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24. 21:00ㆍ한국의 산 견문록/한국의 산
동창회 산악회의 9월 정기산행은 조선창업설화가 있어 조선의 영산이라 부르는 전북 진안의 마이산이다.
산에 다녀온지가 벌써 2주가 지났건만 태풍볼라벤과 덴빈의 피해를 입은 거래처들의 피해복구작업으로 사진 정리도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야 공사가 모두 마무리되어 한가해진 틈을 타 사진정리작업을 마쳤더니, 2012 광주비엔날레가 개막하여 또 글쓰는 때를 놓쳤다.
비록 산행을 다녀온지 2주가 훨씬 지나 하늘색이 완연한 가을이 되어버려 현실감이 떨어지지만 뒤 늦게나마 마이산과 탑사이야기를
늘어놓기로 하며 모든 과정은 스마트폰으로 촬영했음을 알려드린다.
추천에 감사드립니다.
마이산은 지정학적으로 백두대간에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을 이어주는 산줄기의 중심이요, 금강과 섬진강을 나누는 분수령이기도 하다. 풍수지리학적으로도 마이산은 산태극과 수태극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독특한 형상과 입지때문에 신라 때부터 나라에서 제향을 올리는 명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마이산 두 봉우리 사이에 걸린 일몰은 일월곤륜도와 흡사하다고 하여 해와 달, 오악, 소나무, 폭포 등 삼라만상을 통치하고 왕실의 무궁함을 송축한다는 의미이기에 마이산을 조선의 영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마이산은 두 봉우리가 말귀(馬耳)를 닮았다고 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신라 때는 서다산, 고려 때는 용출산, 조선 초기에는 속금산으로
불려져 오다가 조선 태종이 진안읍 성묘산에서 제사를 지내다 산봉우리를 보니 말귀처럼 생겼다 해서 마이산(馬耳山)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조선이 건국되기전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마이산을 속금산(束金山)이라 불렀는데 이는 신이 내려준 금척(金尺)을 산에다 묶는 모습이라 해서 붙인 이름이지만 오행설(五行說)에 따라 이성계가 초목성(木性) 이어서 마이산이 목(木)과 상극인 금(金)의 산이고,
금(金)이 왕성하면 목성인 李씨가 해(害)를 받기 때문에 金을 묶어 두려고 속금산(束金山)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고 한다.
오늘 산행은 10월 둘째주 토요일 1박2일로 가는 청송 주왕산 특별산행에 대비하여 동창들의 출석을 독려하기 위한 사전점검을 겸한
산행으로 9월 9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모두 26명이 참석하여 모처럼 32인승 버스 한대가 옴팡지게 가득 차서 오늘 불참한 세 친구의 빈자리가 허전하지는 않았지만 세 친구들 마저 참석했다면 산악회 창립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할 뻔 했다는 후담이다.
오늘 산행은 A코스와 B코스로 나눠 진행하려 했으나 일찌감치 일요일날 비가 예보되었기에 무리하지 않고
모두 B코스로 산보산행을 하기로 하였지만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남부주차장에 도착하면서부터 개기 시작해
탑사에 도착할 때 까지 비를 보지 못해 카메라를 집에 놔두고 온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고금당에서 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마이산의 구름낀 모습은 마치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잠시 노닐다 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대단한 장관이었지만 스마트폰의 화각한계로 인해 그 모습을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해
이 글과 사진을 보는 수 많은 블친님들의 눈을 버리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남부주차장에 내려서니 마이산 금당사 일주문이 우릴 반겨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금당사는 오늘 산행코스에 없어 천년고찰 금당사로의 여행은 다시 훗날을 기약하기로 한다.
일주문 앞에서 오늘 출석한 26명 전원이 기념사진 한 장 남기고 출발..
(10:15)문화재관람료 1인당 3,000원씩 25명분 계산하고 한 사람은 리더라고 빼준다..ㅎ
매표소는 남부주차장 금당사 입구하고 반대편 탑사를 지나 은수사로 넘어오는 북부주차장에도 매표소가 있다.
