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여행)비련의 시인 고정희 생가와 시인을 닮은 송정 소나무.

2014. 2. 12. 07:05전라남도 견문록/해남 견문록

 

해남은 땅끝과 대흥사, 두륜산이라는 천혜의 관광자원을 가진 남도 관광의 일번지다.

또한 해남은 우수한 시인들을 많이 배출해 한국 시문학의 일번지라 불려도 좋을 만큼 시문학 여행지로 문학동호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 시초가 바로 고산 윤선도로 고산은 송강 정철, 노계 박인로와 함께 조선 가곡의 3대 명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앞서 들렀던 고산 유물전시관과 고산의 사랑채 녹우당, 그리고 해남 윤씨 후손들의 면면을 봤을 때 해남이 문학일번지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풀잎'으로 유명했던 故박성룡 시인이 해남 시문학의 태동을 알렸다면 김준태 시인은 광주민주화 운동의 실상을 시로 남겼고, 전사시인으로

일컷는 김남주시인과 고정희 시인 등 비련의 시인도 탄생했다. 한때 광주의 시인이라 불렸던 황지우 시인도 해남 출신이다.

이렇게 수많은 해남 출신 시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소풍지로 즐겨 찾던 고산 윤선도 유적지와 보길도의 유적지 등에서 고산의 흔적을

살펴보면서 시적 감각 향상에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이번 해남여행에서는 故고정희 시인과 故김남주 시인을 만날 수 있었다.

두 시인은 모두 40대 중후반으로 한참 왕성한 시적 영감을 풀어 낼 나이에 병과 실족사로 귀천됐다.

사는 곳도 모두 해남군 삼산면으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면 바로 만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살았다.

우선 고정희 시인의 생가가 있는 마을을 둘러보고 묘소와 어렸을 때 자주 갔을 것으로 여겨지는 교회, 당산소나무 등을 만나보고

지척에 있는 김남주 시인의 생가마을을 찾아 두 시인의 삶을 조명해 보기로 한다.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을 나와 용두리 고분을 보고서 고정희 시인생가와 김남주 시인생가를 보기로 했다.

녹우당에서 고정희 시인의 생가까지는 이정표가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고정희 시인의 생가가 있는 송정마을이다.

뒤의 숲은 해송숲으로 자그마한 구릉 전체를 키 큰 해송이 뒤덮고 있었다.

저 산자락 어딘가에 시인의 묘소도 있다고 하니 그녀의 삶 전체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이 너른 들판 좌측 산자락아래는 김남주 시인의 생가가 있는 삼삼면 봉학마을이다.

부르면 들릴 것 같지 않은가?

 

 

마을안에 들어와서는 더이상 생가 안내판이 없어 잠시 골목길을 헤맸다.

도로명으로 송정길 45번지이니 길 좌측인 것은 확실한데 골목에 들어서니 44번지까지 밖에 없는 것이다.

조그만 공터가 있는 갈림길에 조그마한 이정표라도 있다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집앞에 텃밭이 하나 있고 특이하게도 바깥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집이 시인의 생가다.

 

 

시인의 시세계를 잠깐 들여다 본다.

지금 살아 있다면 67세로 지금으로 부터 23년전인 1991년 6월 9일 지리산 등반 중 43세때 실족사했다는 부분에서 숙연해 진다.

삶과 죽음은 찰라라고 하지만, 물에 떠 내려가면서 두려운 생각에 그 짧은 시간 얼마나 많은 생각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도 산을 좋아하고 지리산 종주도 3번을 해 봤지만, 늘 높은산을 등산할때마다 실족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시인이기전에 같은 산악인으로서 의 고정희 산악인을 생각해 보면 당시 실족은 많은 안타까움이 있다.

 

 

고정희 시인의 생가는 보이는 좌측 건물이다.

 

고정희 시인은 아버지 고양동씨와 어머니 김은녀 여사 사이에 5남3녀 중 장녀로 1948년 1월 17일(음력)에 태어났다.

본명은 성애(成愛), 호는 설원(雪原)이다.

시인의 남동생 등 가족이 사는 생가에선 사람냄새가 물씬 풍겼다.

 

 

 

고정희 생가의 화장실은 바깥에도 있으며 장애인 화장실도 있다.

이것은 생가를 찾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현대식 시설이다.

화장실 벽을 가득 장식한 것은 놀랍게도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들이다.

