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여행)한가지 소원을 들어줘요.부산 해동 용궁사(3편)

2011. 8. 15. 23:38대한민국 견문록/부산 견문록

 

    오늘 일정은 해궁 용궁사와 해운대 아쿠아리움 그리고 김해봉하마을을 들러 노무현전대통령묘소에 참배하고 부곡하와이로 가서

    2박을 하는 일정이다.

    광주에서 출발전부터 일주일간의 일기예보는 금요일까지 비가 예보되어있어 우중여행이라는 다소 맥빠진 여행일 될 줄 알았는데

    어제 오늘 모두 날씨는 최상이다 못해 뜨거운 햇살에 피부란 피부는 모두 숨겨야 하는 자외선과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해동용궁사는 대게의 절들이 산중 깊은곳에 은거해 있다싶이 하는것에 비해 이곳은 태풍이 불어오는 날 집채만한 파도가 밀려와도

    끄덕없는 바닷가 암벽위에 지어놓은 수상법당으로 옛이름은 보문사(普門寺)이다.

    1376년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대사가 창건하여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가 1930년대초에 통도사 운강화상이 보문사를 중창한 이후

    여러 스님들을 거쳐 1974년 정암스님이 부임하여 관음도량으로 복원할 것을 발원하고 백일기도를 하는데 회향일(廻向日)꿈에

    백의관음(白衣觀音)이 오색광명을 놓으며 용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친견하고 해동용궁사로 사명을 바꾸었다.

    누구나 진심으로 기도하면 현몽을 받고 한 가지 소원을 꼭 이루는 신령스러운 곳이라 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한 가지 소원을 기원하기 위해 해동용궁사로 출발했다.

 

    입구부터가 범상치가 않다..보통의 절엔 일주문이 있어 부처의 세상으로 들어가기전에 반드시 들고 나와야 하는데 해동용궁사에는

    일주문보다 앞서 십이지상(十二支像)이 도열해 있어 자신의 띠에 맞는 십이지상에 고(告)하고 가야할 것 같다.

 

     입구의 마애불과 해동용궁사 표지석..특이하게도 십이지상과 관음보살상앞에는 모두 불전함이 놓여있다.

    해양관음성지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그리고 부산 해동용궁사를 삼대 관음성지라 하며 해동용궁사를 창건한 나옹화상이

    쓴 시를 보며 나옹화상이 어떤 분인지 알아보는 시간도 갖는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해동용궁사를 창건한 나옹화상은 고려말의 고승으로 혜근(彗勤)이라고도 쓴다.
성은 아(牙)씨. 속명은 원혜(元惠). 호는 나옹(懶翁) 또는 강월헌(江月軒)으로 선관서영(善官署令) 서구(瑞具)의 아들이다.
21세 때 친구의 죽음으로 인하여 무상을 느끼고, 공덕산 묘적암(妙寂 庵)에 있는 요연선사(了然禪]師)를 찾아가 출가하였다.
그뒤 전국의 이름있는 사찰을 편력하면서 정진하다가 1344년(충혜왕 5) 양주 천보산 회암사(檜巖 寺)에서 대오(大悟)하였다.
그때 이 절에 우거하고 있던 일본승 석옹(石翁) 에게 깨달음을 인가받았다.

1347년(충목왕 3) 원나라로 건너가서 연경(燕京) 법원사(法源寺)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인도승 지공(指空)의 지도를 받으며 4년 동안 지내다가 1358년(공민왕 7)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 오대산 상두암(象 頭庵)에 은신하였으나 공민왕과 태후의 간곡한 청에 의하여 잠시 신광사(神 光寺)에 머무르면서

설법과 참선으로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뒤 공부선(功夫 選)의 시관(試官)이 되었고, 1361년부터 용문산·원적산·금강산 등지를 순력 한 뒤 회암사의 주지가 되었다.

1371년 왕으로부터 금란가사와 내외법복(內外 法服)·바리를 하사받고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중흥조풍복국

우세 보제존자 (王師大曹溪宗 師禪敎都摠攝勤修 本智重興祖風福國祐世 普濟尊者)에 봉해졌다.

그는 정도(正道)가 혼침된 고려말의 불교계에 습정균혜(習定均 慧)와 근수(勤修)·지혜로써 성불의 가능성을 보여준 고승으로서,
철저한 불이사상(不二思想)의 토대 위에서 선(禪)을 이해시키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고려말의 선풍은 그에 의하여 새롭게 선양되었다.
지공의 선풍이 공해탈선(空 解脫禪)의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통적인 간화선(看話禪)의 입장을 취하였고,

종래의 구산선문(九山禪門)이나 조계종과는 다른 임제(臨濟)의 선풍을 도입하여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그의< 귀의자심삼보(歸依自心三寶)>의 주장과 "염불은 곧 참선" 이라고 한 것은 이후의 우리나라 선종에서 계속 전승되었다.
계율관(戒律觀)에서도 삼귀의(三歸 依)가 아닌 사귀의를 주장하고 있어 주목된다.

