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아픔이 스민 영동 민주지산으로 가는 길 2편.

2012. 7. 5. 01:30한국의 산 견문록/한국의 산

 

 

(13:23)

12시43분에 민주지산 정상에 도착하여 40여분간의 점심시간과 정상에서의

인증샷등을 남기고 다음 경유지인

석기봉으로 향한다.

 

물한계곡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민주지산 정상까지는 4.6km로

보통체력의 성인 체력으로 2시간20분

걸렸다.(시간당 1.97km)

 

민주지산에서 석기봉- 삼도봉-삼마골재

거쳐 다시 물한계곡 주차장까지는 9.6

km로 오전에 올라온 거리의 2배 정도나

먼 거리이다.

 

하산완료시간은 오후4시인데...

갈 수 있을지...

 

 

                                                                   

                                                        추천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가야할 석기봉과 삼도봉을 보고...

 

 

가엾은 젊은 병사들의 영혼이 깃든 민주지산을 떠나며...

1998년 당시 민주지산에서의 특전사 동사사고에 대해 당시 네이버에 떠돌던 전설이 있다.

오래전에 자료로 모아놓은 당시 민주지산 사건의 전설을 이야기 해 보기로 한다.

 

 

(傳說)

5공수여단..현재는 통폐합 되어 사라진 부대이지만 과거 6명의 현역 군인이 천리행군중 산에서 얼어죽은 사고가 있었다.

 

현재 육군에서도 정훈시간에 보여주는 '아!만주지산'이라는 영상자료도 있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다.

 

 

5공수여단 부대 내에 출처가 불분명한 오래된 시커먼 관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이 오래된 관이 보기 않 좋다고 해서 부대 내 행정관이 해머로 박살을 내서 불태웠다고 한다.

 

그 후 부대 내에서 이상한 일이 생겼는데 하얀 도복을 입은 백발의 노인이 6개의 관을 굵은 쇠사슬로 묶어서 질질 끌고다니는게

목격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부대원들이 헛것을 본것으로 알고 무시했는데 하루하루 지나면서 목격자가 늘어났다.

 

그래서 부대 간부들이 안 되겠다 싶어서 이 노인을 찾아야 겠다고 레토나 끌고 목격된 곳을 따라서 추적했다.

 

그런데 이상한게 초소에서 목격되었다고 무전이 와 그 장소를 찾으면 안보이고 다른장소에서 목격했다는 무전이와 가보면 안보이고..

 

그 무거운 관 6개를 노인네가 질질 끌고 다니는것도 말이 안되거니와 질질끄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막상 찾으려면 안보이고....

 

 

 

 

 

그렇게 지루한 술래잡기가 계속되어도 찾지 못하자 간부들은 관을 부순것이 원인이다 싶어서 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렇게 제를 지낸 이후에 다행이도 이상한 일들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때까지 노인을 목격한 인원은 부대원의 절반가량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춘 4월에 천리행군이 시작되었다.

행군한지 며칠이 지나 영동지역인 만주지산에 올라갔는데 비가 내렸다.

 

처음에는 무더운 더위를 날려준다고 해서 좋아했는데 비는 점점 굵어지고 결국 감당하기 힘들정도로 퍼붓고...

 

 

간부들은 날씨상태도 다 확인하였지만 일기예보에는 비가 올거라는 예보는 없었다.

다행이 비는 그치고 무리없이 행군이 되나 싶었는데 온도가 점점 내려가고 이내 눈이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춘 4월에....

 

물론 일기예보에도 비나 눈에대한 언급은 전혀 없어 마을사람들조차 이 광경을 신기해했다고 한다.

 

 

 

 

 

그렇게 눈은 점점 강풍을 동반한 폭설로 변하고 한파와 폭설로 일부는 산정상을 넘지못하고 밑에 갇히고

일부는 산을 내려오는 그런 형국이 되었다.

 

 

 

물론 산을 내려오는 병력들도 추위에 정신을 못차리게 되자 최후의 수단으로 모든짐을 버리고 총만 든채 목숨걸고 산밑을 내려왔다.

