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불갑사 무각선원에 핀 한떨기 노랑상사화

2012. 9. 6. 08:10전라남도 견문록/영광 견문록

 

백제불교 초전 가람지 불갑사로의 여행은 불갑산 호랑이를 만난 산행에 이어 흥분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왜 여행을 할까?. 그리고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배풀고자할까?라는 물음에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정신과

몰랐던 것에 대한 탐구정신 그리고 알았던 것에 대한 다른 시각으로 접근 등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이유로 난 시원지, 발원지, 미개척지 등의 단어를 좋아한다.

 

불갑사도 마찬가지이다. 이 절은 제불사(諸佛寺)의 시원(始原)이요 으뜸이 된다고 하여 불갑사라고 명명되었듯이

백제땅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파되어 지어진 절이 불갑사라고 하니 살펴보는데 당연히 흥분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오늘 여행이야기는 불갑사 홈페이지를 참고하여 불갑사에서 주장하는 연혁을 위주로 불갑사란 어떤 사찰이었나 라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당우들의 사진과 함께 관람하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불갑산 호랑이굴이 있는 덫재에서 불갑사로 하산하며 만난 첫 건물은 무각선원이다.

 

 

깨달았다는 그 의식마저도 던져 버린 것이 바로 제대로 된 깨달음이란 것을 수행을 통해 알고자 하는 무각선원

즉, 깨달음이 없다, 깨달을 것이 없다. 깨달을 것이 없음을 여기서 깨닫는다는 뜻일 게다.

 

무각선원 창건 시주 공덕비가 세워져 있는 무각선원.

1998년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에 오른 불갑사 수산 지종스님이 설립했다고 한다.

 

 

무각선원앞은 노랑상사화 군락지이다.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어 '잎은 꽃을, 꽃은 잎을 그리워한다'는 뜻에서 

꽃이름이 상사화(相思花) 이다..즉,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라고 하니 그런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처연하게 아름다운 상사화 꽃을 보고 위안을 삼으시길 바란다.

 

 

노랑상사화는 불갑산 상사화 군락지가 9월 중순 이후 피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빨리 피어있다.

마치 이곳이 한국을 대표하는 3대 상사화 군락지의 하나이고 9월21일면 불갑산 상사화 축제가 열림을 예고라도 하듯이

무각선원앞 비탈진 언덕 푸른 초원에서 노랗게 빛나고 있다.

 

 

불갑사 안내도를 참고.

 

 

불갑사는 지금 대대적인 불사가 진행중이다.

최초 창건시기는 백제 침류왕 원년인 3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지금으로 부터 1628년 전 이야기다.

백제땅 지금의 법성포, 옛이름으로는 아무포(阿無浦)로 불리운 곳에 인도의 한 스님이 남중국의 동진나라를 거쳐 포구에 도착한다.

 

'살아있는 몸을 가진 아이타 여래가 천축에서 교화를 마치고 백제로 날아와 내전 위에 나타나 눈부신 빛을 내어 궁중을 다 비추니...

용안이 빛을 잃고 신하들이 혼비백산하였다. 이때 여래가 군신에게 이르기를, "너희들은 근신하지 마라. 너희 왕이 옛날 천축에서

월개 장자로 있을 적에 극락세계의 나를 청하여 공경하고 공양하였기에 지금 이 나라 임금이 되었으나 향락에 빠져 주야로 악업을

지어 3악도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너희를 제도하기 위해 이 나라에 왔느니라..."
그 뒤 큰절을 지어 여래를 받들게 되니 비구들이 별같이 절 안에 늘어서서 주야로 경전을 외고 군신이 밖에 구름처럼 모여 조석으로

그 명호를 불렀다. 온 나라 백성들이 오랜 세월 공경하며 예배하였다'라고 선광사 연기(善光寺 緣起)에 적혀있는 것으로 봐서,

백제에 도착한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존자(摩羅難陀尊者)는 분명한 존재라 하겠다.

