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으로 지정 예고된 무등산 규봉암과 화순국화축제를 함께 즐겨보자

2018. 10. 15. 00:30전라남도 견문록/화순 견문록


무등산은 호남의 상징과도 같은 산이다. 지리산 노고단과 광양 백운산에 이어 세번째로 높은 산이다보니 정상까지 오르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정상 부근의 서석대와 입석대는 반대쪽의 규봉과 더불어 무등산 3대 절경으로 그동안 입석대와 서석대는 많은 산악인에 의해 널리 소개되었지만 상대적으로 규봉은 비교적 멀기에 드믈게 소개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등산 규봉을 가장 빨리 다녀올 수 있는 등산 코스를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증심사 지구나 원효사 지구에서 규봉까지 가려면 3시간~4시간 정도 소요되나 전남 화순군 이서면 영평마을이나 도원마을에서 출발하면 1.8km로 1시간 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더군다나 최근 규봉과 지공너덜을 화순군에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 예고했는데, 기존의 화순적벽과 더불어 3개의 명승을 보유하게 되어 명실상부한 관광도시로 거듭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뜻도 담겨있다.






출발지는 화순군 이서면 도원명품마을.

차량은 마을 주차장에 댈 수 있고 오른쪽으로 오르면 나오는 도원탐방지원센터에도 3~4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마침 지원센터 앞에 빈 공간이 있기에 주차하고 규봉으로 오르는데, 규봉에서 지공너덜과 장불재를 거쳐 도원마을로 한바퀴 빙 돌아 올 예정이다.




코스는 도원탐방지원센터 - 규봉암(1.8km) - 장불재(1.5km) - 도원탐방지원센터(3.6km)로 돌아오는 6.9km에 4시간 15분 소요되었다. 규봉암에서 탐방시간,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이동한 시간은 2시간 45분.





최단거리와 최단시간에 오를 수 있는 코스라 많은 사람이 찾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인적이 드물다. 아직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대중교통이 불편해 무등산 산행의 99%가 몰리는 증심사 지구나 원효사 지구에 비하면 당연하다.

그만큼 길이 반질거리지 않고 날 것 그대로인데, 국립공원이 되면서 야자매트와 데크계단을 만들어 경사가 급해도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는 벤치도 있고 규봉암까지는 숲터널이 계속 이어져 한 여름에도 비교적 덥지 않게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출발한지 1시간 만에 1.4km를 걸어 영평마을과 갈리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여기까지는 오르막 경사도가 24%정도 돼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는데요, 이후 규봉암 갈림길까지 경사도 19%정도로 떨어진 뒤 규봉암 갈림길부터는 장불재까지는 거의 평지이고 장불재에서 도원탐방지원센터까지는 내리막 경사 -8%~-21%정도 된다.





울창한 숲속길을 걸으면서 만난 야생화, 버섯, 도토리, 대벌레 등은 피로를 풀어주는 청량제와 같은 힐링이었다.

산새 지저귀는 소리에 어느 친구인지 열심히 쫓아다니며 담아보려고 했지만 실패하기도 했다.




 

도원탐방지원센터에서 규봉암 갈림길까지는 1.7km(도원마을에서는 2km)로 여기서 규봉암까지는 100m만 걸으면 된다.

원효사 지구에서 출발했다면 여기까지 약7km. 반대로 증심사지구에서 출발했도 장불재 거쳐 규봉암 갈림길까지 7km이니 도원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면 1.7km로 얼마나 빠른 길인지 알 수 있다.





규봉암에 도착.

높다란 계단위로 일주문을 겸한 범종각이 있는데, 단풍이 물들 무렵이면 최고의 멋진 뷰를 볼 수 있다.




규봉암 입구에는 삼존석이 있다.

규봉암을 창건한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유학했을 때 종남산 지상사에서 화엄을 공부했는데 종남산에 규봉이란 봉우리가 있었다고 한다.

신라로 돌아온 의상은 무등산에 암자를 지으면서 규봉의 돌의 모습이 마치 종남산의 규봉과 너무 흡사해 절 이름을 규봉암이라 했다는데, 신하가 임금을 알현하거나 종묘에 제사지낼 때 자기 신분을 나타내는 옥으로 만든 표식을 손에 드는데, 그것을 홀笏이라 한다. 그 홀을 이전에는 규圭, 혹은 서瑞라고 했다는데, 무등산의 옛 이름을 서석瑞石이라 부르는 것은 규봉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지금 보는 삼존석이 직사각형으로 옥으로 만든 홀을 닮았기 때문이다.




