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 보성여관에서 만난 소설태백산맥

2013. 3. 25. 07:05전라남도 견문록/보성 견문록

 

보성여관까페에서 황차와 아메리카노를 근사하게 마시고 이제 과거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열고 보성여관으로 들어간다.

보성여관은1935년 건립된 일본식2층 건물로 소설 <태백산맥>속 남도여관의 실제 모델이며 오랫동안 여관과 상가 등으로 사용되다

2004년 근대건축사적, 생활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돼어 등록문화재 제 132호로 등재되었으며 2008년 문화재청에서 매입한 뒤 문화유산

국민신탁이 관리단체로 지정돼어 2009년 12월부터 2년간 복원공사를 거친다음 2012년 6월7일에 개관하였다.

 

1층은 카페와 소극장, 전시공간 등이 있고 2층은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으로 사용되며 기존 여관으로 쓰이던 숙소공간은 숙박체험장으로

바꿔서 현재 영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보성여관은 17억 원에 이르는 국비와 도비가 투입되었으며, 문화유산 국민신탁 회원들의 기부금과 신한카드사의 '카드포인트' 기부금,

그리고 (주)포드림의 현물기부 등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조정래 작가의 벌교북국민학교 여자 동창의 언니 부부가 벌교에서 교편생활 하고 퇴직하여 금은방을 운영 중 이 건물이

1979년 매물로 나오자 5만원에 매입하였다고 한다. 그 후 26년간 보성여관에 살며 보성여관을 굳건하게 지켜냈다고 한다.

당신들 어릴적 부터 보고 자란 건물이었건만 번듯하게 부수고 다시 지었으면 어떨뻔 했는가.

그 후 여관과 상가 등으로 임대하여 지내다가 1988년 이 지역이 학교정화구역에 묶이자 여관 간판을 내렸고 안채에 살림집을

차려 살았으며 바깥채는 모두 상가로 임대 내주며 살았었다고 한다.

 

 

           입장료와 대관료 등 이용안내.

 

 

보성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일단 1층에 있는 카페와 자료실과 전시실 등을 구경하러 간다. 

 

 

좌측은 카페 겸 소극장, 우측은 카페이다.

 

 

 

우측은 황차와 아메리카노를 마신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우측 전시실을 둘러본다.

 

 

이곳은 카페내의 차를 마실 수 있는 별도 자리

 

 

소설 태백산맥속의 보성여관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벌교 지방은 당시 농민이 전체 주민의 8할이며, 그들 대부분은 소작농이었다. 그러한 빈농인 소작농들은 해방이 된 후 토지개혁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지만, 이승만 정권이 결국 농지개혁을 하지 못하자 불만은 갈수록 높아져만 갔다.

 

북한에서는 이미 농지개혁이 실시되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고 있지만 벌교의 지주들은 오히려 농지개혁 이전에 소유 농지를 처분하려고 혈안이 되었으며 그 와중에 소작인도 모르게 논을 처분한 고흥 지주 서운상은 불만을 품은 소작인 강동기가 삽으로 내리찍은 바람에 중상을 입게 되고, 강동기는 그 길로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어 버린다.

 

염상진 등 좌익 반란군은 율어 해방구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농민들의 호감을 얻게 되고, 그들의 지원으로 자신들이 내세운 혁명 과업을 수행하게 된다. 벌교의 농민들에게는 이러한 율어 지역의 개혁이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염상진의 빨치산 부대는 벌교읍을 습격하여 지주들로부터 쌀을 빼앗아 인민들에게 고루 나눠 먹도록 하며 벌교주민들의 신망을 받게 된다.

 

 

 

 

벌교여행을 와서 소설<태백산맥>을 따라 문학기행을 하려면 이러한 지도는 필수이다.

 

 

벌교이야기

 

 

           그리고 보성여관이야기

 

 

보전관리 및 운영의 원칙 중에

소원칙이 중요하다..그러면 보성여관 카페는 4번 연계수익 발생하는 부대기능은 인접 지역주민들에게 돌려 지역사회에 공헌한다.

