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기행)병인,신미양요의 상흔이 남아있는 광성보와 덕진진

2011. 10. 16. 23:30대한민국 견문록/경기도 견문록

 

    

     고려궁지를 나와 버스는 주택가 사이로 난  좁다란 2차선도로를 따라 내려와 20여분을 달려 1866년 병인양요에 이어 1871년 신미양요의 격전지인

     광성보로 향한다.

     광성보는 1658년(조선 효종9년)에 설치된 강화도 해안수비 진지의 하나로 1679년(조선 숙종5년)에 강화도의 국방시설을 확장하며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돈대를 함께 축조해서 광성보휘하에 두면서 시작되었다.

     진과 보는 군사상 중요한 지역인 해안변방에 설치하여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던 군사주둔 지역이고 돈대조금 높직한 평지에 초소가 있던 곳을 말하며

     강화도에는 5진 7보 53돈대가 있는데 요즘편제로 보면 돈대는 분대규모의 초소가 있던 곳이고 보는 중대급 규모, 진은 대대급 규모가 있었던 곳으로

     보면 이해가 빠르겠다.

     진과 보는 상하직속관계가 아니며 각자 따로 돈대를 두었다.  

     1.강화 5진은  1)월곶진   2)제물진  3)용진진  4)덕진진  5)초지진

     2.강화 7보    1)광성보   2)선두보  3)장곶보  4)정포보 5)인화보 6)철곶보 7)승천보

     3.강화53돈대 갑곶돈대, 계룡돈대, 덕진돈대, 택지돈대, 장곶돈대, 광성돈대, 선수돈대(송강돈대), 무태돈대, 좌강돈대, 초지돈대, 삼암돈대, 분오리돈대,

                           손돌목돈대, 가리산돈대, 걸곶돈대, 건평돈대, 검암돈대, 광암돈대, 굴암돈대, 귀등돈대, 낙성돈대, 동검돈대, 망양돈대, 망월돈대, 망해돈대,

                           미곶돈대, 북일곶돈대, 불장돈대, 빙현돈대, 섬암돈대, 석각돈대, 석우돈대, 숙룡돈대, 속우돈대, 송곶돈대, 양암돈대, 오두돈대, 염주돈대,

                           옥창돈대, 용강돈대, 월곶돈대, 의두돈대, 인화돈대, 작성돈대, 장자평돈대, 적북돈대, 제승돈대, 천진돈대, 철북돈대, 추루돈대, 화도돈대,

                           후애돈대, 휴암돈대 등이 있다.    

    

     [10:47]안해루..바다를 제압한다라는 기상이 서려있는 광성보 안해루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재경동창회장이자 코스닥상장기업 영어교육 대표브랜드 에듀박스의 회장인 박춘구 친구가 광성보까지 가족들을 데리고 맨발로 달려와 친구들을 환영했다.

     먼길 달려 강화도까지 온 광주친구들을 위한 사랑스런 마음씀씀이는 지난4월16일 졸업30주년 기념행사때도 빛나더니 이번에도 빛이 난다...

     광성보의 입장료는 어른1,100원 청소년,군인 700원이며 전적지 5개소(고려궁지.갑곶돈대.광성보.덕진진.초진진)일괄관람권은 어른2,700원 청소년1,700원이다.)

     5곳이상을 둘러보려면 일괄관람권을 구매하여 돌아보는 것이 더 절약할 수 있겠고 추가하여 7개소 관람권과 10개소 관람권도 있다.

     이런 관람권은 첫 관람지 매표소 등 어느곳에서나 구매할 수 있으니 역사탐방길로 전적지를 순례하고자 한다면 일괄관람권을 구매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

     찾아가는 곳 :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33번지 / 개방시간 : 09:00~18:00 (연중무휴) / 문의 : 032-930-7070

    

     답사코스는 안해루 - 광성돈대 - 쌍총비각 - 손돌목돈대 - 포대 - 용두돈대로 산책겸  그때 그시절 포연가득한 길로 가는 것이다.

 

     광성보는 강화 5진 7보 53돈대와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다.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1233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외성을 쌓았는데, 이 성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성으로

     바다길을 따라 길게 만들어졌던 것을 조선 광해군 때 다시 고쳐 쌓았고, 효종 9년(1658)에 대대급 규모인 광성보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숙종 때 일부를 돌로 고쳐서 쌓았으며 그후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 소속 돈대가 만들어 졌다. 

