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맞으며 아내와 함께 걸은 김제 새만금바람길

2018. 5. 3. 06:00전라북도 견문록/김제 견문록



봄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다.

특히 연인이나 부부가 함께 살랑이는 봄바람을 맞으며 한적한 오솔길을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걷는 길이 있다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위해 이불을 박차고 길을 떠나도 좋을 듯하다.

봄볕 따스한 4월의 어느날 따스한 봄기운을 온 몸으로 느끼며 코끝을 간지럽히는 향긋한 꽃향기가 있는 새만금 바람길을 아내와 함께 걸었다.






새만금 바람길의 시작은 새만금의 도시인 김제시 진봉면사무소 뒤쪽 배수갑문이다.

안내도에 의하면 길은 여기서부터 진봉방조제를 거쳐 전선포 - 망해사 - 망해사 전망대 - 두곡서원 - 심포항 - 안하마을 쉼터 - 거전리 종점까지 이어지는 10.1km 거리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그 길에서는 만경강의 제방길, 서해를 지키던 군인들이 다니던 철책길, 갈대숲 우거진 갯벌길, 옛 군항인 전선포에서 들려주는 역사이야기, 노을이 아름다운 바다를 접한 망해사길, 망해사 전망대에서 바라본 새만금 이야기, 봉수대로 이어지는 산길 등을 만날 수 있으며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보면 1시간 정도 더 걸린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진봉방조제를 걷다 만나는 첫 마을은 고사마을입니다.

마을 주민이 갈아 놓은 밭의 고랑 사이에 흙을 두툼하게 올리고 있다.

 4월은 1년 농사의 기초를 세우는 달로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땅을 치고 후회한다는 말이 있듯이 주민은 텃밭을 부지런히 가꾼다.

무엇을 심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바로 행복한 가을일 것이다.

아낙이 올리는 이런한 이랑이 김제에는 만개나 된다고 해서 만경(萬頃)이라 불린다는데 실제 김제에 오면 보이는 것은 온통 논과 밭뿐이다.




 

첫번째 방조제 길이 끝나면 나성산 숲길을 걷는다.

방조제 길은 땡볕이라면 많이 부담스러운 길로 새만금 바람길은 여름을 피해 봄이나 가을, 겨울에 걷는게 좋겠다.

하지만, 두세군데 방조제 길을 제외하곤 대부분 숲길로 계절마다 피는 다양한 꽃향기가 풀풀 풍기는 길이니 여름이라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두번째 방조제 길인 전선포를 앞두고 만난 봄꽃이다.

줄기와 가지가 용트림을 하는 것 같다고 해 붙여진 돌배나무에 하얀 꽃이, 생강나무에는 노란 꽃이 핀 아름다운 봄이다.





옛날에 전선포는 지금의 해군기지 같은 군항이 있던 곳이다.

전선포가 있는 곳은 나성산에서 봉화산까지 이어지는 진봉반도의 안쪽으로 서해에 나타난 적들에게 노출이 되지 않은 곳이다.

고려 후기에는 김제에서 노략질을 일삼은 왜구와 접전을 벌이기도 했던 곳으로 왜구의 움직임을 전선포 서쪽의 봉화산 봉수대와 수시로 주고 받았다고 한다.




이렇듯 전선포는 예로부터 김제와 전라도를 왜구와 적군으로 부터 지키는 요새역할을 했지만 1920년대 일본인의 간척사업으로 지금의 전선포 제방이 축조되면서 일부는 농경지가 되고 일부는 갯벌이 되어 포구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다.

오랜 풍상을 버티다 삭아버린 폐선에 올라 눈을 지그시 감으니 활동사진처럼 전선포의 먼 역사가 펼쳐진다.





전선포까지는 제방길과 숲길을 이어왔다.

여기서 망해사 근처 전망대까지는 갯벌 사이로 난 갈대숲길을 걷는다.

새만금의 부안과 그 아래 고창은 중생대 백악기 한반도의 활발한 화산활동과 오랜세월 풍화와 침식으로 채석강과 적벽강을 만들어 냈다.

김제도 그와 멀지 않아 퇴적층이 잘 발달되어 있는데, 전선포에서도 그러한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갯벌 사이로 난 갈대숲길은 다시 해안으로 올라서니 마늘이 한참 자라고 있는 규동마을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규수처럼 얌전하고 예의바른 마을사람들 때문에 예로부터 도장골이라 불렸다는데, 한자의 안방 규(閨) 자를 써서 규동이라고 한다.

