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로 돌아 본 군산구불길 1코스 비단강길.

2017. 12. 27. 06:00전라북도 견문록/군산 견문록




군산구불길 1코스를 걷기 위해 장항선 군산역에 왔습니다. 비단강 길이라고 합니다.

코스 안내도를 보니 이렇게 쓰여있군요.


비단강길은 여러 명소 중 금강이 주인공이다. 비단처럼 펼쳐진 금강과 인접한 채만식 문학관, 금강철새조망대, 금강호 관광지, 오성산, 나포 십자들 등을 둘러보면서 문학과 역사, 자연과 생태가 어우러져 여행의 재미를 더 느낄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수 백 편의 군산구불길 1코스 도보 여행기를 보면 총 18.7km를 점심시간 포함 6시간 넘게 줄기차게 걸어야 하기 때문에 코스 안내도처럼 문학과 역사를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없고 돌아가야 할 기차나 버스 시간 때문에 자연과 생태를 느긋하게 감상하기도 힘들다는 고충들이 역력했습니다.


도보여행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필자가 생각하기엔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을 걷고 도보여행지에서 만난 새로운 것들에 대한 감동이 바로 도보여행의 목적일 것인데요, 군산구불길 1코스를 도보로 걷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필자처럼 무릎이 부실한 사람들에겐 벅차기만 하죠.

그래서 구불길 1코스를 걷거나 차로 이동하면서 만나는 군산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풍경에 대한 여유 있는 설렘을 시도해 보는 것도 여행가에겐 새로운 행복일 것입니다.


. 그럼 어떤 풍경과 이야깃거리가 있는지 무척 설레는데요, 군산역에서 모두들 바삐 출발하지만 필자는 군산역 2층에 있는 내흥동유적전시관에서 군산에 첫 삶을 튼 구석기시대 인류를 만나려고 합니다.






군산내흥동유적전시관

 

군산역이 위치한 내흥동은 2002년 군산역 개발 당시 구석기시대 유적지가 다량 출토된 지역인데요, 군산역 인근 3300부지에서 2004년까지 2년간 후기 구석기시대 이래 각종 생활 유구와 분묘 등 약 300 여기의 유구를 확인했으며 조사 결과 BC 4만 년~2만 년 경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기물 퇴적층과 자갈돌격지가 출토된 유물층과 BC 6천 년~5천 년 경 신석기시대 유기물 퇴적층이 확인되었다고 해요.

 

현재는 청자와 백자 등 49점의 유물과 선사시대 군산지역의 자연경관을 확인할 수 있는 실제토층 및 원형 수혈유구 등을 전시하고 있는데요, 군산지역은 전북도내 40여 개의 신석기 문화유적 중 4분의 3을 차지할 정도로 신석기시대 패총이 많고 마한의 지배층 무덤인 말무덤도 30 여기 나 발견돼 금강과 만경강으로 이어지는 내륙수로와 서해로 이어지는 해상 수로를 가진 군산지역이 선사시대부터 교통의 중심지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것을 내흥동 유적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진포시비공원

 

구불길 안내도만 있지 어디로 출발하는지 이정표는 없지만 금강을 향해 걷기에 느낌으로 알 수 있습니다. 

군산역 정면으로 역세권 개발 현장 가림막 통로로 쭉 나오면 금강이 막아서는 강변로가 나오는데요, 진포시비공원 표지석이 눈에 띕니다.

주차장이 없어 도로 한편에 차를 세워두고 길을 건너는데요, 이곳엔 국내외 유명 시인들의 작품을 화강암에 새겨 전시한 곳으로 금강을 거닐다가 잠시 쉬면서 평소 즐겨보던 시도 읊을 수 있어 물빛 좋은 날 노을 무렵 들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안 출신 신석정, 군산 출신 이병훈과 고은 등 전북 출신 시인 3명과 국내 시 14, 타고르 등 외국 시 6점이 화강암 20기에 새겨져 있는데요, 금강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이 꽤 되고 근처에 채만식 문학관도 있어 문학기행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해요.






드디어 만났습니다. 금강입니다.


