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천년미소를 찾아 떠난 여행 (국보 제144호 마애불 편)

2012. 11. 27. 08:05한국의 산 견문록/한국의 산

 

조선 전기 사림파의 거두였던 김종직은 늦은 나이에 월출산을 찾아 이렇게 말을 남겼다고 한다.

“뜬 인생 반 넘어 살도록 이름 들은 지 오래이면서 올라보지 못하였으니 세상일 바쁜 것이라.” 고

월출산은 평야지대에 우뚝 솟은 암봉이다 보니 800고지임에도 1000고지 이상되는 산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기에 월출산은 쉽게 오름을 허락하지 않은 산이며 그 중에서도 이곳 마애불과 삼층석탑으로 가는 길은 

더더욱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서로 마주보고 있는 마애불과 삼층석탑에서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가 있다.

아무리 바쁜 산행 중이더라도 마애불을 보고 가지 않으면 왠지 껄쩍지근한 월출산 산행이 될 것이기에 언젠가는 꼭 가 봐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 유산임을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오늘 산행코스 참고)

 

(12:35)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귓전을 후비며 마애여래좌상까지 힘겹게 도착했더니

아뿔사~~마애여래 보존공사는 어제 끝났다 지만 공사용 자재는 하나도 치원지지 않은 것이다.

헬리콥터로 이제 철거될 자재를 운반해야 하는데 아직 철거도 안했으니 언제나 마애불의 천년의 미소를

볼수 있을까. 오늘 이후로 영암월출산 산행에 나서서 마애불까지 보러가고자 하는 분 들은 공사안내판에

나와있는 회사로 전화를 해서 정리정돈 여부를 꼭 물어보고 가셔야 할 듯...(주)씨엔티 ☎061-333-1077

 

 

사진출처 : 문화재청

 

 

 

국보 제144호 영암월출산 마애여래좌상)

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 구정봉의 서북쪽 암벽을 깊게 파서 불상이 들어 앉을 자리를 만들고, 그 안에 높이 8.6m의 거대한

불상을 만들었다. 불상의 오른쪽 무릎 옆에는 부처님을 향하여 예배하는 모습을 한 높이 86㎝의 동자상을 조각하였다.

머리 위에는 크고 높은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신체에 비하여 비교적 큰 얼굴은 근엄하고 박력있는 느낌을 준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는 옷은 얇게 표현하여 신체의 굴곡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옷주름은 가는 선으로 새겼는데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 아래까지 흘러 내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섬세한 옷주름과 양감있는 신체의 표현에서 탄력성과 박진감이

잘 나타나고 있다.

당당한 신체에 비하여 팔은 가늘게 표현하고 있으며,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를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릎 위에 올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따로 조각하였으며,

그 안에 연꽃무늬와 덩굴무늬를 새겨 넣고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전반적으로 안정감과 장중한 인상을 주며,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기법과 더불어 박진감이 잘 나타나고 있다. 반면 신체에 비하여

비교적 커진 얼굴과 너무 작게 표현된 팔 등에서 불균형한 비례와 경직된 표현이 엿보여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짐작된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여러가지 형태의 마애불

                        좌-우 시계방향으로 선암사 도솔암 마애불, 속리산 법주사 마애불, 김해봉하마을 봉화산 마애불,

                        지리산 정령치 개암사지 마애불...(기타 여려형태의 마애불이 있으나 조성연대가 고려시대 이전의

                        마애불만 그동안 다닌 산과 사찰에서 모아보았다.)

 

 

어제까지 공사가 끝나서 혹시나 하고 내려왔더니 역시나 였다.

아마 공사기간중 이다면 내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며 또 훗날을 기약했겠지...

이제 어쩔것인가 또 훗날을 기약해 봐야지..

ㅎㅎㅎ

마애불을 못 보고 온 것이 영 서운했지만 100여미터를 더 내려가야 하는 용암사지에 있는 삼층석탑 역시

그때 같이 볼 것을 기약해 보며, 마애불과 서로 마주보고 있는 또다른 삼층석탑이라도 볼까하고 이동했다.

마애불은 고려시대 대표적인 마애불로 국보 제144호로 지정되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국보일 듯..

 

 

좌측 사진이 용암사지 삼층석탑이며 보물 제1283호이다.(문화재청에서 퍼옴)

이 삼층석탑은 마애불에서 100m를 더 내려가면 나오는 용암사지에 있다. 네이버백과에서 나오는 용암사지 삼층석탑의

사진이 2개나 나오는데 문화재청과 한국민족대백과에서는 맞게 표현하였으나 두산백과에서는 우측 사진을 놓고

용암사지 삼층석탑이라고 쓰여있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시정을 해야 할 듯...