규봉암에 대한 기록은 신라 의상대사가 서석과 규봉을 보고 절을 세웠다고 한 것이 최초로 신라의 명필 김생이 쓴 규봉암이라는 현판이 절취되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혹은 고려 초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도 전해지는데요,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고려 말 황산대첩을 이끈 이성계가 무등산 규봉암까지 도망친 왜군 패잔병 12명을 이곳에서 생포했다는 기록이 있는 유서깊은 암자이다.





관음전 뒤로 보이는 봉우리를 포함 규봉암을 감싼 전체 봉우리를 규봉이라고 하는데요, 삼존석과 십대(十臺)의 영험함이 신령스러운 무등산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규봉암에 관한 인물과 절경을 노래한 선인들이 많다. 참고문헌을 통해 살펴보면, 먼저 보조국사 지눌이 조선 성종 17년(1486) 여름 무등산 규봉암에서 펴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목판본이 보물 제1222-2호로 지정되어 지눌이 규봉암에서 머물렀다는 것이 증명 되었고, 고봉 기대승은 그의 시집 고봉집에서 퇴계 선생의 장례일에 무등산 규봉 문수암에서 제자들과 함께 퇴계 선생을 추모하며 시를 남겼으며, 제봉 고경명은 무등산 기행문 유서석록에서 규봉과 문수암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고려명종에서 조선초 까지의 문신 김극기는 규봉암에 직접 올라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궤상석난명()[저 기괴한 돌들 무어라 이름하리]
등임만상평()[높이 올라 바라보니 만상이 평화롭다]
석형재금출()[바윗돌의 모습은 비단을 잘라 세운 듯]
봉세탁규성()[봉우리는 쪼아 세운 옥돌일레라]
승천병진적()[명승을 밟는 순간 속진이 사라지고]
유첩첨도정()[그윽한 이곳에 도의 참뜻 더하여라]
하당포세강()[시비 많은 속세 인연 모두 털어버리고]
부좌학무생()[가부좌로 성불의 길 찾아보리라]


즉  ‘규봉의 돌 모양이 비단을 잘라 만든 것 같고 산의 형세는 옥을 깎아 이룬 것 같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출처]규봉암[圭峯庵]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이렇듯 사례 몇개에서 보듯 많은 문헌과 시인들의 시와 기행문에서 규봉과 규봉암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데, 규봉의 절경이 얼마나 빼어났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규봉암 관음전 뒤쪽 산비탈에는 광석대라 쓰인 넓은 바위가 있다.

광석대는 규봉의 10대(十臺) 중 하나인데, 규봉 10대는 광석대, 설법대, 은신대, 송하대, 장추대, 청학대, 풍혈대, 송광대, 법화대, 능엄대로 모두 다 의미가 깊은 바위이다.





광석대에서 바라본 규봉암과 화순이서면 방향.

더 높은 곳에 올라 찍은 사진가들도 있지만 안전을 위해 오르기를 포기하고 이정도쯤에서 담아도 좋다.





규봉암은 송광사의 말사로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관음전외에도 용왕각, 삼성각, 요사채와 선방이 있다.




규봉암 주변의 야생화들로 참골무꽃, 산괴불주머니, 물봉선화.

산행 중 만나는 이런 야생화들은 산행의 피로를 풀어주는 또다른 청량제이다.

꽃 이름은 당장 몰라도 훗날 네이버나 다음에서 꽃이름 검색 등으로 찾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규봉암에서 당겨본 화순 별산 풍력발전소와 그 너머 모후산.

별산은 지난 5월 어느 이른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 오른적이 있다.


 



좌측으로는 화순8경중 으뜸인 화순적벽.

적벽을 품은 산은 옹성산으로 역시 몇해전 다녀온 적이 있다.




이제 규봉암을 나와 지공너덜을 보러간다.

규봉암과 더불어 국가명승으로 지정예고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달 정도 뒤면 국가명승이 되어 화순의 또다른 관광랜드마크가 될 예정이다.





지공너덜이 시작되는 곳에 보조국사 지눌이 수행했다고 전해지는 보조석굴이 있다.

서너명이 앉아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주변에 옹벽까지 쳐 있어 그당시부터 수행공간으로 활용한 듯 하다.





지공너덜은 나옹선사가 인도의 승려인 지공의 설법을 듣고 수행하면서 여러 석실을 만들고 그 법력으로 억 만개의 돌을 깔아놓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서석대가 오랜 풍화작용을 거쳐 입석대가 되고 다시 수천만년의 풍화작용을 거쳐 갈라지고 부서지면 지공너덜처럼 변하게 되기에 먼미래의 서석대와 입석대를 보는 듯한 풍경으로 규봉암과 더불어 국가명승으로 지정예고되었다.