계목(戒目)으로는
(1)수정신사 귀의(受淨信四歸依),
(2)참제제삼업죄(懺除諸三業罪),
(3)발홍서육대원(發弘誓 六大願),
(4)최상승무생계(最上乘無生戒)로 나누어져 있다.

이는 일반적인 불교의 5계(戒)나 보살계(菩薩戒)와는 다른 독특한 것이다.
또, 적극적인 사회 참여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보살도를 강조하기 위하여 육대서원(六大誓願) 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는 고려말 보우(普愚)와 함께 조선시대 불교의 초석을 세운 위대한 고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왕명으로 밀성(密城 : 密陽) 영원사(瑩 源寺)로 옮기던 중 5월 15일 나이 56세, 법랍 37세로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 하였다.
저서로는 <나옹화상어록(懶翁和尙語錄)>1권과 <가송(歌頌)>1권이 전한다. 시호는 선각(禪覺)이다

출처 : 다음카페 인연에서

 

 

    춘원 이광수의 시비와 최유나가 부른 용궁사의 밤이란 노래의 가사비도 있다.

    최유나의 용궁사의밤이란 노래를 클릭해서 들어보며 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다.   클릭용궁사의밤

 

교통안전기원탑이다.

아마 전세계를 통틀어 건축조형물이 아닌 불사의 탑으로

교통안전을 기원하는 탑은 해동용궁사의 이탑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탑을 빙돌아 십이지상을 새겨놓았고 탑의 맨 상단에는

타이어모양의 연꽃으로 탑상층부를 만들었다.

 

자기띠가 새겨진 십이지상앞에서 안전운행을 기원하고

기도를 올리면 교통사고가 안나고 가정의 행복을

지켜준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매년 모범택시불자회주최로 안전운전대재를 올리며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는

왕생극락발원제를 모시고 있다한다.

 

 

 

 

 

 

 

 

 

 

 

 

 

 

 

    기도들은 올리셨나요? ..해동용궁사의 일주문은 이렇게 생겼다. 보통 산사의 일주문과는 크기나 모양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이제 일주문을 지나 본격적으로 해동용궁사를 탐험해본다.           코와 배를 얼마나 만졌으면 이렇게 매끄러울까..득남불

   얕으마한 돌담길을 끼고 좌우로는 대나무와 동백꽃이 숲을           설마하니 요즘도 아들 낳게 해달라고 기도드리는 중생이 있을까?

   이루고 있다.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러운 시대다..(아이가 없으면 몰라도..)

 

    용문석굴입구와 출구다.

    일주문을 지나 득남불의 코와 배를 만지며 득남을 기원했다면 대나무와 동백나무의 숲으로 난 돌길을 내려가면 용문석굴이라는

    석굴통로가 나온다. 입구 상단에 불상의 머리만 있는 것이 이색적인 모습이다.

 

    석굴내부와 108장수계단의 시작되는 곳이다. 석굴내부는 한 낮의 열기를 충분히 식혀줄 정도로 시원하다.

    그리고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이기도 하다.

 

    법구경의 한구절..                                                                학업성취불..

    내가 이세상에 올때는 어느곳으로 부터 왔으며                          매년 수능시험볼 때는 이곳에서 공 들이는 분들로 초 만원이다.

    죽어서는 어느곳으로 가는고..                                                나도 큰애 시험볼때 이곳을 와야 하나..

    재산도 벼슬도 모두 놓아두고 오직 지은 업을 따라 갈뿐이네.   

 

    108장수계단이다.

    [108번뇌 근거]
    육근(六根)에 好惡平等의 3을 곱하여 18번뇌가 되고, 육식(六識)에 樂受 苦受 捨受 등 3수를 곱하여 18번뇌가 된후 18+18은
    36번뇌가 나타난다.
    이 36을 과거, 현재, 미래 등 3세에 곱하면 36×3=108 번뇌가 된다.

    108계단을 한계단 한계단 오르내릴 때마다 번뇌가 소멸되고 정각(正覺)을 이룬다는 깊은 뜻이 있다.
    한국에서 오직 한곳 뿐인 이곳을 지극정성으로 한번 왔다 가면 백팔세까지 산다하여
장수계단이라고도 한다.

    석등사이로 나있는 108장수계단을 가면서 오면서 꼭 사뿐히 밟으면서 108세까지 장수를 기원해보자..(90세도 힘들어~~~^^)

 

    불이문(不二門)은 진리는 둘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이곳을 통과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부처의 세상으로 들아갈 수 있음을 상징한다.

