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김대중의 꿈을 찾아 하의도를 가다 / 김대중 4주기 추모

2013. 8. 13. 06:30전라남도 견문록/신안견문록

金大中 4주기 추모

평화와 희망, 그리고 김대중

소년 김대중(金大中)의 꿈을

찾아 하의도를 가다.

 

 


 

 

“나는 바다만 바라보면 가슴이 뛰었다. 바다 너머에는 다른 세상이 어떤 모양으로 펼쳐질지 상상만 해도 설레었다.”

“비록 섬이지만 안정적 기반을 포기하고 아무런 기반이 없는 목포로 나간다는 것은 큰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직 자식을 위해서 그리 결심한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지금 생각해도 존경스럽고 감탄스럽다. 어머니의 혜안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그 은혜가 하늘과 같다.”<김대중 자서전>에서

 

오는 18일 김대중 대통령 서거 4주기를 맞아 (사)민생평화광장(이사장 최영태·상임대표 최경환)은 10일 신안군 하의도 김대중 대통령 생가에서 김대중 대통령 4주기 추도식을 가졌다.

(사)민생평화광장은 지난 6월 10일 ‘민생의 개혁과 평화의 실천’ ‘김대중 정신의 계승’을 목적으로 창립돼 ‘김대중 포럼’ ‘민생평화아카데미’ ‘노벨평화비전스쿨’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시민모임으로 이번 행사에는 광주와 전남의 시도민 230여 명이 참석하였다.

 

 

이번 김대중 대통령 서거 4주기 추모식을 겸한 김대중 대통령이 태어난 신안군 하의도 탐방의 취지는 

- 시대적, 역사적 현장을 직접 탐방하고 강연을 듣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 김대중 대통령 서거4주기를 맞아 김대중 정신을 공감하고 계승발전해 나가며,  

- 신안군 하의도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를 통해 김대중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 최근 개관한 목포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견학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꿈꾼 이상적인 나라를 오늘에 다시 되돌아 보는 행사였다. 

 

 

오늘 주요 일정은 김대중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하의도를 찾아  

- 김대중대통령 서거 4주기 추도식을 거행하고, 

- 김대중 대통령의 하의도 생가,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 토지항쟁비를 견학하며, 

- 큰바위얼굴, 모래구미 해수욕장등 하의도 자연경관을 탐방하는 일정이다. 

 

이번 행사는 

- 주최 : (사)민생평화광장 (062-511-7171)  

- 후원 : 김대중평화센터, 신안군 

- 참여단체 : 비전한반도포럼, 광민회, 행동하는양심광주전남협의회, 함평재생원, 빛고을두메산악회, 행복나눔산악회 등이 참여했으며

참가비는 5만원으로 광주에서 목포버스편, 하의도에서의 버스편, 식사3식, 승선료 등 일체의 경비가 포함되었다.  

 

세부일정은 

- 05:00 광주 집결 및 버스출발(광주시청 주차장) 

- 06:20 목포 여객터미널 도착 및 참가자 확인  

- 06:40 하의도행 차도선 탑승(조양페리) 

- 06:50~09:20 배편으로 이동 및 하의도 도착 (조식 제공 - 콩나물죽) 

- 09:20~16:00 하의도 일정 (하의도 내 일정 버스 이동)  

- 16:00 하의도 출발(차도선 / 석식제공-주먹밥 위주) 

- 18:30 목포항 여객터미널 도착 

- 18:40~19:30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관람  

- 19:30 종료 및 단체팀 광주출발로 종료되며

 

하의도에서의 일정은 

- 09:20 하의도 선착장 도착 

- 09:40 ~ 11:30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덕봉강당->김대중대통령생가(추도식,추모관 헌화)->소금박물관 관람 

- 11:30 ~ 13:00 점심 식사 및 특강 (하의초등학교 강당)  (특강 : 최경환 상임대표, "하의도 섬소년 김대중의 꿈") 

- 13:20 큰바위얼굴  

- 14:00~15:20 모래구미 해수욕장 바다체험 

- 15:40 하의도 선착장 도착 및 차도선 탑승 

- 16:00 차도선 출발 등이다.

 

 

광주에서 출발한 버스 중 45인승 버스들은 모두 목포에서 돌아올 때까지 대기하고 25인승 버스 3대만 배에 싣고 하의도로 갔다.

하의도는 면적 14.46㎢, 인구 1,970명(1999년), 해안선 길이만도 32㎞에 이를 정도로 넓기에 도보로 이동하기 어렵고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참석인원이 무려 230여 명이나 되기에 25인승 버스가 10대가 필요했으나, 주최측에서 가져간 3대의 버스와 하의도에 있는

25인승 버스가 모두 동원되었고 심지어는 교회버스까지 동원될 정도였으며, 우리일행을 맞이한 하의도 면장은 하의도가 생긴이래

한 팀 최대의 인원이 하의도를 방문했다고 놀라워할 정도였다.

