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7. 23:27ㆍ한국의 산 견문록/한국의 산
거금도.
조선시대에는 절이도(折爾島)라 불렀고 목장성(牧場城)을 두어 적대봉을 중심으로
사방 30리에 성을 쌓아 말 116마리를 기른 세납(稅納)목장이 있던 곳이다.
정유재란 1598년에 명랑대첩에서 승리한 이순신장군이 목포 고하도를 거쳐 고금도와 면해있는 묘당도로 진을 옮겨
명나라수군과 합세하여 있던 중 1598년 8월 19일 왜선100여척이 금당도(고금도와 거금도 사이의 섬)로 침범해 온다는
급보를 전해듣고 대기하고 있다가 8월20일 새벽 거금도와 소록도사이를 통과하여 금당도로 진격해 오는 왜적과 이순신장군의 전함이
절이도 북쪽 해안에서 해전을 벌여 왜선50척을 수장시키고 50여척도 대파 시켜버린 [절이도 해전]의 격전지이기도 하며
우리나라에서 10번째로 큰 섬이다.
예로 부터 금맥(金脈)이 산에 있다해서 거금도(居金島), 거억금도(居億金島)라고도 불렀으며 작년 12월 중순까지만 해도
거금도에 들어가려면 고흥 녹동항에서 30분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2009년 녹동과 소록도를 연결하는 소록대교가 개통된 이후 2년만인 2011년 12월16일 소록도에서 거금도가
다리로 연결되며 30분 뱃길이 5분 찻길로 바뀌어 거금도도 이제 육지가 되어 버렸다.
박정희대통령이 고흥 거금도출신 박치기왕 김일에게 소원 한 가지를 말해보라 했더니 고향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해 녹동보다도 먼저 전기가 들어왔다는 전설같은 실화가 있다고 하는데,
그때 김일이 전기보다 다리를 놓아달라고 했다면 거금도가 훨씬 일찍부터 발전했을 것이란 주민들의 우스개 소리에서
이제 서서히 정말 발전이 무엇인지 거금대교가 개통되면서 보여줄 예정이라 한다.
거금도 금광을 캐기위해 의기투합한 나와 친구들.
좌로부터 simpro, 신도리코 전북지사장 차요환, 00세무서 주양규, 00제약 김장연 , 건설의 역군 홍정 .00자동차 남정식
거금도 적대봉의 자세한 산행지도를 참고하고서..
오늘 금맥탐사는 광주 문흥백두산악회의 8차 정기산행에 함께 했으며 코스는
A코스 : 서촌 내동삼거리 - 483.4봉 - 535봉 - 529봉 - 마당목재 - 적대봉 - 금산정사 - 동정마을(9.4km)
B코스 : 파성재 - 마당목재 - 적대봉 - 금산정사 - 동정마을(6.6km)로 지도상에는 7.4km와 4.6km로 되어 있으나
지도에 나와 있는 거리와 실제거리는 오차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대봉에서 동정과 신평리로 갈리는 갈림길까지가 1km이고 그곳에서 임도까지가 1km,
동정마을 입구까지가 또 2km로 산행개념도에 나와있는 거리와 2km정도의 차이가 발생해 산행종료시점에
시간상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
(11:23)광주 비엔날레 주차장에서 8시40분에 출발한 버스는 만고강산 유람할제를 외치며 2시간 45분만에
A코스 들머리인 내동삼거리에 우리를 퍼 놓는다. B코스가 짧은 관계로 A코스를 먼저 내려 놓아야 하나 내동마을로 오는길에
B코스 들머리 파성재가 있다보니 어쩔수 없이 B코스가 먼저 하차하여 산행을 시작하였다.
그러다 보니 날머리 동정마을에 도착한 B코스 선두는 아마 2시간이 넘도록 A코스 회원들을 기다리는 지루함을 겪었을 것이다.
산악회 산행 TIP : 산행을 하다보면 그렇게 코스별 격차는 벌어지게 되어있고 먼저 하산하여 마지막 인원이 올 때까지 지루하게
기다리는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효율적으로 보낼까라는 물음에 간단한 습관만 몸에 배면 절대 지루하지 않는 산행이 된다.
글쓴이 같으면 하산완료 예상시간을 물어보고 주로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주변을 산책 한다든지 근처 마을로 마실을 나간다.
작년 여름 운장산 산행 때는 나의 코스에 예정에 없던 천황사를 다른 코스 회원님들을 기다리다 둘러 본 적도 있다.
