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여행)영랑 김윤식과 용아 박용철, 정지용의 강진 시문학파 기념관

2017. 5. 12. 06:00전라남도 견문록/강진 견문록


한국 서정시의 요람 강진 시문학파 기념관



영랑과 강진은 영랑과 용아 박용철처럼 땔 레야 땔 수 없는 관계이다.

인구 4만여 명의 조그만 군단위에 숱하게 붙은 영랑으로 시작하는 간판만 봐도 알 수 있다.

강진의 수많은 영랑과 관계된 명소 중 강진 시문학파기념관이 있다.


시문학파기념관은 1930년대 순수시 운동을 전개했던 시문학파라는 문학동인회를 기념하는 곳으로

특정 문인이 아닌 유파 전체를 한자리에 아우르는 문학관은 시문학파기념관이 전국 최초라고 한다.




그 동인들은 영랑 김윤식, 용아 박용철, 정지용, 위당 정인보, 연포 이하윤, 수주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 보 등으로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이었으며, 그중 김윤식과 박용철, 정지용은 시문학파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1층 입구에 시문학파 동인 9명의 대표시가 현수막에 걸려있다.

거의 모두 한 번쯤 학창시절에 들어보거나 읊어 본 시로 기억 한편에 녹슬어 있던 시를 다시 불러내주어 반갑기만 했다.

시문학파기념관은 2층으로 되어있으며 1층엔 전시실, 세미나실, 도서관, 학예연구실 등이 있고 2층은 시인의 전당, 북 카페, 테라스가 있다.

 




 

기념관 2층은 시문학파 전시실과 북 카페가 있다.





북 카페에서는 윤춘영 가죽공예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실에는 영랑 김윤식, 용아 박용철, 정지용, 연포 이하윤, 위당 정인보, 수주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보 등 아홉 시인의 육필 및 유품, 저서, 1920~50년대 문예지 창간호 30여종, 1920~60년대 희귀도서 500여종 등이 전시되었으며 시집 단행본 5천여 권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다.







상단은 희귀본 시집이다.  

근대문화재로 등록된 소월의 진달래꽃, 한용운의 님의 침묵, 심훈의 그날이 오면,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이 눈에 띈다.


중단 사진은 1910년대 이후 각종 문예지 창간호 등이다.  

특히 여명은 시문학파 변영로 선생의 시 <가련한 두 노국 소녀>와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가 처음 발표된 문예지로 문학사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지금은 찾을 레야 찾을 수 없는 희귀도서들이다


하단은 각종 교과서로 시문학파 동인들의 대표작들은 거의 모두 국어교과서에 실린 국민시이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변영로의 <논개>, 박용철의 <떠나가는 배>,신석정의 <슬픈 목가>, 정인보의 <매화사> 등은 국민 애송시로 지금도 몇 대목은 외울 수 있을 정도다.





 


1930년대 창간된 시전문지 시문학을 중심으로 순수시 운동을 주도했던 시인들을 시문학파라고 하는데, 시 문학파의 핵심인물은 용아 박용철과 영랑 김윤식이며, 여기에 정지용, 위당 정인보, 연포 이하윤의 참여로 창간호가 발간되었다.

 

뒤이어 수주 변영로김현구가 제2호에, 신석정허 보가 제3호에 동참하였으며, 시문학193035일 창간해 그해 520일 제2, 19311010일 제3호를 끝으로 종간되었다.






 

시문학은 당시에 풍미했던 카프문학과 감각적 모더니즘에 휩쓸리지 않은 채 이 땅에 순수문학의 뿌리를 내리게 한 모태가 되었다고 하는데 시문학파를 전후한 대표적 문학유파는 아래와 같다.


창조파 - 동인지 운동의 효시

폐허파 - 퇴폐적상징주의

백조파 - 감상적낭만주의

신경향파 - 사회적리얼리즘  

국민문학파 - 민족문학의 부흥  

해외문학파 - 순수시 운동의 선구  

시문학파 - 언어의 미의식 추구  

모더니즘 - 문명비평과 주지적 태도  

생명파 - 생명현상의 본질 탐구  

청록파 - 자연의 재발견








 

그럼 시문학파의 태동은 언제부터였을까?

시문학파기념과 홈페이지를 인용해 알아본다.

 

시문학파가 형성된 1930년은 일제의 문화통치(1920년대)에서 무단통치로의 전환기였다.

따라서 국내의 문단 상황은 일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목적의식은 같았지만, 사회주의식 문학운동과 순수민족문학운동간 심각한 대립 양상을 보였다.

결국 1925년을 기점으로 1935년까지 10년 간 지속된 프로문학파와 민족문학파간의 대립으로 1920년대의 문단현실에 1927년부터 해외문학파가 순수문학론을 들고 나옴으로써 문학논쟁은 한층 가열되는 계기를 맞았으며, ‘해외문학파에서 발아된 순수문학 운동은 시문학파에 이르러 구체화 되었고, 이 후 구인회와 모더니스트, 그리고 시원시인부락으로 이어지면서 1930년대 한국 현대시의 맥을 형성했다고 한다.








시문학파 전시관에 전시된 희귀본들과 시인의 일기 등을 만나본다.






시문학파 9인의 작품을 시청각으로 감상할 수도 있다.







시문학의 창간은 일본 유학시절부터 절친하였던 영랑 김윤식과 용아 박용철이 주축이 되고, 여러 문인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통해 한국 시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시문학파가 탄생했다.

 

일본 유학시절 아오야마(靑山) 학원에서 동문수학한 영랑 김윤식과 용아 박용철은 평생을 두고 시심(詩心)을 나누는 문우(文友)가 되었는데, “내가 시문학을 하게 된 것은 영랑 때문이여.” - 용아 박용철의 말, “수리의 천재로 교사의 칭찬이 자자하던 때 나는 작은 악마와도 같이 그를 꼬여내어서는 들판으로 산길로 끝없이 헤매게 만들었다.” - 영랑 김윤식의 말에서 보듯이 둘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이후 창간계획을 세우고 문우들이 동참하면서 1930년 봄, 순수시 동인지 시문학이 세상에 첫 선을 보였는데, 홈페이지에는 시인의 전당이 있어 시문학파 동인 9명의 소개를 받을 수 있으니 참고.






광주광역시 동구에 소재한 광주공원에는 영랑 김윤식과 용아 박용철의 우정을 그린 쌍시비가 있다.

영랑과 용아는 아름다운 시어로 시대의 아품을 함께 노래한 시인으로 둘 사이의 우정은 널리 알려져 있다.

둘이 마치 어깨동무 하듯 세워진 시비에서도 둘의 우정을 느낄 수 있으며 이런 쌍시비는 전국에서도 찾기 힘들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문학을 사랑한다.

시를 읽다보면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시문학파기념관을 둘러보고 영랑생가와 인근 금서당, 세계모란공원 등을 같이 여행한다면 영랑과 강진에 대한 사랑이 더 한층 묻어날 것이다.


시문학파기념관

개관 : 09:00~17:30  (무료)

휴관 : 매주 월요일, 11, 설날과 추석당일  

주소 :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4(남성리 222-2)  

주차장 : 영랑생가 주차장 (무료)

전화 : 061-430-3186~3188, 팩스 : 061-430-3189  

홈페이지 : http://simunhak.or.kr/




(글 : 포토뉴스코리아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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