1994년부터 최근까지 있어 시인이 운명한 후에도 그녀를 못 잊어 20년도 넘게 생가를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정희 시인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시인의 유품들이 전시돼 있는 방으로 들어가 본다.

이 유품들은 시인이 운명하자 가족이 경기도 안산의 집에서 가져와 전시장을 꾸몄다고 한다.

 

 

남강헌(南江軒)이라 부른다.

시인의 방은 평소에 닫혀있다. 집을 방문했을 때도 닫혀있었지만, 남동생으로 보이는 분에게 시인의 방을

한번 보고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방문을 열어 주었다.

 

 

고정희 시인은 이 생가에서 20살까지 살며 문학소녀로서의 꿈과 희망을 키웠다.

그후 1975년 광주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대표적 여성운동단체인 YWCA 간사로 활동했다.

 

[고정희 약력]

1967 『새농민』에 시 발표.
1969 〈흑조〉 동인.
1970 『새전남』, 『주간전남』 기자.
1974 광주 YMCA 프로그램부 간사.
1975 『현대시학』에 시 「부활 그 이후」 등으로 등단(박남수 추천).
1979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학교) 졸업. 〈목요시〉 동인.
1984 〈또 하나의 문화〉 창간 동인.
1986 한국 가정법률상담소 편집부장.
1988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 역임.
1990 ‘탈인지 시와 음악 워크샵’에 참여(필리핀 아시아 종교음악 연구소 초청).
1997 고정희 시화비가 광주문예회관 야외원형광장에 세워짐.
2001 ‘고정희 상’ 제정(또 하나의 문화 주최).
크리스찬 아카데미 출판부 책임 간사

 

[상훈]
1983 제4회 대한민국 문학상 「초혼제」.

[시]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배재서관, 1979, 시집.
『실락원 기행』, 인문당, 1981, 시집.
『초혼제』, 창작과비평사, 1983, 시집.
『이 시대의 아벨』, 문학과지성사, 1983, 시집.
『눈물 꽃』, 실천문학사, 1986, 시집.
『지리산의 봄』, 문학과지성사, 1987, 시집.
「학동댁」, 『또 하나의 문화』 3, 1987, 시.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창작과비평사, 1989, 시집.
『광주의 눈물비』, 동아, 1990, 시집.
『여성해방출사표』, 동광출판사, 1990, 시집.
『아름다운 사람 하나』, 들꽃세상, 1990, 시집.
『뱀사골에서 쓴 편지』, 미래사, 1991, 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창작과비평, 1992, 시집.

(자료출처:한국여성문인사전)

 

 

이후 고정희 시인은 1980년대 초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갔다고 한다.

한국신학대학을 나와 시작활동과 기독교신문사 기자, 크리스챤아카데미 출판간사,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 '여성신문' 편집주간,

여성문화운동그룹 '또 하나의 문화' 동인 등으로 활동했다.

시집「누가 한밤에 술틀을 밟고 있는가」(평민사 1979)를 출간했고 그 후 줄기찬 창작력은 1991년 지리산에서 실족사할때까지

매년 한 권씩 시집을 출간할 정도로 왕성했다고 한다.

 

여성신문사 초대편집주간도 지낸 고정희시인.

 

서재를 빽빽히 채운 1970~80년대 서적들.

 

 

고정희 시전집과 여성해방문학가 고정희의 삶과 글<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조형 엮음.

 

 

상한 영혼을 위하여..

뒤론 지금은 잊혀진 LP판이 빼곡하다.

 

 

방명록을 대신한 노트.

2014년 1월 26일 방명록 위로는 초등학생, 대학생 들도 다녀갔다.

 

 

고정희 시인의 묘소 위치.

생가 바로 뒤쪽에 있어 찾기도 수월했다.

'고정희기념사업회'(회장  최은숙)는 지금 서울과 해남에서 활동 중이며, 고정희 상 제정과 지난해 제10회 고정희청소년문학상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해마다 5월 초 접수를 받아 예선대회를 치르고 6월 본선대회를 치른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고정희기념사업회(http://blog.naver.com/tomoon1984)문의 070-4268-9221, school@haja.or.kr

 

금새라도 벨이 울릴 것 같은 손때 묻은 전화기.

 

시인의 책상에 잠시 앉아 본다.

늦은 밤까지 원고지를 앞에 놓고 시를 썼을 그녀의 채취가 느껴진다.

만약 오늘까지 살아 있었다면 이 책상에 앉아 원고지를 펴 놓고 첫 문장을 어떻게 써 내려갔을까?