금강


                 시인 조재도


있었네

금강다리 위 흰 구름 흐르는 저 푸른 하늘에도

안개빛 수은등 아래 그림자 끌며

아슬렁거리는 젊은 아베크의 풋사랑 가슴에도

강둑 꽃 적시며 흘러가는 물결 물결 따라

깊어 가야 할 그날의 역사 


(중략)


가문 강바닥 파랑새 울음 그치고

최루탄 매운 연기로 가득한 세상

어떤 힘이 일어설 수 없는 마음 일으켜 세워

오늘 다시 민주의 햇불에 불을 당기는가

물여울 하나하나 눈 맞아 빛나는 곳, 반도의 핏불

쟁쟁한 햇볕 속 죽지 않고 살은

그때 그 사람 다시 보겠네.







채만식 문학관


채만식 문학관은 2001년 개관했는데요, 정박한 배의 모습입니다

구불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어 도보여행가들은 잘 들어가지 않는데요, 채만식은 군산 출신 소설가로 1902년 옥구 임피에서 출생해 일본 와세다 고등학원에 입학했다 중퇴하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했죠. 1924년 단편 <새길로>로 문단에 데뷔해 290여 편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식민지 시대 농민의 궁핍한 생활과 지식인의 고뇌, 광복 후 시대혼란상을 풍자와 해학으로 세밀하게 묘사했는데요, 군산 금강을 배경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그린 소설 <탁류>가 대표작입니다.


채만식은 소설 <탁류>에서 금강을 눈물의 강이라고 불렀는데요, 비탈진 강 언덕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초가집에 군산 인구 7만 명 중 6만 명의 조선인이 어깨를 비비고 옴닥옴닥 모여 사는 것을 보고 이 조그만 군산이 이럴진대 조선 전체는 어떨까라고 탄식합니다.





채만식의 삶과 작품들, 그리고 초봉이라는 한 여인의 비극적 사건과 사회 비리를 풍자한 작품의 설명과 더불어 작품 속 군산 이미지가 전시 되어 있는데요, 생가 터가 있는 임피에 짓지 않고 금강 옆에 둔 것은 바로 소설 <탁류>가 곧 금강이기 때문입니다.

군산에는 채만식 도서관, 채만식 문학비 등이 있고 김제와 군산이 시대적 배경인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이 있으며 금강을 노래한 시인들도 많은데요, 금강을 걷다보면 왜 다수의 문학작품이 쏟아졌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금강하구


                   시인 안도현


시도 사랑도 안되는 날에는

친구야 금강 하구에 가보아라


(중략)


영차영차 뒤이어 와 기쁜 바다가 되는 강물을

하루내 갈대로 서서 바라보아도 좋으리.





안도현 시인처럼 필자도 하루내 갈대로 서서 금강을 바라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진포대첩비


군산의 옛 이름은 진포. 1899년 개항하기 전까지 작은 포구였습니다.

옛날엔 지금의 충남 서천부터 군산까지 금강 하류의 나루를 진포라 불렀는데요, 금강과 서해를 낀 진포는 해상 및 육상 교통의 요충지로 곡창과 소금의 주요 교역지였죠.

그러다 보니 노략을 일삼는 왜구의 출몰도 잦았는데요, 1350년경부터 왜구가 해안지역은 물론 내륙 깊숙이 침입해 약탈과 살인 방화를 일삼고 심지어는 수도인 개성까지 침입해 고려왕조의 골머리를 앓게 만들었죠.


결국 1377년 고려 우왕은 최무선의 건의로 화약 및 화기의 제조를 담당하는 화통도감을 설치하고 최무선은 대장군포, 이장군포 등 다양한 화포를 만들었는데요, 13808월 왜구가 5백 척에 이르는 대선단에 만 명이 넘는 군사를 이끌고 진포에 침입해 무고한 백성을 살해하고 약탈을 일삼자 고려 정부는 도원수 심덕부, 상원수 나세와 최무선 장군을 파견했는데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로 무장한 함선 100척이 왜선 500척을 모두 격침시켜버렸답니다.