 

산 밑에서는 미리 연락을 받은 주민들이 뜨거운 물과 담요등을 준비해서 동상에 대비하고 있었고 구급차도 준비되어 있었다.

 

산에 고립되었던 병력들은 자신들의 짐에서 태울수 있는것을 모두 태우며 그렇게 버티고 있었다.

 

 

날이 지나고 산에 고립되었던 병력들을 구출하였는데 산에 눈이 온 후부터 하루가 지나기까지 죽은 병력이 6명이라 한다.

 

결국 당시 불태워 버렸던 관을 노인이 6개나 되는 관을 끌고다는 건 6명이 죽을거라는 암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하 생략)

 

누군가 지어낸 전설이겠지만 엄동설한도 아니고 춘사월 1일 진달래꽃 만발한 민주지산에 때 아닌 한파가 강풍을 동반한

폭설과 함께 몰아닥치고 무전기 마저 얼어버린 상황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고도의 훈련을 받은 특전사 부대원이 생존훈련연습을 수도 없이 했음에도 6명이나 되는 고귀한 생명을 잃은 것은

다름아닌 부실한 전투장비로 인한 예견된 사고였다는 것이 더욱더 황당하다.

 

당시 동계기간이 지나 내복도 입지 않았고 숙영계획도 없어 행군에 불필요한 판쵸우의와 숙영장비 등을 다음 집결지로 후송시켜

버렸고 전투복 또한 요즘처럼 땀을 쉽게 배출시키는 고어텍스 소재가 아닌 면소재라 비에 젖은 옷과 몸이 한파에 그대로 노출되어

버려 대처할 수 없는 사고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 추웠던 지리산의 겨울에서 변변한 옷가지와 신발도 없이 몇 개월을 버틴 빨치산의 경우에서 보듯이 살고자 한다면

그리고 작전상 후퇴라는 명분으로 총 한자루만 달랑 메고 필사의 탈출을 시도했다면 젊고 고귀한 병사의 생명은 지킬 수 있었을

것으로 보여 애석하고 안타깝고 슬픔으로 눈씨울이 붉어진다.

 

 

내북마을과 불대마을에서 올라오는 2.6km내외의 짧은 등산로가 있음을 확인하고..

 

(13:27)민주지산에서 100여 미터 진행하면 쪽새골로 해서

물한계곡 황룡사로 내려가는 또 다른 지름길이 있음도 확인하고..

 

지도상에선 속새골로 나오는 이 지름길은 잣나무숲으로 돌아오는

4.6km의 길과 거리가 비슷하다.

황룡사까지 3.8km에 황룡사에서 주차장까지 600m를 더하면 4.4km.

그리고 민주지산에서 여기까지 120m이니 체감상 짧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거리이다.

 

몇 번의 밧줄타기 구간을 지나...

 

 

(14:25)문득 조망이 터진 곳에서 뒤돌아 보니 우리가 걸어온 길이 한 눈에 보인다.

우측 물한계곡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왼쪽 첫 봉우리 민주지산으로 올라왔다.

이곳은 속리산을 거쳐 삼도봉을 지나 민주지산으로 들어온 이현상의 승리부대가 삼도봉과 민주지산

덕유산을 오가며 군 .경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이태의 남부군에 보면 1950년 9월15일 멕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낙동강전선까지 밀고 내려왔던 인민군은

보급로가 끊겨 후퇴를 결심하고 이현상의 빨치산도 같이 후퇴를 하다 강원도 후평에서 가자 지리산으로!을 외치며

남으로 회군하여 3도의 경계지인 민주지산으로 모이면서 본격적인 남부군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1951년 각지에서 모인 남부군 3개 부대가 3도의 경계지인 민주지산에 일주일 정도 머무르며 부대편제를 개편하여

이현상의 승리사단은 덕유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가고 연합부대는 가야산으로 전진했다.

 

 

                마지막 밧줄을 힘겹게 잡아 당기니...

 

 

(14:34)암봉으로 둘러쌓인 석기봉 정상이다.

민주지산을 13시24분에 출발하여 석기봉에 14시34분에 도착하여 2.9km를 걷는데 1시간 10분이 걸려,

시간당 2.5km정도로 평균 이하 속도로 능선길을 걸어왔다.

