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여행)강진의 200년 시크릿 가든 백운동정원. 다산 정약용도 반했당께

2017. 9. 11. 06:00전라남도 견문록/강진 견문록


담양 소쇄원과 보길도 부용동은 호남을 대표하는 별서정원이다.

세속의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으로 귀의해 살림집과 별도로 전원이나 깊은 산속에 따로 집을 지어 신선같은 생활을 즐기려고 만든 것이 별서정원인데, 양산보는 스승 조광조가 기며사화로 사약을 받고 운명하자 세상을 등지고 고향 담양 성산의 아름다운 계곡에 소쇄원을 지었으며 윤선도는 병자호란으로 강화도로 피신한 조정을 돕기위해 해남에서 뱃길로 나섰다가 인조의 치욕적인 삼전도 항복에 배를 돌려 제주도로 향하다 보길도 상록수에 반해 그곳에 정자를 짓고 아예 눌러앉았다.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안운마을 백운계곡에도 이러한 별서정원이 있다.

바로 이담로 처사가 지은 백운동정원으로 양산보의 소쇄원, 윤선도의 부용동과 같이 호남 3대 별서정원으로 불린다.


다산 정약용이 1812년 9월 12일 초의선사 등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을 등반하고 백운동에 들러 하룻밤을 묵었다고 한다.

백운동의 풍광에 반한 다산은 초의선사에게 백운동을 그리게 했고 거기에 서시와 발문, 백운동 12경 중 8수(옥판봉, 산다경, 백매오, 유상곡수, 창하벽, 정유강, 모란체, 취미선방)의 시를 지었다.


그리고 초의선사에게 3수(홍옥폭, 풍단, 정선대)를 짓게하고 제자 윤동에게 1수(운당원)를 짓게해 총 13수의 시를 완성한 후

백운동과 다산초당 중 어느 것이 아름다운지 겨뤄보고픈 마음으로 다산초당을 맨 마지막 장에 그려 백운동 4대 동주 이덕휘에게 선물했다는데 이것이 바로 백운동 정원을 세상에 알린 백운첩이다.






백운동 정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비밀스럽다.

50여 미터에 이르는 돌담길 너머로는 동백나무, 비자나무 등 상록수가 우거져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과연 이런 곳에 집이라도 있는 것일까?

백운첩에 있는 12경을 하나씩 찾아보는 즐거움을 가져본다.


제2경 산다경(山茶徑) : 별서 정원에 들어가는 동백나무(山茶) 숲의 작은 길(徑) - 정약용


언덕을 끼고 심은 동백나무가

이제는 길 가득 그늘 만드네

가지마다 꽃 보숭이 맺혀 있으니

세한(歲寒)의 마음을 남겨둔 걸세







비가 내린면 금세 불어난 물로 다리가 없다면 계곡을 건널 수나 있으련지...


제4경 홍옥폭(紅玉瀑) : 단풍나무 빛이 비친 폭포(瀑布)의 홍옥(紅玉)같은 물방울 - 초의선사


천봉에 빗바울 쏟아지더니

냇물이 백 갈래로 갈리어 난다

온통 단풍나무 속을 따라서

죽정 앞을 부딪히며 지나가누나





카메라 앵글로 본 세상은 너무 어두워 ISO감도를 활짝 올려야 했다.

바위에 백운처사 이담로가 새긴 백운동이라는 글귀가 겨우 보일 정도다.






제6경 창하벽(蒼霞壁) : 붉은색(霞)의 글자가 있는 푸른빛(蒼) 절벽(壁) - 정약용


틀림없이 바람이 도끼로 깎아

그 틈으로 비 이끼가 스며든 게지

바위에 새긴 글씨 없음 아쉬워

붉은 빛깔 큰 글자를 써두었다네


제10경 풍단(楓壇) : 창하벽 위에 붉게 불든 단풍나무(楓)가 심어진 단(壇) - 초의선사


금곡의 번화한 숲 그 옛날에 심은 것

붉은 비단 가림막이 양편으로 열려 있네

냇가 임한 죽각은 어느 해에 부서졌나

그래도 서산에선 맑은 기운 밀려온다.


어느 가을 날 창하벽 사이로 붉게 핀 단풍나무. 그 푸른 바위에 새겨진 다산의 글자를 찾아보고 싶다. 





단을 높여가며 쌓은 언덕에 100그루의 매화를 심었다고 한다.

실제로 100그루의 홍매를 심는다면 그 향이 십리는 갈 것으로 보인다. 




제3경 백매오(百梅塢) : 바위언덕(塢) 위에 심어둔 백(百)그루의 홍매(紅梅) - 정약용


집 둘레에 층층 바위 아주 푸른데

백 그루 홍매화 나무 가꾸네

산 빛 어린 속에서 오가노라면

온통 모두 암향(暗香) 속에 있는 것 같아.




 

담장너머로 빨갛게 피어난 홍매가 보고 싶다.





제 5경 유상곡수(流觴曲水) : 잔(觴)을 띄워 보낼 수 있는 아홉 굽이의 작은 물길 - 정약용


담장 뚫고 여섯 굽이 흐르는 물이

고개 돌려 담장 밖을 다시 나간다

어쩌다 온 두세 분 손님이 있어

편히 앉아 술잔을 함께 띄우네


술 못 마시는 내게 술잔이 돌아오면 난 무슨 시를 짓지?

그래 벌주라도 마시고 노래라도 흥얼거려보자.




다산은 백운첩 첫 장에 서시를 남겼다.


백운동 이씨의 유거에 부쳐 제하다(寄題白雲洞李氏幽居)


백운처사 숨어 사는 유정의 괘 얻으니
임금께 헌책(獻策)함은 뜻에 맞지 않는다네.

