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왕세자가 거닐었던 창덕궁 후원. 효명세자를 만나러 갔다.

2016. 11. 3. 06:00대한민국 견문록/서울 견문록


친구들과 1박2일 북한산과 서울여행 #4

창덕궁 후원

 

창덕궁과 낙선재로의 여행은 화려한 고궁 나들이보다 가슴 먹먹한 나들이가 되었다.

600년 조선시대 중 경복궁보다 왕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창덕궁보다 황실의 마지막 거처였던 낙선재 뜨락을 거닐며

수십년 전 이곳을 같이 걸었을 황실의 여인들이 먼저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제 낙선재를 나와 KBS 2TV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주인공 효명세자의 흔적을 찾아 왕의 정원 창덕궁 후원으로 간다.

지금쯤이면 곱디 고운 단풍이 차분하게 내려 앉았을 창덕궁 후원.

과연 거기서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효명세자를 만날 수 있을까?

 


 

일단 후원은 당일 가보고자 한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관람일 일주일 전부터 인터넷 사전예약을 받으며 그것도 회차별 50명에 한정된다.

나머지 50명은 관람 당일 매표소에서 선착순으로 표를 구매할 수 있다.

 

10월 9일 입장이므로 일주일 전인 10월 3일 개천절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창덕궁 후원 예약하기 사이트를 열어놓고

9시50분부터 대기했다가 일순위로 예약을 끝냈다.

1사람당 10명까지 예매할 수 있으므로 15명을 예약하려면 두번을 예약해야 하는 관계로 손놀림이 현란해야 했다.

결재는 하지 않고 예매번호를 받아 관람일 당일 매표소에서 결재하면 표를 받을 수 있다.

 

언어권별(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로 1회차당 100명씩 입장을 제한한다.

관람시간은 1시간 30분, 회차별 텀은 30분으로 한국어 해설을 들으려면 최대 2시간은 기다려야...

 

창덕궁 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낙선재 바로 옆에 있다.

우측 문은 창경궁으로 가는 출입문으로 후원은 좌측 통로를 따라 간다.

10시 한국어 해설 타임으로 인터넷 예약과 선착순으로 표를 끊은 100여 명이 모여 들었다.

 

 

 

 

창덕궁 후원 문화관광해설사.

의외로 새파랗게 젊은 분이라 깜짝 놀랬다.

대게 나이 지긋한 분들의 해설이 몸에 익어서리...


 

 


 

창경궁과 맞닿은 담벼락 사이로 난 왕의 길을 따라 후원으로 입장한다.

후원은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비원'으로 불린 것으로 기억되는데 왕의 숨겨진 정원이라서 그랬을까?

아무튼 지금도 내 기억속에 창덕궁 후원보다 비원이 더 앞서있다.

 

 

 


 

좌우로 아담한 동산을 지나면 국내 유일의 십자누각이 나온다.

아주 오래전인 1975년 창덕궁 후원에 있는 나무를 조사했다는데,

300년 이상된 나무는 느티나무 37그루, 은행나무 2그루, 회화나무 2그루, 주목 10그루, 밤나무와 측백나무 2그루,

매화나무, 향나무,다래나무, 주엽나무가 각 1그루씩 있다고 한다.

이 중 향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94호, 다래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51호라고 하는데 해설사 옆에 있지 않고 싸돌아 다니다보니

찾아보지 못했다.


 

 


 

인공연못은 가운데 동그란 섬이 있으며 연못을 중심으로 열십자 형태로 누각을 배치했다.

이런 형태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다'는 천원지방 사상을 반영했다는데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전형적인 연못형태라는데,

이 연못의 깊은 바닥에는 무엇이 있을까?


 

 


 

보물 제1763호인 창덕궁 부용정( 亭)

왕이 과거급제한 이들에게 주연을 베풀어 축하해 준 장소라고 하며 정조가 1795년 수원 화성을 다녀온 후

신하들과 낚시도 즐겼다는데, 정자를 받치는 기둥 두개가 연못에 있는 것이 특색이다.

이런 형태의 정자를 주로 부용정이라고 하는데 정자도 연못위에 있는 꽃의 하나로 봤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조들의 해석인가?

 

 


 

정면에 보이는 누각이 주합루, 좌측으로 서향각이고 우측 누각은 영화당.

연못은 연으로 덮인 것 보다 이렇게 드믄드믄 있는 것도 좋더라는...

 

 


 

어수문과 주합루

주합루 1층은 왕실의 도서를 보관하는 규장각. 2층은 열람실이다.

주합루는 입장불가인데 열람실에서 연못을 바라보면 아마도 책이 잃혀지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일게다.

또한 책 한 권 보려면 상당히 멀리 걸어야 하는 곳인데 왕은 여기까지 오며가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창덕궁 영화당 현판은 영조의 친필이라고...


 

 

이 마당이 춘당대라는 마당인데 초시에 합격한 응시생들이 마지막 시험을 치른 곳이라고...

상당히 넓지만 지금은 창경궁과 일부가 담으로 막혔다고 한다.

저 위에 서 있을 임금이 그려지지 않는가?

 


 

인공연못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애련지(池)로 왕이 얼마나 연을 사랑했으면 애련지로 지었을까? 

하나 있는 정자인 애련정은 지금 보수공사로 가림막이 쳐져있다.

애련지는 가운데 둥근 섬이 없다.

 


 

돌을 통채로 깎아 만든 불로문.

대단한 작품이다. 문이 달려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단청없는 이 소박한 건물은 의두합과 운경거.

