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투어/그날의 함성이 들린다. 5.18민주광장

2014. 12. 4. 07:00광주 견문록/광주 견문록

 

지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팸투어때 과연 이 거대한 문화시설을 어떻게 포스팅할까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팸투어 코스대로 하나의 포스팅을 완성하기 전에 5.18민주광장, 민주평화교류원, 어린이문화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예술극장 등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건물들에 대한 각각의 이미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부터 몇 차례에 걸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축물의 디테일을 좀 살펴볼 생각인데 오늘 소개할 곳은 바로 5.18민주광장이다.

1980년 5.18당시 광주시민들이 이곳에 모여 바람앞에 촛불인 나라 걱정에 밤새우기를 밥먹듯이 한 곳으로 simpro도 5.18세대라

친구, 가족들과 자주 나오던 곳이었다. 

지금도 옛 도청 본관과 회의실, 분수대, 상무관 등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5.18민주광장이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시민들 곁에 남게되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민주평화교류원을 제외하고 모두 준공을 마쳤으며 11월 17일부터 5·18민주광장과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어린이문화원의 옥상정원이 전면 개방되고 있는데, 정식개관은 2015년 9월이며 유니버시아드가 열리는 7월에는 임시개관할 예정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핵심 거점시설로 2006년 기본·실시설계를 완료하고 2008년 4월 착공해 6년 여의 공사를 거쳐 이번에 준공했으며, 옛 전남도청 일원에 지상 2층~지하 4층 규모로 건축되었다.

이곳에는 아시아문화광장을 중심으로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어린이문화원 등이 배치되었으며, 공연 등이 가능한 야외광장, 옥상정원, 지하주차장을 함께 갖추고 있다.

아직, 내부 컨텐츠는 구비되지 않았기에 민주평화교류원, 예술극장, 하늘마당, 아시아문화광장 등의 내부는 개방하지 않고 있다.

 

 

 

분수대 앞에서 바라본 회의실과 도청 본관

아시아문화전당을 설계할때 이들 건물들은 구조안전진단에서 모두 최하위 등급인 'E등급'을 맞았다고 한다.

그래서 철거하니 마니 말도 많았지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체 기능과 5.18사적지의 상징성이 조화를 이루는 방향에서

부분 보존방안을 세워 설계를 한 것으로, 전체 132m 중 108m를 보존하게 되었다.

1930년 준공된 옛 전남도청 본관은 2005년까지 도청으로 사용하다 2006년 무안으로 도청을 옮기면서 역사적 임무를 마쳤는데,

건축가 김순하(金舜河, 1901∼1966)가 설계했으며, 공사비 3만 3천 원을 들여 1930년 6월 23일 짓기 시작해서 5개월 만인

1930년 12월 5일 준공하였다.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근대문화유산) 제16호로 지정되었으며, 광주에 몇 개 안 남은 5.18사적지이다.

 

 

아시아문화전당 팸투어에 나선 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탐험대와 아시아문화개발원 담당들이 역사적인 건물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오늘 팸투어 해설은 전고필 대인예술야시장 프로젝트총감독이 했다.

훗날 그랜드오픈을 하게되면 아마도 이 자리가 최고의 포토존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러면 저 뒤에 보이는 조명탑은 좀 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옛 도청 본관건물을 설계한 김순하는 강원도 삼척출신으로 일제강점기 한국 내에서 최고의 공업 교육기관이었던 3년제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1925년에 졸업하고 전라남도청에서 근무하다 1933년 조선총독부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김순하씨는 전라남도에서 근무하는 동안 전남도청 본관 건물 뿐만 아니라 현재 광주시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어 있는 전남도청 회의실까지 설계한 당시 대표적인 한국인 건축가였는데, 광복 후 대한건축사협회 이사장을 비롯 정부 여러 부처의 기술자문역을 역임했고,

1965년 대한건축사협회의 발기인으로 창립회장을 지내는 등 한국 건축계의 큰 별이었다고 한다.

 

 

 

 

세 개의 아치가 특색인 옛 도청본관.

원래 건물은 적색 벽돌로 지었으나 겉면에 하얀색 페인트를 칠하면서 마치 백악관처럼 보이게 했다고 한다.

 

 

 

 

좌측의 건물은 도청회의실로 광주시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으며 본관건물과 같이 1930년 김순하씨가 설계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붉은 벽돌건물로 2층의 창문이 위·아래로 나뉘어 밖에서 볼 때는 3층으로 보이는 건물인데,

지하는 옛 도청 구내식당으로 사용했다.

simpro도 도청 관련 일을 보면서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자주 했던 기억이 있다.

 

 

 

출입구 위쪽 2층부터 옥상까지 전체를 유리로 장식하였고 건물 양 옆 모서리와 창문도 곡선처리 하였는데,

1930년대에 지은 건물로는 시대를 앞서 간 매우 혁신적인 디자인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펜스에 가려져 있지만, 민주평화교류원이라는 이름으로 재단장작업이 한창이다.

 

 

 

도청 건너편은 상무관으로 5.18당시 '임시 희생자주검안치소'가 있던 곳이다.

상무관에 있던 시신들은 5월 27일 광주가 계엄군의 손에 들어가자마자 오전 10시 광주시청 청소차에 마구 실려

광주시 운정동 시립 공원묘지에 묻혔으며 당시 상무관 오른쪽에 있던 남도예술회관과 뒤쪽에 있던 YWCA 벽면에는

시신과 부상자들의 흑백사진, 실종자, 사망자 명단 등이 벽보처럼 붙었었다.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소설가 한강은 자신의 여섯번 째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1980년 광주의 5월 상무관을 다뤘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상무관에 실려온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되는데,

매일 죽어 들어오는 시신들을 같이 일하는 형, 누나들과 함께 수습하면서 겪는 슬픔과 괴로움, 분노 등 비극적인 단면들을 그려냈다.

 

simpro역시  상무관에 자주 왔었는데 태극기에 쌓여 누워있는 수 십개의 관들과 그들 사이에서 울부짓는 부모 형제들의 모습이

지금도 활동사진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나 또한 친한 친구를 잃었으며 형제처럼 지내던 친구의 외삼촌도 여기서 산화했고 수 많은 광주 시민들이 무참하게 학살된 것을

직접 목격한 5.18세대이다. 하지만, 그 수많은 사연을 여기서 어찌 다 말하겠는가.

지금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일부인 5.18민주광장에 대한 간단한 소개만 하고자 한다. 

팸투어는 5.18민주광장에서 시작해 차례로 민주평화교류원, 회화나무, 어린이문화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아시아문화광장,

예술극장 등으로 계속 이어진다.

 

 

(글사진 : 포토뉴스코리아, 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탐험대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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