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황실가의 마지막 거처 창덕궁 낙선재로의 여행

2016. 10. 24. 06:00대한민국 견문록/서울 견문록


친구들과 1박2일 북한산과 서울여행 #3

창덕궁과 낙선재


숙소인 마포 G.O.D게스트하우스를 나와 인근 장어탕 집에서 아침을 먹고 창덕궁에 도착했다.

창덕궁이야 쉽게 들어갈 수 있지만 오늘의 주된 목적은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창덕궁 후원 관람이다.

창덕궁 후원을 가려면 창덕궁을 거쳐야 하기에 3,000원의 입장료와 후원 입장료 5,000원 등 도합 8,000원의 입장료를

주고 표를 끊었다.

아침 일찍이어서 그런지 우리를 실은 관광버스는 창덕궁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어 편했다.

창덕궁 후원의 한국어 해설 예약 시간은 오전 10시.

9시경 도착한 일행은 창덕궁 전각을 관람하고 9시50분에 후원서 만나기로 하고 흩어졌다.


 

 


창덕궁에 들어가기전 돈화문에서 단체사진.

조선 5대 궁의 하나인 창덕궁의 정문으로 보물 제383호이다.

태종 12년인 1412년에 건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8년 창덕궁과 함께 복원했다고 하니

400년도 넘게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서울 시내 목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니 그저 감탄사만 연발할 뿐이다.


 

 

서울의 고궁들은 한복을 입으면 무료 입장할 수 있다.

우리 일행도 한복을 입고 들어갈 걸 그랬나?




진선문은 창덕궁의 중문으로 1999년복원했다고 한다.

백성의 억울함을 알리는 신문고를 태종 때 진선문에 설치했다는데 복원하면서 신문고를 같이 설치했음

훨씬 의미가 깊을 것인데...




진선문에서 인정문까지 이어지는 길 중앙으로는 아마도 임금만 다녔을 것이다.

 



 

 

보물 제813호인 창덕궁 인정문

조선시대 창덕궁의 공식행사를 했던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1405년 태종이 창덕궁을 지으면서 건립된 문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때 복원했다고 한다.




창덕궁 인정문 지붕위의 잡상.

보통 5개를 배열한다고...



 

국보 제225호인 창덕궁 인정전

역시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선조 때 복구를 시작해 광해군 원년인 1607년 다시 세웠다고 한다.

망할놈의 왜놈들...


친구들이 모여 있는 종이품은 조선시대 제 4위에 해당하는 품계로 현대의 직급으로는 차관보 정도 되겠다.

참고로 조선시대 품계와 현대와 비교하자면 대략...

정1품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국무총리)

종1품은 좌찬성, 우찬성 (부총리)

정2품은 판서, 좌참찬, 우참찬, 대제학, 도총관 (장관, 차관, 도지사, 대장)

종2품은 참판, 부총관, 병마절도사, 관찰사, 부윤 (차관보, 중장)

정3품은 참의, 직제학, 목사, 병마절제사 (관리관, 소장)

종3품은 사간, 대호군, 도호부사,병마첨절제사 (이사관, 국장, 준장)

정4품은 사인, 장령, 군호 (부이사관, 대령)

종4품은 첨정, 부호군, 군수 (중령)

정5품은 정랑, 별좌, 교리 (서기관, 소령, 군수)

종5품은 판관, 부사직 (부군수)

정6품은 좌랑, 별제(사무관, 대위, 면장) 등등... 


 

 

 

내부 구경에 여념이 없는 친구들...

영화 '덕혜옹주'에서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덕혜옹주도 이렇게 창덕궁 인정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종의 어진 미소를 떠올리며...





창덕궁 인정전 위에는 잡상이 9개.

이런 잡상은 궁궐의 전각이나 문루의 추녀마루에 주로 올려놓는데 사람이나 생물, 물건 등을 해치는 모진 기운인

살(煞)을 막기 위함이라고...




 

 

인정전에서 희정당과 대조전으로 이어지는 담


 

 

희정당은 국왕이 평상시 거처한 곳이라는데...

대조전 앞에 있으며 창덕궁 때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1834년 들어 다시 세웠다고..

그러나 이마저도 1917년 불에 타버려 1920년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이제 보물 제1764호인 낙선재로...


 

 

낙선재는 1847년 건리비된 조선시대 사대부의 주택양식이라고...

석복헌과 수강재로 계속 이어지는데 전체를 통틀어 낙선재라고 부른다.

왕이 책을 읽고 쉬는 공간인 서재겸 사랑채라는데, 국상을 당한 왕후들이 소복을 입고 은거하는 공간이기도 했다고...

일제에 국권을 뺏긴 순종이 머물렀고, 영친왕 이은과 부인 이방자 여사가 일본에서 귀국해 기거하다 생을 마친 곳이다.

영친왕은 1970년에, 이방자 여사는 1989년 운명한 곳.




 

 

건물과 건물은 행랑과 담으로 연결되었고...


 

 

석복헌은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가 순종이 영면한 후 기거하다 1966년 운명했고...


 

 

수강재는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가 1968년부터 1989년까지 기거한 곳으로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조선 왕가의 마지막 여인들이 말년을 보낸 곳으로 황실의 마지막 역사이기도 한 곳이다.


 

 

낙선재 뒤로는 상량정, 한정당, 취운정 등 정자가 있는 후원이 있는데 창덕궁 후원 관람 예약시간이 다돼 돌아가야 했다.


 

 

최근 영화 '덕혜옹주'에서 일본에서 귀국해 창덕궁을 찾은 덕혜옹주가 그려졌는데,

덕혜옹주가 포공항에 내렸을 때 상궁들이 덕혜옹주에게 큰절을 올리던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석복헌에 기거하던 순정효황후가 보냈다는...


조선왕실의 마지막 황실가족인 순정효황후, 영친왕 이은, 이방자 여사, 덕혜옹주 등 한많은 삶이 오롯이 담겨있는 낙선재

창덕궁 후원 관람에 앞서 둘러본 짧은 시간이었지만 과거로의 여행은 영화 '덕혜옹주'와 더불어 스크린에 보여지고 있었다.

(창덕궁 후원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