조선시대 건물의 서열은 전-당-합-각-재-헌-루-정 순인데 이 초라해 보이는 건물을 의두합이라 하는 것은

바로 효명세자가 거처한 곳이기 때문이다.

 

의두합은 효명세자의 공부방이었다는데 KBS 2TV 월화미니드라마 '구르미그린 달빛'에서 박보검이 맡은 역이 효명세자다.

비운의 왕세자였던 효명세자는 순조와 정비인 순원왕후의 장자로 정통을 잇는 왕실의 적자로 태어났기에 현종과 명성황후가

숙종을 낳은 이래 150년 만의 왕실 경사였다고 한다.

대게 왕들은 후궁의 자식들이었기 때문인데, 왕비의 몸에서 장자로 태어났으니 이 얼마나 경이로운 사건인가.

불을 보듯 뻔하다. 금이야 옥이야 제대로 길렀을 것인데....

 


 


 

세번째 연못은 관람지. 또는 한반도 모양이라고 해서 반도지라고도 부른다.

위의 정자는 승재정, 아래의 정자는 관람정  

 

 


 

관람지는 호리병 형태로 크고 작은 원형 3개가 이어진다고...

왕과 왕비가 따로 정자에 서서 서로를 바라봤을까?

 


 

이 정자는 존덕정이라고 하는데 이층 지붕이라 특이하다.

이 역시 두개의 기둥은 연못에 빠져있다.


 

 


 

관람지를 지나면 또다시 울창한 숲이 이어진다.

옆으로는 옥류천이라는 계곡이 있고...

학자들이 모인다라는 뜻의 취규정()이 있다.

 

최근 문화재청 창덕궁관리소는 독서의 계절을 맞아 10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 '후원에서 만나는 한 권의 책' 행사를 하고 있다.

영화당, 존덕정, 취규정, 농산정에 다양한 책을 비치해 놓고 매주 토요일 이들 정자에서 독서 동호회 토론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기간 중 후원 입장객을 1회 100명에서 200명으로 대폭 늘리고 해설사 없이 자유관람을 시행한다고 한다.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돋보이는 곳이 옥류천 일대.

인조 14년에 '소요암'이라는 커다란 바위를 깎아 둥근 홈을 만들어 옥처럼 맑은 물이 바위 둘레를 돌아 폭포처럼 떨어지게 했다는데

임금이 신하들과 이곳에 둘러 앉아 흐르는 물잔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노래했다니 신라시대 포석정과 다를바가 없다.

자그마한 삼각산처럼 보이는 '소요암'에는 숙종의 오언절구 시가 새겨져 있으며 옥류천이라는 글씨는 인조의 친필이라고 한다.

 

 

飛流三百尺 (비류삼백척) 폭포는 삼백척인데

遙落九天來 (요락구천래) 멀리 구천에서 내리네

是白虹起翻 (간시백홍기) 보고 있으면 흰 무지개 일고

飜成萬壑雷 (번성막학뢰) 뒤집혀 골짜기마다 우뢰소리가 득하네

오언절구에 나오는 흰 무지개는 음기의 무지개가 태양을 꿰뚫은 변고라는데...

국가에서 장차 실도(失道)하는 잘못을 저지르면 하늘이 먼저 재이(災異)를 내보여 이를 견책하여 알리는 것이라고 한다.

현세에 이르러 박근혜 정부가 실도하는 형국에 이르러 마침내 하늘이 흰무지개를 보여 나라를 바로 세우려 하는데

검찰은 하늘의 지엄한 명령으로 받들어 국민의 편에 서서 원리원칙에 입각한 수사로 관련자 모두를 사법처리해야 할 것이다.

 

 

 


 

창덕궁 후원의 유일한 초가지붕인 청의정.

이곳은 임금이 직접 벼를 심고 재배했으며 추수가 끝나면 볏집으로 지붕 이엉을 이었다고 한다.

지붕은 초가지만, 단청을 입힌 것이 특색으로 농사의 소중함을 백성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함이라는데

지금의 저 초가지붕은 누가 올렸을까?.

 

 

 


 


창덕궁 후원에는 단청이 없는 창덕궁 낙선재처럼 양반집인 보물 제1770호 연경당이 있다.

109칸에 이르는 대저택으로 사랑채, 안채, 안행랑채, 바깥행랑채, 반빗간, 서재, 후원, 정자 및 연못이 있는 저택이다.

1827년 순조가 건강악화로 일선에서 물러나자 대리청정하게된 효명세자는 아버지 순조를 위해 이곳에서 연향을 매년 펼쳤다고..

'연경'이라는 당호는 효명세자가 직접 지었다고 하며 효명세자가 창작한 '춘앵무'와 '무산향'이 춤과 음악으로 울려펴졌다고 한다.

 

 


 

수렴청정 4년 만인 1830년 4월부터 잦은 기침에 피를 토하던 효명세자는 5월 6일 새벽 22세의 젊은 나이로 숨은 거뒀다.

해마다 부왕과 모후를 위해 큰 연회를 열었다는 효성가득한 그는 4년 뒤 순조가 붕어하고 효명세자의 아들인 7세의 헌종이 즉위

하자 익종을 거쳐 문조 익황제로 추존되었다.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 있는 수릉에 82세까지 장수하며 고종을 수렴청정한 신정왕후와 합장되었다.

 

 

효명세자는 꽃미남이었다는데 박보검의 해맑은 미소가 자꾸 효명세자로 착각되는 것은 나만 그런가?

진짜로 이렇게 잘 생겼다면 대박~~~

 

이제 창덕궁 후원을 나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