 

백제가 멸망되면서 백제서기도 같이 유실되어 불갑사의 창건역사를 완벽한 고증으로 설명할 수는 업지만, 불갑사 고적기(古蹟記)에서 불갑사의 최초 창건을 나제지시 한위지간 (羅濟之始 漢魏之間)이라고 하여 불갑사가 백제초기에 창건된 사찰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점과, 이 지역에 전해내려오는 구전(口傳)과 지명(地名), 사명(寺名), 그리고 마란난타존자의 행적을 살펴봄으로서 불갑사가 백제 최초의

사찰이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확신할 수 있다고 한다.

 

 

1987년 나주 남평의 죽림사에서 발견된 불사리 3과를 모셔다가 5층 사리탑을 조성 봉안하였다고 한다.

죽림사의 창건연대가 440년대(백제 비유왕14년)쯤 된다고 하니 384년에 창건된 불갑사와 어떤식으로든 인연이 있는 듯하여

불사리가 불갑사로 간 것 같고, 불사리 3과가 불갑사로 가게된 것은 죽림사에 직접 전화로 확인하였다.

 

 

아직 현판이 걸려있지는 않지만, 전각의 위치로 보면 무량수전으로 아미타불을 모시지만 불당엔 아미타불이 아직 모셔지지 않았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번이고 자문자답했다'라고 말한

최순우 작가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가 그 이름에서 생각나게 한다.

 

 

조사전(祖師殿) 역시 현판이 걸려있지 않다.

선종사찰에서 그 종파를 연 조사를 봉안한 절집으로 조사당이라고도 하며 국사를 배출한 절에서는 국사당이라고 부른다.

예전에 화순 유마사사에 들렀더니 대웅전불사로 인해 당우들의 현판을 모두 떼어놓은 것을 보았는데 아마 그런 맥락이지 않나 싶다.

부처님을 아직 모시지 않아 현판을 붙히지 않고 있는 듯.

 

 

조사전앞에서 바라본 대웅전과 당우들

그 뒤의 봉우리 중 우측 봉우리가 함평모악산(348m)으로 그 너머에게 함평용천사가 있다.

 

 

감로수 세심정엔 마음을 씻으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고.

 

 

칠성각(1896년 건립)과 팔상전이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이 이채롭다.

대게의 사찰에서 칠성각은 대웅전 뒤쪽 사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팔상전은 대웅전 아래에 있지만 불갑사는 예외다.

칠성각 내부에는 칠성삼존불과 칠여래 등을 한데 그려넣은 칠성탱화를 모시고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익공계 맞배지붕 건물로 북두칠성을 신격화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예배하는 곳인데, 이 칠성신앙은

한국 불교만의 고유한 특색으로 칠성각 내부에는 칠성탱과 독성탱 그리고 산신탱을 봉안하였고, 각 불화 앞에 치성광여래와

독성 및 산신의 작은 존상을 봉안하였다.

 

 

칠성각과 나란히 붙은 팔상전. 칠성각의 문이 활짝 열려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문이 고리가 걸려 굳게 닫혀있다.

팔상전이란 부처님의 생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과정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묘사한 불화를 모신 전각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불화 없이 불상으로 석가불과 여러 권속을 봉안하고도 팔상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며, 벽에 붙은 팔상도와 불상 뒷면의

영산회상도가 주된 경배 대상이라고 한다.

지금은 다른 곳에 옮겼지만 한때 이 팔상전에는 1702년(숙종 28)에 조성한 팔상탱이 봉안되어 있었다고 한다.

 

 

멋드러진 배롱나무가 압권인 향로전은 1765년 제6창으로 중수된 건물로 고려말 각진국사 이후 대덕스님이 주석하던 곳이라 한다.

 

 

송광사는 풍경소리가 스님들의 불법정진에 방해가 된다고 아예 달아놓지를 않았건만..

 

 

조사전앞 굴뚝이 너무 세속적이라 빵 터지고..

 

 

불갑사 명부전 (佛甲寺 冥府殿)대웅전 우측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집이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구조는 간결한 5량가를 결구하였다. 본래 대웅전 뒤편의 왼쪽에 있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인데,

각진 국사가 중창하였던 고려시대에는 이 자리에 승당으로 쓰이던 적묵당이 있었다.

