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여행)오르내리는 길이 너무 아름다운 다산초당

2014. 8. 14. 07:05전라남도 견문록/강진 견문록

 

다산과 혜장스님의 우정이 어린 만덕산 백련사를 나와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걷지 않고

바로 다산초당으로 갔습니다.

승용차를 가지고 강진 청자축제장으로 가는 길에 들었기에 차량 회수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걷지 않았음에도 꿈속에 걸은 듯 현실에 걸은 듯 항상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다산초당과 백련사에 올 때마다 그 길을 걸어 오갔거든요.

 

 

다산유물전시관입니다.

최근 개관한 다산기념관에 전시관의 역할을 넘기고 이제 폐관되었습니다.

이제 이 건물이 어떤 역할을 할 지 궁금해집니다.

뒤로는 다산수련원이 있기에 다산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연구동이 된다면 더 의미가 있겠으나

다산기념관과 중복되기에 그 또한 고민이겠습니다.

 

 

유물전시관에 차량을 주차해 놓고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길이 아름답습니다.

콧바람 쐰 중전은 연신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카톡으로 누군가와 열심히 메시지를 주고 받습니다.

친구들에게 다산초당 올라가는 길을 중계하고 있군요.

 

 

힐링이 별거 있습니까?

집에서 살림하다 이렇게 주말이면 여행지를 다니는 것 자체가 힐링일 것입니다.

 

 

두충나무 사이로 난 길은 사색하기 아주 좋은 길입니다.

고개를 들면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눈 부시게 쏟아지고...

이름 모를 새소리에 주변을 두리번 거리지만 보이는 것은

바람결을 희롱하며 떨어지는 나뭇잎 뿐입니다.

 

 

오늘 제대로 힐링이 되는 중전.

 

 

금새 무너질 것 같은 길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꽤 오랫동안 버티고 있습니다.

다산초당을 처음 찾은 것이 10년 전 쯤인데 그때도 이런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이 곳엔 많은 펜션과 음식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는 약 1.1KM이군요.

마침 걷기 좋은 거리이지만, 오늘은 다산수련원 주차장에서 올라갑니다.

최근 개관한 다산 기념관도 안내도에 나와 있군요.

 

 

솔숲사이로 난 길을 걷다가...

 

 

정호승 시인이 명명한 뿌리의 길에 이릅니다.

 

 

다산초당에 이르는 길에 이 뿌리의 길을 걷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지요.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온 몸을 드러낸 뿌리를 밟고 올라가야 합니다.

200년 세월 모진 발걸음에 차여도 씩씩하고 굳건한 뿌리가 고맙기만 합니다.

 

 

뿌리의 길 오른쪽엔 묘가 하나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외가는 해남윤씨입니다.

다산초당은 원래 산 아래 귤동마을에 살던 윤단과 그의 아들 윤규로, 윤규하, 윤규의 산장이었는데,

정약용을 혜장스님으로부터 소개받은  귤동마을의 윤단이 그의 손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정약용을 초빙했고

윤종진이란 사람이 숙소로 초당을 알선했다고 하니 정약용의 외가인 해남윤씨 집안의 도움은 음으로 양으로

정약용을 있게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 윤종진의 묘가 이곳에 있습니다.

 

 

귤동마을에서 다산초당에서 올라가는 길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절 정비된 돌계단이 있는가 하면, 자연석 그대로 세월에 깎여나간 울퉁불퉁한 돌길도 만나고,

돌길과 뿌리의 길 사이로 산기슭으로 난 오솔길도 있고, 뿌리의 길도 있습니다.

 

 

 

펜션 등이 있는 입구에서 다산초당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길입니다만, 한 여름이면 좀 지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이 돌계단만 올라가면 바로 다산초당이 나옵니다.

다산초당에는 식수가 없기에 마실 음료나 물을 반드시 지참하시기 바랍니다.

 

 

다산초당의 서암입니다.

 

 

 

초의선사가 그린 다산초당에는 흙담장이 둘러쳐 있고 동암과 연지석가산옆에 초당이 있으며

서암은 보이지 않기에 천일각과 함께 최근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다산초당에는 다산초당4경이 있습니다.

다산초당과 서암 사이로 난 길을 올려다 보면 조그만 암벽이 보이는데 그곳에 정석(丁石)이라는 글씨가 보입니다.

이것이 다산초당 1경입니다.

다산이 해배를 앞두고 초당 위 암벽에 직접 새겼다는 글씨로 조각솜씨도 조각가 못지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1경에서 바라 본 다산초당입니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다산초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습니다.

주로 청소년들이 많이 왔습니다.

 

 

다산초당 동암입니다.

다산이 초당에 머무는 동안 저술활동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장소로 목민심서가 여기서 쓰여 졌으며,

1975년 강진군에서 천일각을 세울 때 함께 복원한 것입니다.