규봉암에서 그리 멀지 않기에 영평마을이나 도원마을에서 올라왔다면 여기까지 보고 되돌아가면 된다.



 

지공너덜의 끝에는 석불암이 있다. 1933년경 담양 국씨 일가가 발원해 조성한 마애아미타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규봉암에서 장불재까지는 길이 두갈래인데 지공너덜과 석불암을 보려면 위길로 오르면 된다.





장불재까지는 편안한 숲길과 너덜이 쌓인 길을 자주 만나는데, 장불재 쉼터에서 영평마을이나 도원마을로 내려가면 원점회귀할 수 있다. 하지만 무등산 장불재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기위해 다녀오기로 한다.




예전 장불재는 거의 민둥산이었는데, 지금은 식생복원을 통해 울창한 갈대숲으로 변했다.

물론 출입도 통제돼 이제 몇년후면 울창한 숲을 만날 수 있다.





장불재에서 바라본 무등산 서석대와 입석대.

여기서 입석대를 거쳐 서석대로 돌아오거나 반대로 서석대를 거쳐 입석대로 돌아오면 무등산 정상을 밟을 수 있다.





지리산 구상나무가 기후변화로 인해 고사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지만 무등산 구상나무는 아직 여전하다.

지금 보이는 중봉과 장불재에서 입석대 방향으로는 구상나무 군락지가 있다.





좌측 서석대와 우측 입석대.

서석대는 돌기둥이 붙은 봉우리지만 입석대는 돌기둥이 각자 분리되어 있다.

입석대 아래로는 너덜이 진행되는 곳도 있는데, 앞서 본 지공너덜이나 규모가 가장 큰 덕산너덜 같은 경우 옛모습은 바로 입석대이고 입석대의 옛모습은 서석대이니 풍화작용의 지질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무등산인 것이다.





이제 장불재에서 되돌아 도원마을로 하산한다.

오른쪽으로 장불재에서 화순안양산까지 이어지는 백마능선의 첫 봉우리 장군봉이 있으며 멀리 별산과 모후산도 조망된다.





장불재갈림길에서 도원마을까지는 3.4km로 긴 내리막길인데, 역시 인적이 뜸하다.

화순도원마을이나 영평마을로 대중교통의 접근이 쉽다면 많은 사람이 찾을 것인데, 조금 아쉬운 면이 있다.





하산해서 당겨본 무등산 규봉.

도원마을에서는 서쪽 방향이라 역광이지만 비교적 뚜렷하게 규봉을 조망할 수 있다.

규봉을 보지 않고서 무등산을 봤다고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무등산 규봉은 무등산 최고의 절경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 화순군은 기존의 국가명승인 화순적벽에 이어 무등산 규봉암과 지공너덜을 국가명승으로 지정예고했다. 30일간의 행정예고 과정에서 의견을 수렴한 후 최종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될 예정이다.


명승이 되면 더 많은 사람이 규봉암과 지공너덜을 찾을 것인데, 화순군 도암마을과 영평마을에서 가장 빨리 오를 수 있는 길을 따라 가보면 더 의미가 깊겠다.



산행을 마치고 10월 26일부터 화순읍 남산에서 열리는 국화축제를 보고 오면 더 힐링이다.

구경하는 것도 무료이고 광주에서도 비교적 짧다. 광주 인근에 이리 잘 만들어진 국화동산이 있다는 것은

옆구리가 허전해 마땅히 가을이라고 갈 곳 없는 청춘이나 또는 불붙은 청춘이라면 데이트 하기 딱 좋은 곳이다. 



국화축제가 열리는 기간동안 하루 24시간 화순읍은 국화꽃향기가 진동한다.

거짓말 좀 보태면 취해서 어지러울 정도라고 한다.




축제를 즐기는 방법은 가고자 하는 날 어떤 프로그램이 준비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팁이다.

눈은 지치지 않지만, 귀는 지칠 수 있기 때문이다.

흥에 겨운 음악이나 공연이 있다면 축제의 기쁨은 두세배가 넘을 것이다.




주차장 및 안내도를 잘 살피는 것은 당연.

그럼 혹시 축제장에서 필자를 만나거든 꼭 말씀하시길...뜨거운 아메리카노 한잔 사드릴 용의가 있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 여행기획가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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