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여행)국보와 보물이 수두룩한 천년고찰 가지산 보림사

2014. 9. 3. 07:00전라남도 견문록/장흥 견문록

 

장흥 가지산보림사(迦智山寶林寺)

가지산하면 한국의 100대 명산인 경남밀양,경북청도,울산울주 등 3개 시군에 걸쳐있는

영남알프스 가지산(1,240m)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남진 전남장흥에도 작고 아담하지만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가지산(510m)이 있습니다.

정상에 돌을 깎아 세운 듯한 큰 바위 4개(큰니바우)가 높이 솟아 있어 옛날엔 니바우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산아래 달마(達磨)의 선법(禪法)을 처음 전한 통일신라 헌덕왕 때 도의국사(道義國師)가 개산(開山)한 보림사(寶林寺)가 있습니다.

보림사는 9산문(九山門)의 하나로 고려 말기 9산문이 모두 쇠운에 빠졌을 때 보림사의 태고화상(太古和尙)이 왕사(王師)로 있던

1356년(공민왕 5)에 구산문을 통합하여 일가를 이루었으며, 그 후 문풍(門風)을 후대에 전했다고 합니다.

그 보림사를 만나러 가 보겠습니다.

큰 규모의 보림사 일주문이 있으나 편액은 걸려있지 않습니다.

의외였으나 곧 의문은 풀렸습니다.

 

 

보림사가 있는 가지산에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 있습니다.

비자나무와 녹차밭이 보호대상인데 전체 3ha 중 비자림이 무려 1ha나 되군요.

 

 

가지산으로 올라가는 등로가 있습니다.

3년 전 이 산을 올랐는데 정상까지 1.8km밖에 되지 않고 산세가 험하지 않아 오르기에 무리가 없습니다.

 

가지산 보림사옆으로 비자나무 산림욕장이 있습니다.

 

 

 

보림사에는 2개의 국보와 5개의 보물이 있습니다. 원래 대웅전도 국보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 때

천왕문과 사천왕·외호문(外護門)만 남기고 모두 불타버렸다고 합니다.

그 국보와 보물들을 만나러 가 볼까요?

지금 보는 것은 보림사 들어가기 전 오른쪽에 있는 부도입니다.

 

 

맨 위에 있는 이 부도가 보림사 동부도(보물 제155호)입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이 보물의 설명을 보니, 동승탑(東僧塔)은 동쪽의 승탑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승려의 사리를 두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기단(基壇)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얹었는데,

각 부분이 8각으로 깍여져 있다고 합니다.

 

 

 

 

3단으로 된 기단의 맨아랫단과 맨윗단에는 8잎의 연꽃잎을 둘러 새기고 각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얹은 모습으로,

가운데는 8각의 기둥을 낮게 두었습니다.

탑신은 한 면에만 자물쇠가 달린 문짝 모양을 새기고, 지붕돌은 다른 부분에 비해 좁고 낮은 편으로,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중간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위아래를 나누어 장식하였는데, 그 완전함만큼이나 세심한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입니다.

 

 

전체적으로 탑신의 위부분이 높게 이루어진 반면, 기단의 가운데받침돌이 작고 낮아 안정감이 떨어지지만,

잘 정돈된 구조가 돋보이며 머리장식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도 이 승탑의 소중함을 더하고 있다고 합니다.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졌으면서도 고려 전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승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답니다.

이 승탑은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되었군요.

 

 

보림사 동부도를 보고 이제 보림사로 들어가 봅니다.

대개의 사찰이 산속에 있는 것에 비해 보림사는 가지산 아래 평지에 있어 신라시대 사찰의 특징인 평지사찰을 보여주고 있군요.

 

 

보림사 일주문으로 3년전에 왔을 때는 외호문이라 밑에 적혀있었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외호문은 한국전쟁 당시 다음에 보이는 사천왕문, 천왕문만 화마를 면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에 본 일주문은 무엇일까요? 보림사에는 언듯보면 일주문이 2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장면입니다.

 

 

보림사 일주문에는 가지산보림사라는 편액과 선종대가람이라는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본당에 이르기전에 사천왕문이 보이군요.

 

 

 

 

보림사 사천문입니다.

이 전각과 사천왕상도 한국전쟁 당시 화마에서 벗어났군요.