친구들은 이미 석기봉 찍고 삼도봉으로 사라진 뒤...얼마나 쫓아가야 따라 붙을 수 있을까...ㅋ

 

석기봉은 육산인 민주지산 봉우리 주 유일하게 정상이 암반으로 되어 있어 석기봉이라 불리우며

석기봉 바로 50미터 아래엔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다고 하나 살펴보진 못해 훗날의 과제로 남겨 두었다.

석기봉 너머 오른편 산은 덕유산 향적봉..

 

 

가야할 삼도봉을 바라보고..

삼도봉 좌측으로는 백두대간 길이며 삼도봉 정상 너머 아련하게 보이는 마루금은 수도지맥에서 갈려나온 금오지맥.

 

 

참고 : 삼도봉 주변 백두대간길과 수도지맥, 금오지맥 위치도 (원안의 산은 다녀간 산)

 

 

 

   (14:40)석기봉을 내려서니 삼도봉까지 1.4km남았다.

사방이 이렇게 암반으로 둘러싸인 석기봉엔 삼두마애불이 조각되어

있다고 하는데 내려오는 길에 보지 못해 어디에 숨어 있는지

훗날 잘 찾아봐야 하겠다.(사진출처:산림청)

 

 

(14:43)석기봉 바로 아래엔 이렇게 정자가 있어 쉼터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정자도 아마 특전사 사고 이후 만들어 지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아무런 조망도 없는 곳에

정자를 만들어 놓을리가 있나..폭설로 더 이상 전진을 못하여 고립되었을 때 잠시 피신할 수 있는 대피소 역할이다.

 

 

 

 

(14:49)이곳에도 물한계곡으로 내려서는 분기점이 있다.

석기봉에서 0.4km지점..삼도봉 1km 못 가서인데 누군가

숫자를 지워놓았다.

이래도 되는 거니?

누군가의 장난에 누군가는 곤욕을 치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이정표이기에 함부로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뒷면은 지워 놓지 않아 훗날 다시 가면 지워지지 않는

매직을 가져가 다시 써 놓을 참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민주지산을 찾는 분이 계시다면

꼭 매직을 가져가 뒷쪽에 있는 숫자를 앞에다 적어주시면

정말 고맙겠다.

 

 

(15:15)헬기장에 도착 바로 앞이 삼도봉이다.

바람과 같이 날라간 친구 둘이 체력이 다한 날 기다리고 있는 곳..

요즘 산에 통 가지를 못하고 회사일로 바쁜데다 블로그 활동까지 하다보니 수면이 많이 부족하여

민주지산을 오르는는 중반 이후 체력이 고갈되어 오늘 산을 타는 내내 힘들고 괴로웠다.

 

더군다나 대포라 불리우는 오두막2를 짊어진 가방을 앞에 매다 보니 더더욱 힘들다.

오늘은 어제 내린 비로 인해 대기중의 습도가 상당히 높고 바람도 불어오지 않아

땀이 줄줄 흐르고 가끔 잠도 오고 허벅지가 앞으로 안 나가며 다리쉼 하기를 수십차례...

아무래도 병원에 한 번 가봐야 할 듯 싶다.

 

 

 

(15:17)석기봉을 14시40분에 출발하여 1.4km오는데 37분이 걸렸다.

비교적 완만한 능선길임에도 34분에 도착하여 시간당 2.2km의 속도밖에

내지를 못해 저질 체력의 한계를 느껴본다.

 

삼도봉은 조선 태종 14년(1414)조선을 팔도로 나눌 때 충청.전라.경상의 삼도

분기점이 된 이후 부르게 된 이름으로 삼도(三道) 사람들이 정상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은 도(道)가 가장 잘 살게 된다는 이야기 때문에 산에만 오르면 돌을 쌓았는데 어느 날 돌무더기가 가장 작은 고을 사람들이 모두 허물어버렸다는 이야기

도 우스개 처럼 전해온다.