     영조 21년(1745)에는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고 누각을 세워 안해루라 하였다.

     이곳은 1871년의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으며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용감히 싸우다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순국하였다.

     그때 안해루의 누각과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파괴되었다가 1976년 다시 복원하였으며, 광성보 경내에는 신미양요 때 순국한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와

     신미순의총 및 각종 포들이 진열되어 있다.

 

     광성보 안해루로 들어가는 성문의 천장엔 용그림이 그려져 있어 바다를 제압하는 루의 상징답게 용맹스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당시 사용하던 포들을 복원해 놓았다. 제일 큰 포는 대포고 홍이포라고도 하며, 중간포는 소포, 제일작은 포는 불랑기로 모두들 대포앞에서 포즈를 잡는다..

     역시 큰것은 좋은것이다..하지만 이 대포는 조준도 안될 뿐더러 700여미터를 날아가서 단순히 배를 부수는 역할밖에 못했다 한다.

     요즘처럼 날라가서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무거운 쇳덩어리를 700미터 보내는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지 체구에 비해 위력은 없었다는 것을 알고들 있는겨? 

 

     좌측부터 불랑기, 소포, 대포. 대포의 사정거리는 700미터, 소포는 300미터, 불랑기는 저런 포를 5~9개를 포1문에 연결시켜 지금의 로켓다연장포처럼

     한 번에 발사시키는 화승총이었다 하니 실제로는 불랑기가 더 위력이 있었을 듯 하다. 이 불랑기는 프랑스군이 쓰던 것이었다 한다.

     가운데 소포는 대포처럼 탄착지점에서 폭발하지 않고 단순히 무거운 쇳덩어리로 발살내는 것이었으나 조준은 되었다 하니 체구에 비해 위력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홍이포, 소포, 블랑기를 돈대의 사각 포구에 밀어넣고 바다를 향해 쇳덩어리를 날렸을 것을 생각하니 당시 열악한 군사력으로 무적 미군함대를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당시 조선군들의 죽음을 불사한 의지에 감동을 먹지만 또한 가슴속 깊은 쓰라린 아픔도 찾아온다.

 

     안해루 위에서 본 누각의 모습은 상당히 현대적이다. 용머리부터 콘크리트인지 화강암인지 돌로 눌러앉혀 놔서 오방색 단청에 비해 영 어색하기만 하다.

 

광성보안에는 배나무밭이 있다. 산책겸해서 거닐다가

갈증이 날때쯤 나타나는 배나무밭.

배는 달고 물이 많지만 아삭거리는 맛이 부족하여

나주배보다는 못하다.

그래도 갈증을 풀어주는데는 역시 배가 최고다.

 

     신미양요 순국무명용사비다..당시 전투에서 순직한 광성돈대를 지키던 이름없는 조선병사들의 묘가 있는 신미순의총 바로 위에 기념비가 있다.

     제단이 있는 것으로 봐서 매년 제사도 지내는것 같다.

     신미양요가 있기 전인 1866년 평양 대동강에 제너럴 셔먼 호라는 미국 배가 들어가고 당시 쇄국정치를 펼치던  조선 측에선 돌아갈 것을 명령하지만 

     이에 아랑곳 하지않고 셔먼호 선원들은 배에서 내리고, 그들을 제지하던 조선 중군의 이현익을 감금한 사건이 생긴다.

     이에 평양 사람들이 분노하여 강변으로 몰려들고 셔먼호에선 조총 등을 백성들에게 쏴 사태가 심각해 진다.

     백성들과 군인들도 소총, 돌, 활로 맞섰고 박춘권이란 사람이 이현익을 구해낸다.  그런데 얼마 후 비가 내려 강 수위가 높아졌다가 낮아져 버리니 셔먼호는

     대동강 위 양각도에 걸려버린다. 이에 선원들이 배에서 내려 평양에서 도둑질, 약탈질을 하고 총을 쏴서 10명이 넘는 백성들이 죽고 다치자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가 분노해 셔먼호에 포를 쏘고 불공격을 해 셔먼호를 태워버리고 가라앉혀 선원들 모두 배와 함께 대동강에 수장시켜 버린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미국에서 1871년  이 사건에 대한 응징차 조선의 문을 열기 위해 군함 5척을 보낸다.

