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맘대로 가 보지 못하는 무등산 정상/광주견문록Ⅲ

2013. 6. 29. 07:06한국의 산 견문록/무등산

광주견문록Ⅲ

고경명의 유서석록(遊瑞石錄)을 따라 무등산 한 바퀴 

 

지금은 맘대로 가 보지 못하는 무등산 정상

 

 

 


 

 

무등을 보며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삧 속에 갈매빛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의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아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이다.

 

무등산 정상이 개방되었다.

2011년 5월14일 45년만에 처음으로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무등산 정상을 개방한 후 오늘(2013.06.08)이 8번째로 그동안 국가안보를 목적으로 1966년 광주시민들로 부터 무등산 정상인 천왕봉과 지왕봉, 인왕봉을 빼앗간 후 광주 시민들 에게 마음의 빚을 진 군부대와 그 광주시민의 유산을 단 하루만이라도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만든 광주시와 시민단체의 노고로 이루어 진 것이다.

 

무등산 정상은 해발 1187미터인 천왕봉이고 1180미터인 지왕봉과 인왕봉 등 세개의 봉우리가 정상을 이루고 있으나 1966년 공군부대가 들어 선 이후 서석대 바로 위부터 철조망이 처져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었다. 이제는 일년에 2번~4번 정도 하루만 그 철조망이 걷히고 출입및 사진촬영이 허락되지 않는 천왕봉을 제외한 지왕봉과 인왕봉은 무등산을 찾는사람들에게 개방되는 것이다.

 

 

 

오늘 무등산 정상개방에 맞춰 첫 출발지를 무등산 의병길로 잡은 것은 임진왜란 의병장 김덕령 장군의 행적을 쫓아 도처에 있는 김덕령 장군의 전설이 담긴 곳을 둘러보기 위함이었고 아울러 '고경명의 유서석록을 따라 무등산 오르기'의 중 지금은 출입이 통제되어 볼 수 없는 정상을 보기 위함이었다.

유서석록(遊瑞石錄)은 임진왜란 의병장인 제봉 고경명(霽峯 高敬命)장군이 41세가 되던 때인 1574년 음력 4월20일부터 24일까지 당시 74세의 광주목사 임훈 일행과 함께 5일간 무등산에 오른 감상을 4,800자의 순한문으로 기술한 기행문으로 16세기 우리나라 산(山의)문학의 최고봉으로 일컫는다. 유려한 문장뿐만 아니라 무등산의 3대 석벽과 사찰 등 16세기의 무등산과 그 인근의 모습을 자세하고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으며 1563년 인순왕후(仁順王后)의 외숙 이조판서 이량(李樑)의 전횡을 논할 때 교리(校理)로서 이에 참여하였다가 그 경위를 이량에게 알려준 사실이 발각되어 울산군수로 좌천되었다가 파면되어 광주로 낙향하여 1581년(선조 14) 영암군수로 다시 기용될 때까지 18년간 광주에 머물면서 얼마나 많이 무등산에 올랐겠는지 상상이 되는 기록이라고 하겠다.

 

 

김덕보의 풍암정사.

무등산 의병길은 의병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무등산의병길/광주견문록Ⅲ 포스팅 참고

 

 

편백숲

 

 

원효계곡

 

 

 

제철유적지까지가 의병길로 이곳에서 무등산 옛길2구간과 합류하여 정상으로 오른다.

 

 

 

정상에서 하산할 때는 지금 보이는 무등산 누에봉에서 꼬막재로 하산할 예정이다.

 

 

주검동 유적지

 

 

물통거리

 

 

치마바위

 

 

원효계곡 시원지

 

 

그리고 서석대로 올라가는 목교앞

 

 

무등산 정상개방은 이곳에서 서석대로 올라 군부대 후문으로 오른 다음 정문을 통해 군작전도로를 타고 내려오면 된다.