    부처는 중생과 다르지 않고 생과 사, 만남과 이별 역시 그 근원은 모두 하나다..그러므로 진리는 둘이 아니고 하나다라는 뜻으로

    일명 해탈문이라고도 한다. 이 문을 들어서야 비로서 해동용궁사로 들어갈 수 있다.

 

    소원성취연못이다. 불이문과 만복문사이의 교량위에 있으며 위의 동자승과 아래의 거북이등에 있는 불전함에 동전을 던져

    들어가면 소원을 이룰수 있다한다.

 

    모두들 열심히 던져보지만 불전함에 넣기가 쉽지는 않다..

    나도 던져본다..역시나 노골이다..그런데 밑에서 위로 던지면 어렵고 동전을 엄지와 검지로 넓게 잡고 눈앞에서 아래로 던지면

    서너번안에 넣을 수 있겠다.

                                                                

 

    대웅보전..해동용궁사의 대웅전이다. 1970년 정암스님이 중창한 후 2007년에 재신축했다.

 

 

    불이문을 지나 소원성취연못에서 동전보시를 하고나면 만복문이 나온다.

   해동용궁사경내로 들어가는 문으로 善 來 比 道 場 (선래비도장)이라 쓰여있다. 참좋은곳에 오셨습니다라는 인삿말이다.

   옆에는 2008년 정해년을 맞이하여 조성한 한 쌍의 황금돼지상..뒤로는 영월당요사채.

 

    대웅보전

 

    포대화상은 108장수계단 초입에 있는 득남불과 동일화상으로 중국 후량(後梁)의 선승(禪僧), 이름 계차(契此),

    호 정응대사(定應大師),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고도 하며, 당시의 사람들은 장정자(長汀子)또는 포대사(布袋師)라 불렀다.

    명주 봉화현출생. 체구가 비대하고 배가 불룩하게 나왔으며, 항상 커다란 자루를 둘러 메고 지팡이를 짚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시주를 구하거나 시대나 인간사의 길흉 또는 일기를 점쳤다 한다.

    복덕원만한 상을 갖추고 있어 게(偈)를 잘하였으며, 봉화현 악림사(岳林寺)에서 입적하였다.

    그는 미륵보살의 화신이라는 존경을 받고 있다(출처:해동용궁사 홈페이지)

 

     대웅전의 내부..

 

 

    대웅전(大雄殿) 바로 정면앞에 손에 잡일 듯 말 듯 아름답고 화려한 3층석탑이 있으니 정확히 말하면 4사자 3층석탑이다.
    원래 이 자리는 용두암이라고도 하고 일명(一名) 미륵바위가 우뚝(약3M) 솟아 도량을 장엄하고 있었으나 임진년전화에 사찰이

    페허가 되고 또 6.25로 남북이 대치하면서 철통같은 해안 경계망 구축에 바다의 기암요지는 무자비하게 파괴되니 미륵바위도

    용두암도 옛 전설이 되고 말았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1990년) 영호당 정암스님께서 직접 손수 파석을 모으고 손상된 암벽을 보축하여 4사자3층석탑을 봉안했다.
  

    특히 1층기단 네귀퉁이에 4사자가 탑을 받쳐들고 있으며, 중앙에는 용왕님이 법당 부처님을 향해 받들고 있으니 이는 호법신장

    이며 도량주이신 용왕님이 부처님을 받들고 도량을 수호하는 뜻이요, 4사자는 중생의 희,로,애,락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탑은 지리산 화엄사 연기 조사 사리탑을 기본으로 전통적 신라석탑 형식에 다소의 변화를 준 작품으로 근세에 보기 드문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리고 그 당시 스리랑카 메스싼안다 스님이 모시고온 불사리 7과를 봉안하니 이때부터 사리탑이라 부르게 됐다.
    입구계단을 내려 오면서 바로 보게 되는 이 석탑은 넓은 바다 때문에 더욱 아름다워 보이며, 용궁사의 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처:해동용궁사 홈페이지)

 

     용궁단은 대웅전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찰이 산에 위치해 있음으로 도량주인 산신각 (칠성각, 삼성각)은 대웅전 뒤편이나 옆에 있다.
    그러나 용궁사는 바다가 중심이기에 용왕단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산사와 마찬가지로 탱화로 그린 산신을 모시고 있다.

    그 산신은 대게 삭발에 흰수염과 긴 흰눈썹을 가지고 손에는 하얀깃털부채나 파초선, 불로초 등을 들고 있다.

 

                      원통문을 지나야 해수관음대불을 보러갈 수 있다.우측은 올라가는길...좌측은 내려오는길이다.

 

                      해수관음대불...약10m높이의 석불이다.

                      해수(海水)는 바다물이라는 뜻이요 관음(寬音)이란 관세음 보살님의 약칭이니 바다에 계시는 아주 큰

                      관세음보살님이란 뜻이다.
                      불경에 이르기를 관세음 보살님은 바닷가 외로운 곳(海岸孤絶處)에 상주하신다고 한다.