원래대로 A코스를 타고 산행을 하였다면 문화재관람료를 지불하지 않았어도 되지만 금당사는 못봐도 탑사와 은수사는
지나치길레 구례 지리산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천은사매표소와 달리 아깝다는 생각은 안든다.
매표소를 지나자 마자 좌측 고금당방향으로 올라선다.
원래 계획은 우천으로 산행이 어려우면 고금당까지 올랐다가
하산하여 도로를 따라 탑사 - 은수사 - 북부주차장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남부주차장에 도착할 무렵 비가 개어 고금당 - 전망대 - 탑영재 - 탑사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
원강정마을이나 보흥사, 합미성 방향에서 광대봉거쳐 이곳까지는
5.8km로 예정대로 A코스로 진행했다면 여기까지 도착하는데
아직도 2시간은 더 걸렸을 것으로 보여 모처럼 산행에 참석한
친구들은 짧은 거리에 연신 싱글벙글이다.
동창산악회는 대게의 전문산악회같이 전문적으로 산을 즐겨타는
산우들이 아니기에 비가 온다거나 등로가 미끄러울 때는 정상적인
산행코스는 잠시 미루고 모두의 안전을 위해 최대한 짧은 코스로
친구들을 데리고 가는 것도 임원진이 해야할 일이다.
마이산은 우스개 소리로 일명 공구리산이라고도 한다.
세계 최대의 타포니 지형이라고 하는데 암반이 구멍이 벙뻥 뚫린채 돌들이 떨어져 나간 곳이 무수히 많아
아마도 탑사의 돌탑들을 세운 이갑용처사는 돌을 운반하는 어려움은 있었겠지만 구하는데는 별 어려움은 없었을 듯 하다.
우측의 모노레일은 산 아래 임도가 끝나는 부분에서 고금당까지 이어진 모노레일이다.
이런 모노레일은 환경훼손만 없다면 깊은 산 중 임도나 도로가 없는 사찰의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 될 것이다.
거창 우두산 고견사에도 이와 비슷한 모노레일이 있으며 화순 모후산에는 정상에 짓고 있는 강우레이더기지 공사 자재 운반용
모노레일을 세우며 산허리를 통채로 들어내고 절단해 버린 아픈 흔적을 르뽀로 고발한 적도 있다.
(10:33)고금당이나 고견사의 모노레일은 화순모후산의 모노레일에 비하면 코끼리 코의 비스켓정도 밖에 되지를 않는다.
가설재이다 보니 언제든지 철거할 수 있으며 자연경관만 해친다 싶지 산림훼손도 그리 크지 않아 모후산에 비하면 그래도 봐줄만 하다.
고금당 나옹암.
고려말의 고승 나옹선사의 수도처로 전해오는 자연암굴로 나옹선사는 공민왕의 왕사가 된 사람이다.
안을 들여다보니 고려시대 나옹선사가 수도할 당시의 자연암굴 상태로 원형보존은 아니고
바닥에 마루를 깔고 금색을 입혀놓았지만 관리상태로 봐서 오랜 세월전에 만들어지지는 않은 것 같다.
고금당과 나옹암은 저 산아래 금당사 소속의 암자로 금당사는 조계종 17교구 금산사 소속이라고 한다.
금산사와 달리 금당사와 고금당, 나옹암 등의 지붕이 모두 금색인 것은 왜일까?
금당사만 해도 대웅전뿐만 아니라 석등, 미륵불, 공작새조각 등을 금색페인트가 아닌 금도장을 했다고 하니..
속리산 법주사의 금동미륵대불이 생각난다. 무려 80kg에 달한 금을 입혀 금값만 해도 50억원이 넘는다.
산 아래 보이는 금당사.
우린 금당사를 들르지 않고 바로 고금당으로 올라왔기에 이렇게 멀리서 눈썹위에 손대고 봐야만 했다.