라는 말대로 카페의 주인은 보성군이 아니라 지역주민인 셈^^

 

 

           보성여관의 연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공간

           1935년 지어질 당시 시간별로 공사일지가 적혀았는 것이 이채롭다.

 

 

아마 여기서는 태백산맥 영화를 비디오로 감상할 수 있지 싶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심재모는 용공 혐의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고 그 후임으로 백남식이라는 관동군 출신의 친일 경력을 지닌 인물이 오게 된다.  한편 벌교 유지 김범우는 벌교를 떠나 서울에서 반민 특위 사건이나 백범 김구 암살 사건을 맞는다. 그리고 백범과 몽양이 이승만과 한민당을 위시한 친일 세력에 의해 암살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벌교 지역에서 지주들이 소작인 모르게 자기 땅을 팔아먹거나 빼돌리는 일이 기승을 부리자, 농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여 대규모 항의 시위를 일으키게 되고, 지주 정현동은 멀쩡한 논에 바닷물을 끌어들여 염전을 만들겠다고 하다가 이에 분개한 소작인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이때 정부에서 농지개혁법을 발표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가 아니라 유상몰수 유상분배란 것을 알고 소작농들은 더욱 분노하기 시작하며 사태가 악화되자 벌교에 주둔한 군경과 지역 청년단은 농민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짓밟아 버린다.

 

 

 

문화재청에서 운영하는 헤리티지채널에서 방영한 소설<태백산맥>속 보성여관 이야기

 

 

           문을 열고 여관으로 들어서면 바로 우측 2층 다다미방으로 올라가는 긴 계단이 나온다.

 

 

           어서오세요^^

           보성여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옆지기님 다다미방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80년 세월 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고 거쳐가고 묵고 갔을 다다미방으로 들어서 본다.

 

 

"거 보아하니 예사사람이 아니겠소." 소대병력인 그들의 여장을 남도여관에 풀게하고 사무실로 돌아서던 길에 읍장이 한 말이다.

(<태백산맥>2권161쪽)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임대장님 그런데, 토벌대는 어디에 주둔하고 있습니까?" "예에, 저어........우선 남도여관에....".

"뭐요, 여관? 당장 짐을 꾸려 남초등학교 운동장에 집합시키시오". (<태백산맥>3권84쪽)

 

"임만수 똑똑히 들어 (중략)지금이 어느 때라고,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민심을 수습해야 할 임무를 띤 토벌대가 여관잠을 자고 여관밥을

먹어? 그러면서도 그것이 잘못인 줄도 모르고 입을 놀려대?"(<태백산맥>3권85쪽)

 

그가 벌교에 열흘정도 머무는 동안 벌교의 지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보성의 지주들까지 남도여관의 뒷문을 드나들었다.

(<태백산매>4권43쪽)

 

위 내용들은 <태백산맥>에서 나오는 남도여관에 관한 내용들로 심재모의 말에 총알같이 기립하여 남초등학교 운동장에 집합했을

모습들을 또 올려보며 지금도 카랑카랑하게 울리는 심재모의 피끓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창문밖으로 내다본 남초등학교

 

 

한 때 보성에서 국회의원에 나온사람들은 벌교에 오면 모두 보성여관 2층에서 유세를 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이렇게 아래를 쳐다보고 확성기로 연설을 했다하니 영화나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상황아닌가?

 

 

           긴복도를 따라 임대장의 토벌대들의 군장이 금새라도 어지럽게 널려 있을 듯한 모습

 

 

2면이 모두 미닫이로 되어 창문도 넓어 한 겨울 자기에는 많이 추웠겠지만 한 여름엔 엄청 시원했을 듯...

 

 

문득 소설속 토벌대가 되어 벌러덩 누워 코를 골고 깊은 수면에 빠지고 싶은 햇살 가득 찬 오후...

 

 

           80년 세월 희노애락 켜켜이 쌓인 다다미방을 나와 다시 1층으로

 

 

ㄷ자 형태의 전형적인 한옥 정원에는 키가 큰 나무 한 그루가 삐쭉 솟아나 있다.