 





배를 잃고 육지로 올라온 왜구들은 옥천과 영동, 상주와 금산 쪽으로 달아나면서 다시 약탈을 일삼고 관군도 패퇴하자 고려 정부는 이성계를 삼도 순찰사로 임명해 남원, 운봉에서 잔당을 모조리 소탕했는데요, 진포 해전 승리를 진포대첩이라 하고 이성계의 잔당 소탕을 황산대첩이라 부릅니다.


이성계가 황산대첩의 승리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것도 모두 진포대첩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니 진포대첩의 의미가 더 돋보입니다.

진포대첩은 또한, 세계 해전사에 화포를 최초로 사용한 전투로 기록됐는데요, 유럽보다 무려 190년이나 앞섰다고 합니다. 훗날 이순신 장군이 진포대첩의 전술을 이용해 나라를 구했듯 진포대첩은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늘로 향한 화포를 장착한 채 진포에 우뚝 서 있는 진포대첩비는 1999년 개항 100주년을 기념해 세운 것인데요, 최무선 장군 등 당시 화포를 조작하는 고려군 동상과 자전거를 탄 가족 동상, 그리고 스포츠카를 탄 남녀 한 쌍과 망치를 든 남자와 용접하는 사람이 조각된 동상, 컴퓨터로 무슨 작업을 하는 동상이 있습니다. 금새라도 불을 뿜을 듯한 모습에 조각가의 열정도 느껴봅니다.







어도


처음엔 어도가는 길이라고 해서 섬으로 향하는 길인 줄 알았는데요, 물고기의 길이라고 해서 어도라고 합니다.  

둑이 가로막혀 있어 물은 자유롭게 드나들어도 물고기는 어려워 보이는데요, 산란을 위해 바다로 가고자 하는 참게와 뱀장어, 그리고 산란을 위해 강으로 거슬러 가고자 하는 황복, 웅어 등 어류들의 통로인 어도가 있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구불길을 걷는다면 일부러 들러도 좋을 생태체험장입니다.





어도 지하도를 지나면 금강휴게소가 나옵니다.

금강휴게소에는 놀이시설도 있는데요, 인근 철새조망대와 더불어 군산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곳입니다.

쌀쌀한 날씨에 AI까지 발생해 공원을 찾는 발길이 줄어 황량하지만 철새들은 아랑곳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군요.



 




금강철새조망대

 

구불길에서 잠시 벗어난 곳에 금강철새조망대가 있는데요, 최근 발생한 AI로 인해 잠시 폐쇄되었습니다.

금강하굿둑은 겨울을 나기 위해 서해안을 찾는 철새들의 보금자리로 서산 천수만, 주남저수지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철새 도래지인데요, 국내 최대 철새 관찰시설로 아이들에게 인기 높은 곳이죠.

 

철새들은 낮 동안에는 물에서 쉬다 저녁때면 배가 고파 먹이를 찾아 일제히 군무를 펼친다는데요, 철새들의 화려한 군무를 보려면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녘이 좋다지만 구불길 여행자들은 주로 낮에 이동하기에 철새의 군무를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성덕마을

 

군산역에서 금강철새조망대까지는 자전거 길로 계속 이어지는데요, 조금 지루할 수 있지만 성덕마을부터 오성산 너머까지는 추수가 끝난 황량한 들판과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진 마을을 지나기에 모처럼 구불길 다운 길을 걷게 됩니다.

마을 입구를 막고 길게 늘어서 있는 숲이 특이한데요, 마을이 외부로부터 노출되는 것을 막아주는 비보림입니다. 비보림이란 우리 민족의 독특한 풍수사상인데요, 산세가 약해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해가 미칠 것을 우려해 마을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나쁜 기를 막기 위해 심는 것이죠.






필자도 성덕마을 비보림부터 마을 안쪽까지 걸었는데요, 자식들 김장하는데 몽땅 잘려나가고 남은 봄동이 겨우살이를 준비하고 있고 바짝 마른 콩을 타작하는 촌로 곁을 지키며 낯선 여행가를 경계하는 강아지. 그리고 까치밥으로 남겨 놓은 집 앞 감나무까지 필자의 고향집 같은 시골풍경이 반갑기만 했습니다.





오성산

 

성덕마을에서 바라본 오성산입니다 .구불길은 오성산 정상으로 이어지는데요, 승용차로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오성산까지 오릅니다.