당시 재로 변한 건물만 20여 동이었다고 하니, 한국전쟁 이전에 보림사는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천문 다음에 아름다운 두개의 석탑과 석등이 보이고 뒤로는 대적광전이 보입니다.

 

 

 

보림사 목조사천왕상은 보물 제1254호입니다.

대개 모든 절의 사천왕상은 임진왜란때 불에 타 소실되었으나 보림사의 사천왕만은 1515년(중종10년)에 조성된 것으로,

현존하는 천왕문 목조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임진왜란 이전의 것으로는 유일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각부의 조각이 섬세할 정도로 매우 우수해 조선시대 사천왕상의 기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혹시 이곳에 가시는 분들은 사천왕상을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보통 사천왕은 마귀를 발로 짓밟고 있는 형상이지만 이곳의 사천왕상은 눈이 동그란 마귀가 동방지국 천왕의 발을 들어 받들고

있는 것이 특색이라고 하며, 남방증장천왕, 동방지국천왕, 북방다문천왕, 서방광목천왕이 금강역사들과 같이 있습니다.

 

좌측으로는 보림사 성보박물관이 있군요.

 

 

 

 

보림사의 국보가 있는 대적광전입니다.

대적광전 앞에는 국보 제44호인 보림사 석조삼층쌍탑과 석등이 있으며 이들 작품은 모두 신라시대 작품입니다.

두 탑은 구조와 크기가 거의 같으며, 2단으로 쌓은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놓고 머리장식을 얹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으로 석등도 마찬가지로 전 부재를 잘 갖추었습니다. 

기단은 위층이 큰데 비해 아래층은 작으며, 위층 기단의 맨윗돌은 매우 얇습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 쌓았으며, 각 층 몸돌에 모서리기둥을 새겼는데, 2·3층은 희미하게 나타납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계단형으로 5단씩이고, 처마는 기단의 맨윗돌과 같이 얇고 평평하며, 네 귀퉁이는 심하게 들려있어 윗면의

경사가 급해 보이고, 탑의 꼭대기에는 여러 개의 머리장식들을 차례대로 가지런히 올려 놓았습니다. (문화재청 자료인용)

 

 

석등도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등 모습으로, 네모꼴의 바닥돌 위에 연꽃무늬를 새긴 8각의 아래받침돌을 얹고,

그 위에 가늘고 긴 기둥을 세운 후, 다시 윗받침돌을 얹어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받쳐주도록 하였습니다.

화사석은 8각으로 4면에만 창을 뚫어 놓았고, 그 위로 넓은 지붕돌을 얹었는데 각 모서리 끝부분에는 꽃장식이 되어있습니다.

석등의 지붕 위에도 여러 장식들이 새겨있어 그 아름답고 화려함이 바로 국보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문하재청 자료인용)

 

 

 

보림사 석탑과 석등은 모두 완전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특히 탑의 머리장식(상륜부)은 온전하게 남아 있는 예가 드물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탑 속에서 발견된 기록에 의해 석탑은 통일신라 경문왕 10년(870) 즈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기에,

석탑과 더불어 석등도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이 석탑과 석등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1140년 전에 세워져 지금까지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석탑과 석등이 너무 아름다워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무려 1100년 전의 작품입니다.

경주 불국사의 국보21호 석가탑은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졌다고하니 보림사 석탑의 810년에 60년 앞서있군요.

전체규모는 석가탑에 비해 작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은 석가탑 못지 않습니다.

 

보림사 대적광전에는 또다른 국보가 있습니다.

바로 국보 제117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으로 철로 만든 불상이며,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는 없고 불신(佛身)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불상의 왼팔 뒷면에 신라 헌안왕 2년(858) 무주장사(지금의 광주와 장흥)의 부관이었던 김수종이 쇠2,500근을 시주하여 불상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서 정확한 조성 연대를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몇 안되는 중요한 불상입니다.

 

 

만든 연대가 858년으로 확실하기에 당시 유사한 비로자나불상의 계보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신라말부터 고려초에 걸쳐 유행한 철로 만든 불상의 첫번째 예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학술적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합니다.

이 비로자나불상은 원래 대웅전에 있었으나 대웅전이 불타 없어지자 후대에 대적광전을 지어 옮겨 모셨다고 하니,

1,000년도 넘는 세월, 전쟁통의 화마도 견디며 고달픈 중생을 굽어살피는 모습에 절로 삼배를 하게 만듭니다.