훗날 마이산을 다시 들러 금당사에 들르게 되면 금당사 대웅전 지붕을 비롯한 고금당,나옹암등의 지붕에 금색을 입힌것에 대해
여쭤봐야 겠다.
고금당에서 바라본 마이산은 지금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오기 바로 직전의 구름낀 상태이다.
마이산이 막 생겼을 때 선녀들의 조상인 산신부부가 두 자녀와 함께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돌이 되어버린 그곳에...
고금당의 법당은 아주 이채롭다.
대게의 법당이 목조건물인것에 비하면 바위위에 H-BEAM을 박고 철골로 트라스를 짠 뒤 철근콘트리트로 지붕을 덮고
그 위에 법당을 세웠다. 법당에서 보면 지하층은 판넬로 벽체를 붙히고 샷시창틀로 법당을 만들어 도립공원 마이산과
아주 생뚱맞게 법당을 지어놓은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나마 산 아래서도 훤하게 보이는 곳에 이렇게 흉물스럽게 암자를
지어놨을까란 생각에 슬픔을 금할 수 없다.
차라리 바로 옆의 나옹선사가 수도했다는 자연암굴 나옹암 하나로만 만족했으면 안되었을까?
고금당과 나옹암의 금색찬란한 지붕과 산 아래 금당사의 지붕이 금색으로 일치하는 것에 어떤 무언의 뜻이
내포되어있지 싶다.
고금당 내부와 나옹암뒤의 산신상.
산신상의 모습이 탑사의 돌탑들을 쌓은 이갑용처사를 닮은 것도 같고...
원래 계획은 고금당까지 올랐다가 다시 오던길로 하산하여 금당사와 탑영제를 거쳐 탑사로 가는 산보산행이었다.
그런데 사진을 찍다보니 친구들이 안 보여 전화했더니 비룡대 전망대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비가 안와서 A코스를 못 탄 것에 대한 서운함을 전망대라도 올라야 풀릴것 같다는 목소리가 전화통 너머로 청량하게 들려온다.
그리여...산에 왔으니 산으로 넘어 탑사까지 가야제..ㅎㅎ
먼저간 친구들 뒷꽁무니를 죽어라 쫓아 나홀로 가는데..마이산도 이곳 저곳에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생채기가 곳곳에 남아있다.
비온 뒤라 길도 미끄럽고 암반은 공구리같아 잘 못 밟았다간 미끄럼틀이 되고 만다.
다른 산우님들이 이 미끄런 바위구간을 내려서지 못하고 끙끙댈 때..난 친구들 그림자라도 밟으려고 한 걸음에 추월해서 통과.
이곳에서도 길이 갈린다. 지도에 명확히 표시되지 않은 곳 2군데 갈림길이 있나 보다.
산은 여기서도 공구리..^^ 이 고개 너머 잠시 다리쉼하고 있는 친구들을 체포하고 보니 1진은 벌써 쉬도 않고 가버렸다고..
(11:22)비룡대 전망대..이곳에서 바라보는 마이산의 모습은 한마디로 (아~~~)
일단 마이산 뒤쪽 익산 - 장수간 고속도로 좀 보고....
앞쪽 산 너머는 우뚝 솟은 산은 연석,운장산 .
암마이산 과 뒤 숫마이산 사이로 내려앉은 구름사이로 선녀들이 보이신가?
아마 좌측 삿갓봉에서 보이면 제대로 보일듯.(전망대에서 바라본 마이산은 그야말로 인간들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마이산이 생기기전 이곳에서 살던 산신 부부가 때가 당도하여 두 자녀를 데리고 하늘나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하늘로 승천할 때 인간들에게 들키면 안되었기에 남신은 캄캄한 밤에 올라가자 하고 , 여신은 밤은 아무것도 안 보여 무서우니
이른 새벽에 올라가자고 했다.
이에 부부싸움이 나서 하늘에 오르지 못할까 두려운 남신은 여신 하자는데로 이른 새벽에 올라가자고 양보했다.
