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여행)하늘이 숨겨놓은 땅 윤선도의 금쇄동

2014. 2. 14. 07:05전라남도 견문록/해남 견문록

 

해남에 오면 어디를 가 보고 싶을까?

먼저 땅끝관광지와 대흥사, 그리고 두륜산, 초의선사의 일지암, 법정스님, 달마산과 미황사, 도솔암 등이 떠오르겠지만

윤선도의 녹우당과 고산 유물전시관도 그와 못지 않은  관광지다.

해남 윤씨 어초은파를 중흥한 윤선도는 시조, 음악, 미술, 천문, 의학 등 다재 다능한 인물로 정철, 박인로와 더불어 조선가곡의 3대 명인이다.

윤선도는 10여 년의 관직생활과 20여 년의 유배생활, 그리고 25여 녀의 은거생활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의 은거생활 대부분이 해남 금쇄동, 수정동과 완도 보길도 였다는 것은 풍수에 능한 윤선도 행적으로 본다면 얼른 이해가 된다.

그만큼 해남, 완도 땅에 명당이 많다는 것이다.

 

윤선도 유적지하면 대게 녹우당을 말하지만, 해남 관광지도의 윤선도 유적지는 바로 해남군 삼산면에 위치한 금쇄동이다.

이곳은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구시리 산181 번지외 149,881㎡의 면적을 유적지라고 말하며 2001년  8월 17일 사적 제432호로  지정됐다.

 

고산 윤선도가 54세 때인 인조 18년(1640년)에 머물면서  보물 제482-2호로 지정된 <금쇄동기>, <산중신곡>을 비롯 여러 문헌들을 집필한

곳으로 금쇄동과 금쇄동 안에 위치한 현산고성을 합해 윤선도 유적지라 부른다.

금쇄동은 대흥사와 해남읍에서 모두 갈 수 있으며 녹우당과 인근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 같지만, 의외로 찾는 이 없이 스잔하기만 한 곳이다.

승용차편으로 네비게이션이 있다면 쉽게 찾아갈 수 있지만, 대중교통으로는 찾아가기가 만만치 않은 곳이다.

군내버스가 다니는 곳에 내린다고 해도 4km를 더 들어가야 하며 금쇄동에서도 안을 모두 둘러보려면 또 5km정도를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윤선도 유적지라 해서 녹우당처럼 친화적인곳인줄 알았지만, 이곳은 윤선도의 묘와 제각, 신도비만 있으며 윤선도가 머물며 글을 쓴 건물들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고 한다.

금쇄동기 22지명과 명당이라고 알려진 윤선도 묘소, 현산고성 등이 있어 한두시간 둘러보기보다 하루를 계획하고 와야 할 듯 하다.

나도 설날 늦은 오후 처가에 가면서 아무런 준비나 자료도 없이 이곳을 찾았다가 훗날을 기약하며 돌아나온 곳이다.

후참에 이곳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찾아가는 방법과 금쇄동의 흔적들을 대략이나마 써 놓고 미완성의 금쇄동 탐방기를 마무리 하러 다시 갈

이유를 만들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윤선도의 금쇄동은 신비로운 곳에 있었다.

옛날로 치면 거의 인적이 없는 깊은 산중이었을 것이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오지도 이런 오지가 없을 것이다.

버스가 다니는 도로에서 금쇄동 입구까지 민가다운 민가를 보지 못했으며 축사나 농사짓기 위한 임시시설만 있었을 뿐이다.

안으로 계속 들어가면서 계속 뒷골이 댕기고 누군가 차량 뒤를 쫒아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으스스한 곳이었다.

말그대로 하늘이 숨겨놓은 윤선도의 땅이라고 할 것이다.

 

 

하천을 따라 계속 들어와 괴기스러운 나무앞 이정표에 다다르자 금쇄동 입구까지 1km가 남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들이킨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는 늦은 오후에다 설날이라 기다리는 처가식구들을 위해서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기 대문이다.

 

 

길이 끝지점에 이르르자 난데없는 바리게이트 출입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사유지이니 출입하지 말라는 것으로 사람도 들어오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출입통제에 대한 아무런 경고표시가 없기에 차량에서 내려 들어가 볼 요량이지만, 발걸음이 떼지지 않는다.

지나온 축사에서 개들 짓는 소리가 요란하다 못해 산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심장을 두드린다.

같이 갈 것으로 여겼던 아들녀석은 지 엄마를 지킨다고 꼼짝달싹을 않는다.

 

 

200여 미터를 걸어 들어오니 우측으로 사람이 살지 않은 민가가 있다.

훗날 읽어본 다른 사람 블로그에는 이곳에 금쇄동 관리인이 살았지만 지금은 살지 않는다고 하니 빈집을 바라보는 심정 한기가 소름으로 나타난다.

 

 

바랜진 금쇄동 안내판을 바라보니 2개의 탐방로가 있고 금쇄동기 22지명을 차례대로 만날 수 있다고 되어있다.

금쇄동기 22지명은 금쇄동의 바위나 석대, 건물터 등에 부여된 이름으로 금쇄동의 아름다운 산수경관을 표현하고 있다니

탐방로를 따라 윤선도의 묘와 제각, 신도비, 현상고성까지 하루종일 탐방해야할 정도로 빼곡하다.

안내판의 구멍 2개는 누군가 이곳에 대 놓고 엽총을 쏜 흔적같아 섬뜩하기만 했다.