마을을 앞에 두고 뒤로는 만경강을 둔 바람부는 언덕에는 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 전망대가 있어 가슴 탁 트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만경강 너머 군산 옥서면부터 회현면까지 새만금 내륙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새만금 바람길에서 처음으로 힐링을 느껴본다.

그저 여기서 더이상 걷지 않고 하염없이 만경강의 갈대와 푸른 물을 보고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고 싶을 정도다.

만약 승용차로 이곳을 지나간다면 규동마을 입구에 주차하고 마을길을 따라 전망대까지 약 350m만 걸으면 만날 수 있다. 




망해사 부근에는 다양한 문화유적이 있다.

망해사 입구 주차장 밑에는 곡부공씨 제각이 있는데, 1351년 (고려 충정왕 3년) 공자의 53세손 공소(紹)가 고려에 귀화해 문하시랑평장사(事)가 되며 우리나라 공씨의 중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곡부()는 공자의 고향으로 김제 진봉면 규동마을 등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또한, 15세의 어린나이에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고 가담활동한 애국지사 곽경렬 선생의 추모비가 있으며 성리학자 강원기를 배향한 두곡서원이 있다. 성리학자 강원기는 야은 길재,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경전을 읽고 유풍을 크게 진작시켰으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후진양성에 힘을 썼다고 한다.


어느날 강원기의 제자 이지로가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해 스승을 찾았는데 강원기는 봉수대, 공마, 공여 등 고려시대부터 이어온 삼폐()로 어려움을 겪는 만경현 백성들의 고충을 토로했고 이지로는 임금에게 상소를 했는데 결국 공마는 제주도로, 봉수대는 부안 계화도로, 공여는 태인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훗날 만경현 백성들이 그의 공덕을 기려 이곳에 두곡서원을 세우고 배향했다는데, 지금도 이곳 주민의 다수는 신천강씨라고 한다.





망해사 입구에 겹벚꽃이 활짝 피었다.

벚꽃이 지면 피어나는 겹벚꽃은 왕벚꽃 등과 달리 백색, 연분홍, 진분홍, 옥색, 적색 등 현란한 색을 자랑한다.

색이 짙고 꽃이 탐스럽게 생겼으며 솜사탕처럼 빼곡하게 풍성하게 자라는 것이 특색으로 새만금 인근에는 서산 개심사, 문수사 등이 겹벚꽃 명소로 소문나 있지만, 이제 김제 망해사도 겹벚꽃 명소로 핫플레이스이다.


 


망해사는 오랜역사와 달리 사찰 규모가 초라할 정도로 작다.

원래는 망해사라는 절 이름답게 망망대해가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맞닿은 언덕에 있었지만, 지금은 만경강을 마주하고 있다.


망해사는 백제 의자왕 시절인 642년 부설거사가 사찰을 짓고 수도한 것이 최초로 이후 절터가 무너져 바다에 잠겨버렸고, 1589년 진묵대사가 낙서전을 세운 뒤 두번의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서해를 즐기라는 낙서전과 파도소리를 듣는다는 청조헌 등 바다를 연상시키는 당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으로 보호수로 지정된 낙서전 팽나무와 더불어 서해낙조로 유명한 곳이다.


 


망해사를 나와 새만금 바람길을 따라 전망대에 오른다.

망해사 입구에서 100여 미터 오르면 되는데요, 전망대에서는 모래톱이 켜켜이 쌓인 담수호와 그 너머 일망무제로 터진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노을 풍경이 마치 순천만의 일부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사방이 탁 트인 풍경에다 서해로 떨어지는 석양에 나그네의 걸음도 잠시 멈춤이다.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인는 것들'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멈추면서 느끼는 감정은 참으로 단순합니다. "남 눈치 보지 말고 나만의 빛깔을 찾으세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렇다.

서해낙조를 눈앞에 두고 두대의 카메라를 돌리다가 문득 망해사의 낙조도 보고 싶어졌다.

나만의 색이 그곳에 있을까? 서둘러 망해사로 뛰어간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서해를 바라보다 뒤돌아서면 한없이 이어지는 만경평야가 눈에 들어온다.

그저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지평선이 압권이다.

저 들을 김제 사람들은 '징개맹개 외배미들’ 이라고 부른다.

‘이 배미 저 배미 할 것 없이 하나로 툭 트인 김제와 만경의 넓고도 넓은 들’이라는 뜻으로,

김제에 유달리 전망대가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김제이니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올라야 시원스럽게 펼쳐진 지평선을 조망할 수 있지 않을까?




야트막한 진봉산 숲길을 따라 내려가면 심포항이 나온다.