     군함들은 강화도까지 와서 셔먼호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손해배상하라고 하지만 조선이 거부하자 700여 명의 육전대가 강화도에 상륙시켰고 이에 백성들과

     해안의 진들을 지키던 병사들의 강한 저항으로 큰 피해를 입고 결국 돌아갔는데 이것이 신미양요이다.

 

     쌍충비각이다.

    비각 안에는 신미양요의 광성보전투에서 순절한 조선 후기의 무신 어재연장군과 그의 아우 어재순 등의 전적을 기리는 전적비가 있다. 
    1986년 4월 1일 강화군 향토유적 제10호로 지정되었으며 1871년 신미양요 당시 어재연, 어재순을 비롯한 전 수비군은 인원과 무기의 열세를 딛고 미국함대와

    치열한 격전을 벌였으나 결국 대패하여 부상자 몇 명을 제외하고 전군이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비각은 후에 어씨 문중에서 이들의 충절을 기려 건립한 것으로 광성보 안에 있으며 1976년 광성돈대 복원작업의 일환으로 정비, 보수되었다.

    해마다 음력 4월 24일이면 어씨 형제의 충절을 기리는 제를 올린다.

 

     신미순의총...

     광성보 내에 있는 조선 말기 무명용사들의 무덤으로 1871년(고종 8) 4월 23일 광성진에서 벌어졌던 미해군 육전대와의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용사들의

     무덤이다. 당시 군사를 이끌던 어재연 장군과 동생 재순, 군관, 사졸 등 53명의 전사자 중 어재연 형제는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하고

     신원을 알 수 없는 나머지 51명의 시신은 7기의 분묘에 나누어 합장하여 그 순절을 기리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호랑이를 사냥하던 포수 출신들로서 용맹함이 뛰어났다고 하며 신미양요때 어떤 미군병사가 남긴 내용에는
     "조선과 싸워 이기긴하였지만 조선병사는 우리에게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목숨이 위험한 조선병사가 우리들에게 저항을 하기위해 모래를 뿌리고 혀를 물어

      자살을 하며 또한 강에 빠져 잡히지 않으려고 하였다."라고 적혀있다한다.

     당시로 보면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미 육전단에 맞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결사항전한 조선병사들의  애국정신에

     머리숙여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잠시 머물다 간다.

 

                         손돌목돈대에 얽히 전설.

                         조선시대 인조로 추정되는 왕이, 강화도로 피신하게 되어 배를 타게 되었다. 손돌은 경험이 많은 뱃사공으로 왕의 배를 젓게 되었느데,

                         왕이 앞을 내다보니, 손돌은 위험하게 보이는 여울 쪽으로 노를 젓는 것이었다. 두려운 생각이 든 왕이 "여울물 쪽으로 가지 말라."고 하였지만,

                         손돌은 계속하여 위험한 여울 쪽으로 노를 저어갔다. 왕이 손돌을 의심하여 손돌을 죽이라고 명령하자, 손돌은 "여울은 위험해 보이지만 그 길이

                         강화도로 가는 안전한 길"이라고 설명하였으나, 왕은 믿지 않았다. 손돌은 체념한 뒤 바가지 한 개를 올리면서 "만약, 배를 저어가다 뱃길을

                         잃게 되면, 이 바가지를 배 앞에 던져 이 바가지를 쫓아가십시오." 라고 마지막 말을 한 뒤 처형되었다.

                       

     손돌이 처형되자, 초겨울의 북서풍이 세차게 불고, 배를 가눌 수 없게 되어 침몰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이 때 손돌이 남긴 바가지를 배 앞에 던지니

     바가지는 배 앞에서 떠가는 것이었다. 왕이 탄 배는 바가지가 떠가는 대로 뱃길을 잡아 강화도에 도착하였고, 왕은 손돌의 사당과 비석을 세웠다.

     손돌이 죽은 음력 10월 20일경에는 북서풍이 거세게 불어오는데 이를 손돌풍 이라 하며, 매년 음력 10월 20일에 손돌묘에서 제사를 지낸다.

     손돌이 죽은 곳을 손돌목 이라고 하고 광성보에는 손돌목돈대가 있다. 손돌목돈대 동쪽 아래에 있는 용두돈대로 가면, 용두돈대 앞의 염하가

     손돌목이고 손돌묘는 용두돈대 건너편의 덕포진에 있다

 

     근엄한 왕일지라도 하찮은 어부의 말을 듣지 않아 모두가 위험에 빠질뻔한 전설은 예나 지금이나 회사든 지자체던 국가든 간에 수장으로 있는 사람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백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위정자는 결국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게 한다.

