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여행)四色 백일홍이 피고지는 송백정을 정원으로 둔 고영완 가옥(무계고택)

2014. 10. 30. 06:30전라남도 견문록/장흥 견문록

 

 

꿈인 듯 아련한 고영완 가옥(무계고택)송백정이라는 아름다운 연못이 있었다.

그런데 그 연못을 만들어 정원으로 사용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고재극 선생이다.

이렇게 운치 있는 연못을 만들었다면 그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집은 고영완 가옥(무계 고택)으로 불리지만, 선생의 고조부인 고재극 선생이 이 집을 지었다.

입구부터 고택의 촘촘한 담장의 무늬와 동근 돌계단을 가로막고 하늘을 가린 거대한 나무 두 그루가

이끼를 머금은 채 낯선 방문객을 도도하게 지켜보고 있다.

나무위로 다른 나무가 올라타듯이 서로 몸을 맞대고 있다고 해서 '사랑나무'라 부르는 느티나무이다.

 

 

문이 활짝 열려있어 반갑게 들어가 본다.

간혹 무계고택에 관한 포스팅을 보면 헛걸음친 이가 많았다는 포스팅이 대부분이다.

그것에 비하면 한 번에 성공한 simpro야 말로 행운아가 틀림없다.

배롱나무 꽃이 활짝 핀 시기에 왔다면 훨씬 더 의미가 있었겠으나 고영완 가옥이나마 제대로 구경하였으니 말이다.

 

 

집은 급한 경사에 짓다보니 이곳부터 모두 삼단으로 되어있다.

맨 아랫단이 이처럼 출입문과 문간방이다.

 

 

오래전에 수선해서 바꿨을 기와도 한쪽에 보물처럼 모여 있다.

 

 

다소 어수선한 듯 보이지만 나름대로 질서가 있다.

 

 

예전에는 정화사라는 절이 있었다는데  그 유물로 보이는 것이 오래된 건물 터에 있다.

 

 

한옥이라고 하더니 웬 양옥집?

한옥 옆에 원래 재실이 있던 자리에 현대식 양옥집을 지어 노부부가 거처하고 있었다.

 

 

1층은 창고용도이고 2층이 살림집.

작지만 실속 있고 그 자체로 평범 속에 아름다움이 숨어있다.

 

 

전남 문화재자료 제161호로 등록된 고영완 가옥의 고영완 선생(1914~1991)은 도쿄 센슈대학을 졸업한 독립운동가로

연희전문사건 학생운동을 하다 검거되어 3년형을 언도 받고 1년 반 이상을 감옥에서 생활하였다.

후에 독립유공자로 등록이 되어 집 대문에는 독립유공자 명패가 자랑스럽게 걸려있다.

고영완 선생은 장흥군수와 제2·5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지금은 고영완 선생의 아들인 고병선 선생이 미국서 생활하다 귀국해

부인과 함께 가옥을 지키고 있다.

 

 

 

장흥고씨는 애국독립지사들이 많은 가문이다.

선조인 제봉 고경명 선생이 임진왜란 당시 호남연합의병장이었고, 장군의 둘째아들과 금산전투에서 순국했다.

큰아들 종후역시 상중 임에도 복수의병장(復讐義兵將)이 되어 숙부와 같이 진주성 전투에 참전해서 전사했으며,

종후의 장남 고부립은 정유재란 때 의병장이 되었고, 둘째 아들 인후의 둘째 고부천도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였으며 정묘호란 때는 피난 가는 동궁을 호종하기도 했다.

 

 

고경명 장군의 13세 후손이자 둘째아들 인후의 사손(祀孫, 제사를 받드는 후손)인 고광순도 60세의 고령이었음에도

구한말 담양 창평에서 창의하여 10년간 왜적과 혈전을 벌이다 1907년 그와 함께 싸워온 고제량 등 의병 지도자들과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근처에서 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하게 전사하였으니 장흥고씨 고경명 장군의 후손들은 거의 모두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대대손손 애국지사 후손인 것이다.

 

 

고택은 고영완의 조부인 고재극 선생이 1852년 지은 목조 팔작지붕 가옥으로, 1m 높이의 축대에 들어선 일자(一)형 정면 5칸,

측면 2칸 집으로 전라도 지방의 전형적인 한옥형태로 1988년 3월 16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정화사(淨化寺)라는 절터에 지어졌으며 경사가 급한 대지에 건축되다보니 기단이 3단으로 되어있다.

제일 아랫단에는 대문과 하인 방, 둘째 기단에는 마당, 창고, 관리사를 두었고 맨 윗단에 본채와 양옥건물을 앉혔다.

 

 

방은 2칸인데, 현대식 등이 달린 것으로 봐서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사용하지 않으면 낡고 먼지가 쌓여 더 빨리 못 쓰게 된다.

매일 사람의 체온을 느끼고 방과 마루에 쌓인 먼지가 닦여 나가야 오랫동안 보존되는 것이다.

 

 

거실을 겸한 마루도 보이고...

 

 

마당엔 불을 밝혔을 석등도 있다.

 

 

집 뒤는 거의 모든 집이 비슷하다.

단아한 앞모습과 달리 다소 거친 뒷모습은 훨씬 인간적이다.

 

 

거의 1m정도는 쌓은 기단.

 

 

 

푸른 이끼가 잔뜩 낀 장독대엔 오랜 옹기가 고된 삶을 드리운채 이제는 편한 자세로 쉬고 있다.

 

 

절구통도 보이고,

 

 

담쟁이로 가득 찬 담장을 떠올려 본다.

 

 

부부가 정성껏 가꾸고 있는 텃밭에선 잘 익은 상추가 식탁에 오를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허리를 숙여 잡초를 뽑고 있는 고병선 선생의 부인은 상당한 미인이셨다.

그 고운 미소를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이제 늙어 추하다고 기어코 사양하신다.

 

 

고택을 한 바퀴 빙 둘러보는데 십여 분이면 족했지만,

뒤 돌아 나오면서 느낀 시간은 한 시간도 넘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주 오래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다 길을 잃어버린 듯

마음속 방황을 마치고 나오면서 다시 사랑나무를 본다.

송백정과 무계고택이 있는 장흥 부동면 평화마을.

정남진 장흥 억불산자락 솔숲 우거진 곳에 꼭꼭 숨겨진 보석과 같이 영롱한 곳이었다.

 

 

 

(글 : http://www.photonewskorea.com/포토뉴스코리아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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