 

 

“나는 바다만 바라보면 가슴이 뛰었다. 바다 너머에는 다른 세상이 어떤 모양으로 펼쳐질지 상상만 해도 설레었다.” 고 말한

소년 김대중은 하의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으며, 덕봉강당에 다니다 하의초등학교 2학년에

편입한 소년 김대중은 언젠가는 저 바다건너 육지에 나가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자신의 꿈을 키워보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였다고 한다.

-최경환 상임대표의 김대중 4주기 추모 특강 전문-

 

 

김대중은 겁 많고 착한 소년이었지만 하의도의 찬 바닷바람은 김대중을 강인한 정신의 소년으로 정신과 육체를 단려시켜 주었으며,

300년 넘게 이어져온 하의3도 농민운동의 역사와 일제 식민지 시절 아버지가 몰래 읽어주는 조선왕조계보를 들으면서 민족과 국민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꿈을 키워나간 소년 김대중.

 

 

 

김대중의 꿈은 목포에서 목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방을 맞으며 더욱 커져만 갔다.

젊은 시절에는 선박운송업을 하는 사업가와 언론사를 경영하는 언론인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나, 돌연 정치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것은 1950년 6.25전쟁을 겪으면서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민족이 전쟁의 참화에 빠지고, 국민들이 생명과 재산을 잃는 시련을 당하는 것을 직접 목격한 뒤 정치를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나라를 바로잡고 국민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대중에게 정치는 험난한 길이었다. 국회의원도 네 번만에 당선되었지만,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와 대결하여

비록 패했지만 젊고 유능한 정치지도자로 우뚝 서게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련의 시작이 되고 말았다.

1973년 8월 중앙정보부에 의해 동경에서 납치되어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5일만에 기적적으로 생환하였으며, 1976년에는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2년 10개월 동안 감옥에 갇혔다.

1980년에는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고, 1982년 말에는 미국으로 망명길을 떠나야 했다.

 

 

 

1997년 12월 네 번째 도전만에 김대중은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사형수가 대통령이 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으로 대한민국은 처음으로 수평적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했으며, 40여년 계속되어온 시민투쟁의

승리이자, 민주주의의 승리로 기록되었다. 이렇게 하의도의 섬소년 김대중의 꿈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대통령이 된 김대중은 나라를 하나씩 변혁시켜나가기 시작했다.

취임과 함께 몰아닥친 외환위기를 빠른 시간 내에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지식정보화 일류국가로 만들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드는 등 민주주의와 인권을 크게 신장시켰으며, 2000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 화해와 협력시대를

열었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 철도와 도로의 연결 등 남북교류협력의 활성화로 김대중의 꿈이었던 통일의 꿈이 실현될

기틀을 만들었다.

세계는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화해의 공로를 인정해 노벨평화상을 김대중에 수여했으며, 이와 같은 노력은 노무현 정부를 탄생시켜

정권 재창출을 이룩함으로써 '민주정부 10년', '김대중-노무현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5년간 모든 것이 바뀌고 말았다.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졌고, 남북관계는 파탄났다. 서민경제도 무너졌으며, 김대중 대통령은 생애 마지막 시간까지 이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은 호소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며 모든 국민이 들고 일어나 무너진 민주주의와 파탄 난 남북관계를 바로 잡을 것을 호소하였으며, '김대중-노무현 시대'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정권교체를 이룩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것이 김대중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그러나 진보개혁진영은 작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하의도 섬소년 김대중의 꿈은 이제 멈춰버린 것일까?

아니다. 김대중의 꿈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역사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이미 돌아가신 김대중을 돌아보는 것은 현재의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이다.

김대중이라는 한 인물의 생애에서 보여준 그의 신념, 용기, 이념, 사상을 알고 현재의 우리가 처해 있는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사)민생평화광장 상임대표 최경환은 그의 저서 <김대중 리더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김대중 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저세상으로 가셨지만 'DJ시대는 이제 막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은 '김대중 정신', '김대중 테제'가 이어질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평생에 걸쳐, 그리고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들에게 민주주의 수호, 남북의 화해협력, 중산층과 서민의 정치,

관용과 화해의 정치를 호소했다. 아직 우리 사회는 김 대통령이 제시한 이러한 정신과 원칙을 실현하지 못했고, 그 실현 과정에 있다.

 

 

당분간 대한민국의 과제는 김 대통령이 제시한 프레임 속에서 각각의 목표를 실현하는 노력이 계속될 것이다.