그것도 다 산행을 하다보면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으로 나에게는 덤으로 주어지는 탐방시간이 되는 것이다.
산악대장이 B코스를 리딩하러 가버린 통에 A코스 16명은 초입부터 적대봉 안내도 한 장만 달랑 붙어있는 표지판앞에서
멍때리며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지 몰랐지만, 일단 산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첫 갈림길부터 갈팡질팡했다.
선두에 선 회원님이 근처 집을 두드리며 돌아 다녀도 사람사는 집에 인기척이 없다.
일단 산세를 보아 오를만한 길을 찾아보고서 좌측 급경사 산길을 버리고 계속 직진하여 마을을 통과해 나가기로 한다.
중간에 밭에서 일하는 마을 주민에게 물어 마당목재로 넘어가는 길을 물으니 삼거리에서 묘지를 타고 올라가는 길을
가르켜주며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올라갔다고 한다. 20여가구가 넘는 마을에 오늘 처음으로 보는 거금도 주민이다.
이 시간에 이 마을 주민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괜한 호기심에 올라가는 길마다 집들을 기웃거려 봐도 인기척은 없다.
거금대교가 2011년 12월 16일에 개통되어 많은 육지사람들이 이 적대봉을 찾는다고 한다.
오늘만 해도 광주지역에서 공식. 비공식적으로 20여개의 산악회가 적대봉을 찾았다고 하니 이제 내동삼거리쪽부터 묘지앞까지
최소 3개소의 이정표는 반드시 필요하게 되었다.
버스 하차지점의 적대봉안내도에 1개소, 좌,우측 사진에 1개씩 이렇게 마당목재로 올라가는 들머리까지 이정표는 반드시 필요하다.
(11:32)그래도 용케 들머리를 찾았다.
수 많은 산악회가 이미 이 곳을 스쳐지나갔다. B코스 들머리인 파성재에 버스가 처음 도착했을 무렵에도
그곳엔 약10여대의 대형버스와 5대정도의 중형버스 그리고 수 많은 승용차와 승합차들로 북적거렸다.
그나마 이 쪽은 조금 멀다보니 대형버스는 우리 포함해서 2대, 그리고 몇대의 승용차가 전부여서 산행내내
옷깃을 스치는 인연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한가로운 산행이 되어 대만족이었다.
(11:50)처음부터 해발 483.4m를 치고 올라가야만 하다보니 상당한 경사도길이 앞을 가로 막는다.
첫 번째 탑이 있는 이곳까지 오기도 전에 진눈깨비가 내리고 쌀쌀한 날씨임에도 모두들 점퍼를 벗고 내피만 입고도
온 몸의 뜨거운 열기가 김으로 모락모락 피어날 정도로 힘든 발걸음을 옮겨놓는다.
더군다나 난 오늘 스틱도 가져오지 않았다. 적대봉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산책삼아 오르려 했는데 왠걸..
첫 봉우리까지 오르는데 바위구간도 많고 경사도 높아 처음부터 진이 빠져버린다.
그렇게 20여분을 쉼없이 올라가면 첫 번째 돌탑이 나오고 그곳에서 마을을 내려다 본다.
이 탑을 쌓은 사람은 돌을 하나씩 정성들여 올려놓으면서 마을과 바다를 보면서 무엇을 기원했을까.
그리고 마지막 돌은 무엇을 염원하며 세워놓았을까.
(11:55)5분여 더 올라가면 두 번째 돌탑이 나온다.
이 탑에는 첫 번째와 달리 탑의 정상에 세워진 돌이 없다.
두 번째 탑에서 2분정도 더 올라가면 세 번째 탑이 나오고...
(아직까지는 그 무수히 많은 돌들 중에 금색을 띈 돌은 안보인다^^)
돌탑의 주변엔 박석이라고 불리는 수 많은 돌 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아마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낣작하고 평평한 돌들이 많아 탑을 쌓는데 돌을 주워 나르는 수고는 덜지 않았을까.
아니면 정말 금맥을 캐기위해 파 놓은 돌을 쌓아 올렸을까?^^
제주도 한라산 돈내코 탐방안내소에서 남벽분기점쪽으로 가다보면 나오는 둔비(둠비)바위처럼
두부모양의 네모난 바위도 나오고... 강화도 해명산에서 본 우주선 모양의 바위도 보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금색이 보이는 것도 같고^^)
고즈넉한 오솔길과 얇은 솜이불을 뒤집어쓴 바위사이로 가야할 길이 희미하게 보이고.