김제의 유일한 항구로 만경강과 동진강이 만나는 진봉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해

예전엔 규모가 꽤 큰 항구였지만 지금은 수천만평에 이르는 심포갯벌이 주무대이다.

새만금 방조제 건설로 바다가 담수호가 되면서 백합채취와 갯벌 체험학습지로 명맥을 이어가는데, 

현대식으로 재단장한 심포항과 심포항 주변으로 계속 이어지는 공사현장에 시선이 머문다.


김제시는 새만금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심포항에 해양레포츠 시설을 갖춘 마리나항만을 조성해

침체된 지역경제를 되살리고 김제 심포항을 대한민국 해양레저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사업을

해수분에 건의했다고 한다.

새만금 남북도로와 동서2도로 등과 연계해 마리나항을 교통의 요충지로 탈바꿈시켜

관광객 유치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그렇다면 심포항의 미래는 어업 중심에서 관광레저중심 항구에 교통요충지로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데,

옥토로 변한 바다와 어민에서 농민으로의 성공적인 변신을 통해 새로운 활력으로 넘치는 심포항을 기대해본다.





공사로 인해 새만금바람길이 우회한다.

안하마을을 통과해 마을 언덕에 위치한 당산나무를 거쳐 봉화산으로 오른다.

안하마을은 심포항 쪽 진봉산과 진봉반도 끝자락 봉화산 사이 낮은 부지에 형성된 마을로

바닷물이 넘치면 마을이 자주 유실되곤 했다. 하지만 심포방조제 축조 후 조류로 인한 피해는 없어졌다...

넓은 만경 들판로 바닷물이 넘칠 위기를 올곧이 막아선 마을 당산나무가 의젓해 보인다.




봉화산은 숲이 우거져 섬뜩했다.

곳곳에 묘지가 있고 하얀색 띠를 두른 소나무들이 벌목을 기다리고 있다.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가 수없이 많았는데, 감염방지와 확산방지를 위해 오르지 않고 되돌아 나왔다.

봉화산에는 봉수대가 있었지만, 두곡서원의 강원기가 전라도 관찰사 이지로에 고충을 토로해 부안 계화도로 옮겨간 뒤

옛 봉수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최근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는데 몇 년 후면 복원되어 있는 봉수대를 볼 수도 있을 게다.



 

망해사에서 새만금으로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본다.

봄바람과 강바람, 산바람, 들바람 등 바람이란 바람은 모두 맞고 걸어 본 새만금 바람길이다. 

넉넉하게 3시간이면 걸을 수 있고 걸으면서 진봉면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앞으로 이곳에 펼쳐질 미래도 궁금하다.

바다가 옥토로 되고 어민이 농부가 된 스토리를 다시 만나고 싶다.


TIP

1. 안내판이 많이 부족하다. 중간에 알바도 했다. 길을 잘 찾아가기 위한 사전정보가 필요하다.
2. 심포항에서 봉화산 구간은 공사로 구간이 임시로 변경되었다. 그것 또한 안내가 부실하다. 도로를 따라 안하마을로 가야하고

안하마을에서 안하마을 쉼터 당산나무로 올라야 봉화산으로 가야 한다. 여기도 안내판이 없다. 
3. 망해사와 심포항은 일몰 명소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망해사 뒤 진봉산전망대에서 노을을 보기 추천한다. 주차장에서 5분이면 다녀올 수 있다. 노을을 보다보면 자칫 완주할 수 없다. 노을은 역시 승용차 이용자에게만 혜택이다.
4. 식사할 곳은 중간에 심포항뿐이다. 끝까지 완주한다면 역으로 식사하기 위해 심포항으로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기에 심포항 노을도 보고 식사도 한다면 일석이조가 될 것이다.



코스 요약

진봉면사무소 뒤 배수갑문(관기 버스정류장) ~ 석소마을(1.2km) ~ 석치마을(2.4km) ~ 고사마을(3km) ~ 망해사(5.4km)
~ 진봉산(5.9km) ~ 심포항(6.8km) ~ 봉화산 봉수대(8.8km) ~ 거전마을 버스정류장(10.5km)
소요시간 3시간 30분으로 걷는 시간. 답사시간, 촬영시간 포함)


교통편

찾아가기 
김제역 또는 김제공용버스터미널에서 진봉면사무소 방향19, 19-1, 48/ 40분 소요.
 
돌아오기
거전마을 버스정류장에서 김제역 또는 김제공용버스터미널로 가는 19, 19-1, 48/ 1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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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포토뉴스코리아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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