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여행)다산 정약용의 강진 사의재에 가시거든 동문매반가 주모를 꼭 기억하시길.

사의재(四宜齋)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주막집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4년 동안 기거하며

《경세유표(經世遺表)》 등을 집필하고 제자들을 교육하던 곳으로

사의재란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방'이라는 뜻이다.

네 가지는 곧 맑은 생각과 엄숙한 용모·과묵한 말씨·신중한 행동을 가리키는데 

정약용의 《사의재기(四宜齋記)》 를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생각은 마땅히 맑게하되 맑지 못하면 곧바로 맑게 해야하며

용모는 마땅히 엄숙하게 하되 엄숙하지 못하면 곧바로 엄숙해야 한다.

말은 마땅히 과묵해야 하며 말이 많으면 곧바로 과묵해야 한다.

행동은 마땅히 중후하며 중후하지 않으면 중후하게 하라.

 

위의 네가지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예나 지금이나 모든 사람에게 통용될 만고의 진리이다.

사의재 문을 열고 마루에 앉으면 좌측으로 샘터가 보였다.

다산의 강진 첫 일성은 '사람들이 나를 역병에 걸린 환자를 보듯 피했다'고 했을 정도로

부모도 임금도 거부하는 천주교도로 유배 온 다산을 환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또한 다산을 밀착감시하기 위해 골수 노론벽파인 이안묵이 강진현감으로 부임해 다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런 다산은 아마도 한 동안 사의재에서 꼼짝도 못하고 술에 찌든 채 이 샘터에서 빨래하는 아낙들을 쳐다보며

가족생각에 눈물을 적셨을 것이다.

강진 동문 앞에서 음식과 술을 팔던 주막 ‘동문매반가’의 옛터에 다시 복원된 주막과 사의재이다. 

다산은 주막집 뒤 골방을 처음에는 '사의재'가 아닌 ‘동천여사’라 불렀다.

그냥 방의 동쪽 마당에 샘이 보인다는 뜻으로 학식 높은 양반이 무의미한 이름을 붙이자 주모 할머니는 매우 실망했다.

그래서 '공부도 많이 하신 분이 그런 흔한 이름을 붙여놓고 허송세월 하느니 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애들이라도 가르쳐 보는 게 어떠하냐'며 제일 좋은 종이를 사다 방에 넣어주었다.

하지만 다산은 그 종이에 두세 달 동안 글만 적었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아학편훈의(兒學編訓義)'이다.

이후 다산은 '동천여사'를 사의재로 이름을 고쳐 부르고 첫 제자 황상 등 모두 6명의 제자들을

1802년 10월부터 사의재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다산이 강진에 유배 온 것이 1801년 11월 23일 이었으니 주막에서 무려 1년여를 허송세월 한 다음의 일이었다.

사의재엔 연꽃이 핀 조그만 연못인 동천정(東泉亭)이 있다.

아마 그 당시에는 없었겠지만, 이렇게 연못을 보고 있자니 마치 어느 양반집 정원같다.

동문 밖 주막집에게는 어색한 연못이다.

연못에 고귀한 백련이 피었다.

사의재의 다산도 첫 1년을 백련처럼 곱게만 지낸 것은 아니다.

사립문과 돌담 사이로 초록이 영글어 간다.

다산은 처음 이곳에 들어와 몇 달 간은 적응을 못해 힘들었다.

밖에 나가자니 천주교도라고 해서 마치 자신을 역병환자 보듯 사람들은 피할 것이고

그렇다고 방 안에 있자니 답답하고, 밤이면 옆방에서 무뢰배들의 술주정도 들어야 했다.

그래서 술로 허송세월하며 거의 1년을 고독과 그리움을 달랬다.

그런 다산에게 주막집 노파는 인내심을 갖고 정성을 다해 다산을 보살폈으니

오늘의 다산이 있기까지는 바로 주막집 노파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사의재는 다산실학의 4대 성지이다.

사의재와 보은산방, 이학래의 집, 다산초당이 그것이다.

다산의 강진 유배 18년 역사의 흐름이다.

사의재는 옛터에 다시 복원한 것이기에 과거 다산이 살았던 흔적은 없다.

그래도 느낌으로 다산의 흔적을 알 수 있다.

사의재 마당 한 켠엔 정호승 시인의 시비가 있다.