명부전 내부은 뒷벽에 붙여서 ㄷ자형 불단을 두고 존상을 안치하였다. 중앙 불단에는 지장삼존상을 봉안하였고, 그 좌우에는

명부세계에서 지장보살을 도와 사자(死者)를 심판한다는 시왕상(十王像) 10位와 판관, 녹사, 사자, 인왕 등을 각각 2位씩 모셨다.

그 중 시왕상은 1654년(효종 5)에 조성된 작품으로서 조선후기 목조조각의 양상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례이다.

그리고 1654년에 조성된 지장탱, 조선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업경대, 목조 동자상 등이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었으나 보관의 어려움

때문에 지금은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세심정은 마음을 씻는 곳으로 물을 마시며 마음을 씻어내란 뜻인가 보다.

 

 

물빛은 탁하여도 마음은 탁하지 말아야 하는데..

 

 

불갑사의 주불전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으로 보물 제830호로 지정되었다.

안에는 고주를 사용하여 후불벽을 조성하고 불단과 닫집을 상하로 배치하였다.

불단 위에는 목조대좌를 놓고 삼세불(보물 제1377호)을 모셨는데 일반적인 불상 배치와 약간 다르다.

불갑사 대웅전 건물은 남향인 반면 삼세불은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어 참배객들이 출입하는 문쪽을 바라보고 있다.

 

 

 

 

 

지붕 용마루 한 가운데에 다른 건물에서 볼 수 없는 장식물이

하나 놓여 있다.

이른바 보탑(寶塔)으로 불리는 것으로 집 모양의 가형토기에 도깨비 얼굴을 조합한 형상인데 금산사 대장전 지붕에도 유사한 장식물이 있다고 한다.

 

현재 건물은 불갑사 6중창 시기인 영조 41년(1765) 무렵에 대웅전 중창도

같이 하였으며 이후 몇 차례 중수가 있었으나 기본적인 골격은 6중창 때

이미 형성되었다고 한다. 

6중창때 불상은 지금처럼 남향으로 봉안하였으나 이후 1825년에 동쪽으로 옮겨 근래까지 유지되다가 1986년에 원래 모습대로 모신 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정면인 서쪽 입면에는 모두 3분합문을 달았는데 꽃살로 짠 문이다. 남측면 3칸에도 2분합문인데 역시 꽃살문을 달았다.

동쪽에는 후불벽이 붙어 있는 까닭에 문을 내지 않았으며 북쪽면에는 어칸에만 2짝 분합문을 달았다.

남측과 서측면에 달린 꽃살문은 연화, 국화, 금강저 등의 문양을 새겨 짰는데 현존 사찰의 꽃살문 가운데서도 수작에 속한다고 한다.

 

 

 

불갑사 대웅전에 모셔진 부처님상들은 정면의 문을 열면 옆 모습만 볼수가 있고 참배객들이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마주볼수 있도록

동쪽을 보고 있는 것이 특색으로 공주마곡사와 부석사 무량수전도 같은 형태라고 한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아미타· 약사불좌상의 목조삼존상이 모셔져 있으며, 삼존불상의 조성년대는 최근 본존불상과 협시불의 대좌

안쪽에 쓴 묵서명 개금기와 복장기가 발견됨에 따라 본존인 석가불은 1623년(인조1)에 조성된 뒤 1634년에 개금하였고, 오른쪽의

협시불상도 1634년에 만들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성하였음이 확인 되었다고 한다.

 

 

대웅전 양기둥에 용에게 쫓기는 다람쥐와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다람쥐..

그런데 왜 이런 조각을 기둥에 붙혀놓았을까?

 

 

일광당(一光堂)은 대웅전 좌측에 자리 잡고 있다.

당초에는 선당(禪堂) 용도의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승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향로전앞에 있는 각진국사비 자운탑(覺眞國師碑 慈雲塔)

각진국사(覺眞國師)는 고려 공민왕대에 불갑사를 중창한 인물로,

시호는 각진(覺眞) 탑호를 자운(慈雲)이다.