새벽닭이 울고..여신은 자는 아이들을 양팔에 하나씩 안고 남신을 뒤세워 하늘로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른 새벽 물길러 온 아낙네가 두 산신이 하늘로 오르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비명을 질러버린다.
인간에 들키면 바로 돌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신선계의 불문율.
즉각 남신은 여신에게서 두 아이를 뺏고 여신을 발로 차 둘 사이가 떨어진 채 그대로 돌이 되어버렸다는 마이산 탄생전설이 내려온다.
누가 전설을 이렇게 멋없이 만들었을까?
왜 여신을 발로 차냐고라...글고 왜 아이들을 뺏어? 쯔쯔...
그래서 난 나만의 전설로 이렇게 고쳤다.
모년 모월 모시 진안골 삿갓봉과 봉두봉이 마주한 깊은 숲사이로
하늘에서 솜털같은 구름을 타고 선녀들이 내려와 인간세계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옥황상제의 아들부부에게 아버지의 명을 전한다.
아버지의 허락없이 결혼한 느그들 이제 즉위 5000년을 맞이하여
용서할란다. 긍께 모월 모시에 아이들 데리고 올라고거라..
대신 인간들에 올라온 모습을 들키면 안된다잉..
집떠난 자식을 그리워 하는 것은 인간이나 옥황상제나 마찬가지.
그러나 그 사랑의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꼭 붙어다니던 산신
부부는 하늘로 오르던중 인간에 들키고 말아 아이를 꼭 껴안은 여신과 앞에서 이끌던 남신은 그대로 돌이 되어 굳어버려 아이를 껴안은 산을 암마이산이라 하고 그들을 데리고 앞서가던 남신을 숫마이산
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고로 암마이산고 숫마이산도 바뀌어야 한다는 1000년후의 마이산 전설..ㅎㅎ
오늘은 비가 옴팡지게 온다고 해서 카메라를 가져가지 못했다.
스마트폰을 찍은 사진이지만 찍사의 요구대로 잘 따라주는 친구들이 고맙기만 하다.
줄을 잡고 내려가는 친구들에게 하나, 둘 , 셋 하면 이렇게 돌아보고..ㅋㅋ 가다가 강남스타일 하면 이렇게 말을 타 준다..ㅎㅎ
(11:47) 부부시비와 탑영제를 가르키는 곳으로 하산하여 탑사로
가야 하는데. 1진은 여기를 지나쳐 봉두봉,탑사, 은수사쪽으로
가버렸다고 한다.
여기서 뒤를 쫒아 가느냐 아니면 탑영제로 내려서는냐를 고민.
1진을 쫒아가려면 시간도 많이 지체될 것 같고 해서 남은 친구들
모두 탑영제로 하산하여 탑사로 가기로 한다.
16명의 1진과 10명의 2진은 이렇게 성황당 갈림길에서
이별아닌 이별을 잠시 했어야 했다.
(여기서 스마트폰 이야기 : 스마트폰 화소수는 800만 화소로
퀄리트 높은 사진이 아니라면 스마트폰으로도 얼마든지 기록용
산행기를 만들 수 있다. 굳이 무거운 디쎄랄이나 디카를 별도로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사진, 동영상 다 되니 이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특히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의 사진은 더더욱 그렇다.^^)
전화로 통화해서 서로 안부를 확인하고 탑사앞 식당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빗물이 흘러내려가는 하산로를 따라 탑영제방향으로 내려간다.
걷기에 참으로 좋은 산책길...
이 열매는 무엇일까? 식물도감에서 찾다 찾자 못 찾아 껄쩍지근하다.
(12:00)이제 탑영제 바로 위 도로로 나와 탑사로 간다.
이곳에서 금당사와 탑영제를 다녀올까도 생각했지만 금당사까지도 왕복 1km가 넘어 포기했다.
그래야 뒷 날 또 다시 마이산을 올 근거를 만들어 놓지 않겠는가.
(글 : 포토뉴스 코리아 simpro) 트위터 ☞ http://twitter.com/huhasim
지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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