 

                                   다산주막

                                                               정호승

 

홀로 술을 들고 싶거든 다산주막으로 가라

강진 다산 주막으로 가서 잔을 받아라

다산 선생께서 주막 마당을 쓸고 계시다가

대빗자루를 거두고 꼿꼿이 허리를 펴고 반겨주실 것이다

주모가 차려준 조촐한 주안상을 마주하고

다산 선생의 형형한 눈빛이 달빛이 될 때까지

이 시대의 진정한 취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겨울 창밖으로 지나가는 딱딱한 구름과 술을 들더라도

눈물이 술이 되면 일어나 다산 주막으로 가라

술병을 들고 고층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말고

무릎으로 걸어서라도 다산 주막으로가라

강진 앞바다 갯벌같은 가슴을 열고

다산 선생께서 걸어나와 잔을 내미실 것이다

참수당한 눈물의 술잔을 기울이실 것이다

무릎을 꿇고 막사발에 가득

다산 선생께 푸른 술을 올리는 동안

눈물은 기러기가 되어 날아갈 것이다

 

사의재 뒤에는 사의재한옥(민박)체험관이 있다.

그 앞에 동상이 있다.

바로 주모상인데, 그의 딸과 나란히 서 있다.

주모는 널리 알려졌는데 딸은 의외이다.

주모의 딸과 다산이 무슨 연관이 있었까?

 

다산은 1813년 8월 51세 때 다산초당에서 딸 하나를 얻었다고 한다.

이학래의 집에서 다산초당으로 옮겨왔을 때 집안일을 해 줄 하인을 고용했는데

너무 게을러 해고했다고 하며 그 후 제자들이 다산의 수발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자가 할 일이 있고 여자가 할 일이 따로 있다.

그래서 일하는 여자를 한 명 두게 되었는데 그 여인에게서 홍임(紅任)이라는 딸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 여인이 주막집 딸이었을까?

사의재에 주모동상을 만들면서 그 딸을 같이 세운 것은 이유가 있다. 

몰려드는 괴로움(憂來)

                                          다산 정약용

 

천 명이 술에 취해 떠드는 속에 / 酗誶千夫裏 

선비 하나 의젓하게 있고 보면 / 端然一士莊

그 천 명 모두가 손가락질하며 / 千夫萬手指

그 한 선비 미쳤다고 한다네 / 謂此一夫狂

총 12장의 시 중 6장에 있는 시

사의재에서 동쪽은 강진 병영이다.

서쪽으로 약 500m지점에 강진현감이 일보던 관청이 있었다.

강진 현감은 현청에서 병영에 업무를 보러갈 때는 목리 길을 따라 사의재를 지날 수밖에 없었다.

다산을 감시하고자 강진현감으로 부임한 골수노론벽파 이안목은 사의재 앞을 지나다니며 수시로 감시했다.

다산의 스트레스가 느껴지지 않는가?

사의재는 다산이 형제와 가족과 천주교 신자들을 버리고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유배되어온 강진의 첫 정착지이다.

누구 하나 의지할 곳 없는 땅에서 주막집 주모의 도움으로 겨우 몸뚱이를 눕힐 수 있는 거처였다.

죄책감과 자기자신에 대한 실망감에 1년 정도 술에 찌든 채 허송세월도 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이 바로 동천매반가의 주모였다.

오늘날 실학의 대가이자 대학자로 명성이 높은 정약용을 있게 한 주인공이다.

사의재에서 보았던 정호승 시인의 시가 딱 어울리는 순간이다.

 

겨울 창밖으로 지나가는 딱딱한 구름과 술을 들더라도

눈물이 술이 되면 일어나 다산 주막으로 가라

술병을 들고 고층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말고

무릎으로 걸어서라도 다산 주막으로가라

강진 앞바다 갯벌같은 가슴을 열고

다산 선생께서 걸어나와 잔을 내미실 것이다

참수당한 눈물의 술잔을 기울이실 것이다

무릎을 꿇고 막사발에 가득

다산 선생께 푸른 술을 올리는 동안

눈물은 기러기가 되어 날아갈 것이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으면 강진 사의재로 가보자.

당신보다 더 힘들고 외로웠던 다산이 새롭게 태어난 곳이다.

당신도 그리 할 수 있다.

삶을 버리지 말고 절망속에서 희망의 씨앗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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