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떠난 인권여행 4편/서대문형무소 역사교육관

2013. 12. 27. 07:05대한민국 견문록/서울 견문록

 

반인권의 상징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나서 독립과 민주의 현장 서대문형무소로 이동했다.

 

독립과 민주의 현장! 서대문형무소

김구, 유관순, 한용운, 최남선, 안창호, 이광수, 김두환, 김대중, 김지하, 문동환, 고은, 김근태 이 분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80년에 걸쳐 모두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분들이다.

 

서대문 형무소는 서대문 독립공원 내에 위치한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장소로 대한제국 말부터 1986년에 이르기까지 80여 년간 식민지 시기에는 애국지사를, 독재 정권 아래에서는 민주화 인사를 가두었던 근·현대사 격동기의 수난과 민족의 한이 서려있는 대표적인 역사현장이다.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을 반대하며 일본침략에 저항하는 애국지사들을 투옥하기위해 일본인 건축가에 의해 1907년부터 대규모로 감옥을 건축했다. 당시 화폐로 약 5만 원이 들어갔으며, 인왕산 기슭아래 480평 규모의 감방과 80평 정도의 부속시설로 수용인원은 500여 명 정도였다. 그때 전국 8개 감옥의 총 수용인원이 300여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규모였던지 짐작이 간다. 지은 지 1년만인 1908년 10월 21일 500여 명을 수감자를 수용할 수 있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감옥인 ‘경성감옥’이 완성되었다.

 

독립운동의 영향으로 수용인원이 증가하자 마포 공덕동에 또 다른 감옥을 지어 경성감옥이라 이름 짓고, 1912년 이곳의 이름을 ‘서대문감옥’으로 바꾸었으며, 1923년 오늘날의 서대문형무소로 불리다가 서울형무소(1945), 서울교도소(1961), 서울구치소(1967)등으로 불렸다.

 

 

 

1987년 3월 민족수난의 역사와 함께 한 서대문형무소는 감옥에서 서대문독립공원으로 바뀌어 보존되고 있다. 

독립운동의 열기가 최고조에 이른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3,000여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혔으며, 이곳에서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거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순국하였다.

의병활동을 했던 허위 선생이 1908년 10월 21일 최초로 순국했으며, 열아홉의 어린나이로 체포된 유관순은 유관순 굴이라는 지하 감방에 갇혀 모진고문을 당하고 1920년 9월 28일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그밖에 이승만, 김구 선생도 이곳에 갇혔으며, 윤봉길 의사는 이곳에서 투옥하다 일본으로 압송되어 순국하였다. 광복 직전인 1944년에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사람이 약 2,890명에 달했다고 한다.

 

광복 후에도 감옥으로 쓰였으며, 이 시기에는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들이 대거 수용되었다. 6.25동란 때는 국회프락치사건으로 1949년 6월 체포된 김약수 등 13명의 의원은 1심 판결에 불복, 2심 계류 중 한국전쟁이 일어나 서울을 점령한 조선인민군의 정치범 석방에 의해 모두 풀려났다고 한다.

 

1960년대에는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 제3공화국 등과 같은 정치적 변동에 따라 수많은 시국사범들이 투옥됐다. 사형 선고와 집행을 받고 반세기 후 무죄 판결을 받은 죽산 조봉암 선생, 1975년에는 인혁당 사건으로 재판 후 불과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민청학련의 도예종 씨 등 8명의 고인. 이렇게 서대문형무소는 1988년 철거되기 전까지 반독재 반민주 투쟁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1986년 88서울올림픽 개최로 인해 이전 계획을 수립하였고, 1987년 11월 15일에 경기도 의왕시로 서울구치소를 옮겼다. 옮길 당시 옥사는 모두 15개동이 있었지만, 그중 보존가치가 있는 제9ㆍ10ㆍ11ㆍ12ㆍ13옥사와 중앙사, 나병사를 보존하였다.

 

그리고 1988년 2월 20일, 김구와, 강우규, 유관순 등이 옥고를 치렀던 제10ㆍ11ㆍ12옥사와 사형장이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고, 1992년 8월 15일에 마침내 서대문독립공원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1998년 11월 5일 개관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역사관의 주제를 놓고 광복이후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민주인사들의 옥사를 상설전시관으로 넣자는 당시 신계륜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설립취지대로 일제시대 고문을 당한 애국선열을 기리는 공간으로 한정하자는 이정규 서대문구청장이 맞서 같은 당 출신 인사끼리의 갈등이 이슈가 됐다.