     하물며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말단사원부터 기업체의 회장까지 소통의 문을 열어놓아야 하건만 요즘 KIA타이거즈의 고위관계자들은 그들을 지탱하는

     힘의 근원인 팬들의 마음을 읽지 못해 답답하기만 하다.

                                                                        

     손돌돈대는 광성보내에서도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저 아름다운 곡선미를 어디다가 비교해 볼까..

 

     손돌목돈대에서 용두돈대로 내려가는 소나무숲길은 고즈넉하기만 하다. 이 숲길이 전쟁의 상흔이 있던 신미양요때부터 지금까지 훼손되지 않고 있는 것은

     이곳에서 장렬히 전사한 53인의 병사들의 넋이 서려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광성보뿐만 아니라 5진7보53돈대중 가장 아름답다는 용두돈대...

     성곽의 아름다운 모습이 파도처럼 넘실대는 길을 따라 용두돈대의 끄트머리 손돌목이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용두돈대아래 갯벌과 건너편 김포갯벌 사이가 손돌목이라 한다.

     물살의 세기가 매년 음력10월20일이면 불어오는 북서풍으로 인해 배를 가누지 못할 정도로 빨라지는데 그 지형과 지리를 잘 아는 뱃사공 손돌의 목을 후려친

     당시 조선의 인조로 추정되는 왕은 마지막으로 손돌이 전해준 바가지의 힘으로 그 위기를 벗어나니 미약한 백성이라도 나라를 위하는 마음만큼은

     백성들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 당시 임금보다 훨씬 낫다.

 

     용두돈대를 나서며 신미양요때의 처참한 조선병사의 주검이 찍힌 사진이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그 사진들은 쌍충비각에서 용두돈대로 가는 길목에 있는 손돌목돈대와 갈라지는 곳에 전시되어있다.

     당시 처참한 사진들을 차마 이 곳에 올리지 못하겠다. 

    

     [11:55]광성보 관람을 마치고 입구에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먹는다.

     재경동창회장인 박춘구회장이 오늘 점심을 몽땅 협찬하였다. (음..해물파전이 6그릇. 그리고 부추비빔밥+된장찌개에 동치미국수와 동동주...)

     박춘구회장과 같이 광성보를 거닐며 그의 동창회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알 수 있었고 또 자신의 회사에 대한 열정 또한 깊어서 그를 향한 무한한 신뢰가 생긴다.

     막내아들과 아들친구까지 같이 데려와 늦둥이를 가진 박춘구회장의 가족사랑도 확인하였다.

    

     [12:47]부추비빔밥은 겉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맛잇었다. 동동주에 곁들인 해물파전 또한 입에 살살 녹아 새삼스럽게 지금도 군침이 돈다.

     박춘구회장은 끝까지 우리3018산악회 친구 하나하나의 손을 잡고 재회를 약속하고 헤어졌다.

     (남규, 근일, 주영, 유은3018산악회장 홍정, 동창회사무총장 민용 그리고 박춘구재경회장)

 

      [12:50]훗날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며, 잘들 돌아가시게... 잘있으시게...

 

     [12:55]광성보에서 5분만에 덕진진에 도착하였다.

     강화5진 7보 53돈대중의 하나인 덕진진은 1656년(효종7년)에 설치되었으며 덕진돈대(1679년), 남장포대(1811년)가 추가로 설치되어 덕진진을 이루고 있다.

     병인양요때는 양헌수 장군의 부대가 밤을 틈타 이 진을 통하여 정족산성에 들어가 프랑스군대를 격파하여 프랑스군의 퇴각을 이루어낸 역사적인 곳이다.

     덕진진의 성문인 공조루는 무지개모양의  홍예문만 남아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

     입장료는 어른 700원 청소년 500원 / 찾아가는 곳 :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46번지 / 개방시간 : 09:00~18:00 (연중무휴) / 문의 : 032-930-7074

 

     바다로 면하는 공조루 성문위에는 역시 광성보 안해루와 마찬가지로 용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성문을 통과하여 덕진진 내부로 깊숙히 들어가 보자..

