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이 되어버린 곡성군 삼기면 원등리.

2014. 12. 15. 06:30전라남도 견문록/곡성 견문록

 

전남 곡성군 삼기면 면소재지인 원등리.

이곳은 부친이 광주생활을 접고 전혀 연고도 없던 곳에 새롭게 터전을 잡았던 곳으로 simpro가 22세 무렵 이곳에 들어왔으니

벌써 30년도 훨씬 지난 이야기가 되었다.

simpro의 고향은 광주지만, 여기서 보낸 세월이 30년도 훨씬 지났으니 지금은 기억에 없는 고향보다 삼기가 진짜 고향이 되어버렸다.

광주에서 태어난 simpro는 줄곳 광주에서 지내면서 부모님이 계시는 삼기에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왔으니 기억에도 없는 광주 탯자리보다

학연, 지연, 혈연도 없는 이곳에 훨씬 더 정이 든 것이다.

이제 반백이 넘은 나도 도회지보다 이런 시골풍경이 더 좋아 보이니 나이들어 은퇴하면 여우같은 마누라와 함께 시골로 내려가 두어 평되는 텃밭에 채소심고 그것을 반찬삼아 가마솥에 밥 지어먹고 장작불 넣은 황토방에서 등 지지고 살고푸니 그곳이 어딘들 어떠겠는가..

 

 

 

우리집은 부친이 살아계실때도 음력 10월 보름이면 제사를 모셨다.

4형제 중 세째인 부친은 모실 제사도 없건만 매년 음력 10월 보름 제사를 모시니 그 분은 바로 부친의 윗 형님으로

미혼의 나이에 돌아가시다보니 어머니 꿈속에 나타나 어머니께서 지은 밥을 꼭 먹고 싶었다고 하신다.

그래서 울 엄니는 훗날 영혼 결혼식도 시키고 지금껏  몇 십년간을 지극정성으로 제사를 모셔오고 있다.

 

 

어머니 연세도 이제 일흔 중반을 넘어서 언제까지 제사가 이어질 지 모르지만, 아직 나의 꿈이나 집사람 꿈에 오셔

조카들 밥 먹고 싶다는 말씀을 하지 않아 어머니 이후 계속 제사를 모셔야 할지 의문이다.

 

 

보통 제사를 자정 이쪽 저쪽에서 지내지만 현대적 분위기에 맞게 초저녁에 제사를 모시다 보니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광주에 있었더라면 자정 넘게 블로그질을 하고 있었을 것인데, 시골집에는 컴퓨터가 없어 모처럼 블로그질에서 해방되니

4년 묵은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깊은 숙면으로 무려 10시간 가까이 자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집 옥상에서 바라 본 곡성군 삼기면 원등리 1구(의동마을) 풍경이다.

10년 전만 해도 이곳에서는 추석이나 설 때는 노래자랑 등 동네 잔치를 벌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없을 정도로 대개의 시골이 그렇듯 명절때는 조용하기만 하다.

 

 

 

블로그질 하면서 여태껏 집에 있는 감나무와 자두나무만 포스팅했지 고향이나 다름없는 삼기면에 대한 포스팅이 없어

날은 춥지만 카메라를 들쳐메고 나가보았다.

30년 동안 수없이 드나들었지만, 정작 마을 구경은 손에 꼽을 정도니 옛기억속의 마을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곡성 삼기천이 흐르는 동네..

예전엔 참으로 물이 깨끗했는데, 요즘은 그닥 깨끗하지는 않다.

 

 

 

웅장했던 버드나무도 이제 볼품이 없어져 버렸다.

태풍 볼라벤때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마을 정자.

삼기천을 끼고 있어 여름엔 시원하나 겨울엔 꽁꽁 얼어버린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빨래하던 곳.

 

 

 

연어의 최종 종착지라는 표지판이 있지만, 과거 이곳까지 연어가 올라왔는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다.

 

 

 

정미소 광장에서 바라본 원등리1구

 

 

 

삼기정미소

 

 

 

정미소 앞 큰샘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내동마을의 유산이다.

 

 

 

 

원등리 2구(내동마을)로 들어가는 도대문

삼기면은 곡성군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호남고속도로 곡성톨게이트가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곡성군에서 제일 높은 통명산(764.8m)과 최악산(728m)이 병풍처럼 삼기면을 감싸고 있다.

 

 

 

 

 

 

멀리 오른쪽 끝에 보이는 산이 최악산,

그리고 그 뒤로 곡성 진산 동악산까지 가는 능선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메주.

아직도 집에서 메주를 만드는 가정이 있는 모양이다.

 

 

 

원등 2구회관가 승용차가 세원진 앞에도 빨래터가 있다.

 

 

 

원의협동교에서 바라본 삼기천. 그리고 멀리 최악산과 동악산

 

 

 

 

 

 

여기도 빨래터가 있다.

 

 

 

곡성삼기우체국

 

 

 

곡성삼기종합복지센터

 

 

 

복지센터 앞 버드나무

 

 

 

원등리 4구(학동마을) 경로당

 

 

 

삼기면 파출소 앞에서 삼기초등학교 방면

 

 

 

곡성농협 삼기지점

 

 

 

농협 하나로마트

마트 바로 옆으로 면사무소로 올라가는 길.

 

 

 

삼기면 청년회관

 

 

삼기면사무소로 올라가는 길

 

 

삼기면사무소

정병규 면장 등 12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충혼탑

 

 

 

 

면사무소 입구의 보호수

 

 

 

수령 330년의 느티나무

 

 

 

오래전 좁은 길을 넓혀 소재리를 관통하는 길이 조금 넓어졌다.

 

 

 

 

원등교회 들어가는 길도 복개가 되었다.

 

 

 

원등교회

 

 

 

 

 

삼기초등학교 학습장

 

 

 

곡성삼기초등학교와 실내체육관

6학급에 약 40여 명의 학생이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옥과방면에서 들어오는 곳에 있는 보호수는 약 470살.

 

 

 

 

최악산

 

 

 

삼기면은 백제 개로왕 이전에는 석정(현 금반 2구)에 위치하였다고 하며, 백제 문주왕(서기 485년)때 욕내에 속하였고

신라 경덕왕 16년(서기 757년)에 곡성이라 개칭함에 따라 곡성군에 속하였다.

경술국치(서기 1910년) 이전 조선에는 삼기면 원등리(제어덕)가 옥과현 겸방면에 속했고, 여타 마을은 곡성현의 삼기면에

속해 있으면서 향약의 향장을 두어 통치해 왔었으며, 서기 1910년 10월에 면장으로 개칭하였고, 서기 1914년(갑인) 3월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를 폐합하여 삼기면이라 개칭하여 현재 26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총 956가구에 1,889명의 인구가 살고 원등1리(의동마을) 등 26개의 자연마을이 있으며, 면소재에는 5개 마을이 있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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