십무(十畝)의 솔과 대로 땅의 이익 거두고
반산(半山)의 누각에서 물소리를 베개 삼지.

풍류는 예원진(倪元鎭)만 못함이 전혀 없고

명승은 고중영(顧仲瑛)에게 소문이 더 났다지.

상자 속에 남긴 글이 그대로 남아 있어
훗날에도 금석 같은 그 맹세를 안 바꾸네.





9경 취미선방(翠微禪房) - 산허리(翠微)에 있는 꾸밈없고 고즈넉한 작은 방 - 정약용


담장과 섬돌 빛깔 한 줄 흔적이

푸르른 산 빛을 점찍어 깬다.

여태도 세 그루 나무 있으니

예전부터 좁은 집에 살던 것일세






제8경 모란체(牡丹) : 모란(牡丹)이 심어져 있는 돌계단(砌)의 화단 - 정약용


산 사람 색보(色譜)에 조예가 깊어

호걸에게 양보하길 즐기질 않지.

그루를 나누는 법 하마 익숙해

작약 캐는 수고로움 아예 없겠네.




제11경 정선대(停仙臺) : 신선이 머물렀다는 옥판봉이 보이는 창하벽 위의 정자 - 초의선사


집에 푸른 대숲이 뉘엿도 한데

담장에 담쟁이 붉은 가을이로다.

시험삼아 샛문의 밖을 따라서

바위 난간 머리까지 쉬엄 걸었지.

비에 씼겨 고운 뫼 모습 나오가

해묵은 관목들도 그윽하여라

경영함을 기록 남겨 보인다 하면

장취원(將就園)이 한가로운 근심 품을 듯.






제12경 운당원(篔簹園) : 별서 뒷편의 늠름하게 하늘로 솟은 왕대나무(篔簹) 숲 - 윤동


그대 백운동의 운당원을 못 보았나

깎은 옥이 빽빽하게 구름 뿌릴 뚫었다네.

하늘 위로 80척을 곧바로 솟아올라

옥정봉 머릿돌을 굽어보아 살피고

옥골(玉骨)이 반들반들 사람 얼굴 비추니

사방의 구경꾼들 처음 보곤 놀란다네.

탐진의 구실아치 불충을 탄식노니

이 대나무 공물로 충당하지 아니하네.

애꿎게 시골집의 비쩍 마른 대를 취해

역마가 먼지 날리며 왕궁으로 드는구나.






1경과 7경을 볼 수 없어 밖으로 백운동 정원을 돌아본다.






용비늘 같은 소나무를 찾기엔 너무 게으르다.

과거엔 이토록 울창한 잡목은 없고 동백 숲 사이로 독야청청 우뚝 솟은 용비늘 같은 소나무가 있었을 것이다.


제7경 정유강(貞蕤岡) : 용 비늘처럼 생긴 붉은 소나무(貞蕤)가 있는 언덕 - 정약용


천 길 되는 붉은 비늘 나무가 있어

빈산에 고요히 그림자 길다.

저절로 삼뢰(三籟)의 소리가 나서

이따금 정자 절반 시원케 한다.






지금이야 둑을 쌓아 저수지에 반영된 월출산을 볼 수 있지만 옛날엔 백운계곡을 빙 둘러선 못이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월출산을 바라보며 다산은 백운동 1경을 노래했다.


제1경 옥판봉(玉版峰) : 월출산 구정봉의 서남쪽 봉우리의 이름 - 정약용


내 예전 영산에 놀러와서는 옷깃  떨쳐 절정까지 오르려 했지.

힘빠져 능히 내려오지 못하고 해지자 입은 옷이 너무 추웠네.


사슴 가죽 깔개로 몸을 감싸고 여러 시내 웅덩이를 건너왔었지.

돌아와선 깊은 유감 품고 지내며 구슬피 구정봉만 올려다봤네.


그럭저럭 하다보니 7년이 지나 수염 터럭 어느새 고기 가실세.

굳이 묵은 소원을 풀고자 하여 이에 다시 선경에 거닐었다네.


빙 둘러선 못 봉오리 고운 빛깔이 목을 길게 빼고서 나를 보는 듯.

뭇 신선 티끌 먼지 깨끗이 씻고 단정하게 옥홀(玉笏)을 들고 섰는 듯.


빼어난 기운 푸른 옥색 맑기도 하고 엷은 구름 맑은 그림자 머금었구나.

우러러 바라보니 기쁜 맘 들어 수고로이 다리 시계 걷지 않았네.


이제야 알겠네 예전 오를 때 거칠게 기운만 부려댄 줄을.

산인은 산 위로 오르지 않고 가만 앉아 마음이 고요하네.




풍수에 문외한이지만, 얼른봐도 배산임수형 명당터다.

뒤로는 월출산이 자리하고 백운계곡을 따라 좌청룡 우백호인데 우백호 자리의 봉긋 솟아오른 언덕에 백운동 정원이 자리한다.




정약용은 백운첩을 백운동 4대 동주인 이덕휘에게 선물로 줬다는데 이에 이담로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과 예술가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후손들에게 이들의 시와 그림이 담긴 백운첩을 팔지 말고 영원히 지켜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후손들은 지금까지 200년 가량 백운첩을 보존해 왔는데 다산이 남긴 다산시문집에도 백운동 12경은 없다고 하며, 지난 2001년에서야 세상에 백운첩의 존재가 알려졌고 2004년 강진군은 백운첩과 백운동 정원의 역사적 중요성을 인식해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백운첩의 백운동 12경을 원형대로 살리기 위한 대대적 복원에 나서고 있다.


200년 동안 강진의 시크릿 가든이었던 강진 백운동 정원.

다산 정약용도 반해버린 백운동 정원.

앞으로 복원을 어떻게 변모할 지 기대가 크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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