 

1996년 붕괴된 석탑을 조립할 때 하대석 중앙 부분에서 백자 사리호 1점, 금동보살좌상 1점, 청자 대접 1점, 사리 32과,

철편 11점 등이 발견되었으며 1995년 지표조사 때 ‘용암사’라는 명문이 있는 기와가 출토되어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용암사임이 확인되었지만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고 한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하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삼층석탑은 인터넷에서 봤듯이 마애불과 천년간 마주보고 선 묘한 마력이 있으며 자연 암반에 올려진

두리뭉실한 모습이 보물로 지정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잘 생겼다.

 

 

아마도 이 삼층석탑은 마애여래좌상과 같은 시기인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천년세월동안 월출산 깊은 곳에 숨어 이렇게 서로 마주보고 그리워 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마애불의 공사가 완료되면 숙명적으로 다시 와 봐야 할 곳이다.

 

 

 

 

                용암사지는 해발 804m의 월출산 구정봉 아래에 있는 절터로 약 300평 부지에 수 많은 기와편과 주초가 남아 있다.

                그밖에 용암사지 중심에서 약 50m 떨어진 입구에 석종 2기와 북서쪽에 마애여래좌상이 있으며,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에서

                서쪽으로 약 150m 거리에 또 다른 삼층석탑이 있으나, 1층 탑신과 3층까지의 옥개석만 남아 있어 복원이 어렵다고 한다.

                (자료출처 : 네이버지식백과) 바로 이 삼층석탑을 두고 하는 말이렸다.

 

 

무소의 뿔을 닮은 바위와 차곡차곡 잘 쌓아 놓은 신의 걸작품도 보고...
 

 

깊어가는 가을 월출산을 보고 있노라니...

구정봉 너머의 월출산과 반대편의 월출산이 이렇게도 다를 줄 누가 알아겠는가.

구정봉에서 천황봉까지의 월출산이 근육질의 남성이라면 구정봉에서 도갑사쪽으로의 월출산은 어여쁜 새색시 같다 할 것이다.

 

 

노적봉 능선아래 마애불상있는 곳에서 약 100여 미터 떨어진 곳이 용암사지이다.

마애불에서의 이정표는 100m로 되어 있어 훗날 공사가 끝난 마애불을 보기위해

다시 들를 때 보려고 가지 않았지만 삼층석탑이 있는 바위위에 올라가 보니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다.

 

 

 

싸리봉 능선 너머로 영산강이 보이고 영산강 너머로 무안 일로읍도 보인다.

그렇다며 저 능선 너머는 바로 2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구림마을이 있는 곳으로 영암의 유명한 인사는 모두 다 태어난 곳이다.

일본의 아버지 왕인박사, 풍수도참의 도선국사, 고려건국의 일등공신 최지몽이 모두 구림마을 출신이다.

 

 

 

삼층석탑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산중만찬을 즐기는 산행인과 우측의 우리일행.

 

 

 

(13:25)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제 다시 좌측으로 천황봉 능선을 바라보며 구정봉으로 올라간다.

 

 

 

영암읍을 산능선 너머로 흘겨보고서...

 

 

 

내려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구정봉으로 올라가는 길 역시 거칠다보니

여자친구 한 명이 체력이 방전되며 털썩 주저 앉아버려 잠시 쉬어가야 했다.

월출산 산행에 나선 산행인들이 왜 이 코스를 주저하게 되는지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구정봉은 월출산 종주코스 중 딱 중간쯤에 해당되는 곳으로 어디로 가든지 간에 점심이후 지나야 하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힘든 시간대이고 점심을 막 먹고 난 뒤 500여 미터를 내리꽂는 마애불까지 왕복해야 하는

도전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월출산 깊이 박혀있는 비밀스런 공간에 숨겨진 천년의 미소와 마주함을 위한 길이다.

굳이 김종직이 바쁨을 핑계로 동경만 했지 정작 오르지 못함을 아쉬워 했듯이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산행의 바쁨을 핑계로 스쳐 지나가지 말고 처음부터 이곳에 들를 생각으로 온다면 그리 멀지 않은 길이 될 것이다.

1km 왕복에 1시간 투자는 천년세월동안 숨겨져온 미소와 만나는 시간치고는 너무 짧기 때문이다.

 

 

(13:50)

이제 억새풀에 가려진 구정봉에 올라볼 차례이다.

 

 

 

                구정봉에 오르기 위해서는 왠만하면 아래에 배낭을 내려놓고 가야한다.

                저 좁다란 통로을 지나야만 오를 수 있는 구정봉은 빈몸 하나 빠져 나가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바람도 심하게 불고 왼쪽아래로는 천인단애의 벼랑끝이므로 조심조심...

 

 

                구문치(具文治 1627~1671)

                1661년(현종 2) 경기수군절도사, 1665년 수원부사를 거쳐 이듬해 다시 경기수군절도사가 되었다.