                      또한 관세음보살님은 33가지의 방편으로 중생들에게 나투시는데 관세음 보살님의 명호를 열심히 부르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안될 것이 없다고 하셨다.
                      옛부터 이곳에는 계울에도 눈이 쌓이지 않고 칡꽃이 피었다고 한다.
                      불상을 봉안한지 3일 되던날 己時에(11시) 오색광명(五色光明)을 바다로부터 모으니 보는 사람마다

                      눈을 의심하고 말을 잇지 못하였다고 하며 그로부터 소문이 퍼져 매일 참배객이 줄을 잇고 있다 한다.
                      단일석재로는 한국최대 석상이다. 출처:해동용궁사홈페이지

 

    열심히 기도드리며 다니시는 회원님..나도 그옆에서 한 컷..

 

    해수관음대불도 장관이지만 그 곳에서 바라보는 해동용궁사의 전경도 장관이다..

    이렇게 제일높은 위치에서 내려봐야 모두 조망이 된다.

 

    수인문은 보통 안채와 바깥채를 구분하는 문인데..                    요사채앞에 있는 신비의 약수터.

    아마도 법당과 스님들 거주하는 안채와의 통로인 듯 하다.          안에는 조명시설이 하나 있지만 넓은 동굴안을 다 밝히지 못한다.

 

    약수터내부에도 불상이 있다. 감로수는 엄청 시원하며 동굴안도 서늘한 기운이 돈다.

 

    아기부처와 비룡상...이 비룡상은 아마도 1974년 정암스님이 부임하여 관음도량으로 복원할 것을 발원하고 백일기도를 하는데

    회향일(廻向日)꿈에 백의관음(白衣觀音)이 오색광명을 놓으며 용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친견하고 해동용궁사로 사명을 바꾸었는데

    그때 꿈에 본 용이 틀림이 없다...비룡상앞에 자그마한 동자승들의 돌인형이 잔뜩 쌓여있다.

 

    일출을 보러가는 곳에 있는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은 이름 그대로 의약사 부처님이시니, 우리 중생의 마음의 병고나 신체적 병고를 치유해 주시는 부처님이시다.
    특히 이곳은 터가 좋고, 부처님이 영험하시여 많은 불자님이 불치의 병을 고치고 성불을 받으니 일명 동해 갓바위 부처님으로

    유명하다.(출처:해동용궁사 홈페이지)

 

    약사여래불 앞에서 본 해동용궁사 전경.. 여기가 절을 바라보는 제일 좋은 전망포인트다..

 

    지옥중생을 모두 구제하고서 성불하시겠다는 원력을 세우시고 지금도 지옥에 계시는 보살로서 바닷가 방생터에 모신 지장보살상

 

    셀카놀이에 푹 빠져보고...

 

    해동용궁사를 나오면서 나의 가족들의 십이지상을 모두 찾아봤다...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기원해본다.

 

    해동용궁사 입구엔 이렇게 각종 염주나 목탁 그리고 달마상 등을 파는 상가가 밀집해 있다.

    기둥만한 칡도 있고.  절의 입장료는 없다. 다만 절의 주차장에서는 주차료를 받는다.

    그리고 이 곳을 대중교통편으로 오려면 엄청 힘들다...그래서 절의 셔틀버스가 다닌다.셔틀버스시간표 클릭

    [출처 :궁사 홈페이지 ⇒ 참배안내 ⇒ 약도)]

                                                                           [출처 : 해동용궁사]

                                                                        

아침 나절이라 아직 참배객들이 많지않다.

절에 들어서면서부터 참 많은 볼거리들이 있더니 명성대로 산사에 깊이 파묻혀있는 절에 비하면 도심의 바닷가에 있다보니

볼거리 구경거리..그리고 참 조망이 좋다.

보통의 산에 있는 절을 보려면 한 없이 올라가야하나 이 해동용궁사는 반대로 산아래 바닷가로 내려가야하니 개념부터가

틀리다. 이제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해운대해수욕장에 있는 아쿠아리움과 용두산공원8경을 찾으로 간다.

 

발행예정 : 전방(주)영암공장 여름휴가동행 취재기

                     1편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섬 소매물도 그곳에 가고싶다..

         2편 거제도 바람의 언덕과 아이돌그룹 티아라..

         3편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줘요. 부산 해동용궁사..

         4편 해운대연가와 아쿠아리움, 용두산공원8경을 찾아서..

         5편 내마음속 대통령 노무현과 부엉이바위..

         6편 대구팔공산과 케이블카의 어색한 만남..

         7편 합천해인사와 2011년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

         8편 남원광한루에서 춘향이와 몰래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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