 

 

윤선도가 이곳을  금쇄동이라 한 것은 고산이 54세 되던 1640년(인조 18)에 <금쇄석궤>를 얻은 꿈을 꾼 며칠 후 꿈과 똑 같은 곳을

찾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을 이용해 연못을 만들고 정자 등을 짓은 보길도와 더불어 고산의 대표적인 원림지 중 하나로 금쇄동기에서 22개의 비경을 노래한 것에서

보듯이 산수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회심당, 휘수정, 교의제 등 건물지와 연못지가 남아있다고 하며 산 정상에는 고려시대에 축조한 현산고성이 있다고 한다.

산성길이는 1,472m이며 동문, 서문, 북문 등 3곳의 무지와 망루지, 건물지 등이 남아있다고 한다.

 

 

안내판에서 신도비까지 1.6m, 윤선도 묘소까지도 3km로 왕복 6km이상 걸어야 하며 현산고성까지 둘러보려면 3시간으로는 택도 없다.

아예 도시락, 간식, 식수 준비해서 하루 날 잡아 와야 할 정도로 음미할 곳이 많다.

 

 

윤선도의 금쇄동에서 바라본 바깥세상.

360여년 전 고산도 이곳에서 녹우당을 오가며 신선같은 삶을 살았을 고산도 이곳에서 저 바깥세상을 바라봤을 것이다.

 

 

순탄치 못한 관직생활에 그 보다 두배나 더 많은 유배 생활을 거듭하다가 벼슬을 버리고 세상을 등진 후

 

보길도의 부용동과 새로 찾은 금쇄동에 이렇게 원림을 조성하고 정자와 집을 지어놓고 풍류를 즐기며 신선처럼 산 윤선도.

 

 

윤선도의 묘는 가보지 못했지만, 윤선도 묘소와 관련된 일화가 있어 마무리 글로 써 본다.

원래 윤선도의 묘는 고모부인 이의신이 자신의 신후지지(身後之地)로 잡은 자리였다. 이의신은 상지관으로 광해군 때 교하천도설을 주장한

인물로  그는 선조의 첫 왕비인 의인왕후의 능을 소점하는 등 당시의 명풍수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윤선도와 이의신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녹우당에서 같이 지낼 때 밤만 되면 나귀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가 새벽이 돌아오는 이의신의 행동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한 윤선도가 어디를 다녀오는지 물어도 이의신은 웃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명풍수 이의신이 틀림없이 묘 자리를 구하러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한 윤선도는 하루는 이의신에게 술을 잔뜩 먹여 취해 곯아떨어지게 한 뒤

이의신이 항상 타고 다니던 나귀에 올라 채찍을 휘둘렀더니 나귀는 습관적으로 밤이면 주인이 매일처럼 다녀오던 길을 따라 내달렸다고 한다.

 

어느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 나귀가 산중턱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자 윤선도가 주변을 살펴보니 나귀 똥이 잔뜩 널려있고 담배도 피운 흔적이 있어

이의신이 이곳에 왔다는 것을 확신하고 주변 지세를 살펴보니 천하의 대명당자리였다.

윤선도는 이곳에 묘를 쓰기로 하고 급히 가묘를 만들어 신표를 해놓고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잔 뒤 다음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이의신에게 "고모부 제가 저의 신후지지를 하나 잡아 놓았는데 좀 보아주십시오."라고 능청 떨며 말했다고 한다.

이에 혼쾌이 승낙한 이의신이 윤선도가 인도하는 곳으로 가보니 자기가 잡아놓은 바로 그 자리였다고 한다.

그제서야 이의신은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웃고 "역시 명당은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이로구나."하면서 좌향을 바로 잡아 주었다고 한다.

윤선도 이후 해남 윤씨 어초은파가 정치가나 고관대작보다는 예술가나 학자 등이 많이 배출된 이유도 바로 윤선도 묘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손들은 부모상을 당하면 천하의 명당자리를 찾아 앞다퉈 산꼭대기까지 올라 장례를 치르는 것인가 보다.

 

(해남두륜산권 여행기)

1.해남윤씨 보물창고,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2.초록비 쏟아지는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 

3.녹우당 비자나무숲에서 녹우(綠雨)를 느껴본다.

4.왜(倭)계 용두리고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5.비련의 시인 고정희 생가와 시인을 닮은 송정소나무

6.김남주 시인 20주기, 생가를 찾아서

 

 

(해남땅끝 여행기) 

  1편 : 앗! 공룡이 탈출했어요/해남 공룡박물관

  2편 : 우리 공룡 사냥하러 가 볼까?/해남 공룡박물관

  3편 : 보고 서 있는것 자체가 힐링/해남 고천암

  4편 : 정유재란 이순신장군 첫 승첩지/해남 어란진

  5편 : 대한민국 일출의 최고봉/땅끝마을 맴섬 일출

  6편 : 우리 모노레일 타고 가 볼까?/땅끝전망대

  7편 : 땅의 끝, 여기서 뒤 돌아서면 그것이 바로 시작이야/땅끝탑

  8편 : 땅끝에서 삼남길을 따라 한양까지 가 볼까?/삼남길

  9편 : 땅끝에도 하루에 두 번 길이 열리는 신비의 섬이 있다./땅끝 대죽도

10편 : 해남아가씨의 사랑이야기가 있는 송호해변/송호해수욕장

11편 : 자연과 예술이 하나가 된 땅끝조각공원

12편 : 땅끝 사구미 해변에서의 사랑이야기

 

주소 : 전남 해남군 현산면 구시리 산 181번지

 

(글, 사진 : 포토뉴스코리아, 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탐험대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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