(아이고 어디에 금이 묻혀있을까잉...ㅋ)
적대봉의 성깔 사납고 미끄러운 슬랩구간 전망바위를 조심조심 오르다가...
뒤따라오는 여성분들의 안전이 걱정되어 한참을 기다린다..
그리고 모두의 안전을 위해 아이젠을 착용하고 다시 길을 걷는다.
아래의 세 여성중 두 사람은 아이젠이 있었으나 한 사람은 아이젠이 없어
눈길을 잘 딛고 갈지 걱정이 앞선다. 내 아이젠을 빌려주고 싶어도 내겐 스틱이 없어
눈길에 중심잡기가 힘드니 마음으로만 걱정할 뿐 쉽게 내 놓지를 못한다.(죄송한 마음..)
(12:30)드디어 마당목재까지 가는 길의 능선에 도달하고...여기가 기차바위이다.
마치 기차가 줄지어 지나가는 듯한 바위가 쭉 이어지고..그 멋진 모습에 입이 벌어지지만,
감탄도 잠시뿐...진눈깨비가 내려 미끄러운 암릉길이 눈앞에 펼쳐지며 살짝 긴장감이 엄습해 온다.
총무이사님을 포함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들은 능선길 초입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하지만
앞서 금맥을 먼저 캐러 날라간 네 친구들을 따라잡기 위해 허기를 참고 길을 올라선다.
지나온 길이 뚜렷하게 보이며 멀리 동촌마을이 운무속에 희미하게 보이지만
이정도만 해도 아주 훌륭한 섬산행이다. 가끔은 보일듯 말듯한 것이 제대로 보이는 것보다 좋을 때도 있다.
(근디 金은 어디 있는가...좀 나와라 오버)
금장해수욕장과 익금해수욕장 방면으로는 눈구름이 몰려오고 있어
언듯보면 1000고지급 정상에서 발아래 지나가는 구름을 보는 듯하다.(이제는 金字가 두개나 들어가는 해수욕장이다.ㅎㅎ)
모든 것이 金으로만 보인다...금장, 익금, 거금, 근데 적대봉(績臺峰)은? 무슨뜻이지?
봉화대(臺)를 돌로 쌓은(績) 봉우리여서 적대봉일까?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에는 '赤臺峰'으로 표기하고 있다고 한다.
산 전체에 깔린 암릉이 적색을 띄어서 적대봉이라 불렀던 것이다.
적대봉 성깔있는 암릉길의 스릴을 살짝 맛보았지만 아이젠과 스틱을 착용해도
눈길에다가 미끄러운 바윗길이기에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착용하고 건너야 한다.
좌우로 좁다란 성곽길같은 까칠한 능선길이 한 없이 이어지고 끊어지기를 반복하며
마당목재까지 이어져 가기에 집중하여 걸어야 한다.
지난 2월2일에 적대봉에서 영암도포에 사는 여성이 하산하던 중 이 구간에서 발을 헛디뎌
우측발목이 골절되어 소방헬기로 구조된 적이 있다는 그 구간이다.
(12:56)앞에 보이는 두 번째 봉우리 535봉인가 싶다.
그러나 어디선가 많이 낮이 익은 풍경이다. 꼭 덕유산 중봉에서 바라보는 덕유평전같기도 하고
지리산 만복대 작은고리봉에서 바라본 만복대 능선길 같기도 하다.
들머리에서 마당목재까지 가는 길까지 이정표 하나 없기에 남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추측할 수가 없어 무작정 앞에 보이는 산이 정상인가? 하고 오르지만
구름이 지나가며 보여주는 실루엣으론 정상까지 아직도 까마득한 길이 남았음을 알 수 있다.
그 까칠한 암릉길을 걸으며 혹시 모를 흔적을 남기고...
능선길에 올라 처음 만난 돌탑에서 진주에서 온 산악회와 마주치고..
그러고 보니 A조 일행 16명중 친구 4명은 이미 이 길을 지나갔고 10명 회원님들은
능선길 초입에서 점심을 먹고 오니 한참 뒤에 쳐져있어 A조의 변변한 사진 하나 남기지 못하고 말았다.
(13:07)그렇게 첫 봉우리에 도달하였지만 뒤이어 줄줄이 나오는 봉우리에 기겁을 한다.
