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12. 06:30ㆍ광주 견문록/광주 견문록
커다란 고을마다 그 고을을 상징하는 진산(鎭山)이 있는데요, 진산(鎭山)이란 도읍지나 각 고을에서 그곳을 진호(鎭護)하는 주산(主山)으로 정하여 제사하던 산으로 조선 시대에는 ‘동쪽의 금강산, 남쪽의 지리산, 서쪽의 묘향산, 북쪽의 백두산, 중심의 삼각산을 오악(五嶽)이라고 하여 주산으로 삼았다’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요즘은 한 마을이나 고을의 중심이 되어 그곳을 보호해 주는 산으로 이해되고 있는데요, 수도 서울의 진산은 북한산, 항도 부산의 진산은 금정산, 대구는 팔공산이 진산이듯 빛고을 광주는 무등산이 진산입니다.
산의 형태를 보면 마치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넓게 펼쳐놓은 것처럼 보이는데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는 어머니의 평등한 사랑을 느끼게 해 준다고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제일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어머니이듯 삶에 지치고 고단하거나, 깊은 시름에 잠겼을 때 마음의 평온을 얻고자 무등산에 오르고, 기쁜 일이 있거나 희망에 찬 포부를 말하고자 할 때도 광주사람들은 무등산에 오릅니다.
그렇게 수천 년 동안 광주의 아픔을 치료해 주고 눈물을 닦아주었으며 기쁨을 들어준 무등산 옛길을 따라 서석대에 올랐습니다.
무등산 옛길은 광주 도심에서 무등산 서석대까지 옛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복원한 길로 모두 3구간으로 나뉘는데요, 1구간은 산수동 오거리에서부터 원효사 지구까지 7.75km이며, 2구간은 원효사 지구에서 서석대까지 4.12km입니다.
3구간은 역사길이라고 부르며 신양파크호텔 삼거리에서 환벽당까지 11.5km입니다.
오늘 소개할 옛길 2구간은 무등산을 가장 빠르고 쉽게 오를 수 있는 코스로 무등산 원효사지구에서 실질적인 정상인 서석대까지 약 2시간이면 오를 수 있어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구간인데요, 지난 3월 하순에 다녀온 사진이라 봄빛이 많이 약합니다.^^
오늘 산행은 옛길 2구간으로 서석대에 올라 입석대-장불재-군 작전도로-늦재-원효사지구로 내려오는 원점회귀코스로 왕복 4시간 30분이 걸립니다.
옛길 2구간을 오랜만에 걸었더니 가는 길이 처음 보는 길 같이 생경스럽습니다.
몇 번이나 이 길이 맞는지 뒤돌아볼 정도였습니다.
진달래가 아름답게 핀 숲길을 10여 분 오르면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김덕령 장군이 창과 칼을 만들었다는 제철유적지가 나옵니다.
이 길은 무등산 분청사기 전시관이 있는 풍암제에서 시작해 원효 계곡을 따라 오르는 무등산 의병길(3.5km)이 끝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제철유적지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주검동 유적지가 나옵니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김덕령 장군이 의병활동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제공하고 무술을 연마하고 수련했던 곳으로 바위에 충장이란 시호로 보면 아마도 김덕령 장군이 충장공 시호를 받은 1788년 이후 김덕령 장군의 활약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후세사람들이 그가 활동한 이곳의 바위에 새긴 것으로 보입니다.
물통 거리입니다.
옛날 나무꾼들이 숯을 나르고 물품을 나르던 시절 잠시 쉬어가던 곳인데요, 옛길 2구간을 따라 오르는 사람들도 모두 이곳에서 쉬어간답니다.
치마바위라는 너럭바위입니다.
여기 말고 치마바위가 있는데요, 김덕령 장군의 누이가 치마가 감싸 올렸다는 전설이 있는 치마바위는 의병길에 있습니다.
무등산 원효 계곡의 시원지입니다.
여기 위로는 계곡이 있음에도 물이 보이지 않고 여기서부터는 물이 보여 시원지라고 부르나 봅니다.