 

 

 

고정희 시인 생전 모습.

 

서재를 한 바퀴 둘러본다.

 

서재 아래까지 작은 액자들이 빼곡히 있어 무릎걸음으로 엉금엉금 기어야 했다.

읽어보니 편지였다. 고정희 시인은 평생 이렇게 수천편의 편지글을 지인들에게 보냈다고 한다.

이 편지들은 물론 시집으로 발표된 것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이 미소가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그녀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다.

 

대안문화 운동단체인 <또하나의 문화>동인들과 등반중인 고정희 시인.

<또하나의 문화>는 고정희 기념사업회를 겸하고 있는 사단법인이다.

 

 

1990년 초 고정희시인.

숨지기 1년 전 사진이다.

 

 

고정희 시인이 묻힌 날..

같이 심은 동백나무는 지금도 있는지...

 

 

윤상희 님도 다녀가고...

 

 

 

 

 

 

 

 

다녀간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자기에 자신의 글을 써서 구워왔다.

 

시인이 읽었던 책들..그리고 목각인형

 

음악도 좋아했나 보다.

방 한켠 전축에서 금새라도 음악이 흘러나올 것 같다.

 

멈춰버린 시계, 그리고 목판화

 

 

고행, 묵상, 청빈은 고정희 시인의 좌우명이라고 한다.

평생을 독신으로 산 고정희 시인은 좌우명처럼 수녀같은 삶을 살았다고 한다.

 

첫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출간 기념패

 

두번째 시집 <실락원 기행>출간 기념패

 

세계 4차 시인대회 기념패와 명찰들

 

시 한편을 위해 본 책이 대체 몇 천권일까?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일년에 책을 몇 권이나 읽는가?

 

시인의 손때가 묻은 그릇들.

 

 

 

 

 

이 한 장의 사진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1991년 6월 9일 지리산 등반도중 뱀사골 간장소에서 43세의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급류에 휩쓸려 귀천된 여류시인.

그녀의 시 '독신자'를 읽어보면 이미 그녀의 운명을 스스로 예언했다는 점에서 전율이 느껴진다.

 

독신자 

 

               고정희

 

 

환절기의 옷장을 정리하듯

애증의 물꼬를 하나 둘 방류하는 밤이면

이제 내게 남아 있는 길,

내가 가야할 저만치 길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크고 넓은 세상에

객사인지 횡사인지 모를 한 독신자의 시신이

기나긴 사연의 흰 시트에 덮이고

내가 잠시도 잊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달려와

지상의 작별을 노래하는 모습 보인다

 

 

그러므로 모든 육신은 풀과 같고

모든 영혼은 풀잎 위의 이슬과 같은 것,

풀도 이슬도 우주로 돌아가, 돌아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어라

강물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어라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이어라  

 

잊어야 할까봐

나는 너를 잊어야 할까봐

아무리 붙잡아도 소용없으니까

하느님 보시기에 마땅합니까?

 

오 하느님

죽음은 단숨에 맞이해야 하는데

이슬처럼 단숨에 사라져

푸른 강물에 섞였으면 하는데요

 

뒤늦게 달려온 어머니가

내 시신에 염하시며 우신다

내 시신에 수의를 입히시며 우신다

저 칼날 같은 세상을 걸어오면서

몸이 상하지 않았구나, 다행이구나

내 두 눈을 감기신다 

 

 

고정희 문화제도 열리나 보다.

지난해 6월 제12회 고정희 문화제가 해남문화원에서 열렸다.

 

 

 

책상밑에 있던 시인의 가방들...

 

고정희 시인은 생가에서 문학소년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시와 결혼해 5월 광주를 관통하고 불꽃같은 삶을 살다 짧은 생을 마쳤다.

비록 유품이나마 시인의 따스한 체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금새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객을 위해 환한 미소를 보여줄 것 같은 시인의 서재...

발걸음이 떼이지를 않는다.

 

고정희 시인의 묘로 가본다.

대문을 나와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 방죽이 나오는데 그 방죽 위에 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차는 여기에 주차해도 된다.

 

갈라지는 길에서 왼쪽. 보이는 묘가 고정희 시인의 묘다.

 

장례당시 같이 심었던 동백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꽃이 없은 들 어떠랴... 그 자체가 백옥처럼 곱기만 하다.

 

고정희 시인의 약력이 비문에 써 있다.

 

보수가 필요한 고정희 시인의 묘.

 

시인의 묘에서 바라본 해남 들녘

배산임수형 양지바른 곳에 잠들어 있다.