저기 맨 위 봉우리가 정상일까? 일단 올라가 보자...(보이는 봉우리가 529봉.그 뒤 구름에 가려진 곳이 적대봉)
제사떡처럼 가지런히 쌓인 동생바위와 형님바위도 보고...
(13:16)그렇게 529봉에 솟아있는 통신탑을 향해 묵묵히...
(13:26)10여분만에 고지를 넘어 통신탑을 지나니 마당목재가 나온다.
그곳엔 이미 수 많은 산님들이 모여 점심 식사중이라 그 무리들 중에
친구들이 자리펴고 앉아 삼겹살을 구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느낌으로 알 수 있다.
529봉에서 마당목재를 거쳐 적대봉까지는 거대한 억새군락지다.
가을이면 바닷바람에 휩쓸리는 억새의 향연을 볼 수 있는 장엄한 광경을 볼 수 있을 듯하다.
(13:28)들머리에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고 산으로 올라선지 4.4km를 2시간 5분이나 걸려 마당목재까지 왔다.
암릉으로 이어진 능선길이 눈에 미끄러워 제 속도를 못내고 중간 슬랩에게 여성분들을 안전하게 오를때까지
한 참을 기다려 도우미를 하다보니 조금 시간이 지체되었다.
주변엔 온통 억새천지지만 조선시대엔 이곳 적대봉은 선재로 쓰일 정도의 질좋은 나무가 많아
하도 나무를 벌목하는 바람에 나라에서 법으로 벌목을 금했다고 한다.
우리가 출발한 곳이 오천. 그곳부터 마당목재까지는 4.4km.
그리고 B조가 출발한 곳이 파성재. 그곳부터 마당목재까지 1.6km이니
B조는 마당목재에서 점심을 먹고 적대봉으로 진작 출발했을 듯 하고...
이제 이곳에서 밥상을 차려놓은 친구들을 찾으면 된다. 남은 거리는 동정마을까지 3km.
오후3시 30분까지 하산이니 점심을 먹으며 후미 10명과 합류하여 부리나케 달리면 늦지 않게 도착할 듯 하다.
(13:30~14:15)돌탑뒤에 옹기종기 앉아 삼겹살에 술 한잔 걸치고 있는 친구들이 산 능선을 바라보며 있다가
우리가 마당목재로 들어서자 반갑게 소리친다.. "밥상 멋지게 차려 놨네. 얼릉 오게나..."
나와 신도리코 전북지사장 요환이는 산수갑산 유람할제를 부르며 천천히 와서 늦었다손 치더라도 네 친구들은 최소한
우리 두사람보다 20여분은 먼저 도착하여 밥상을 차리고 있었을 것인데 오자마자 자리펴고 앉아 낼름 삼겹살에 소주 한 잔으로
몸을 데우니 영 미안하구먼..^^ 그래도 못 마신 술이 꼴딱 꼴딱 목구멍을 타고 시원하게 내려가더니 지까심에 된장 듬뿍 바른
삼겹살 안주가 다음 순서를 행복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45분간의 진눈깨비랑 같이한 만찬을 즐기고...
파성재에 낮게 드리운 구름아이스크림으로 디저트를 먹고...
아름다운 산행에 동행한 친구들과 마당목재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니,
능선길 초입에서 점심을 먹은 A조 중간그룹인 총무이사일행 5명을 만나 같이 적대봉으로 출발한다.
그 뒤에 원광대학교 교수님일행 세분과 아름답고 멋진 부부..이렇게 다섯분만 뒤 떨어졌다고 하니
남자분들이 네 사람이나 있어 큰 걱정은 안하고 출발했다.
(14:18) 봉수대가 있는 적대봉으로 가는 길은 1km남짓.
들머리인 오천리에서 다른 방향으로 5.7km를 올라오는 등산로가 적대봉으로 이어져 있고
마당목재를 지나오는 5.1km의 등산로도 있음을 이정표에서 알 수 있듯이 오천리 내동삼거리부터
마당목재로 가는 길 서너곳에 이런 이정표를 만들어 놓으면 적대봉을 찾는 산님들은 정말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산행길에 이런 이정표가 없으면 체력안배가 힘들어지고 거리 개념이 없어져 오버페이스의 원인이 된다.
(14:36) 18분만에 적대봉 정상인 봉화대(592.2m)에 도착..
A조 선두를 형성한 일행들 기념촬영을 마치고.
적 대 봉
태고의 전설 가슴에 안고
남해의 푸른 바다 위에 우뚝 솟은 그대
힘차게 뻗은 줄기 굳센 기상 서려있고
장엄한 그 모습 웅비가 숨어 있다.