                    1668년에 평안도병마절도사, 이듬해 통제사(統制使)를 역임하고, 1671년 어영대장을 거쳐 포도대장이 되었는데

                나졸(邏卒)들을 사사로이 사역시켜 사헌부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능성(綾城-지금의 전남 화순)구(具)씨로 종2품 포도대장까지 오른 헌종때의 무신인데 월출산 구정봉까지 와서

                낙서를 해 놨다. 결국 이 낙서는 350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simpro에 의해 빛을 발하게 되도다.

 

 

 

구정봉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산 정상에 아홉개의 구덩이(九井) 모양의 구멍이 있다고 해서 구정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그 구덩이에 있는 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아 아홉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전설과 선녀와 마을 총각에 관한 전설,

조선 세조 때 수미선사가 온 나라에 가뭄이 들자 구정봉의 물을 가져다 도갑사 법당에서 기우제를 지낸 후에 가뭄을 극복했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가장 신빙성있는 전설은 번개가 아홉번이나 구정봉을 쳐서 홈이 파졌다는 전설이다.(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사실은 오랜세월의 풍화작용으로 형성된 풍화혈(風化穴)로 지금 보는 것이 가장 큰 풍화혈로 직경이 3m에 깊이는 50cm나 된다고...

 

 

 

구정봉위에서 본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가야할 도갑사 방향의 향로봉

 

 

 

천황봉방향.

 

 

 

오늘 같이 산행에 나선 친구들. 또 한 친구는 체력이 방전되어 구정봉 아래에서 짐 보관중..

 

 

 

돌불꽃들의 향연...

각 봉우리마다 비석같은 바위들이 하나씩 서 있는 것이 이채롭다.

 

 

 

(14:05)

마치 허파 두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듯한 모습의 구정봉.

이부분이 아마 바람재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보이는 장군바위(큰바위 얼굴)의 투구모양일 것이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귀를 늘어뜨린 멍멍이 모양? 아니면 말 안장 모양이든지..

 

 

 

갖가지 모양의 만물상들이 월출산을 지키고 있으며...

 

 

 

                 수면위로 솟구친 돌고래바위

 

 

 

영암과 강진을 가르는 불티재로 내려서는 천황봉 지능선과 그 사이 경포대계곡.

 

 

 

향로봉

 

 

 

향로봉을 옆으로 올라서면서 부터는 완만하고 긴 내리막길로 산죽터널과 철쭉, 진달래 사이를 지나면...

 

 

 

                이곳이 월출산인지 아니면 그저 평범한 육산인지를 헷갈리게 하는 길이 나온다.

                그야말로 향로봉을 지나면서 부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월출산의 모습은 180도 그 모습을 달리한다.

 

 

깎아지르는 절벽도 없고, 가지랭이가 찢어지게 넘어야 하는 바위도 없다.

그저 평범한 구릉 몇개를 넘어가는 듯한 아주 편한 길이 미왕재까지 이어진다.

아마 봄이면 이 길은 진달래와 철쭉이 핀 환상의 길이 될 것이다. 여름이면 도갑사 계곡으로 쏟아지는 폭포수가 반길 것이고

가을이면 억새로 또 발길을 붙잡을 것이며, 겨울이면 눈꽃세상이 원도 없이 펼쳐질 것이다.

 

 

지금 보는 것이 이곳에서 바라보는 월출산의 모습이다.

영암이나 강진방면에서 바라보는 월출산의 모습과는 영 딴판이지 않는가.

 

 

부드러운 흙길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걷노라면...

 

 

애게게? 이게 월출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영암방면에서 바라보는 월출산이 마치 수백개의 첨탑으로 쌓여진  성같은 남성이라면,

강진과 해남방면에서 바라보는 월출산은 여성스러움이 그지 없을 정도로 순박한 산이 된다.

 

 

 

무위사 방면

 

 

 

도갑사로 내려서는 도갑사계곡

 

 

 

그리고 펼쳐지는 억새능선

 

 

이 길을 보니 겨울철 폭설산행으로 딱 좋을 코스같다.

금릉경포대로 올라 도갑사로 가는 4코스는 천황사에서 올라오는 종주코스보다

훨씬 눈길에 걷기 좋아보여 올 겨울 눈꽃산행지로 무조건 추천이다.

 

 

 

억새능선

 

 

 

비록 억새도 가을이 가는 것을 아쉬워 하듯 잎을 다 떨구어 버렸지만.

 

 

 

(14:45)

충분히 환호성을 지를만한 계기는 마련해 주었다.

암산인 월출산에서 이런 뜻밖의 억새밭을 만날 줄이야 누가 알았겟는가.

그저 릿지화 신고 바위타는 재미만 생각했던 산에서 이렇게 넓다란 분지를 만나는 것도 흔치않는 일이다.

 

 

 

 

 

억새밭에서 더이상 전진은 없다.

