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여행)김남주 시인 20주기, 생가를 찾아서

2014. 2. 13. 07:05전라남도 견문록/해남 견문록

 

2월13일 오늘은 故김남주 시인의 20주기이다.

해남으로의 여행 중 고정희 시인과 김남주 시인의 생가를 찾아보고자 한것은 바로 김남주 시인의 20주기 의미를 새겨보기 위함이었다.

평소에 시인이라는 말보다 전사 김남주라는 말을 더 듣고 싶어했다는 김남주 시인.

70~80년대 독재와 군부정권으로 암울했던 시기를 시뿐만 아니라 온 몸으로 저항한 김남주 시인.

수 많은 작품들이 민중가요로 불려지고 있는 김남주 시인.

49세라는 왕성한 나이에 감옥에서 얻은 췌장암으로 세상과 이별한 시인.

시 대부분을 감옥에서 쓴 옥중시인.

그를 만나러 가 본다.

 

고정희 시인의 생가 마을을 나와 인근에 있는 김남주 시인의 마을을 찾았다.

생가는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봉학길 98(봉학리 535번지)로 고정희 시인의 생가가 사람이 실제로 거주하는 곳으로 시인의 손때 묻은 서재가

있다면 김남주 시인의 생가는 시 공원이 조성돼 있다는 것이 달랐다.

김남주 시인의 생가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렇게 도로에 이정표가 커다랗게 서 있기 때문이다.

이 도로는 해남읍 고도리에서 완도가는 옛도로로 약 4km정도 가면 나온다.

 

 

오른쪽 골프연습장이 보이는 길로 들어가면 된다.

 

봉학마을의 주농사는 마늘인가 보다.

지천에 잘 익은 마늘이 자라고 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때 지었을 것 같은 마을회관은 지금 폐쇄됐다.

을씨년 스럽지만, 나름대로 멋이 있어 보인다.

구.마을회관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차량이 보이는 곳 함석지붕이 김남주 시인의 생가다.

 

폐허가 된 마을회관 앞에선 새로 지은 마을회관이 있고...

 

멀리 두륜산 와불도 선명하게 보인다..

 

주차장은 생가와 마을회관 사이에 넓다랗게 조성돼 있다.

 

김남주 시인의 생가앞.

 

너른 마당 좌측에 시비공원이 있고 우측은 생가를 복원해 놓았다.

 

[김남주 시인 약력]

 

1945 10월 16일 전남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535번지에서 아버지 김봉수, 어머니 문일님의 둘째 아들로 출생.

1960 해남삼화초등학교 졸업.

1963 해남중학교 졸업.

1964 광주일고 입학, 입시위주의 교육에 반대하여 2학년때 자퇴.

1969 대입검정고시로 전남대 문리대 영문과 입학

          3선 개헌 반대운동. 교련 반대운동, 반독재민주화운동.

1972 유신헌법에 맞서 전국 최초의 반유신투쟁 지하신문 <함성>지 제작.

          전국적 반유신투쟁을 위해 지하신문 <고발>지 제작.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음

          8개월만에 석방. 전남대에서 제적.

1974 귀향해서 농사 지음. 이듬해 광주에 사회과학서점 ‘카프카’ 개설.

1977 해남농민회를 결성. 광주에서 황석영, 최권행과 함께 민중문화연구소 개설.

1978 상경.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에 가입. 남민전 전위대 전사로 활동.

1979 남민전 조직원으로 서울에서 활동 중 구속됨. 이듬해 이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

1986 전주교도소로 이감. 독일 함브르크에서 개최된 국제PEN대회에서 ‘김남주 시인 석방결의문’ 채택.

1988 국내문인들의 석방 탄원서와 PEN클럽 세계본부, 미국PEN클럽 등이 정부에 석방 촉구 공문 보냄, 미국PEN클럽 명예회원으로 추대됨.

          12월 21일 형집행정지로 투옥생활 9년 3개월 만에 전주교도소에서 출감.

1989 1월 29일 광주 문빈정사에서 박광숙과 결혼. 옥중서한집 [산이라면 넘어주고 강이라면 건너주고](삼천리),

1990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소장 역임.

1993  여의도 여성백인회관에서 ‘김남주 문학의 밤’ 개최.

1994 2월 13일 새벽 2시 30분 췌장암으로 별세. 광주 망월동 5월 묘역에 안치. 유족으로 부인 박광숙 여사와 아들 토일(土日) 군이 있음.