영겁의 숨은 사연 고이 간직한 체
거금을 지켜온 그대 무척 할 말이 많겠구나
보릿고개 부황 꽃 피던 그 시절 우리 함께 울었지
송광암 범종 소리 새벽을 열면
적대의 기운 여명이 밝아오고
파성재 남풍불면 노란 개나리꽃 산허리를 감는다
그 옛날 말굽소리 들리던 목장성 보이지 않고
흰구름 한가로이 봉화대를 넘는다.
금우회라는 금산면 초등학교를 67년에 졸업한 동창생들의 시비에서..
적대봉 정상의 봉화대는 한반도 남쪽의 유일한 원형봉수대이다.
둘레34m에 직경7m에 달하는 거대한 봉화대는 조선시대 왜적의 침략 등 비상사태를
한양까지 신속하게 전달하는 중요한 연락수단이었다.
1502년(안산군 8년) 8월 이후에 설치되어 1758년(영조 34년) 이전에 폐지된 것으로,
조선 중기에 신설된 6개 간봉( 間烽) 중 사화랑 봉수(沙火郞 烽燧)로 추정되며 거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몇 안되는 봉수대이지만 거금대교가 개통되면서 이젠 전국적으로 수많은 안내산악회가 이곳을 거의 의무적으로
들를듯 하고 봉수대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는 산님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것으로 보여 봉수대가 좀 버거워하지 않을까?
봉화대에 올라보니 가운데가 몽땅 돌로 막혀있다.
불을 지펴 연기를 만들어 내려면 가운데에 연기가 나오는 구멍이 있어야 되지 않나?
옛날 발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봉화대의 불빛과 연기는 한양까지 걸어서 3달 걸리는 연락을
12시간이면 도착시켰다고 하니 요즘같은 자동차 세상에서도 거금도에서 서울까지 가려면 쉬지않고 6시간은 걸릴듯 하니
지금으로 봐도 굉장히 빠른 통신수단임을 알 수 있다.
봉화대에 잠시 서서 피어오를 연기의 숫자를 세어본다.
봉화대에서 불이 하나 올라오면 적이 쳐들어 올 징후가 있으니 경계태세를 갖추어라.
두개를 피우면 적이 곧 쳐들어 기세다. 세개를 피우면 적은 숫자의 적이 쳐들어 오고 있다.
네개를 피우면 많은 적이 쳐들어 오고 있다..머 그런식이지 않겠는가?
내동삼거리에서 마당목재로 올라오는 길이나 능선에도 다양하게 생긴 바위들이 널려있더니
마당목재에서 적대봉지나 동정마을로 가는 길에도 이렇게 멋들어지게 생긴 탑모양의 자연 바위도 있다.
용머리같기도 하고 반대쪽에서 보면 해마같기도 하고..심형래감독의 영화 디워에서 나오는 이무기같기도 하고..
(14:46) 기차바위앞을 지나는데 오르기가 간단치 않다.
눈도 오고 미끄럽고 객기를 부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우회길로 이어진 너덜길을 지나고....
(15:07) 그렇게 마당목재를 출발한지 2km를 50분 걸려 마동정과 신평으로 갈리는 갈림길에 도착하니
B코스를 탄 산악회 사무총장님과 B코스 회원님 등 두사람을 만난다.
아마 그곳에서 B코스 후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 일행은 신평리로 내려갔을 것이다.
아침에 나눠준 산행개념도의 목적지는 신평마을로 되어 있기에 이정표만 보고 간다면 헷갈릴수가 있겠다.
친구 홍정을 후미사람들을 위해 갈림길에 보초 세워놓고 동정마을로 내려간다.
바닥갈림길에 산악회 리본을 표시해 놓고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했지만 산행초보자의 머릿속에
온통 신평마을만 입력되어 있는 관계로 애써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수도 있겠다.
(보초의 말에 의하면 뒤 따르던 여성분들이 신평쪽으로 갈 뻔 했다고 하니 세워놓기를 잘했단 생각이 든다.)
동정마을로 하산하는 길은 너덜길의 강도가 좀 세다.
무릎이 안 좋은 님들은 조심해서 걸어야 할 듯하고 이쪽으로 올라서는 사람들은 상당한 각오를 세워야 할 듯.
