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여행)나라의 길흉을 예견한 장흥 용산면 푸조나무

2014. 9. 15. 07:00전라남도 견문록/장흥 견문록

 

장흥은 바다를 끼고 있지만, 숲도 매우 울창해 보물급 숲과 나무들이 참 많습니다.

숲과 바다, 산과 강, 자연과 사람이 한데 어우러진 장흥의 최고 명소는 바로 우드랜드입니다.

우드랜드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으로, 맑은 공기가 가득한 상쾌한 숲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어

숲의 왕국이라 칭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우드랜드 외에도 장흥 곳곳에선 보물 같은 천연기념물 나무들을 만날 수 있는데요,

오늘 소개할 나무는 장흥에 딱 세그루 있는 천연기념물 나무 중 천연기념물 제268호인 장흥 용산면 푸조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24m 높이의 거대한 수고에 400년 풍상을 쉼 없이 살아온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나무입니다.

 

 

 

푸조나무는 중부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나무로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입니다.

어긋나기로 잎이 나고 모양은 달걀 또는 좁은 달걀 모양입니다.

가장자리에 뾰족한 톱니가 있고, 5월에 피는 꽃에 달리는 열매는 자줏빛을 띤 검은색으로 맛이 달고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푸조나무는 부산 수영구 수영동, 강진 사당리, 하동군 화개면 법왕리에도 있는데 우리나라의 푸조나무 중

가장 큰 것 중의 하나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습니다.

푸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키 큰 나무로 서해안을 따라 경기도에 걸쳐 따뜻한 지방의 하천과 마을 부근에 많이 자랍니다.

곰솔, 팽나무와 함께 소금기 섞인 바닷바람에 잘 견디기 때문에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에 적당하고 팽나무와 비슷해서

곳에 따라서는 개팽나무, 개평나무 또는 검팽나무라 불리기도 합니다.

 

이 나무의 나이는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가 24m, 가슴높이의 둘레는 6.40m로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 옆 공터에서

자라고 있으며, 줄기에 굴곡이 많고 밑동은 잘 발달된 보디빌더처럼 울뚝불뚝합니다.

가지가 닿는 곳까지 나무 1그루가 차지하는 면적은 무려 314㎡(약 95평)이고 그 가지는 동쪽으로 18.5m, 서쪽으로 14m,

남쪽으로 17.5m, 북쪽 18m까지 퍼져 나가 거대한 몸집을 자랑합니다.

 

 

 

약 400년 전에는 이곳에 여러 그루의 나무가 있었지만, 유독 이 나무만 남겨 마을의 정자목(亭子木)과 신목(神木)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 나무의 잎이 피는 상황으로 농사의 풍흉과 국가의 길흉을 점쳤는데, 잎이 힘차게 고루 피면 나라가

태평하고 풍년이 들며, 잎이 늦게 피거나, 고루 피지 않을 경우에는 흉년이나 질병 또는 재난으로 나라가 어지럽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국가의 태평과 마을의 풍년, 그리고 질병 없는 한해가 되도록 당산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 이 푸조나무 널따란 나무 그늘아래 동학농민군이 집결했다고 합니다.

장흥의 동학지도자 이방언을 필두로 모인 농민군은 이곳에 집결해 전투를 위해훈련을 했다고 하는데요,

이방언은 학식과 덕망을 갖춘 선비로 1888년 전라감사와 담판을 지어 무리한 조세를 시정하는 등 지역에서 높은 신망을 받았으며,

갑오년 전봉준의 무장기포 당시 이인환, 강봉수 등과 함께 장흥지역 농민군을 이끌고 전봉준 진영에 합류해 장성 황룡전투를 지휘,

대승을 거두어 남도장군이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이후 전봉준을 비롯한 지도부가 모두 체포된 이후 3만 명이 넘는 농민군이 참여해 항전을 계속하다 2,000명 이상이 사망한

동학농민혁명의 최대·최후의 격전지인 1894년 12월 15일 장흥 석대들 전투 이후 25일 이두황 군사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흥선대원군과의 교분 때문에 재판 후 석방됐지만, 서울을 떠나 보성군 회천면 이의원의 집에 숨어 지내다 체포돼 1895년 4월 25일

외아들 성호와 함께 장흥 장대(현 장흥서초등학교 자리)에서 처형됐다고 합니다.

 

 

 

장흥에는 당시 석대들 전투에서 희생된 동학농민군의 영령을 추모하는 동학농민혁명기념탑과 당시 장흥부성을 수성하다

순절한 장흥부자 박헌양 등 관민 96위의 위패가 안치 된 남산공원 영회당이 있는데요, 당시 조선말 격변기에 아군과 적군으로 갈린

선조를 둔 후손들의 미묘한 입장차로 인해 1992년에 세워진 기념탑을 무려 12년이 지난 2004년에야 제막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렇듯 용산면 푸조나무는 마을의 신목으로 당시 의롭게 일어선 동학군들에게도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을 것이며 더 나은 나라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곳에서 전의를 불태웠을 것입니다.

 

 

 

장흥 용산면 푸조나무 앞에는 봉분처럼 생긴 것이 있지만, 이것은 봉분이 아니라 당산나무에 제사를 지내는 제의장소라고 합니다.

대나무 7개가 땅에 박아져 있고 그것들은 새끼를 꼬아 만든 금줄로 연결돼 있군요.

경상도와 남해안 일부에 남아있다고 하는데, 그 지역에서는 밥무덤 또는 흙무덤이라고 하고 당산제를 지낸 다음 제사에 올린 밥을

묻는 구덩이로 일부지역에서는 당산제를 지내고 밥무덤에도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보통 당산나무 아래나 마을에서 가장 정갈한 곳, 또는 마을의 동서남북 끝 등 적당한 곳에 주로 위치한다고 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http://blog.naver.com/yth4012/90158150301

 

 

 

장흥 용산면 어산리 당산나무인 푸조나무.

이곳에 사시는 어르신 두 분이 들려주신 당산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너무 소중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드시던 머리고기와 막걸리 나눠 주셔 감사히 마셨네요.

이제 막 담은 김치도 한 접시 가득 담아 주셔 집까지 가져와 잘 먹었습니다.

건강한 미소처럼 오랫동안 건강하게 장수하시길 기원합니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 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탐험대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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