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대표문화유산, 허련의 운림산방

2014. 3. 21. 07:05전라남도 견문록/진도 견문록

 

이순신 장군의 벽파진 전첩비에서 그 역사적 사실을 음미해 보고 진도여행의 백미인 소치 허련의 운림산방을 찾았습니다.

해무가 가득 끼었고 계절이 계절인지라 아직 운림산방의 멋진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운림산방을 처음 찾는 사람들에겐 연못 너머로 보이는

운림산방의 자태에 속된 말로 뻑이 갈 지경입니다.

소치 허련이 49세때부터 84세에 세상을 떠날때까지 35년간 머물며 작품활동을 했던 남종문인화를 대표하는 호남화단의 산실입니다.

 

 

운림산방을 안고 있는 첨찰산 안내도입니다.

좌우로 상록수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습니다.

운림산방과 첨찰산만 여행온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곳은 진도여행의 백미임이 분명합니다.

약 4시간 정도의 산행에 이어 운림산방과 쌍계사, 소치미술관, 진도역사관 등을 둘러본다면 이보다 더 멋진 진도여행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곳도 봐야 하는데요..^^

남도전통미술관입니다.

마치 해남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처럼 지하1층에 지상2층 소치 허련과 그 화맥을 이어 온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는 '남도예술은행 미술품 토요경매장'도 열리지요.

오늘은 당일치기 진도 전체 여행코스라 그냥 지나가지만, 다음에 첨찰산 산행을 왔을 때 꼭 들러볼 생각입니다.

 

 

남도전통미술관 위의 한옥이 바로 토요경매장입니다.

 

 

운림산방에 대해 잠시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살아있는 미술관'이라는 단어네요^^

 

 

명승 제80호인 운림산방 전체 조감도입니다.

이곳엔 운림산방을 비롯, 소치생가, 소치기념관, 진도역사관, 토요경매장, 남도전통미술관, 쌍계사 등 진도문화의 산 현장입니다.

 

 

 

운림산방 들어가는 길에 눈에 띄는 소나무 한 그루..

가지가 제 마음대로 뻗은 것 같지만, 그 속에서도 멋진 위용이 보입니다.

 

 

누군가가 약수에 동백꽃잎을 띄어놨군요.

 

 

운림산방입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선생이 말년에 거처하며 여생을 보냈던 곳이지요.

배용준, 전도연의 영화 '스캔들 조선남여상열지사' 에서는 이 운림지라 불리는 연못에 배를 띄었죠.

 

 

운림산방 연못인 운림지 가운데 섬에 배롱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 있군요.

이 나무는 소치선생이 심었다고 합니다.

연못은 특이하게도 오각형이군요.

 

 

운림산방은 허련에서 시작돼 54년을 이어오다 허련의 아들 허형이 50세때인 1911년 운림산방을 팔고 강진으로 이사하면서 1970년대까지

관리가 안돼 쇄락했다고 합니다.

먹고 살기 바쁜 시대였으니 여행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로 이곳에 오늘날 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을 예측못했겠죠.

그렇지만 허형의 아들 허윤대가 다시 매입하였고, 이것을 허련의 손자인 남농 허건이 1981년 5년간 손질한 후 재개장하여 진도군에 기부하였고

현재는 진도군에서 진도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집중관리를 받고 있다 합니다. 

 

 

이평기 해설사의 유쾌, 상쾌, 통쾌한 해설이 친구들을 웃기고 집중하게 하고 있네요.

 

 

와..저 진지한 표정들..ㅎㅎ

 

 

운림산방의 뜻은 뒷산 첨찰산을 깃봉으로 수 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 깊은 산골에 아침 저녁으로 연무가 운림(雲林)을 이루어졌다해서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운림산방의 현판은 허련의 방손인 의재 허백련의 글씨라고 합니다.

이제 운림산방 뒤에 있는 소치 선생의 생가로 가봅니다.

 

 

운림산방의 소치 선생 생가입니다. 운림산방 바로 뒤에 있지요.

좌측의 행랑채는 조선의 마지막 유배자인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가 머물렀던 곳이라고 합니다.

1895년 을미사변에 연루되어 정만조가 부근 섬에서 유배생활을 할때 소치가 진도군수에게 청을 넣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무정은 부근 원동에 글방을 열고 글을 가르쳤다고합니다.

무정은 이곳 행랑채에서 '은파유필(恩波濡筆)'이라는 책을 써냈는데, 은파유필에는 진도에서는 달밤에 젊은 남녀들이 손에 손을 잡고

술을 마시면서 어깨춤을 추고 노는 놀이가 있더라고 '강강술래'를 소개했습니다.