 

 

 

서석대에 오르면서 본 중봉에서 이어지는 사양능선

 

 

좌측 무등산 정상과 우측은 서석대 앞에 있는 비룡대

 

 

천왕봉은 뒤에 숨어 있어 보이지 않고...

 

 

비룡대

 

 

장불재

 

 

중봉으로 가는 삼밭실의 S라인, 그 아래는 군 작전도로에서 청심봉에 있는 방송국까지 관계자들의 차량이 올라가는 곳.

이곳 삼밭실은 김덕령장군이 삼을 심어놓고 높이뛰기 훈련을 했던 곳으로 이곳에서 무예를 익히고 지왕봉 뜀바위에서 담력을 길렀으며, 장불재에서 안양까지 이어진 백마능선에서 백마를  타고 달리며 기개를 키웠던 곳이다.

무등산하면 김덕령장군이요, 김덕령 장군하면 무등산이듯이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가 없는 사이로 김덕령의 기개가 무등산에서 비롯됫듯이 김덕령의 정신이 바로 광주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서석대 아래 비룡대

 

 

 

 

서석대

 

 

 

 

서석대에서 바라 본 광주시가지

 

 

 

 

서석대는 6월8일임에도 아직 철쭉꽃이 그대로 피어있다.

 

 

서석대에서 바라본 정상

 

 

서석대에서 입석대로 내려가는 방향

 

 

 

규봉암 방향

 

 

2011년 5월14일 무등산 정상 첫 개방 때 아침 일찍부터 몰린 시민들.

 

 

 

2년이 지났고 벌써 8회째라 그런지 오늘은 기다림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철조망도 다시 걷히고

 

 

2011년 5월14일 첫 개방때는 이곳에서 서석대 너머 입석대까지 입장을 기다리는 시민들로 가득찼었다.

 

 

오늘은 너무도 한산^^

이러다가 무등산 정상 개방 행사가 끝나는 것은 아닌지...

 

무등산 백마능선은 장불재에서 화순 안양산까지 이어진 능선을 말하며 김덕령장군이 무등산에서 무예를 닦을 때 이 능선을 백마를 타고 달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가을 억새필 무렵 안양산에서 무등산 장불재로 가다보면 말갈귀를 닮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년전 그 군인들은 지금 다 전역하고 없겠지만..

후문을 들어서면 바로 친절한 모습으로 시민들을 맞는 우리의 젊은 건아들..

 

 

무등산 정상의 삼봉 중 하나인 지왕봉

고경명의 유서석록에는 정상삼봉(頂上三峯)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상봉에는 가장 높은 봉우리가 셋이 있는데 동쪽이 천왕봉(天王峯)이며, 가운데 것을 비로봉(毘盧峯 ,地王봉峯)이라 한다.  

그 사이는 백여 척쯤 되며 평지에서 바라보면 대궐을 마주보는 것 같다.  

서쪽에 있는 것이 반야봉(般若峯 ,人王峯)으로 비로봉과 두 정상의 거리는 무명베 한필 길이나 되지만 밑은 한 자 거리쯤밖에 되지 않으니 평지에서 바라보면 화살촉 같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정산 봉우리에는 잡목이 없고 다만 진달래와 철쭉이 돌 틈에 무더기로 피어 있으며, 키는 한 자쯤 되는 것이 가지는 모두 남쪽으로만 쏠려 깃발처럼 나부끼고 있다. 아마 지세가 높고 추운 풍설에 시달려 그렇게 된 듯싶다.  

때는 바야흐로 산 살구나 진달래가 반쯤 지고 철쭉이 피어나며 나뭇잎이 무럭무럭 돋아나기 시작하는 좋은 계절이다. 

상봉은 평지로부터 겨우 일유순(一由旬)정도 떨어져 있으니 기후의 다름이 이와 같다. 반야봉의 서쪽은 지면이 평탄하고 넓지만 봉우리는 뚝 끊어져서 천 척(尺)의 절벽은 아래로 진남산(眞南山)의 시에 있는 이른바‘杉篁咤蒲蘇’라는 구절이 이것인가 싶다.  