 

마을에 들어서며 시인의 생가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그래서 생가를 나와 그것을 찾아가 본다.

바로 마을 교회 뒤에 있는 거대한 소나무다.

이 소나무는 용두리 고분에서 고정희 생가로 오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는데

이 나무가 보이면 바로 고정희 생가가 있는 송정마을이다.

송정마을은 연안이씨가 터를 잡은 곳으로 이른바 와우형으로 평온한 마을이다.

 

아마도 고정희 시인은 송정마을을 떠날 때까지 저 교회에 다니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 본다.

시인의 생가에서 교회까지 걸으며 시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교회뒤로 거대한 몸집의 낙락장송 한 그루.

모습부터 독보적이다.

 

이쪽으로 올라가면 된다.

 

온전한 몸은 아니지만 멀리서 봐도 군계일학으로 보이는 해송.

 

아마 윗부분은 태풍이나 번개에 맞아 부러진 듯.

나무 아래 한 켠에 부러진 나무가 고목이 되어 있었다.

 

 

정상상태라면 이렇게 멋졌을 소나무(사진출처 : 지역정보포털 해남 송정 소나무)

높이 21.5m, 둘레 4.62m, 수령 약 600살이다.

이소나무옆에는 정자가 있었고, 정자아래는 99칸의 한옥이 있었으나 독립운동과 전쟁등을 통해 집안이 쇄퇴해

1990년에 보수가 어려워 파옥시켰다고 마을사람들이 전하고 있다.

 

뒤의 해송들도 앞으로 수백년 흐르면 이정도 크기로 자라겠지?

 

시인은 어렸을 때 생가 뒷산으로 산책도 나가고 이 소나무 아래서 아빠,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하늘아래 우뚝 선 송정 소나무. 마치 그녀를 닮은 듯 송정마을 제일 높은 곳에 우뚝 서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다.

 

마을 입구의 또다른 보호수로 200살도 넘은 팽나무다.

학교에서 돌아와 이 골목을 지나 집으로 다녔을 시인을 그려본다.

 

고정희 시인의 시비를 광주문예회관에서 본 것 같아 나중에 시비를 찾아 광주문예회관을 들렀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거리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 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디를 못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서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상처받은 내면의 고통을 노래한 시지만, 고통의 상처를 드리우고 살아가는 삶의 고단함을 벗어던지고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부평초 처럼 회피보다는 고통과 직접 대면하고 수용하여 더욱 값진 삶을 살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으며,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그것을 통해 더욱 강인해 지려는 시인의 소망이 담고 있는 시는 긍정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해남에 오면 유명한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도 즐거움이겠지만,

이렇게 해남의 문인들의 생가를 방문하는 문학기행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과 유물전시관에서 윤선도 고시조를 읇조려 보고 고정희 시인과 바로 건너 김남주 시인까지 돌아본 다음

보길도에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해남두륜산권 여행기)

1.해남윤씨 보물창고,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2.초록비 쏟아지는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 

3.녹우당 비자나무숲에서 녹우(綠雨)를 느껴본다.

4.왜(倭)계 용두리고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해남땅끝 여행기) 

  1편 : 앗! 공룡이 탈출했어요/해남 공룡박물관

  2편 : 우리 공룡 사냥하러 가 볼까?/해남 공룡박물관

  3편 : 보고 서 있는것 자체가 힐링/해남 고천암

  4편 : 정유재란 이순신장군 첫 승첩지/해남 어란진

  5편 : 대한민국 일출의 최고봉/땅끝마을 맴섬 일출

  6편 : 우리 모노레일 타고 가 볼까?/땅끝전망대

  7편 : 땅의 끝, 여기서 뒤 돌아서면 그것이 바로 시작이야/땅끝탑

  8편 : 땅끝에서 삼남길을 따라 한양까지 가 볼까?/삼남길

  9편 : 땅끝에도 하루에 두 번 길이 열리는 신비의 섬이 있다./땅끝 대죽도

10편 : 해남아가씨의 사랑이야기가 있는 송호해변/송호해수욕장

11편 : 자연과 예술이 하나가 된 땅끝조각공원

12편 : 땅끝 사구미 해변에서의 사랑이야기

 

 

주소 : 해남군 삼산면 송정길 45 (송정리 259번지)

주차장 없음, 묘소앞까지 가서 주차하거나 마을 입구 팽나무옆에 주차. 

 

(글, 사진 : 포토뉴스코리아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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