무등산 곳곳에서 원효 계곡으로 물이 흘러들어 이곳부터 솟아납니다. 제법 수량이 많지요.
이제 상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왔습니다.
등산로 정비를 잘해 놨더군요.
목교입니다.
이곳을 거쳐 서석대로 올라갑니다.
무등산 비룡대입니다.
낙석위험 때문에 비룡대 바로 밑은 출입금지입니다.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모두 천연기념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8,00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긴 것이 바로 무등산 주상절리입니다.
백두산은 쥐라기 시대인 약 6억 년 전부터 화산활동이 시작돼 약 200만 년 전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고 한라산은 2만5천 년 전쯤 지금의 모양을 갖추었죠.
그러나 무등산은 8,000만 년 전 화산활동이 끝났고 그 후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 주변 지형이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화구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 서석대나 입석대 같은 주상절리대는 풍화작용에서 살아남은 부분이죠.
또한, 무등산은 일반적인 화산폭발과 달리 화구 주변의 갈라진 틈으로 용암이 분출된 특이한 화산이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저수지는 성산호입니다.
무등산 가사문학권이 있는 곳이죠.
무등산 서석대 병풍 바위입니다.
위태롭게 서 있는 주상절리들의 높이는 30여m에 이릅니다.
다음에 볼 입석대가 이 서석대의 미래죠. 또한, 지공너덜이나 덕산너덜은 입석대의 미래입니다.
앞으로 수백만 년 후의 일이죠.
광주를 빛고을이라 부르는 것은 석양 무렵 이 수정 병풍바위에 노을이 비치면 햇빛이 반사돼 수정처럼 빛이 나기 때문입니다.
육당 최남선은 '좋게 말하면 수정 병풍을 둘러쳤다 하겠고, 박절하게 말하면 해금강 한 귀퉁이를 떠 왔다 하고 싶은 것이 서석'이라고 감탄을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서석대 아래에는 너덜겅이 있습니다.
모두 서석대의 주상절리가 떨어져 나가면서 생긴 너덜겅이죠.
아마 수백만 년이 지나면 이 돌들도 잘게 부서져 거대한 너덜겅이 될 것입니다.
풍화작용으로 주상절리 아랫부분이 떨어져 나간 곳은 위태롭게 걸려있습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옛길 종점표지판입니다.
산수동 오거리서부터 여기까지 11.87km인데요, 무등산 높이와 같죠?
무등산 상봉부터 매끈한 허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 때나 가보지 못한 무등산 상봉입니다. 보이는 곳이 인왕봉이고 좌측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 지왕봉이 있습니다.
오른쪽이 천왕봉인데요, 천왕봉은 군부대 시설로 인해 상당 부분 깎여 나가 실질적인 최고봉은 지왕봉입니다.
그리고 민간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봉은 서석대죠.
멀리 규봉암도 보입니다.
무등산 서석대(1100m) 상단입니다.
민간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봉입니다.
광주시가지가 시원하게 보이는 곳 무등산 서석대입니다.
서석대를 뒤로 한 채 무등산을 내려섭니다.
입석대로 내려가는 곳입니다.
승천암입니다.
과거 임진왜란 당시만 해도 무등산 입석대와 승천암 부근에는 수많은 암자가 있었죠.
승천암 부근에 있던 암자로 산양 한 마리가 뛰어들어와 스님이 숨겨주었는데 스님의 꿈에 이무기가 나타나 산양을 잡아먹고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데 네가 훼방을 놨다. 그러니 종소리가 나지 않으면 너라도 잡아먹고 하늘로 올라가야겠다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곧바로 종소리가 나고 이무기는 스님을 놔두고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입니다.
무등산 입석대.
참 신기하죠?
제봉 고경명 선생의 유서석록에 보면 16세기경 이곳에는 불사의사, 염불암 등 절과 암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전에는 입석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죠.
입석대는 5~8각형 돌기둥이 반달 같은 모양으로 둘러서 있습니다.
최고 15m에 이르는 돌기둥은 질서정연하게 서 있습니다.