하여간에 금맥많기로 유명한 적대봉에 보여야할 금돌은 안보이고 지천에 널린 돌길밖에 안보이지만
우린 양쪽 주머니는 물론이고 바지 주머니까지 심지어는 가슴속 깊은 곳까지 금돌을 가득 채워서 내려간다.
그 금돌의 유무형은 아마 조만간 가슴에 품고 간 친구들의 얼굴에 나타날 것이다.
(15:27)갈림길에서 20여분만에 1km를 내려와 임도와 만나고.
이정표가 아직 동정마을까지도 2km가 남았음을 알려주어 다 내려온줄 알고
두리번 거리며 차를 찾는 우리모습도 우스워지고...
(15:35)적대봉아래 금산정사의 현재모습을 담아보고...
나중에 이 일대의 7천여평의 땅에 거대한 규모의 법당을 짓기 위한 불사가 진행중이라고 하니
훗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멋진 큰법당과 와불을 모신 금산정사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큰법당을 짓기위한 모연문은 거금도 금산정사 홈페이지에 나와있다.)
관세음보살상과 석가여래상이 있는데 관음상 시주 공덕비가 있는 것이 주불로 관세음보살을 모신듯 하고...
섬은 온통 마늘, 양파농사로 대풍을 기약하고 있고
겨우내 움추린 봄동도 곧 기지개를 펼 듯 하다.
멀리 거금대교의 웅장한 주탑 2개가 피뢰침마냥 서서 우릴 기다리고 있다.
다음행선지는 거금대교를 도보로 걷는 것이다.
지금 지나가는 동정마을의 옛이름은 고락금(古樂金)이라한다.
거금도 어디를 가도 金이 들어가는 이름이 있어 그 지명이 갖는 의미는 분명 몇 십년안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15:50)적대봉아래 첫 마을 동정마을입구에 도착하니 B코스를 탄 회원님들이 많은 시간을 기다린 듯 해서 상당히 미안한감이 든다.
11시23분에 오천리 내동삼거리를 출발하여 9.4km오는데 4시간 23분이나 걸렸으니 점심시간 45분을 제외하면 분당 43m를 걷고,
시간당2.6km를 걸어 그리 늦지 않은 걸음걸이로 왔으나 결론은 20분 지각이다.
점심시간 포함해서 5시간 코스이니 오후 4시30분까지 하산하면 되나 먼저 올라간 B코스 님들의 하산 시간이 빨라 최소 1시간 이상은
버스안에서 지루하게 기다린 것으로 보여 버스에 올라서기가 민망스럽다.
이럴줄 알았으면 좀 빨리 하산 하는 것인데.. B코스 후미를 만나고 A코스 후미도 아직 당당 멀어 여유를 부린다는 것이 늦어 버렸다.
녹동에서 동정까지 버스편도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편한 시간에 올 수도 있겠고,
들머리인 오천에서 출발하여 신평과 대흥을 거쳐 녹동으로 가는 버스편도 있어 동정마을에서 반대로 적대봉에 올라
마당목재 지나 오천으로 내려와서 다시 버스로 녹동으로 돌아오는 대중교통 연계 산행도 가능하겠다.
시간이 되면 오천마을 바닷가에 있는 몽돌해변의 타조알같은 자갈길을 거닐어 보는 즐거움도 가져보면 좋겠지만 오늘은 통과다.
A조 후미와 B조 후미가 다 도착하여 16시30분에 버스는 거금대교로 향한다.
우리를 내려놓은 버스는 거금대교를 지나 소록도 주차장으로 가 버리고 일행들은 여기서
거금대교로 2km거리를 더 걸어 겨울바다를 걸어서 횡단해 보고자 한다.
거금도와 소록도를 잇는 거금대교를 보며...
(16:40)167m의 주탑을 양쪽에서 잡아 당기며 버티는 사장교의 케이블은?
15.77mm의 와이어를 61가닥을 엮어서 만들었다.
거금대교의 상부는 차량통행로이고 하부는 자전거와 사람이 걸어가는 통로이다.
총사업비 2,733억원을 들여 2002년 착공, 2011년12월16일 개통한 거금대교는 총연장 2,028m로 중앙부분에 167m에 이르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주탑 2개가 케이블로 연결된 번들형 5경관 연속 사장교로 만들어져 독특한 모양만큼이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해상교량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1층은 자전거 및 보행도로이며, 2층은 차량이 통행하는 복합 와렌트런스 교량이다.
녹동항과 소록도를 연결하는 1,160m의 소록대교는 2009년 개통해 작년만 해도 70여만명이 소록도를 다녀왔다고 한다.