 

     덕진진의 남장포대는 건너편 김포의 덕진포 사이의 강화해협을 통과하여 한강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강화의 제1포대이다.

     1874년(고종 11년)에 축조한 남장 포대에는 15문의 포대가 남아 있으며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의 부대가 밤의 어둠을 타서 이 진을 거쳐 삼랑성으로

     들어가 프랑스군을 격파하였고, 1871년 신미양요 때는 J.로저스 중장이 이끄는 미국 극동함대와 이곳에서 치열한 포격전을 벌인 곳이다.

     그러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해병대에 의하여 점령당하는 비운을 맞았고 그때 성첩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고, 문루터만 남게 되었다가 1976년에 문루를 다시

     세우고 돈대를 보수하였으며 남장 포대도 개축하였다. 현재는 10문의 대포가 진열되어있다.

 

     남장포대에도 역시 대포(홍이포)가 설치되어 있으며 덕진돈대앞에는 척화비의 일종인 경고비가 세워져있다.

     이 경고비는 1867년(고종4년)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강화덕진 첨사가 건립한 것으로 개화기에 외국선박의 출입을 통제한다는 경고의 뜻으로 세워놨는데

     당시 외국인들의 눈에는 이것이 경고비로 보였을까?...아마도 한문을 모르는 외국인들은 여기서 기념촬영도 하지 않았을까 추측이 된다.

     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라는 글귀는 '바다의 관문을 지키고 있으므로 외국 선박은 통과할 수 없다'는 뜻으로 당시 대원군의

     결연한 쇄국의지를 담고 있으며  경고비 곳곳에 당시 탄흔이 남아 있다.   

 

     덕진돈대앞에서 손든 미군병사들을 재현한 기특한 친구들...당시 조선병사들은 이렇게 항복한 병사는 없었으며 모두 싸우다 전사하거나 무기가 없으면

     모래를 던지고 붙잡히게 되면  자결로 저항하였다 한다.

 

     [13:25]덕진진의 성루 공조루도 1970년대에 복원되다 보니 지붕은 콘크리트이다.

     박정희정권시대의 초 스피드 복원의 표상이고 아픔이다. 지금 시대에 복원되었다면 멋들어진 용머리에 제대로된 복원이 이루어졌을 것이데 많이 아쉽다.

     최대한 옛모습에 가까이 복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당시에는 없었을 것이고 제대로 된 문화재감식이나 전문화된 복원팀도 없었을 것이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치며 그 아픈 역사의 최전선에서 온몸으로 항거한 역사의 현장인 고려궁지와 광성보, 덕진진을 둘러보았다.

     지금시대는 총칼없이도 얼마든지 한 나라를 불안에 떨게할 수 있는 무역 및 경제전쟁의 시대이다.

     물론 핵을 중심으로 대량 살상무기를 가진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힘들게 버티는 약소국 신세이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무기로 그들을 얼마든지 대적할 수 있다.

     잡스의 사망으로 인한 스마트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기업이 있고 자동차와 철강으로 세계를 호령하는 기업도 있다. 세계 바다를 누비는 각종 배의 절반

     가까이를 만드는 기업들도 있으며 인터넷 최강국으로 사이버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나라를 이길 수 있는 나라는 없다.

     불과 140여년전의 힘없고 변변치 않은 무기로 버티어 낸 조선이 이렇게 인터넷강국과 세계를 휘어잡는 수출강국으로 변모한 것은 우리민족의 탁월한 학습능력과

     교육열풍때문이다. 배울것은 배우되 철저히 한국식으로 바꾸어 배우고 한 번 당한 것은 다시 당하지 않는다는 학습능력과 전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교육열풍은 모두 우리 어버이 시대의 못먹고 못배우며 오직 자식들 교육에 헌신한 덕분에 지금 이렇게나마 디지틀강국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의 디지틀강국에서 정말 힘있는 강국으로 발전해 나가는 저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이제 우리 후손들의 몫이 되었다.

 

     덕진진을 나와 우리는 이제 전등사가 있는 정족산성으로 간다.

 

simpro의 프로야구 이야기

simpro의 길(路) 이야기

simpro의 세상살이 이야기                                                    

       

       로그인이 필요없는view on꾹 눌러서 추천과 구독을 해 주시면 글쓴이에게 큰 격려가 됩니다. 꼭 눌러주세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