용암이 급속하게 식으면서 수축하고 냉각 면이 수직 방향으로 갈라지면서 생긴 주상절리는 수직방향의 틈새로 비나 눈이 오랫동안 스며들면서 팽창과 수축작용으로 바위틈을 벌리게 됩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돌기둥들은 각자 독립된 모양을 갖게 되었죠. 이러한 과정은 앞으로도 계속되어 수백만 년이 지나면 덕산너덜이나 지공너덜처럼 잘게 부서진 너덜겅이 될 것입니다.
입석대의 전체적인 모양은 선돌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서석대에 천제단을 두어 가뭄이나 역병이 돌 때 하늘에 제사를 지냈죠. 이 천제단은 그 후 사람의 출입이 쉬운 입석대까지 내려왔고 결국 지금 천제단 자리까지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개국 과정에서 손에 묻힌 피를 씻기 위해 왕사 무학대사와 같이 팔도의 명산 명찰을 찾아 기도하던 중, 이성계에게 3일간의 기도를 물리치고 6일간 머리를 조아리게 한 산이 바로 무등산입니다.
호남정맥의 중심 무등산 상봉에 있던 천제단에 머리를 조아린 이성계는 '피로 물 들인 죄업을 사(赦)해주시고 태평성대를 이루게 해 주소서'라는 3일간의 기도를 마치고 하산하던 중 돌부리에 넘어지는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세 군데에 찰과상을 입는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무학대사가 '기도가 부족하니 3일간 더 기도 하라는 하늘의 뜻입니다.'라고 말하니 이성계는 일정에 없던 기도를 3일을 더 하였죠. 훗날 임금이 곤룡포를 입고 찾아와 기도하는데 들어주지 않고 3일을 더 기도하게 하였다고 해서 무악산, 서석산이라 불리던 이름을 뺏기고 무등산으로 산이 강등된 것입니다.
화순 안양산에서부터 시작한 무등산 백마 능선입니다.
안양산은 철쭉으로 유명하죠.
그 철쭉은 백마 능선을 타고 장군봉까지 오릅니다.
5월 중순이면 연분홍 철쭉으로 불타오르는 곳입니다.
어느새 장불재까지 내려왔습니다.
장불재에서 바라본 무등산인데요,
하산하는 코스는 매우 다양합니다.
군 작전도로를 따라 원효사 지구로 하산, 중머리재를 거쳐 증심사 지구로 하산, 새인봉을 거쳐 증심사 지구로 하산,
중봉을 거쳐 사양능선을 따라 늦재로 하산, 백운암터를 거쳐 토끼등으로 하산 등 많은 코스가 있습니다.
각자의 체력에 맞게 코스를 잡고 즐겁게 하산하면 되는데요, 차량을 원효사지구에 두고 와서 오늘은 작전도로를 따라
원효사로 하산합니다.
중봉은 억새밭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가을이면 더 멋있습니다.
작전도로도 위험한 곳은 블럭을 깔았군요.
눈이 많이 내리면 이런 곡선구간은 차량이 오르기 매우 버겁습니다.
얼음바위입니다.
겨울이 시작되면서부터 3월까지 바위전체가 얼음으로 뒤덮히는 곳입니다.
원효사 지구도 보이구요.
길을 가로질러 늦재로 바로 하산합니다.
늦재 삼거리입니다.
이제 거의 다 내려왔군요.
원효사입니다.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화가 있는데요, 원효 8경으로도 유명합니다.
원효사에서 바라본 의상봉입니다.
의상대사가 참선했다는 곳인데요, 무등산은 정상 삼봉외에도 중봉, 규봉, 북봉, 청심봉, 원효봉 등 많은 봉우리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다 올라봤는데요, 그 중 지금 보는 의상봉이 가장 아름답더군요.
오늘은 지난 3월 말에 올랐던 무등산 옛길을 소개했는데요, 이제는 철쭉이 필 무렵이라 무등산이 더 아름답겠어요.
가까운 주말 무등산 철쭉보러 다시 한 번 가 볼까요?
(글,사진 : 포토뉴스코리아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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