 

 

 

보림사 대적광전의 꽃살창호를 보니 예전 인터뷰했던 꽃살창호 장인 임종철씨가 생각나군요.

대개의 사찰의 꽃살창호는 좌우대칭이나 보림사 대적광전의 꽃살창호는 좌우 비대칭이지만 묘한 균형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창호 문살은 건축의 격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꽃살 창호는 궁궐의 정전과 사찰의 대웅전에서만 쓸 수 있다고 합니다.

 

 

 

보림사를 한 화면에 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나마 대적광전쪽에서 바라본 보림사 전경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군요.

 

 

보림사 대웅보전은 2층전각으로 매우 아름답게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대웅보전은 창건 당시의 건물이 아니라 최근 들어 복원된 것입니다.

대웅보전의 본래모습은 조선 초기에 지어진 2층의 법당이라고 하며 한국전쟁 전에 이미 국보 204호로 지정되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공비의 소굴이라 하여 군경토벌대에 의해 불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대웅보전을 비롯 20여 동에 이른 수많은 문화재들이 한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고, 국보 204호의 영예는 개인이 소장한

'대방광불화엄경주본'이 이어받아 보림사의 국보 204호 대웅전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보림사 동종입니다.

원래있던 동종은 보림사가 폐찰위기에 있을때 시왕상과 동종을 내장사로 옮겼다고 하는데,

그 동종은 지금 전북 유형문화재 49호로 지정되어 내장사에 보존되고 있습니다.

명문에는 ‘乾隆三十三年 戊子十月 日長興寶林寺明正庵中鐘鑄 成尹光衡 大禪師光學 化主德周 別座來應 施主秩 大施主尹光衡 趙漢寶爲化父母 趙仁九 梁氏兩主 林奉□ 妻安氏(건륭33년 무자10월 일장흥보림사명정암중종주 성윤광형 대선사광학 화주덕주 별좌내응 시주질 대시주윤광형 조한보위화부모 조인구 양씨양주 임봉□ 처안씨)’로 기록되어 있는데, 영조 44년(1768)조한보가 부모를 위해 주성하여 장흥 보림사 명정암에 공양한 동종으로 원주인은 보림사인데 내장사에 있는 것이 궁금합니다.

그렇지만 내장사가 중건된 후 전라남도 보림사(寶林寺)에서 옮겨온 것으로 일제 말기에는 놋쇠 공출을 피하여 원적암(圓寂庵)에 감추었고, 한국전쟁 중에는 정읍시내 포교당에 피난시켜 보전을 꾀하였다고 하니 이 동종의 주인은 누가되어야 할까요?

 

 

보림사 삼성각

 

 

보림사 미타전 뒤로 거대한 소나무가 특이합니다.

 

 

보림사 아미타전에는 석불입상이 모셔져 있는데, 원래 이 석불은 제암산 중턱의 의상암지에 있던 것을 1975년 장흥교도소 앞으로

옮겼고 1994년 보림사로 다시 옮겨 모셨다고 합니다.

조성시기는 통일신라시대 말기로 추정되며 미타정인(아미타불의 수인)을 보여주고 있어 미타전에 모신 것입니다.

 

 

 

보림사 조사전.

 

 

보림사 명부전.

 

 

이제 보림사의 다른 보물들을 만나러 갑니다.

대웅보전 뒤편의 작은 언덕에 위치한 보물입니다.

바로 보림사를 창건한 보조선사 체징의 승탑인 보물 제157호와 보물 제158호인 창성승탑비입니다.

 

 

보물 제158호인 보조선사창성탑비입니다.

탑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으로 보조선사 체징(804∼880)은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어려서 출가하여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흥덕왕 2년(827)에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받았다고 합니다.

희강왕 2년(837)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멀리서 구할 필요가 없음을 느끼고, 문성왕 2년(840)에 귀국하여

많은 승려들에게 선(禪)을 가르쳤다고 하네요.

헌안왕 3년(859) 왕의 청으로 보림사의 주지가 되었으며, 77세의 나이로 입적하였고, 왕은 그의 시호를 ‘보조선사’라 하고,

탑이름을 ‘창성’이라 내렸다고 합니다.

