성 가는길)
담양읍에서 순창가는 24번국도로 가다 금성면소재지를 지나 추월산, 금성산성, 담양온천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하여
약1.8km를 들어가면 담양온천이 나온다. 온천 바로 못가서 우측으로 금성산성, 연동사 출입표지판이 나온다.
simpro의 프로야구 이야기
simpro의 길(路) 이야기
트위터 ☞ http://twitter.com/huha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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