그 후 2008년부터 서대문구가 다시 국비와 시비 등 121억 원을 들여 주전시관과 취사장 등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전시물을 교체하는 등 독립과 민주라는 주제로 2010년 재개관하면서 민주인사 상설 전시관이 마련됐다. 

 

 

 

 

 

역사관은 모두 역사실과 4개 전시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1실 (민족저항실1) : 조선말기 의병의 투쟁기 소개  

2실 (민족저항실2) :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고초를 겪었던 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추모공간

3실 (민족저항실3) : 3.1운동 이후 독립운동가의 항일투쟁기 소개  

4실 (지하고문실) : 고문의 모습을 재현해 일본의 잔혹한 실상 소개

 

 

서대문형무소 역사실

 

 

서대문형무소 조감도는 당시 설계도대로 복원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에 비하면 왼쪽 옥사는 통채로 없어져 독립공원이 되었으며 중앙사 왼쪽도 여사와 격벽장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됐다.

 

 

당시 쓰던 유물 등이 전시됐다.

 

 

 

 

이름표 부착표

 

재소자 고무신 등

 

 

문화재 원형과 복원과정을 거친 각종 자료와 역사관 개관식 자료 등

 

 

민족저항실 1: 조선말기 의병의 투쟁기 소개  

 

 

서대문형무소 최초 순국열사 의병장 허위 관련서류

 

을사늑약 후 전국적인 의병 봉기현황

 

 

수감자 이송 시 탈주 방지 위해 손목에 채웠던 수갑

 

 

수감자 이동이나 노역시 탈주 방지 위해 양쪽 발목에 채웠던 족쇄.

 

 

수감자 노역시 탈주를 방지하기 위해 허리에 채웠던 형구인 요는 무게 5kg, 길이 3m이다.

 

 

민족저항실 2 :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고초를 겪었던 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추모공간

 

 

 

서대문형무소 기록 가운데 남아있는 5천여 장의 수형기록표가 전시됐다.

일제시대때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됐던 이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5천여 명의 애국지사 수형기록표

 

 

류관순열사 수형기록표

 

 

민족저항실 3 : 3.1운동 이후 독립운동가의 항일투쟁기 소개 

 

 

 

 

 

 

지하고문실 : 고문의 모습을 재현해 일본의 잔혹한 실상 소개

 

 

 

손톱찌르기 고문은 가늘고 날카로운 꼬챙이를 손톱 속으로 찔러 고통을 주었던 고문 방법으로, 심할 경우 손톱 뿐 아니라

입 속까지 마구 찔러 고통을 주기도 했으며 그 고통으로 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벽관고문은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해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주었던 고문방법.

 

 

지하독방은 취조 후 옥사로 이동하기 전 감금했던 곳으로,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문에 의한 비명소리가

자신에게 언제 닥칠지 모를 공포를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곳에 갇힌 애국지사들은 고통속에서도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고 하니, 그 피맺힌 절규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어, 수감자가 갇혔던 옥사와 민주화운동으로 옥에 갇혔던 분들을 만나러 간다.

 

오늘 지역발전위원회 포털사이트 레디스 블로그기자단 해단식으로 인해 아침일찍 서울에 갑니다.

     구독자, 블친여러분 다녀와서 뵙겠습니다.

 

-연재순서- 

1편 : 아들과 떠난 인권여행/서울시청 신청사. 그 특별한 전시회     

2편 : 아들과 떠난 인권여행/서울시청 광장의 민주주의

3편 : 아들과 떠난 인권여행/인간과 짐승은 문 하나 차이, 남영동 대공분실

4편 : 아들과 떠난 인권여행/서대문형무소 역사교육관

5편 : 아들과 떠난 인권여행/독립과 민주의 현장 서대문형무소 

6편 : 아들과 떠난 인권여행/선진 마을공동체 '삼각산 재미난 마을'

 

 

 

(글 : 포토뉴스코리아, 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탐험대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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