동원농장에서 미왕재까지는 야생식물군락지 보호로 2026년 12월 말까지 입산이 통제되었으며,

무위사에서 미왕재까지는 훼손탐방로 복원으로 올해 1월1일 부터  2016년 12월 말까지 입산이 통제되었다.

월출산은 지리산과 틀려 국립공원중 제일 작기에 공단 인력이 미치는 곳은 많을 것이다.

그러기에 과태료 10만원을 내고 출입통제구역을 벗어나 비지정 등로를 타는 사람은 없을 듯.

 

 

 

(14:53)

여기서 도갑사까지는 2.7km.

1시간이면 내려올 수 있는 길이지만 마치 2시간은 걸린것 처럼 멀기만 했다.

 

 

억새밭과 작별을 고하고...

 

 

 

 

도갑사로 내려간다.

 

 

 

도갑사계곡으로 흐르는 계곡물의 발원지도 보고...

 

 

그 길을 걸으면서 마치 지리산 백무동계곡을 내려서는 것 만큼 지루함을 느꼈다.

왜 그럴까. 보통 산에 올라갈 때는 여기저기 다 들여다 보며 즐기며 이야기도 나누며 올라가지만

내려올 때는 그저 발 아래만 보고 묵묵히 걸어 내려오는 것이 태반이다.

 

 

                돌뿌리에 걸려 넘어질까도 걱정되고, 긴 너덜길 무릎 고장날까봐 걱정이고...

 

 

 

친구들을 뒷전에 놔두고 휑하니 바람처럼 내려갔다.

예전에 무주 덕유산 안성에서 삼공리로 빠질 때 향적봉에서 삼공리까지 눈 길을 바람처럼 내 달렸던 그 기억이 생각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산행의 두려움이나 체력적인 어려움은 전혀 없었는데 올 여름 곡성 설산 산행 때 부터 체력적으로 힘들단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월출산 산행에서 다시 원상태로 몸이 회복되었음을 느껴본다.

특히 눈썹이 휘날리게 내려간 미왕재에서 도갑사까지 내리막 길..

도갑사 이곳 저곳을 탐방하고 사진으로 담고자 한다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친구들 보다 먼저 내려가게 된 것이다.

 

 

(15:35)

도갑사 입구까지 왔다. 미왕재에서 여기까지 2.5km 내리막 너덜길을 42분 만에 내려왔으니

바람처럼 내려왔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길은 마치 지리산 장터목 산장에서 백무동계곡으로 내려오는 환상을

느낄 정도였으니 바람처럼 내려 온 내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천년고찰 도갑사 탐방은 2편에 이어 사찰탐방으로 따로 포스팅할 예정이다.

오래전 부터 길이야기라는 카테고리 하나로 묶었던 사찰탐방을 이제는 별도로 독립시켜 주어야할 때가 온 것 같아서다.

항시 산이나 여행길에 만나는 사찰은 여행이나 산행의 중요한 탐방요소 중 하나 이다.

블로그를 살찌우고 훗날 나의 블로그에 들러 필요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희망하기 때문에

항상 산행에 이어지는 사찰이야기는 따로 쓰고 있으며, 산행이야기도 워낙 사진과 여정이 길다보니 2편으로 쪼개어 썼으니

많은 이해 있으시길 바란다.

 

 

수령이 450년이나 된  팽나무를 보며 도갑사에서 택시를 타고 경포대로 이동했다.

도갑사는 원점회귀 산행도 하는 출발점이지만 보통 천황사 - 도갑사 종주코스나

경포대 - 도갑사 4코스를 타는 사람들의 날머리이다 보니 택시는 항상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도갑사에서 영암터미널까지는 14,000원. 도갑사에서 천황사지까지는 15,000원. 도갑사에서 경포대까지는

25,000원의 택시비가 소요된다.

물론 버스도 오지만 불행히도 버스 시간표는 그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다.

영암터미널에서 오후4시10분에 도갑사로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고 하니 영암읍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은 그 버스를 기다리면

될 것이고, 일행이 많다면 버스비나 택시비나 큰 차이가 나지 않으므로 택시로 빠르게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단독이라면 여러사람 모여서 택시 하나로 영암터미널로 이동해도 되니 두리번 거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콜 해 보실 것...

 

 1편 월출산 천년미소를 찾아 떠난 여행(구정봉 편),

2편 월출산 천년미소를 찾아 떠난 여행(마애불 편)

3편 월출산 천년미소를 찾아 떠난 여행(도갑사 편)

4편 월출산 천년미소를 찾아 떠난 여행(무위사 편)

5편 월출산 천년미소를 찾아 떠난 여행(강진다원 편)

 

(3편에서 계속)

 

     (글 : 포토뉴스 코리아 simpro) 트위터 ☞ http://twitter.com/huha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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