 

이 각진국사비 자운탑은 고려후기 1355년 제작된 것으로 귀부(龜趺)와

비신(碑身)은 있지만 옥개석(屋蓋石)이 없는 상태로 비신위에 2개의

원형석이 나란히 올려져 있다.

 

그리고 향로전앞 배롱나무와 소나무 사이의 활엽수는

천연기념물 112호인 참식나무라 한다.

 

참식나무는 잎 뒤에 하얀 솜털이 많아서 백담호(白淡毫)라고도 한다.
인도공주가 인도에 유학왔던 신라 경운스님에게 내세의 인연을 기약하는 정표로 전해주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만세루는 대웅전앞 중심축선상에 있는 중층형루이지만 다른 사찰의 만세루가 대게 2층으로 되어 있는 것에 비해

상당히 낮은 중층을 이루고 있으며,1644년에 중건되었다.

정면5칸, 측면4칸의 중층형 문루건물로서, 법회 장소 및 스님들의 여름철 강학(講學)공간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만세루는 불갑사의 여러 전각 가운데 가장 많은 중수 기록을 남기고 있다. 현재 정면 5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축소되었지만

절이 한창 번성하던 조선시대에는 누각의 정면은 7칸에 달했고, 고려시대에는 기둥 높이가 90척에 달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정유재란의 피해를 딛고 복구하면서 3칸으로 축소되었고, 숙종 때(1674~1720) 다시 7칸으로 복원하였다.

이후 1938년에 설제 스님이 누각 왼쪽이 썩자 한 칸을 줄여서 6칸으로 축소하였고, 1984년에는 수산 지종 선사가 법당이 3칸임을

고려하여 누각을 다시 한 칸을 줄여 5칸으로 개수하였다.

또한 1996년에는 두각에 기와를 새로 입히는 등 여러 차례의 개·보수가 있었으며 현재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66호로 지정되어 있다.

 

 

템플스테이 수행관

 

 

아직 상사화 축제가 열리기 20여일 전이라 그런지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절은 찾는이가 그리 많지 않다.

아마도 대대적인 불사로 인해 보고싶은 여러 유물들이 비공개되어 그런지도..

 

 

백운당.

 

 

범종루엔 법고와 범종만 있다. 여기서 보변 단층이지만, 아래에서 보면 2층으로 되어 있다. 

 

 

 

불갑사의 대대적인 불사현장.

그로 인해 천왕문은 통제되어 있다.

 

 

불갑사 금강문을 지나 천왕문을 통과하며 불갑사를 들어가야 하는데

오늘 불갑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며 거꾸러 무량수전부터 금강문까지 내려오고 말았다.

이 불사는 2012년 10월5일까지 명경당 복원공사를 중심으로 주변에 석축과 계단을 만드는 공사이다.

상사화 축제에 맞춰 공사가 끝나면 훨씬 단정한 모습으로 불자들과 관광객들을 맞을 것인데 그게 못내 아쉽다.

 

 

불갑사에서 시작된 불갑천은 불갑저수지로 모여 서해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부도는 사찰 입구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도로변 오른쪽에 위치하며, 이곳의 부도는 각 암자에 흩어져 있던 것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것이다.  2단으로 다듬은 대지에 모두 6기의 부도와 4기의 비가 모셔져 있다.

 

오늘 불갑산 산행 후 찾아본 불갑사로의 여행은 백제불교 시원지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흥분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지만

사찰의 규모가 상당히 커서 둘러보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시간이 부족하여 더 깊은 속내를 들여다 보지는 못했지만 훗날 함평용천사 꽃무릇 축제 때 그곳을 둘러보고 함평 모악산에서

불갑산 구수재로 내려와 불갑산 상사화 축제도 차분히 둘러볼 참이다.

그 때 못다 본 불갑사의 속살을 들여다 보기로 하며 불갑사로의 아쉬운 여행을 마친다.

(글 : 포토뉴스 코리아 simpro) 트위터 ☞ http://twitter.com/huha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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