군산은 호남평야의 끝자락에 있다보니 산이 매우 귀한데요, 망해산, 오성산 등 230M급 산이 제일 높습니다.

두번째로 높은 오성산은 해발 227m 야트막한 산이지만 군산기상대가 위치해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는데요, 정상에 서면 군산항부터 금강 건너 충남 서천, 그리고 비단강 종착역인 나포를 넘어 익산 미륵산까지 시원스럽게 조망할 수 있습니다.






정상에는 기상대 외에도 카페가 있고 패러글라이딩 활강장과 오성인의 묘가 있는데요, 연인과 함께 비단결 같은 금강을 앞에 높고 차 한 잔 마시며 서해로 떨어지는 황금빛 노을을 바라보는 달달함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성인의 묘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에 항거한 이 지역 다섯 노인의 묘인데요, 660년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금강을 타고 올라가 황산벌에서 백제 계백장군의 결사대를 격파한 신라 김유신 장군과 합세해 백제의 수도 사비와 웅진을 빼앗고 의자왕의 항복을 받았습니다.


당시 소정방이 오성산을 넘어 사비성으로 가려다 짙은 안개로 길을 잃고 헤맸는데 우연히 다섯 노인을 만났다고 합니다. 소정방이 다섯 노인에게 백제 사비성을 가는 길을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너희들이 우리나라를 치러 왔는데 어찌 길을 가르쳐 주겠느냐였답니다. 그러자 화간 난 소정방이 다섯 노인을 죽였지만 그들의 충절을 가상히 여겨 오성산 정상에 묘를 만들어 장사를 지냈다고 해요. 그 후 오성인은 백제인의 충절을 기리는 표상이 되었는데요, 매년 9월 말 오성인의 호국충절을 기리는 오성문화제전이 오성인의 묘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활강장에는 패러글라이딩을 준비하는 사람이 없었는데요, 취재를 마치고 군산 IC를 빠져나올 때 파란 하늘에 빨간 점 3개가 보이더군요. 직접 현장에서 나는 모습을 목격했다면 더 근사한 여행이 되었을 건데 조금 아쉬웠네요.






좌측으로 출발지인 군산역과 군산시내가 보이고요.

금강하둣둑과 철새조망대가 손에 잡힙니다.

뒤로는 오늘 구불길 1코스 종점인 공주산과 나포십자들이 보이네요.






오성산에서 군산구불길은 산길로 서왕마을로 이어지는데요, 오성산은 군산시민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아스팔트로 잘 포장돼 승용차로도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시민들이 많이 찾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옹고집장집


구불길 1코스 중 점심을 해결할 곳은 서왕 마을 부근이 적절합니다.

이곳엔 구불길 지도에도 나와 있는 옹고집장집이 있는데요, 20여 년 전 폐교를 개조해 식당으로 꾸민 곳으로 해마다 군산시 대표 맛 집으로 선정된 곳입니다. 대기업 주도로 생산되는 고추장, 된장 시장에서 국산 콩을 사용해 전통 항아리에서 2년간 발효한 재래식 방법으로 된장과 고추장을 만들어 식탁에 내고 판매하는 곳인데요, 교실에 앉아 도시락 통에 담아온 밥을 먹는 색다른 추억을 느끼는 곳이죠.

전주 유명 한지공예가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고 구불길을 걸으면서 지친 심신을 훌훌 벗어던지고 잠시나마 옛 추억에 빠져보는 것도 새로운 활력일 것입니다.





나포십자들


구불길은 다시 금강을 향하는데요, 5.5km에 이르는 제방 길을 걷습니다.

오래전 옹고집장집이 있는 서포에서 공주산이 있는 원나포까지 갈대밭과 갯벌이었던 강변이었는데요, 1920년대 일제가 제방을 쌓고 간척 사업을 통해 530ha의 농경지를 만들어 식량을 수탈한 곳으로 경지정리 작업을 통해 반듯한 농지를 처음 본 백성들이 나포에 가면 십자로 길이 난 너른 들이 있다고 하면서 십자뜰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쌀은 친환경 무농약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하고 친환경 농법으로 도정한 철새 도래지쌀인데요 미국으로 수출한 대한민국 수출 1호 쌀로 세계 23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쌀입니다.