하부에 별도의 교량을 이어붙였다고 할까?
좌우로 안전울타리가 쳐져 있어 아늑한 감이 든다.
멋진 거금대교속으로 들어가면서...
튼튼하게 짓기위해 가운데 무인도를 연결해 갔다.
녹동에서 오는 철부선으로 북적거려야 할 금진선착장은 슬픈 적막감마저 감돌고..
장제도의 멋진 모습만 분주하게 카멜레온처럼 그 모습을 가는 거리에 따라 변한다.
왼쪽으로 소화도와...
오른쪽으로 대화도를 지나...
바닷물의 수질을 검사하는 듯한 선박을 한참동안 보고...
[절이도 해전의 승전지]인 하화도로 향하는 어선의 긴 포말을 보며...
주탑을 지탱하고 있는 케이블은 이렇게 상부갑판을 뚫고 나와 지하 보행자 통로 천정을 장식한 모습을 보면서..
멀리 적대봉의 봉수대를 바라보고...
구름사이로 언뜻 보인 석양을 바라보며 걷다가 이 곳 절이도 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장군의 넋을 기려본다.
그리고 슬픔의 섬 소록도에 20년만에 발을 들여 놓는다.
저기 보이지 않는 끝에서 여기까지는 거금대교.
(17:15)약35분간 2km를 걸어 거금대교를 지나 소록도땅에 발을 내 딛는다.
소록도까지는 녹동에서 이미 1단계로 2009년에 다리가 개통되었다.
그 2단계공사인 소록도에서 거금도까지를 연결하는 다리는 2011년 12월 16일에 개통하였고
이제는 배로 30분 걸리던 거리를 차로 5분이면 가고 섬을 육지로 만들어 놓았으니 거금도의 멋진 미래는
확실히 보장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개발에 따른 섬의 발전만 앞다투다 보면 정작 보존해야할 중요한 것들이 훼손되고 황폐화될 수 있다.
거금도는 그동안 섬에서 육지로 탈바꿈한 여러 섬들의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질서정연한 개발과 자연을 같이
보존하고 보호하는 개발과 보호가 아름다운 동행을 하는 개발을 할 필요가 있다.
한 번 무너진 자연과 생태계는 복구하는데 만도 개발비용 이상이 들고 수십년 이상이 소비된다.
소록도의 옛 병원직원 관사를 지나..
아주 오래된 기억이지만 약20여년전 이곳 소록도 병원에 근무하는 옆지기 친구집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배에서 내려 그리 멀지 않게 걸어 이곳 관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병원을 둘러보고 한센병 거주지도 가 본적이 있다.
지금 이곳은 병원뒷쪽으로 조금 떨어진 병원직원들 관사터로 지금도 직원들이 사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많은 집들이
비어 있고 황폐화 되어가고 있어 미관을 해치므로 적절한 리모델링을 하든지 아니면 철거를 하든지 해야할 듯 하다.
(15:28)그렇게 소록도주차장까지 새로이 난 도로를 따라 걸어나오니
소록대교밑으로 주차장이 보이고 커다란 철문이 그 길을 가로 막고 서있다.
왜? 길을 만들어 걸어다니라 해놓고서 그 길을 가로 막고 사람의 출입을 제한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일까. 차량출입을 막는 볼라드를 설치해 놓았으니 차량은 들어가지 못 할 것인데
철문사이로 조그만 출입문을 하나 만들어서 사람이라도 그 문으로 드나들게 하여야지...
이렇게 울타리끝으로 위험하게 건너다니게 만든다.
성인 남성들로 어렵사리 내려갔다 올라와야 되며 짧은 다리로는 껑충뛰어 건너기도 어렵다.
혹여 눈이나 비라도 내리면 미끄러지기 쉽상이고 그러다보면 거금대교 관광을 왔다가 큰 부상을 당하여
그 책임소재를 놓고 고흥군이냐 소록도병원이냐 다툴 여지도 있다.
출입문으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하는 저 거대한 철문은 관광 고흥의 역작 거금대교에 대한 기대를 꺾게 만들고
이곳을 찾는 하루 수 천명의 관광객들로 하여금 불만을 내려놓고 가게 한다면 수천억원을 들여 애써 다리를 만들어 놓고
또 그 연계 도로로 걷고 자전거타기를 권장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저 철문을 통채로 없애고 사람이나 자전거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진정한 길로 거금대교를 빛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소록도의 출입제한시간 때문이라면 울타리끝의 개구멍을 막고 제대로 된 사람출입문을 만들어
그쪽으로 다니게 해야 할 것이다.