 

지금은 돌탑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높이 2.6m에 세 마리의 용이 둥근 원을 떠

받들고 있는 모양을 한 화합의 탑이 있으며, 이 탑은 민주지산이 걸쳐져 있는

3개 도의 화합을 위해 세워진 것으로 1989년 부터 매년 10월 10일 삼도봉 정상

에서 3개 시군(충북 영동, 경북 김천, 전북 무주)의 산악인과 주민들이 모여

만남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이곳은 6.25동란시 의용경찰대와 삼도봉과 흥덕리 각호산 등에서 빨치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가 서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15:27)그 역사적 의미가 깊은 삼도봉에서 인증샷을 담고 이제 삼마골재를 거쳐 물한계곡으로 내려선다.

 

 

 

 

 

(15:44)영동과 김천 부항면을 잇는 삼마골재다.

여기서 직진하면 백두대간을 따라 밀목령을 거쳐 황악산으로 곧장 연결되지만 길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 높은 곳에 설치된 운동기구들은 어깨를 짓누른 배낭무게로 인해 목뼈가 뻑적지근한 산님들의 피곤한 육체를 풀어주고

뭉친 다리 근육도 풀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부부사이인 산님이 이 곳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운동기구를 활용하여 스트레칭을 하며 온 몸의 피로를 풀어주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지리적이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삼도봉 아래

백두대간길로 접어 드는 곳에 이정표 하나 없을까?

갸야할 길은 오직 삼도봉과 석기봉, 그리고 황룡사로만 화살표가

표시되어 있어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데크로 습지를 보호하고 길은 황룡사로 뚜렷하게 나타나 있어 눈썰미가 없다면 이 길도 계속 백두대간 길인줄

착각할 수 있겠다.

 

 

(16:09)비교적 걷기에 편하고 가파른 길은 나무 계단으로 정비가 잘 되어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물한계곡까지 내려왔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차가운 물한계곡 물로 발바닥을 냉맛사지하며 피로를 풀고...

 

 

 

(16:16)음주암 폭포를 지나..

 

 

 

(16:37)제2목교도 지나고...

 

 

(16:42)쪽새골 갈림길에서 민주지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만나고..

 

 

앞서 내려간 친구들이 붙혀놓은 문흥백두산악회 리본에 이어 한 참 떨어진 곳에 붙혀놓은

유은3018 동창회 산악회 리본을 짤라 붙혀 놓고..

 

 

(16:44)제1목교를 지나고

오전 10시 48분 경에 저 목교 우측길로 올라 민주지산으로 올라갔으니 6시간 여 만에 한 바퀴를 빙 돌아 내려왔다.

 

 

(16:46)오전에 잠시 헷갈렸던 곳으로 빙돌아 와서..

 

 

                (16:58)물한계곡 앞 출렁다리까지 내려와..

 

 

(17:00)황룡사를 지나며 민주지산에서의 산행을 마친다.

삼도봉을 15시27분에 출발하여 황룡사에 17시에 도착하여 1시간 33분이 걸렸다.

삼도봉에서 황룡사까지는 4.4km로 시간당 2.8km속도로 하산하였다.

 

민주지산 원점회귀 산행거리와 시간을 종합해 보면

물한계곡 주차장------ 황룡사------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삼마골재------황룡사------주차장 

                          10분          2시간10분        1시간10분         37분           17분              1시간16분        10분

으로 중간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순수한 이동시간은 5시간 50분이 걸렸다.

오전10시23분에 출발하여 오후 5시10분에 주차장에 도착, 총 이동거리 14km에 총 산행시간은 6시간 47분이 걸렸다.

 

후미조와 함께 여기 저기 카메라로 들여다 보며 걸린 시간이니 아마 보통체력의 성인이면 넉넉히 6시간이면 원점회귀할

수 있을 것이다.

훗날 눈 내리는 겨울 다시 민주지산을 찾아 이번엔 도마령부터 각호산으로 올라 민주지산을 거쳐 석기봉 삼두마애불을

확인하고 삼도봉 거쳐 물한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다시 한 번 타볼 것을 다짐하며 현대사의 아픔이 스민 영동 민주지산

으로 가는 길을 마친다.

 

(글 : 포토뉴스 코리아, 굿뉴스피플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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