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여행)담양 명옥헌원림. 백일홍의 님그리움이 시작되다.

2014. 8. 12. 07:05광주 견문록/광주 견문록

 

해마다 8월 이맘 때 담양 명옥헌원림은 붉디붉은 배롱나무꽃에 숲 전체가 활활 불타오르는 모습은 가히 환상이었습니다.

꽃말처럼 떠나간 님 그리워 하면서 100일 동안 피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배롱나무꽃잎의 아름다운 낙화를 보기위해  8월 9일

담양명옥헌에 들렀습니다.

 

 

명옥헌과 추억만들기로 산뜻한 골목입니다.

훗날 가면 이 사진을 거기다가 붙여놓을까 합니다.

 

 

하지만 명옥헌원림의 배롱나무는 아직 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잎은 아직 일주일정도 더 기다리라고 합니다.

 

 

명옥헌 앞에 지난해까지만 해도 없던 상사화가 피어났군요.

햇살이 너무 강렬해 배롱나무 숲속에서 화사함이 도를 넘습니다

 

 

명옥헌에는 주말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각자의 여유를 찾고 있습니다.

책 읽는 사람, 꿈속에서 오희도를 만나는 사람, 친구들끼리 연인끼리 다정다감한 여유가 있습니다. 

 

 

백일동안 피어 있다고 해서 백일홍이라 부르지만, 사실 백일홍은 백일동안 피어있지 않고 꽃송이 하나하나는 열흘정도 피었다가 지는데 한 가지에 매달린 수백 개의 꽃이 하나씩 피고 지기를 차례로 하다 보니 백일동안 피어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꽃 하나의 생명력은 10일밖에 안되니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말이 생겨났겠지요.

 

 

명옥헌에 앉아 있으니 시원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금새 '이산 저산~~~'하며 호남가 한 자락 흘러나올 분위기입니다.

실제로 같이 간 일행 한 분이 멋들어진 호남가 한 자락 부르자 사방대서 박수와 함께 앙코르가 쏟아집니다.

 

 

 

 

정자의 왼편으로 흐르는 계곡물소리가 마치 옥구슬이 구르는 소리 같다 하여 명옥(鳴玉)헌이라고 지었는데, 왜 명옥정(鳴玉亭)이 아니고 헌(軒)이라 지었을까요?

그것은 아마 이렇게 방안에 앉아 자미꽃나무 흐드러지게 핀 연못을 바라보고 심성을 수양하기 위해 사랑채 개념의 헌(軒)자를 붙였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합니다.

 

명옥헌이란 현판이 붙어있지만 정자 내부엔 삼고(三顧)라는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능양군(조선 16대 인조)이 광해군을 몰아내기 위한 반정동지들을 규합하기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고경명의 손자 고부천을 찾아 후산리까지 왔는데, 그때 고부천이 명곡 오희도를 추천하고 1623년 능양군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을 때 그 때의 인연으로 오희도는 중앙 벼슬길에 오릅니다.

아마 편액은 이곳에 사는 오희도를 능양군이 세 번이나 찾아갔는데 유비가 제갈공명의 초가를 세 번이나 찾아가 마음을 얻었듯이 자신의 마음을 얻고자 세 번이나 찾아 온 능양군을 기리는 마음에서 쓴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에 있는 배롱나무들은 언제 심었을까요?

조선 중기 오희도(吳希道:1583~1623)가 자연을 벗삼아 살던 곳에 그의 아들 오이정(吳以井:1619~1655)이 명옥헌을 짓고 건물 앞뒤에 네모난 연못을 파고 주위에 꽃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가꾸었던 정원으로 350년이 넘었습니다.

이 배롱나무들도 그때 당시에 심은 것으로 추측하는데 그렇다면 오래된 나무는 350살이 넘는 셈입니다.

수백 년 되는 배롱나무는 수피가 자주 빛을 띤다고 해서 옛날엔 자미(紫微)나무라고 불렀는데, 그 붉은 자미 꽃이 100일 동안 피어있다 해서 백일홍나무라 불렀고, 한글로 배롱나무라 부르게 된 이유입니다.

 

 

 

명옥헌에 처음 나들이 하는 중전.

몇달 동안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 같이 여행을 다니는데 따분한 집안 살림에서 모처럼 콧바람 쐬니 기분이 최고라고 합니다.

 

 

명옥헌엔 배롱나무뿐만 아니라 이런 적송군락지도 있습니다.

 

 

명옥헌에 만개한 배롱나무꽃 보고자 오시걸랑 8월 15일에서 20일 사이가 가장 적당할 것 같습니다.

 

 

차량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없습니다.

명옥헌원림 공용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400m정도 걸어야 합니다.

마을의 주택들도 모두 담장이 낮고 전원주택이 많아 골목길 구경도 나름 볼 만 합니다.

 

 

명옥헌원림을 보고 후산리은행나무를 보러 갑니다.

 

 

분기점에서 약 200m정도 올라가면 한 눈에도 덩치가 거대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보입니다.

이 나무는 인조대왕 계마행(仁祖大王 繫馬杏)이라는 은행나무인데, 능양군이 왕이 되기 전에 전국을 돌아보다가 오희도를 찾아

이곳에 왔을 때 타고 온 말을 매어둔 곳이라 해서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나무의 수령은 약600년으로 추정되며 잎의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다고 해 압각수(鴨脚樹)라고도 불립니다.

수고는 약 30m에 달할 정도로 거목으로 가슴높이 줄기둘레 7.8미터에 이르며 사방으로 가지가 10~14미터나 뻗어 우아한 기품을 뽐내고 있습니다.

선비의 집 마당까지 말을 타고 들어가지 않고 이곳에 말을 매어둔 것은 선비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선비를 예우할 줄 아는 인조의 인품을 짐작하게 만듭니다.

 

 

명옥헌원림을 보면서 인조대황계마행을 보지 않고 간다면 앙꼬없는 찐빵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지만, 신기한 기운을 뿜어내는 은행나무를 먼저 보고 명옥헌원림을 돌아보며,

인조의 오희도에 대한 삼고(三顧)의 의미를 되새겨보면 어떨까요?

 

 

(글 : 포토뉴스코리아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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