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여행)신비의 샘물, 장성 영천방울샘

2014. 7. 25. 07:05전라남도 견문록/장성 견문록

 

배움여행 여유를 마치고 장성에서 광주로 돌아오면서 들른 곳이 있습니다.

바로 장성 영천 방울샘입니다.

전남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는 임진왜란 의병장 제봉 고경명의 신도비와 묘소가 있는 곳으로 지난 해 봄 광주 삼충신 중 한 사람인 제봉

선생의 신도비와 묘소를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영천 방울샘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이 샘은 둘레 15m, 높이 2m, 수심 1m, 면적 145㎡의 타원형 우물로 영천(鈴泉)이란 이름은 물이 마치 방울처럼 솟아올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방울샘에는 수령 3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방울샘을 지키고 있습니다.

 

 

방울샘에서 불태산 이재산성으로 산행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방울샘의 시원은 오동촌마을이 400여 년 전에 형성되었기에 공동우물이었던 방울샘도 약 400년 전 지어졌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방울샘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대동지지(大東地志)』인데, 이 책에는 방울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소개되어 있지 않고 소재지만 기록되어있다고 합니다.

샘가를 석축으로 쌓고 석축 맨 윗부분과 샘 주변으로는 대리석을 둘렀으며, 아래로는 배수로가 나 있습니다.

1931년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된 후 1991년 다시 정비하였으며, 2001년 9월 27일 전라남도기념물 제186호로 지정되었고 봉황산과

제봉산 사이 오동촌(梧桐村) 입구에 있어 주변 200여 호 주민들의 식수원이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방울샘은 용이 승천한 용소로 알려져 사람들이 접근을 꺼려했으며 300여 년 전 용왕제를 지내고부터 식수로 사용하기 시작했다합니다.

그러다보니 영험이 높아 국가의 길흉대사를 예견하여 물빛이 변하는데, 붉은색으로 변하면 병화(兵禍)가 있고 검은색으로 변하면 질병이 많고 흰색으로 변하면 풍년이 든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동학농민운동과 6·25전쟁 등이 일어났을 때는 샘물이 붉은색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옵니다. 샘물의 온도가 일정하여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이곳 주민들은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마을 당산나무의 당제와 함께 이 방울샘에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 오전에 당산나무와 방울샘 주변에 금줄을 치고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한 다음 밤 11시쯤에 당산할아버지에게 먼저

제를 올리고 방울샘으로 옮겨 샘제를 지낸 다음 마지막으로 당산할머니에게 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자갈 틈 사이에서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오더니 물 표면에서 둥근 파장을 형성하며 퍼져 나갑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자연적인 현상으로 지표 가까이에 노출된 지하 대수층은 지표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형성되고, 지질은 석회암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형적인 위치와 석회암의 화학적 변화로 샘물이 방울처럼 솟아오르거나 색깔이 가끔씩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이니 전설은 그저 전설일 뿐인 것입니다.

 

 

방울샘에는 수령 3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방울샘을 지키고 있습니다. 

 

 

방울샘의 전경입니다.

방울샘의 형상은 위에서 봤을 때 물방울 형상을 하고 있다합니다. 방울샘을 의미하는 영천이 벽면에 새겨져있습니다.

바닥에 자갈이 곱게 깔려져 있는 조그만 샘물은 공기 입자가 뽀글거리며 자갈들 사이에서 솟아올라 퐁퐁 터지면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갑니다.

1년 내내 15~17도의 수온을 유지하고 있어서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여름에는 냉풍이 불어올 정도로 시원하다고 합니다.

공기방울들은 용왕이 숨을 쉬고 있어서 나온다고 하며 샘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는 용왕의 사자들이므로 절대 잡지 않는다고 하네요.

방울샘은 이른바 좌청룡 우백호의 명당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백호는 봉황새(황凰)이 둥지를 튼다는 황소봉이요, 왼쪽 청룡은 봉황새

(봉鳳)가 날아들어 노닌다는 제봉산으로 봉황이 알을 품고 있다는 '봉황포란형'이라고 합니다.

봉황은 예로부터 오동나무에서만 노닌다고 하여 마을이름이 오동촌입니다.

 

 

 

방울샘의 뒤쪽의 집은 ‘전 전남도지사 김 재식’의 연구실 겸 가옥입니다.

그런데 회사간판처럼 벽면에 ‘쌀의 집’ 이라고 큼직하게 쓰여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김재식 전 지사는 농림부 장관에 전남 도지사까지 역임했으며 쌀에 대한 집념으로 벼 종자를 일본에서 구해와 한국에 맞는 품종으로 개발했다고 합니다. 이곳이 바로 품종개량 연구소였다는 것입니다.

 

샘 주변에는 샘을 보수한 사실이 기록된 빗돌이 서 있는데요, 비석에는 ‘호남 명승 영천’ 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우측 비문에는 ‘영천수축실적(鈴泉修築實積)’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으며 1931년에 공사를 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991년에 재정비 하면서 석축 위에 대리석을 올리고 배수로를 정비하고 우물 바닥에 자갈을 넣었다고 하는데, 설계감독 기관과 마을 대표자의 성명, 준공 날짜 등이 적혀있습니다.

 

 

 

 

방울샘의 우측에는 노농(호) 김재식 도지사의 불망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 일신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청렴하게 관직을 수행하고 우량 벼 품종 개발에 헌신의 노력을 다한 농민의 스승이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방울샘을 지키는 거북이 두 마리가 보입니다.

마을 주민에 의하면 예전엔 이보다 더 웅장하고 멋진 거북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굴꾼에 의하여 도난 당한 뒤 일반 대리석으로 다시 만들어 세웠다고 하네요 .

 

 

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500 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마을을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바로 당산나무인 것입니다.

봉황산과 불태산 사이 계곡에서 발원한 하천이 마을을 둘로 나누며 지나갑니다.

두 마을은 10개 정도의 다리로 연결되었는데요, 다리들은 거의 모두 1970년대 초반 새마을 운동이 한참일 때 지어졌습니다.

계곡물은 송사리, 피라미 등이 유유히 헤엄을 치고 놀 정도로 깨끗합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마을 아낙들이 빨래를 했던 빨래터도 보입니다.

 

영천방울샘 근처에는 보해소주공장이 있습니다.

모든 음료와 술이 그러하듯 물을 무엇을 쓰냐에 따라 맛이 틀려집니다. 즉, 술과 음료는 좋은 물이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보해소주는 1950년대 물맛 좋다는 목포에서 시작했지만, 영산강하구언이 생기고 주택들이 많아지면서 지하수 물맛이 예전같이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해소주가 제2공장을 세운 곳이 바로 영천샘이 있는 장성군 영천면 오동촌 입구였던 것입니다.

지금 목포와 장성 2개의 공장에서 잎새주와 매취순 등을 만드는데 물은 모두 장성 오동촌 것만 사용한다고 합니다.

 

장성. 물이 좋아 인물이 많이 나는 곳일까요?

필암서원의 주인공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1510~1570)는 호남지방의 유종(儒宗)으로 추앙받는 분입니다.

그 외 현대에 들어서 김황식 국무총리도 장성출신이지요.

이번 배움여행 여유를 통해 장성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된 아주 소중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글,사진 : 포토뉴스코리아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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