 

 

비는 거북받침돌의 머리가 용머리를 하고 있어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나운 모습이며, 등 뒤에는 육각형의 무늬가 전체를 덮고 있습니다.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에는 구름과 연꽃을 새겨 장식해 놓았으며, 비몸돌에는 보조선사에 대한 기록이 새겨져 있는데,

김영이 비문을 짓고 김원과 김언경이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

머릿돌에는 구름과 용의 모습을 웅대하게 조각하였고, 앞면 중앙에 ‘가지산보조선사비영’이라는 비의 명칭을 새겼습니다.(문화재청)

통일신라 헌강왕 10년(884)에 세워진 비로, 비의 섬세한 조각기술에 그저 감탄사만 나올 뿐입니다.

 

 

보조선사 창성탑비 위로는 바로 보조선사 창성탑이 있습니다.

바로 보림사를 창건한 보조선사 체징의 승탑으로 보물 제157호입니다.

 

 

보조선사의 승탑은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다른 사찰의 오래된 부도와 달리 중대석을 높게 한 것이 특이하다고 합니다.

 

 

중대석의 모양도 배가 부르게 표현하고 안상을 새겼으며 상대석과 지붕의 폭을 줄여 탑 전체가 날씬해 보이는 것이 특색입니다.

 

 

승탑의 탑신에는 사천왕상을 새겼는데 옷자락의 섬세한 표현까지 매우 뛰어난 조각 기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탑 문비의 자물쇠장식과 그 위의 도깨비 얼굴(鬼面), 꽃문양 등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석공들의 예술적 감각이 얼마나

세련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부분이 살짝 훼손된 것에 비하면 뒷부분은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보림사는 한국전쟁 이후 최근들어 복원불사가 이루어졌는데, 당우들의 배치가 다소 산만해 보입니다.

범종각이 홀로 댕그렇게 서 있어 더욱 그런가 봅니다.

 

 

보림사 감로정.

 

 

보림사 대웅보전.

 

 

보림사종무소

 

 

이제 천년고찰 보림사를 나와 보림사 인근에 있다는 보물 서부도를 만나러 갑니다.

 

 

보림사를 나와 하천을 따라 좌측으로 조금 더 가면 마을이 나오는데, 이 마을 뒤쪽에는 보림사 서승탑(보물 제156호)으로 지정된

2기의 승탑이 있습니다.

바로 다리 건너 오른쪽 산 밑에 보이는 암자에 있습니다.

 

보림사 암자임은 분명한데 암자의 이름이 없군요.

 

 

먼저 암자 뒤쪽에 있는 승탑을 봅니다.

암자 앞에 있는 승탑은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에 비해 뒤 쪽의 승탑은 관리가 조금 부실해 보입니다.

승탑도 뒤로 조금 기울어 전체적으로 불안정해 보이며, 탑신에 자물쇠가 달린 문 모양이 조각돼 있어

마치 보조선사 창성탑의 일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암자 앞에 있는 승탑입니다.

 

 

앞서 본 것이 지대석이 없던 것에 비하면 암자 앞의 승탑은 네모꼴의 지대석 위에 놓여있어 안정감이 드는군요.

2기의 승탑은 모두 고려시대 중기에 조성된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보림사 서부도를 보고 나오면서 보니 가지산 봉덕계곡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장흥읍을 관통하는 탐진강의 상류로 장흥군민들의 하계 피서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보림사를 품고있는 가지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수려한 산세와 더불어 이렇게 길고도 깨끗한 계곡도 품고 있습니다.

보림사에서 시작하여 보림사로 되돌아오는 약2시간30분정도의 산행길은 산행초보자나 노약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으로,

보림사 주변에는 150년 이상된 비자나무숲과 소나무숲, 녹차밭 등이 있어 봄부터 가을까지 그윽한 녹차향과 피톤치드향이 심신의

피로를 풀어줍니다.

 

장흥에 가시거든 자연이 주는 치유의 선물로 마음과 정신을 안정시키고 피로를 회복시키며 낭만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가지산과

보림사에 들러 신라 말 원표대사가 인도에 있을 때 신이한 기운이 삼한의 밖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비쳐와 그 기운만을 바라보고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장흥땅 신비한 산 아래 자리를 잡고 산세가 인도의 가지산, 중국의 가지산과 같아서 가지산이라 명하고 지은

암자로 시작되어 보조선사 체증이 창건한 천년고찰 보림사(寶林寺)를 꼭 들러보세요.

수많은 국보와 보물들에서 천년의 향기를 맡을 수 있으며 가지산이 주는 신비로운 기운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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