 

▷시집= '진혼가',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 '솔직히 말하자', '사상의 거처','이 좋은 세상에'

▷시선집= '사랑의 무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학살' 등

▷수상= 신동엽창작기금상(1991), 단재문학상(1992), 윤상원 문학상(1993)

▷경력= 민족문화작가회의 상임이사,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

 

 

김남주 시인에 대한 간략한 약력과 흉상을 지나 첫 시비가 나왔다.

시의 제목은 노래로, 민중가요로 불려지고 있는 시비들이 시 공원에 있다.

 

노래(죽창의 노래)

 

                             김남주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웃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靑松綠竹)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김남주의 첫 시비에서 부터 죽창이란 단어가 나와 섬뜻하다.

하지만 시인이 자신을 시인이라 부르지 말고 전사라 불러주라고 했다하니 단어가 이해된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김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 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 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이 시는 변계원이 곡을 만들어 안치환의 노래로 재탄생해 노찾사 등이 부른 민중가요가 되었다.

안치환은 이 외에도 1집 '저 창살에 햇살이'를 비롯 앨범마다 김남주 시인의 시를 노래로 불렀다.

그외 죽창의 노래(안치환), 똥파리와 인간(안치환), 어디 손 한번 들어보시오(박종화)등이 있다.

 

 

시 공원을 둘러본다.

 

김남주는 민족시인이자 혁명시인, 전사시인으로 청춘의 1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김남주는 한국민족문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사회 변혁 운동의 이념과 정신을 온몸으로 밀고 나간 '전사시인(戰士詩人)'이며,

혁명적 목소리로 한국문단을 일깨운 '민족시인'이다. 또한 청춘의 10년을 감옥에서 보낸는 등 반독재 투쟁에 앞장 선 혁명시인이었다.

 

 

김남주는 학생운동가였다.

대학 재학중 '삼선개헌반대투쟁'에 참여하는 등 반독재 학생운동에 투신한 그는 1972년과 이듬해에 전국최초의 반유신투쟁 지하신문 '함성'과

'고발'을 제작, 배포하여 징역 8개월의 옥고를 치렀고, 이후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1974년 '창작과 비평'에 '진혼가' 등으로 문단에 나온 이후 작가 황석영 등과 함께 '민중문화연구소' 등을 결성하기도 했다.

 

또한 김남주는 1978년 가장 강력한 반유신투쟁 지하조직 '남민전'의 '전사'로 활동하다가 이듬해 10월 동지들과 함께 체포, 구속되었으며,

징역 15년형이 확정되어 광주교도소 등지에서 복역하였다.

감옥은 김남주의 독방생활을 모티브로 시 공원에 만들어 놓았다.

 

 

김남주는 옥중시인이었다.

그는 두차례에 걸쳐 도합 10년 새월을 감옥에 갇혀 있었으며, 그가 남긴 470여편의 시 가운데 300여편이 옥중에서 쓴 시이며,

그의 옥중시는 80년대 한국시의 한 절정을 이루었다.

 

 

김남주는 1988년 1월 가석방되어 출소한 뒤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민예총 이사 등을 역임하였고,

단재상, 윤상원문화상을 수상하였으으며, 작고 이후에 민족예술상이 수여되었다.

옥중 투쟁에서 얻은 지병(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1994년 2월 13일 불과 마흔아홉의 나이로 그 생을 마감했다.

그의 묘는 광주 망월동 5월 묘역에 있다. 

 

김남주는 전사적이미지가 강하지만 서정적 시도 많이 남겼다.

 

추 석 무 렵

                                   김 남 주

 

 

반짝반짝 하늘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초저녁

나는 자식놈을 데불고 고향의 들길을 걷고 있었다.  

 

아빠 아빠 우리는 고추로 쉬하는데 여자들은 엉뎅이로 하지?

이제 갓 네살 먹은 아이가 하는 말을 어이없이 듣고 나서

나는 야릇한 예감이 들어 주위를 한번 쓰윽 훑어보았다

 

저만큼 고추밭에서 아낙 셋이 하얗게 엉덩이를 까놓고

천연스럽게 뒤를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산마루에 걸린 초승달이 입이 귀밑까지 째지도록 웃고 있었다.

 

옛 마을을 지나며

 

                      김남주

 

찬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올해 2월 13일이 김남주 20주기다.

 

김남주 20주기를 맞아 그의 삶과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출판.문학계의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한다.