낭떠러지 위 언저리에 둘러앉아 술잔을 서로 기울이다 보니 과연 우화등선(羽化登仙 )하는 기분이다.-자료출처 : 무등산(저자:박선홍)

 

지왕봉 위에는 뜀바위가 있다고 하는데 통제가 되어 올라가 볼 수가 없다.

김덕령장군은 이곳에서 뜀바위를 뛰어다니며 담력을 길렀고 훗날 백마능선을 달리던 백마를 타고 의상봉까지 한 걸음에 뛰었다는 전설도 있다. 실제로 의상봉에는 비마족바위라고 해서 말발굽 모양 4개가 뚫린 바위가 있다.

 

 

 

올라가 볼 수 없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지왕봉은 비로봉이라고도 하며 일제시대때 일본군 장교가 김덕령 장군의 뜀바위 전설을 듣고 '나도 해낼 수 있다'며  뛰었다가 추락사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은 인왕봉에서 바라본 무등산 중봉과 사양능선. 인왕봉은 각종 통신시설이 들어차 있어 사진촬영 불가.

 

 

 

지왕봉(비로봉)을 배경으로 무등산 정상 등정 기념샷

 

 

 

 

 

 

 

 

 

 

산 정상에는 석축을 쌓은 흔적도 보이고...

 

 

병풍처럼 선돌로 둘러쌓인 지왕봉(비로봉)

 

 

무등산 정상개방에 맞춰 관련단체에서 많은 수고를 해 주었다.

임시로 설치된 화장실과 음료대 등 정상을 찾은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돋보였으며 무엇보다 우리 군인들의 친절하고

늠름한 모습이 반가웠다. 하지만 이 정상은 결국 광주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올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이렇게 지왕봉만 찍을 수 있다. 아름다워야할 무등산 정상은 군부대의 주둔으로 정상으로서의 품위를 잃어 버렸다. 커다란 녹색페인트를 칠한 건물들과 각종 무선장치,그리고 정상을 깍아내고 설치한 주요기지 등 , 더군다나 지왕봉은 볼성사나운 시멘트계단을 설치하여 환경파괴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답고 장엄한 지왕봉을 둘로 갈라놓은 시멘트계단에서 속절없이 흘러나오는 안타까운 탄식에 무등산 정상은 괴로웠다.

그래도 이 괴로움을 우리시대에서 끝내야 한다. 우리의 후손은 이 아름다운 정상을 되찾을 권리가 있다. 부디 정상을 시민들에게 되돌려

달라고 외치고 싶다..국민의 볼 권리와 자연보호 보다 국가안보가 더 우선인 현상황이 우리시대에서 끝나길 마음속으로 기원해 본다

 

 

 

이제 무등산 정상을 벗어나 군부대 정문을 통과하여 무등산 북봉(누에봉)방향으로 내려간다.

 

 

뒤 돌아본 천왕봉 일부와 지왕봉

 

 

누에봉으로 내려서는 군작전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우측으로 또 다른 입석무리를 본다.

이곳은 신선바위로 군 통제권 안에 있어 들어가 볼 수가 없다. 멀리서나마 그 멋진 모습을 담아 본다.

 

 

신선바위가 있는 이곳은 모두 8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으며 우측 바위쪽으로 난 석문을 통과해 올라가면 마치 신선들이 앉아 바둑을 둘 만한 편평한 바위가 나온다고 하며 그 옆으로 화순쪽을 바라본 사람얼굴 형상의 바위가 신선바위라고한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이 대단하다고 하는데...언제나 그 광경을 보게될까.

 

 

신선바위를 지나면 바로 누에봉으로 갈 수 있다.

누에봉에서 꼬막재로 바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꼬막재로 내려서서 계속해서 윤필봉, 투구봉, 의상봉 등 무등산 오지 탐험에 나서본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 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탐험대 simpro) 트위터http://twitter.com/huha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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