정치발전, 사회정의와 복지, 문화발전, 남북관계와 통일의 문제, 동아시아와 세계속에서 한국의 역할을 찾는 일 등에서

김 대통령이 제시한 정책과 사상은 유효하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돌아가셨지만, '김대중 정신', '김대중 테제'의 실현은 지금부터라고 할 수 있다.

<최경환의 김대중 리더십>16쪽

 

 

'김대중 테제'는 그냥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실현되지는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 말씀처럼 '서생적 문제인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실현이 빨라진다고 믿는다.

 

 

 

지난 대선 이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민주주의는 여전히 위태롭고,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민생의 고통 역시 여전하다. 그러나 김대중의 역사에서 보듯이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김대중 대통령처럼 국민을 믿고

국민에게 의지하면서 용기를 갖고 쉬지 않고 노력한다면 '김대중 테제'는 실현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제 우리의 몫이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4주기를 맞아 민생의 안정과 평화실현이라는 두가지 목표에 힘을 모아야 한다.

경제 민주화, 복지의 문제는 모두 민생의 안정에 모아져야 한다. 통일은 천천히 하더라도 남북이 화해하고 협력하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지금의 대립과 갈등은 하루속히 종식되어야 한다.

이제 하의도 섬소년 김대중의 꿈은 살아있는 자의 몫이 되었다. 김 대통령 서거 4주기를 맞아 우리 모두가 '행동하는 양심'으로

김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받아 모두가 행복한 사회, 사람 사는 세상, 평화속에서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나라만들기를 다짐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사)민생평화광장 상임대표인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김대중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김대중 서거 4주기 추모특강을 듣다보니 어느새 하의도에 도착하였다.

목포연안부두에서 6시50분에 출발하여 중간에 완좌면을 한 번 들르고 9시20분에 하의도에 도착하였으니

2시간 30분이 걸린게다. 

 

 

하의도는 면적 14.46㎢, 인구 1,970명(1999), 해안선길이 32㎞이다.

목포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57.6km 해상에 위치하며, 동남쪽에 상태도와 하태도, 서쪽에 능산도와 신도, 북쪽에 저도 등의 작은 섬들이

산재해 있다.

 

하의(荷衣)라는 지명은 ‘연화부수(蓮花浮水)에서 유래하였으며, 신라말기 풍수지리설에 명통한 도사가 전국의 지형을 답사하던 중 이 섬에 들리게 되어 지형을 보니 형태가 물위에 연꽃이 떠 있는 모습(연화만개)이라 하여 연꽃과 뜻이 같은 연꽃 '하'(荷)를 머리에 쓰고 음양설에 의거 음산(낮고 평탄함)하다 하여 옷 '의'(衣)를 써서 하의(荷衣)라 부르게 되었다 하며, 1380년 나주 나씨가 처음 입도하여 살았으며 임진왜란 이후 제갈씨가 자리를 잡은 뒤 17세기부터 김(金)씨와 박(朴)씨 등이 들어와 살았으며, 1894년 청․일 전쟁 때 일본 해군이 주둔하기도 했다.  

 

원래는 여러 섬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현재는 간척 공사로 연결되었다. 취락은 대부분 산기슭에 자리하였고 주변으로는 넓은 면적의 논밭이 형성되었다. 농산물로는 쌀·보리·콩·고구마·고추·마늘·파 등이 생산되며 부근 수역에서는 멸치와 장어를 어획한다. 특산물로 낙지·전통식초·유자 등이 있다. 상태도·하태도를 마주보는 해변에는 많은 염전이 조성되었으며 김·미역·톳을 양식하여 높은 소득을 올린다.

 

신안군의 1004개의 섬 중 하나로 김대중 前대통령이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유명하고, 조선시대의 유학자 초암(草菴) 김연(金鍊)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덕봉강당(德鳳講堂)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생가가 남아 있으며, 1623년부터 1950년대까지 300년 넘게 이어진 하의도 농지탈환운동을 기념하여 세운 토지항쟁비군(土地抗爭碑群)이 있다. 목포시에서 1일 2∼5회 정기여객선을 운항한다.

 

 

 

마을앞 이정표에서 오늘 우리가 들를 곳까지의 거리를 어림해 본다.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을 들러, 덕봉강당, 김대중 대통령 생가 추모식 참석, 큰바위얼굴, 모래구미해수욕장을 둘러보고 오는

일정으로 1편 김대중의 하의도를 가다에 이어 2편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 3편 김대중 생가에서 열린 추모식, 4편 천일염 전시관,

5편 큰 바위 얼굴에서 만나는 소년 김대중, 6편 목포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까지 오는 8월18일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열리는

김대중 대통령 서거 4주기 추모식날까지 매일 발행될 예정이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 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탐험대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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