출판사 창비는 그의 시 519편을 망라한 최초의 <김남주 시전집>과 김남주에 관한 평론 모음 <김남주 문학의 세계>를 출간한다고 하며,

한국작가회의도 2월 28일 오후 6시30분 서울 연희문학창작촌 미디어랩실에서 출판기념회를 겸한 ‘김남주를 생각하는 밤’ 행사를 연다.

이 행사에서는 고전문학자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김준태 시인, 황석영 소설가, 김남주의 친구 이강씨 등이 시인을 회고하고,

김남주 자신의 육성 시 낭송을 듣고, 젊은 후배 시인들의 헌정 시 낭송도 진행한다고 하니 김남주를 사랑하거나 좋아했던 분들에게는

고인을 추억하는 멋진 행사일 것이다.

 

또한 실천문학사는 2월 12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경향신문사 5층 강당에서 20주기 기념 심포지엄을 연다고 한다.

염무웅, 김대현,진태원 등 평론가들의 발표와 토론이 펼쳐지며, 이어 계간 '실천문학' 봄호는 이 심포지엄의 발표문을 중심으로

특집호를 꾸밀 예정이다고... 

 

김남주기념사업회(회장 김경윤)도 2월 15일 오전 11시 광주 망월동 옛 5·18묘역의 김남주 묘소에서 유족과 함께 추모제를 연다.

또한 기념사업회는 시극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가제)와 시화전, 유품 전시, 세미나 등이 어어러지는 추모문화제를 9월 말께 연다고 한다.

 

김남주기념사업회는 올가을 김남주 시인의 고향인 전남 해남에 윤선도를 비롯, 이동주, 박성륭, 김남주, 고정희, 김준태, 황지우, 김남주 등을

아우르는 ‘땅끝 순례 문학관’(가칭)을 개관하며 김남주 시인의 생가 터에는 별도의 문학관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김남주시인의 생가 문 중 하나가 열려있어 안을 들여다 봤다.

시인의 유품은 모두 유족들이 가지고 있어 이곳 생가에는 전시돼 있지 않다고 한다.

 

고정희 시인의 생가는 시인의 체온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서재가 있어 훈훈했지만,

김남주 시인의 생가는 그러한 것 보다 시문학 공원의 향기가 더 진하다.

 

초가였다던 지붕도 말끔하게 함석지붕으로 새단장했고...

 

옛모습에 비해 상당히 잘 관리가 되고 있다지만, 시인의 유품들을 볼 수 가 없어 뒤 돌아 나오면서도 아쉬웠다.

전시공간이 작지만 있다고 들었는데 안내하는 사람 없어 삭막하기만 했고 안을 들여다 볼 수도 없어 더 안타까웠다.

고정희 시인과 김남주 시인은 5.18의 아픔을 같이 겪고 살아간 해남출신 시인들로 한국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번 설날을 맞아 찾은 해남여행에서 가장 보석처럼 빛난 문학여행으로 내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해남두륜산권 여행기)

1.해남윤씨 보물창고,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2.초록비 쏟아지는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 

3.녹우당 비자나무숲에서 녹우(綠雨)를 느껴본다.

4.왜(倭)계 용두리고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5.비련의 시인 고정희 생가와 시인을 닮은 송정소나무

 

 

(해남땅끝 여행기) 

  1편 : 앗! 공룡이 탈출했어요/해남 공룡박물관

  2편 : 우리 공룡 사냥하러 가 볼까?/해남 공룡박물관

  3편 : 보고 서 있는것 자체가 힐링/해남 고천암

  4편 : 정유재란 이순신장군 첫 승첩지/해남 어란진

  5편 : 대한민국 일출의 최고봉/땅끝마을 맴섬 일출

  6편 : 우리 모노레일 타고 가 볼까?/땅끝전망대

  7편 : 땅의 끝, 여기서 뒤 돌아서면 그것이 바로 시작이야/땅끝탑

  8편 : 땅끝에서 삼남길을 따라 한양까지 가 볼까?/삼남길

  9편 : 땅끝에도 하루에 두 번 길이 열리는 신비의 섬이 있다./땅끝 대죽도

10편 : 해남아가씨의 사랑이야기가 있는 송호해변/송호해수욕장

11편 : 자연과 예술이 하나가 된 땅끝조각공원

12편 : 땅끝 사구미 해변에서의 사랑이야기

 

 

주소 : 전남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봉학길 98(봉학리 535번지)

주차장 : 있음

(글, 사진 : 포토뉴스코리아, 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탐험대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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