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춤 60년, 호남 승무 박은하/광주 명인

2013. 11. 12. 06:30광주 견문록/광주 견문록

 

 

전통무용가 박은하 춤인생 60년

 

여성인 줄 알았다.

단아하고 가녀린 몸매에 여성스러운 어투와 나비같이 날아다니는 손짓과 발짓이 영락없는 여성이었다. 그러나 이야기의 문을 열고 보니 광주고등학교를 나온 수재에 남성이었다. 탐험대원은 모두 놀랐다. 올해 일흔아홉의 전통무용가 박은하 선생의 이야기다.

 

선생이 지금 후학을 기르고자 문을 연 박은하 전통무용학원은 계림동 호남직업전문학교 옆 블럭 정산한약방 4층에 있다.

건물이 온통 한약방으로 쓰이다 보니 출입문이 별도로 있음에도 1층에 있는 정산한약방을 통해 4층까지 계단을 올라야 한다.

여든이 다된 노구에 이 계단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릴 것을 생각하니 무척 힘드실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기우였다.

탐험대 일행을 문밖까지 배웅하며 탐험대원이 놓고 온 카메라 가방을 손수 1층까지 내려와 건네주는 손마디에는 힘이 넘쳤다. 

 

 

어렸을 때부터 춤이 좋아 농악대 꽁무니를 따라 신명 나게 어깨춤을 추며 따라다녀 동네 친구들에게 계집아이라는 놀림도 받을법했을 것이다.  하지만 놀 때 놀더라도 공부는 잘했다. 광주고등학교라면 당시 광주제일고등학교와 같이 호남 최고의 수재들이 다니던 학교로 전 민주당 의원 박상천과는 광고 6회 동기 동창이다.

 

어렸을 적 끼를 살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무용을 했다. 남학교에서 무용한다고 하니 친구들이 놀렸지만, 각종 무용대회에 나가는 등 무용하는 사람이 혼자밖에 없었음에도 유명하다는 것에 즐거웠다. 당시 광주국악원에 있던 이매방 선생과 어떻게 인연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승무와 살풀이를 배우게 되었다.

 

집안 몰래 사범대학교에 간다고 해놓고 서울 서라벌예대 무용과에 다녔다.

대학 간판을 따려고 무용과에 갔지만 하고 싶어 가기도 했다.

서라벌 예대에서 무용선생으로 있던 은방초 선생에게 사사를 하였으나 배움이 부족해 졸업 후 다시 이매방 선생의 집으로 들어가 밥하고 빨래하며 이매방 선생에게 본격적으로 무용을 배웠다.

그렇게 박은하 춤 인생은 시작되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 박은하 선생의 본명은 박형봉이며 승무, 살풀이, 검무, 입춤, 화랑무, 보렴승무 등 전통 민속춤에

능하며 1989년 전주대사습 전통무용부문에서 승무로 장원을 차지했다.

1989년, 1990년 진주개천예술제 우수상과 제17회 신라문화제에서 금상을 탔지만 그 이후로는 어떤 대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아마도 전주대사습 장원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게다.

 

 

승무는 크게 이매방의 호남 승무와 한명숙의 경기 승무로 나뉘는데 호남 승무는 승무에 이어 클라이막스가 북 가락이고,

경기 승무는 북 가락이 거의 없이 춤 위주로 간다.

 

승무 춤에 입는 장삼은 소매 길이만도 2m 30cm로 두 팔을 들고 서 있어도 땅에 끌릴 정도로 독창적인 장삼이다.

선생은 지금까지도 생활 옷은 물론이요 무대의상과 제자들의 무대복까지도 자신의 생각대로 손수 옷을 만들었으며,

무용의 생명과도 같은 춤 선을 위해 스스로 옷을 재단하고 바느질 한다고 하니 머리뿐만 아니라 손재주도 탁월한 분이다.

스승인 이매방 선생도 스스로 바느질을 했다고 하니, 그 스승에 그 제자인 셈이다

 

 

전통무용은 멋과 맛이 있어 춤을 출 때가 제일 행복하다.

호흡과 표정, 동작이 전통을 토대로 배웠기에 현대 젊은 세대들의 춤하고는 격이 다르다.

살풀이는 몸에서 나는 자연동작으로 한을 풀어내는 춤동작이고, 승무는 정중동의 정지 무용으로 힘이 많이 든다.

한국전통무용의 기본은 승무와 살풀이다.

그 중 승무춤에서 추는 북 춤은 오북, 삼북 등이 있는데 단 하나의 북으로 치는 것이 정통이고

나머지 삼북과 오북은 춤 추는 사람의 창작물이다.

 

 

 

"댄스음악을 추는 사람은 우리 것을 먼저 안 다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좋다."

"우리 춤은 잔 발로 갈 때도, 뒤로 갈 때도 뒤꿈치를 먼저 써야 해. 발꿈치를 드는 춤은 서양 춤이야."

직접 움직이며 손동작, 발동작으로 한 수 가르치심에 얼쑤~~어깨춤이 절로 난다.

 

 

 

예전에는 다니는 사찰에서 승무를 가르치기도 하고 공연도 했다.

공연은 실내체육관, 남도예술회관 등에서 많이 했지만, 갈수록 힘이 들어 승무를 추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전통무용의 인기가 낮아 젊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배우자고 하는 사람이 없어,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가르치고 싶지만

지금 학원에 수강생이 없다.

 

또한, 지금은 마음은 젊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학교에서 승무나 살풀이 등을 배우고자 한다면 방문해서 가르치고 싶지만, 학교 선생부터 배우고자 하지를 않으니···

물질적인 것보다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답답한 것이다.

 

 

제자와 스승에 대해 물어봤다.

공부한 제자들은 많이 있다.

설장구의 김용철, 살풀이의 김혜진 등 제자가 있으나, 사회적으로 승무를 배우는 사람이 없어 전통무용이 단절될까 우려된다.

한명숙 씨가 작고하면서 경기 승무가 어려워지고 있듯이 이매방 씨가 작고하면 호남 승무의 계승이 단절될까 두렵다,

 

이매방 씨의 직계제자인 내가 죽으면 이매방의 제자이자 박은하의 제자 김덕숙 씨가 이매방 씨의 춤을 이어갈 것이다고 말하는 박은하 선생의 눈가엔 잠깐의 이슬이 맺혔다.

 

이매방 씨는 남성적인 춤이고, 박은하의 춤은 여성적인 춤이다.

아직도 이매방씨 춤을 추려고 했지만 범접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이매방류의 오리지널 제자는 자신과 김진홍, 박은하, 김덕숙님이라고 한다.

 

 

끝으로 부인과 자녀에 대해 물어봤다.

자녀는 아들1, 딸2이지만 전통무용을 배우고자 하는 자녀는 없었다. 부인도 무용하는 사람이었지만 부인이 반대한다.

하지만 손자, 손녀가 한다면 반대하지는 않겠지만 재능을 보이는 손자는 아직 없다.

예술에 미치면 가정이 등한시된다. 그러므로 예술가는 항상 가난하다. 아마도 그것이 원인인 듯 싶다.

 

한국전통무용의 대표는 승무(중요무형문화재 27호)와 살풀이(중요무형문화재 29호)로 현재 박은하 선생은 살풀이로 무형문화재

등록을 기다리고 있다.

‘박은하는 곧 승무다’는 말이 제일 듣기 좋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 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탐험대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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