 

 

 

숟가락으로 걸어놓은 시건장치 얼마만에 보는 것인지..

내 어릴적 우리집도 저렇게 숟가락을 문고리에 꽂아놓고 자곤했다.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는 따스한 봄볕에 무작정 앉고 싶어져 지나가는 젊은총각에게 한 장 부탁...

 

 

 

벌교 남초등학교로 난 쪽문으로 벌교 유지들이 들어다녔단 말이지^^

 

 

 

 

그 후 6.25의 발발과 함께 벌교는 다시 염상진 등 빨치산에 의해 장악되고, 좌익 세력과 농민들은 인민의 해방을 감격스럽게 맞이한다. 그러나 경찰이 철수하기 직전에 미리 좌익 전향자들을 모두 사살하였기 때문에 또다시 좌익에 의해 우익이 살육당하는 참상이 되풀이 된다.

 

용공혐의로 서울로 압송되었던 심재모는 벌교 지역 주민들의 진정으로 풀려나 군에 복귀하여 태백산 지구 공비 토벌 작전에 참가하고 있던 중 6.25전쟁을 맞고, 김범우는 인민군 치하에서 전북도당에 근무하게 된다. 그러나 인민군이 패퇴하자 미군에게 붙들려 강제로 통역관이 된다. 그는 미군들이 자행한 강간, 살인, 방화 등 비인간적이고도 부도덕한 행태를 보면서 한국전쟁이 미군과 우리 민족의 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김범우는 결국 미군 부대에서 탈출한 후에 공산주의 노선을 택하게 되며 인민군에 자진 입대한다. 손승호도 6.25전쟁 후 공산주의자의 길을 택한 후에 빨치산으로 입산하고 벌교에서도 염상진과 그 세력, 그리고 많은 농민, 소작인 들이 염상진을 따라 입산하게 된다.

 

 

 

봄볕이 한가득 내려서는 보성여관의 뜨락 한 편에 이 여관의 역사를 말해주는 줄기 굵은 석류나무 한 그루.

 

 

그 나무를 바라보며 이렇게 앉아 차 한 잔 마시는 행복을 느껴보고

 

 

           봄비가 내리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목련꽃 그늘아래서란 노래가 절로 나올 것 같은 보성여관.

창가에 스쳐지나가는 여인을 보고 창문을 열어주오~~~라고 불러보고 싶은 곳.

 

 

 

그리고 참으로 오랫만에 보는 미닫이 유리창문에 떨어진 잎사귀 하나

 

 

키작은 선인장

 

 

창호지에 붙어 지난 가을 이야기를 들려주는 말라버린 낙엽에서

 

 

보성여관의 봄을 느낄 수 있었다.

 

 

           그지? 중전~~

 

 

이 방은 보성여관의 숙박체험을 할 수 있는 방.

1층에는 모두 7개의 온돌방이 있으며, 가격은 8만원~15만원이다.

8만원짜리 방은 공동화장실, 공동샤워실을 사용하지만, 그 위 급은 별도 화장실이 있으며, 15만원 짜리 방은 화장실과 별도의 작은 방.

그리고 간다히 요리할 수 있는 주방시설도 되어있다고 한다.

다소 비싸다고 느껴지지만, 보성여관은 개관당시 무려 오성급 여관이었다.^^

 

 

 

보성여관에서의 색다른 숙박체험을 언젠가는 해 보겠지만, 오늘은 아쉬운 맘  가득 내려놓고 간다.

이곳을 나와 소설속 지성인이자 시대가 요구하는 양심적 지식인 김범우와 벌교유일의 보물인 홍교(횡갯다리)를 만나러 간다.

 

1편 소설태백산맥속으로 들어간 벌교여행/프롤로그

2편 벌교여행도 식후경/태백산맥 현부자네 꼬막정식

3편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에서 길을 묻다

4편 소설 태백산맥의 시작점 현부자네 와 소화의 집

5편 염상구의 철교와 소설속 벌교이야기

6편 벌교에서의 색다른 경험, 보성여관까페

 

 (글 : 포토뉴스코리아 simpro) 트위터http://twitter.com/huha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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