철새조망대가 인접한 것에서 보듯이 십자들녘은 전북의 대표적인 철새 도래지인데요, 금강을 찾는 철새들이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서 곡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금강의 비옥한 갯벌 지대와 무성한 갈대밭과 더불어 새들에겐 지상천국입니다.








해마다 11월 중순경 겨울 철새들이 몰려오는 시기에 철새조망대와 십자들에서는 군산세계철새축제가 열리는데요, 이듬해 3월 철새들이 떠날 때까지 금강의 아름다운 모습과 철새들의 비상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어 특히 어린이들에게 산 교육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해 질 녘이면 수십만 마리의 철새들이 일제히 비상하며 군무를 펼치는 모습은 경이로운데요, 노을 빛 물든 하늘을 캔버스에 수십만 개의 점들로 기묘한 그림을 순간순간 그려내는 실력에 보는 사람들 모두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어쩔 때는 하늘을 꽉 메워 노을 빛도 볼 수 없다는데요, 하지만 아쉽게도 낮 시간이라 그런 광경을 볼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최근 나포 십자들녘에서 AI가 검출돼 반경 10KM를 방어지역으로 설정하고 제방 길을 폐쇄해 당분간 걷기 힘듭니다.






공주산


이제 구불길 1코스 종착점이 다가오는데요, 원나포마을 공주산이 종점입니다.

군산 앞 바다 칠산어장의 조기 파시 어선들이 금강으로 들어와 원 마포에 큰 시장을 형성했다는데요, 1722(경종 2) 진휼청에서 흉년에 대비해 공주와 연기 접경 지역에 설치했던 곡물저장창고인 나리포사실을 곡물이 풍족하지 못한 제주도민을 위해 나포로 옮겨오면서 물류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해요.


금강 맞은편 충남 서천의 용산리 용머리와 연결해 전라도와 충청도 간 왕래가 잦았던 나루로 지금은 나루의 흔적은 없어지고 전설만 전해오는데요, 원나포에 있는 공주산은 충남 공주에서 큰 홍수에 떠내려 왔기에 붙여진 이름인데, 이 산의 소유권을 두고 공주와 옥구 간 산세(山稅) 문제로 티격태격했던 전설입니다.


하지만 민간에 전해오는 전설은 공주의 태를 묻었다고 해서 공주산이라고 한다는데요.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 새로운 나라 건설을 위해 처음 상륙한 곳이 나리포인데 준왕은 공주산을 넘어 익산에 나라를 세웠고 이때 왕의 공주가 머물렀던 곳이기에 이 산을 공주산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또한 공주를 데리러 왕이 왔다고 하여 공주산의 앞산을 왕이 왔다는 뜻의 어래산(御來山)이라 불린다네요.

지명으로 보면 이 전설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이죠?





구불길 1코스를 차로 여행하면서 지나치기 쉬운 곳을 둘러보고 그것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봤는데요, 1코스는 금강을 따라 자전거 길과 함께 걷다가 오성산을 넘을 때만 한적한 시골마을과 논두렁을 걷고 산길을 걷고 그 외 대부분은 도로를 따라 걷습니다. 오성산도 정상까지 잘 포장돼 자전거나 차로 오를 수 있는데요, 달리 말하면 코스 전체를 자전거나 승용차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군산역에서 만난 전주에서 온 도보여행가들과 출발도 같이 하고 마지막 원포 마을에서도 또 만났는데요, 필자는 진포시비공원에서 시도 읽고 채만식 문학관에서 탁류도 읽었으며 진포대첩비와 금강하굿둑에서 어도를 찾아보고 오성산에서 사방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졌지만 걸리는 시간은 똑같았습니다.


, 도보여행은 걸으면서 자아를 찾아보고 건강도 챙기는 일석이조 장점이 있고 차 여행은 도보여행에서 느낄 수 없었던 여유와 군산의 역사와 문화를 심도 있게 찾아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군산구불길 1코스를 처음으로 승용차로 드라이브하며 즐기는 여행자가 되기로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구불길 1코스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볼 수 있기에 그렇다면 차로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 것입니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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