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살창호 40년 임종철/광주 명인

2013. 11. 11. 06:30광주 견문록/광주 견문록

 

 

꽃살창호 전승 기능자 임종철

 

전남대학교 문화재학과 박사수료

전문계고교 전문교과 산업체 강사

전승 공예대전입선(제23회)

전국기능경기대회 43, 44회 창호 심사위원

한국문화재 기능인 작품전 우수상 수상(제9회)

대한민국 전통기능전승자 작품전 2013.6.12~6.18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

대한민국 장인작품 박람회 2008.9.9~11, 2008 코엑스 인도양홀

전남대 석사논문 韓國寺刹 窓戶紋樣 要素에 관한 意味論的 考察

 

 

부안 내소사 꽃살 창호에 미쳐 뒤늦게 시작한 공부로 꽃살 창호 기능전수자가 된 사람이 있다.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 전라남도 공무원 연수원 정문 앞 54번 시내버스 종점 비탈길 아래 아파트 빌딩 숲 속

이단아 같은 허름한 작업공간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임종철 선생의 연구실이자 일터이다.

 

 

 각종 나무들이 어지럼 속에도 질서정연하게 서 있고...

 

 

 

 주인공의 손때가 잔뜩 묻어있는 각종 도구들이 잘 정돈되어 제 자리에 착착 꽂혀있다.

 

 

 각종 전동기구들도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대건목공의 역사만큼 오래된 카셋트 라디오에 쌓인 먼지.

그래도 작업실의 유일한 문화시설로 꽃살창호를 만들때면 반야심경이라도 흘러나올것 같다.

 

 

“문은 단순히 들고 나는 출입구를 떠나 이제는 문에 여러 문양을 새겨 넣음으로써 다양한 의미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보통 사찰의 꽃살 창호는 천상세계의 꽃을 표현한다고 합니다. 옛 장인들은 그렇게 꽃살 창호를 제작해 부처님께 공양을 드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불교 세계에서의 문은 극락세계의 통로이자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차단막이기도 합니다. 이런 존귀한 문에 꽃을 새겨 넣는 일은 그야말로 숭고한 작업으로 꽃잎 하나하나, 잎맥 하나하나 나무에 숨결을 새기듯 심혈을 기울이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임종철은 고등학교 1학년 때 16세 어린 나이에 친구 소개로 목공 일을 처음 배웠다.

당시 먹고 살길은 이것밖에 없다고 어린 나이에도 신통방통한 생각을 했다고 하니 오늘의 임종철이 달리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2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입상했던 김석봉 선생에게서 5~6년 정도 사사 받으면서 문살 짜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 밤샘작업으로

기술을 배웠으며 그 덕분에 1977년 ‘대건 목공’을 설립하였다.

한옥을 짓는 도편수 친구를 따라다니다가 절이나 궁궐에 새겨진 꽃 문을 보게 되었으며 친구의 소개로 정릉에 있는 경국사 극락보전의

문살을 제작하게 되었는데, 처음 하는 일이지만 혼자서 하고 싶어 도안을 짜고 제작하였지만 결국 퇴짜를 맞자 꽃살 문양의 창호제작이

혼자서 하기에는 쉽지 않은 분야임을 깨닫고, 도편수인 친구, 그림을 그리는 친구, 그리고 임종철 이렇게 셋이 한 팀이 되어 내소사,

불갑사 등을 돌아다니며 꽃살 창호를 연구한 뒤에서야 도안을 그리고 무늬를 새기고, 문짝을 짜 맞추어 비로소 하나의 꽃살 창호를 완성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꽃살창호는 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생소했던 분야로 모든 것을 스스로 찾아보고 연구해야 했던 것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랐었다.

 

 

 

나이 서른이 되던 해에는 그의 재주를 알아본 한 목수의 소개로 경남 합천 해인사 보현암의 문짝 공사를 맡게 되었지만,

처음으로 큰 사찰 일을 혼자 맡아서 하는 일인지라 가슴이 두근거려 잠도 못 잤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게 두근거리면서 ‘아카디스’라는 미송보다 2~3배 비싸고 나이테도 좋은 목재로 만든 문짝이 대호평을 받았지만 6개월 만에

일부가 오랜 기간 햇빛을 받아 굽어버려 못 쓰게 되자 틀어진 문짝만큼이나 자존심도 무너져 버렸다.

목수에게 AS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 그는 스스로 다음 해 겨울 미송으로 보현암의 문짝을 다시 만들어 달아주었다.

절의 위치에서 오는 처마 밑 대류현상과 절집에 쓰이는 나무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그 때 이익을 보지 않고 시작한

작업이었기에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봤지만 ‘한 번 맡으면 책임지고 일을 해주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얻게 되었으며, 나무에 대해 다시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자존심이 상한 임종철은 전국의 사찰과 문화재를 돌면서 꽃살 창호 연구에 몰두하였으며 어디에 특이한 문이 있다는 소식만 들리면 바로 달려가서 밤새도록 연구했다.

그렇게 문양이 주는 의미를 하나씩 알아갈수록 부처님의 가르침과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조상의 건축 지혜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을 계기로 ‘문을 짜는 기술자’에 불과했던 임종철은 전통건축의 창호 짜임기법에 대해 새롭게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내소사, 화엄사,

개암사 등 전국의 유명사찰을 찾아다니며 꽃살의 짜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전북 부안 내소사 대웅전의 꽃살 창호를 본 순간 이것이 내가 할 일이다. 는 것을 느꼈다는 임종철은 40세에 광주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입학하여 건축을 공부하고 이어 전남대학교 산업대학원에서 건축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문화재학과 박사과정까지 수료하는

주경야독으로 실무와 이론을 체계적으로 쌓아가고 있었다.

 

 

“여백의 미가 중요하지요. 왜소하면 약해 보이고, 촘촘하면 답답하게 느껴지므로 균형을 맞춰야죠.”

 

 

“저야 물론 돈을 벌기 위해 작업을 하지요. 하지만 제가 작업은 하는 순간은 잠깐이지만, 제가 죽고 없더라도 제 작품은 몇십 년, 몇백 년 후까지 기억될 것이므로 책임감을 가지고 작업을 합니다.”

 

 

 

나무는 인생과도 같다는 임씨는 “곧게 크는 나무의 무늬는 아름답지 않지만 어려움을 이겨내며 고운 결을 가진다”며 후진 양성에도 나서 지금 수많은 제자가 곳곳에서 자신만의 작업실과 공방을 가지고 열심히 목공을 하고 있지만 젊은 전승자들의 출현을 아쉬워하고 있다.

 

 

 

“전통창호 목재는 대개 침엽수를 사용하는데 주로 적송을 사용합니다.

나이테의 간격이 좁고 부드럽고 연하며 내구성이 좋기 때문이지요. 얼굴 면(문이 밖으로 향하는 부분)에는 무늿결을 사용하지 않고,

장마철이나 여름에는 문 시공을 하지 않습니다. 수분 흡수가 높아서 나중에 변형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창호는 시대의 문화를 대변하고 있으며, 창의 형태와 소재를 먼저 결정한 다음에 집을 지어야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창호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창은 부서지거나 불에 타지 않으면 대물림해서 사용할 수 있기에 자연 친화적 소재와 민속적 의미를 함께 담은 작품을 앞으로 만들고

싶다는 임종철은 문 바깥의 화려함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아름다움도 중요하기에 ‘승용차’의 편안함과 빠름을 벗어나 화물차처럼 여러

가지 짐을 실어서 많은 사람에게 유익함을 선사하는 ‘화물차’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미래를 피력했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 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탐험대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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