 

 

동암에는 두개의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다산동암(茶山東庵)은 정약용의 글씨를 집자(集字)한 것이고, 보정산방(寶丁山房)은 '정약용을 보배롭게 모시는 산방'이라는

뜻으로 추사 김정희가 직접 썼다고 합니다.

 

 

천일각은 다산유배시절에는 없었지만 정약용이 비교적 조망이 좋은 이곳 에서 정조대왕과 형인 정약전을 그리워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구강포가 바라보이는 이곳에 1975년 강진군에서 세웠다고 합니다.

천일각에서 바라본 구강포. 이곳에서 다산은 헝 정약전이 유배중이 흑산도가 보일리 만무하지만, 학문과 저술활동 중 잠시 이곳 너럭바위위에 걸터앉아 형을 그리워 했을 지도 모릅니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오솔길인 '정약용 남도유배 길'2코스입니다.

이 길은 정약용이 1801년 강진으로 유배 왔을 때 걸었던 길로 강진군에서 지난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모한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사업에 '정약용 남도유배길"로 선정되어 4개 코스 61.5km의 유배길이 완성되었습니다.

 

이 유배길은 지난 2010년 11월에 행정안전부의“명품녹색길 우수 사례 33선”에 선정된 바 있으며 2011년 전라남도의‘걷고 싶은

남도길 10선’에도 선정됐습니다.

그중 백미가 바로 백련사와 다산초당을 잇는 오솔길로 이 길은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모한 2014년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공모사업 탐방로 정비부문에 최종 선정됐습니다.

백련사쪽에는 천연기념물 동백나무와 야생차 밭이 있으며 다산초당에 이르는 길은 바닥을 덮은 푹신한 낙엽이불을 사뿐히 지르밟고

지나가며 다산과 아암의 채취를 느낄 수 있는 길입니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는 800m정도로 30분 정도면 갈 수 있습니다.

오솔길의 이름은 없습니다. 그저 초당에서 올라가면 백련사 가는 길이 되고, 백련사에서 출발하면 다산초당 가는 길이 됩니다.

이렇듯 이 오솔길은 선비인 다산의 유교와 승려인 아암의 불교가 융합된 길입니다.

 

 

 

다산초당의 연못인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은 다산초당의 4경입니다.

다산초당이 초가였던 것을 기와로 바꾸고 동암과 서암이 새로인 복원되며 옛모습을 잃었지만

아마도 이 연못은 정약용이 초당에 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 이지 않나 싶습니다.

직접 연못을 파고 축대를 쌓았으며 물을 끌어다가 폭포를 만들었다고 하니 그의 손길을 느껴지는군요.

연못 가운데 섬처럼 생긴 돌무더기는 석가산(石假山)이라고 하며 다산이 쌓았다고 합니다.

 

다산초당 툇마루에서 연못을 바라보며 기르고 있는 잉어들과 수도 없이 대화를 나누었을 다산을 생각해 봅니다.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도 초당의 제자들과 주고받은 편지에서 물고기들의 안부를 물었다고 할 정도이니,

다산의 인간미에 그저 놀랄 뿐입니다.

다산초당 뒤로 돌아가면 다산초당 2경인 약천(藥泉)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이 촉촉이 젖어있는 돌 틈을 파보니 맑은 물이 솟아나왔다는 약천(藥泉)입니다.

다산은 약천의 물을 마시면 '담을 삭이고 묵은 병을 낫게 한다'고 기록했으며,

이 물을 떠서 솔방울로 숯불을 피워 찻물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다산초당 앞에는 다산초당 3경인 다조(茶竈)가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 돌이지만 평범한 돌이 아니고 다산이 차를 끓이던 다조(茶竈)라는 곳입니다.

솔방울을 꺾어 숯불을 만들어 찻물을 끓인 다음 초당으로 가져가기 전까지 여기서 차와 대화를 나눈 곳이랍니다.

 

 

다산초당은 다산학으로 일컬어지는 정약용 학문의 결정체이자 요람이었습니다.

다산은 이 초당에서 1818년 9월 해배될 때까지 10년을 보냈으며,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등 500권이 넘는 저서를

사의재 시절부터 제자인 황상, 이학래. 그리고 초당에서의 18명 등 제자들과 공동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다산초당에서 홍임이라는 딸도 봤습니다.

훗날 다산이 해배되어 마재로 갔을 때 홍임과 홍임의 모도 따라갔으나 문전박대를 당해 돌아와 거처한 곳도 다산초당입니다.

이렇듯 다산초당은 다산과 제자들 그리고 홍임의 모와 딸 홍임 등 많은 사람들의 손때와 채취가 남아있는 곳입니다.

다산초당등 강진여행길에 이곳저곳 많은 곳을 둘러보았지만, 대부분 서너번씩 다녀온 곳입니다.

왜냐구요? 강진은 남도답사 일번지이기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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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포토뉴스코리아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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