화장실도 마찬가지... 수리중(동파)라는 종이쪽지만 붙여놓으면 관리의 전부가 아니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물이 나오지 않아 악취와 오물투성이어도 관리주체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차료가 무료라는 이유와 수도배관이 겨울철에 얼어 동파한다는 이유로 수리중이라는 종이쪽지로 대신하고 있다.
몇년전에 고흥 나로도 우주센터근처를 지날 기회가 있었다.
넓은 간척지와 나로우주센터의 대조적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자연이 주는 최고의 경관 간척지와 최고의 우주과학의 집대성인 우주선발사센터.
고흥(高興)은 이름 그대로 이제 높이 흥할 일만 남았다.
이번에 개통된 거금대교로 거금도를 지나며 고흥2경인 소록도에 20년만에 발을 들였다.
고흥1경부터 8경까지 하루에 다 볼수는 없어 기회가 된다면 차례로 다 볼 수 있는 여행을 계획해봐야 겠다.
녹동항의 철부선과 유람선이 거금도나 소록도로는 안가도 고흥앞바다의 다른 섬들로는 사람과 물자와 차량을 실어나른다.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는 소록대교쪽으로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있고.
녹동항은 거금도의 금진선착장과 달리 거금대교로 인해 생기와 활력이 넘쳐난다.
거금대교가 개통되면서 녹동항과 거금도는 지금까지 보내온 수천년의 세월을 한 번에 뛰어 넘는 개발붐이 일어나고 있다.
발전을 위한 개발은 분명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 개발이라는 것이 자연의 보존과 같이 병행되어야 아름다운 것이지
자연을 멀리하고 눈앞의 이익만 쫒아 무분별한 개발을 방치한다면 그 결과는 참혹하게 나타날 것이다.
앞서 육지가 된 다른 섬들을 잘 살펴보고 고흥과 녹동, 그리고 거금도의 아름다운 발전을 위한 미래청사진은 어떤 모습일까.
저녁 뒷풀이는 해변식당에서 간장게장 백반으로 푸짐하게 먹고 녹동항의 멋진 야경을 눈에 담고 광주로 올라간다.
광주에서 고흥 녹동까지는 약145km 왕복4차선 국도로 승용차로 2시간정도 걸린다.
녹동에서 거금도 적대봉 들머리인 파성재나 오천리 내동삼거리까지도 30여분 걸리니 버스 이동시간도 만만치가 않다.
산행시간과 거리도 만만치 않아서 제일 많이 찾는 파성재 - 마당목재 - 적대봉 - 동정마을까지도 6.6km에 3시간 정도 걸리고
추천코스인 오천리 내동삼거리 - 마당목재 - 적대봉 - 동정마을도 9.4km에 4시간 가까이 걸린다.
제일 먼 코스인 오천리 동천마을 - 적대봉 - 마당목재 - 파성재 - 송광암 - 평지마을이나, 파성재 - 김일기념관으로는
14km가까운 거리에 걸리는 시간만도 6시간정도 걸리니 광주에서 출발한다면 아침 일찍 서둘러서 출발해야 제대로 된 산행도 하고
덤으로 몽돌해변과 김일기념관까지 보고 올 수 있을 것 같다.
금맥이 있다는 거금도 적대봉에서 아찔한 암릉길을 걸으며 산행의 스릴도 느끼고 오천리 몽돌해변에서 타조알같이
둥글둥글한 몽돌들을 보고 한시대를 풍미한 박치기왕 김일선수의 기념관에도 들러 옛추억을 살려보고, 2km가 넘는 거금대교를
걸어 정유재란 당시 일본수군을 대파한 절이도 해전의 현장을 내려다 보고, 한센인의 아픔이 오롯이 남아 있는 소록도로 걸어오는
도보여행의 즐거움은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비록 몽돌해변과 김일기념관이 빠진 아쉬운 산행이었지만 거금대교를 걸으며 거금을 버는 즐거운 상상이 옴팡지게 묻어나는
고흥거금도 적대봉으로의 산행은 다시 한 번 찾아와도 즐거운 산행을 겻들인 여행이 될 것이다.
(다음산행은 동창회산악회의 정기산행으로 2.12일 산정호수에 금붕어가 꼬리치는 옥정호가 바라보이는 임실 오봉산이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 굿뉴스피플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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