 

 

소치 허련은 1808년(순조 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허임'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엄밀히 말하면 소치의 생가는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소치는 20대에 해남 대흥사 두륜산방의 초의선사에게 학문과 인격을 수양하고,

공재 윤두서의 화첩을 보며 그림에 대한 다양한 체법과 화법을 터득합니다. 공재 윤두서도 그 누구에게도 그림을 배우지 않고

중국에서 전해져 온 고씨화보와 당시화보 등을 놓고 그림을 익혔다고 합니다. 

남북조시대부터 명대에 이르기까지 백여명의 대가들의 그림이 실린 고씨화보는 그림의 특징까지 세세하게 쓰여있어 윤두서가 그림공부를

하기에 최적이었다고 합니다. 소치도 공재가 그러했던 것 처럼 지금으로 치면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셈이죠.

 

소치는 초의선사 천거로 33세때 추사 김정희 문하에 입문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서화를 배워 남중화의 대가가 됩니다.

비록 독학으로 공부를 했으나 천부적인 재질과 강한 의지로 시(詩), 서 (書), 화(畵)에 능해 40세 되던 1847년에는 낙선제에서 헌종 대왕을

알현하고 어연(헌종이 쓰는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리며 왕실 소장의 고서화를 평하는 영광을 누렸다고 합니다.

흥선대원군, 권돈인, 민영익, 정학연 등을 비롯한 권문세가들과 어울리면서 시를 짓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리다가 1857년(철종 8) 소치의 나이

49세때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 진도로 돌아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첨찰산 아래 운림산방이라는 집을 짓고 화실을 만들어 여생을 보내다

1893년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치라는 아호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중국 원나라 4대화가의 한 사람인 황공망을 '대치(大痴)'라 했는데 그와 견줄 만 하다고 해서 소치(小痴)

라는 아호를 내려주었다고 하며 "압록강 동쪽에서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 "소치 그림이 내 그림보다 낫다"고 극찬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소치(小痴)는 미산(米山) 허형을 낳고 미산은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의제 허백련이 미산에게 처음으로 그림을 익힌 곳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운림산방은 소치(小痴) - 미산(米山) - 남농(南農) - 임전(林田) 등 4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어준 한국 남화의 본거지이기도 하며

지금도 소치 화맥을 이어가는 곳으로 4대에 걸쳐 우리나라 전통 남화를 이어준 한국 남화의 본거지입니다.

그것은 다음편인 소치미술관에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운림산방에는 소치선생의 6대조 허순의 가문이 매년 한식날 춘향대제를 봉행하는 양천허씨 진도중파문중 제각인 사천사입니다.

 

 

사천사는 담장너머로 잠깐 구경하고 바로 옆의 운림각을 가 봅니다.

 

 

운림산방의 소치생가 뒷편에는 운림사가 있습니다.

 

 

소치 허련의 초상화를 가운데 두고 좌측에는 세한도, 우측에는 백해청장관이라 적힌 편액이 걸려있네요.

소치 허련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입니다.

이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목판에 그린 것으로 소치의 사당에 세한도가 있는 것으로 사제지간을 넘어 그들의 친분을 알 수있습니다.

세한도는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귀양살이 하던 시절 제자 이상적에게 보낸 그림으로 제자에 대한 고마음을 표시한 그림이라지요.

 

 

운림산방의 주인 소치 허련의 영정입니다.

 

 

소치 허련 영정 우측에 걸려 있는 '백해청장관'이라는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파도가 치는 큰 바다가 있어도 요동하지 않고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집'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운림산방을 뜻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 그림이 바로 세한도입니다.

국보 180호로 지정되었고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습니다.

이 그림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는 글씨가 있는데요 첫번째는  ‘세한도(歲寒圖)’라는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蕅船是賞)’이라고 쓰여있다는 것입니다.

우선(蕅船)은 이상적의 호(號)이기에,  ‘이상적은 감상하게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두번째는 인장을 하나 찍었는데요, 바로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인장입니다.

이것은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즉, ‘나는 그대의 그 마음을 오래도록 잊지 않겠네. 그대 또한 나를 잊지 말게나. 고맙네. 우선(蕅船)!’이라는 뜻으로 제자의 변함없는 사랑에 대해

스승의 제자 사랑을 전한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사제지간뿐만 아니라 부부지간, 친구지간, 동료지간에도 이런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뜻을 늘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은 더 아름다워지겠죠?

 

 

운림산방 소치생가에 유자나무가 있군요.

유자 몇개가 소담스럽게 달렸습니다.

 

 

 

생가 앞에는 홍도화 한그루가 있군요.

가지가 수양버들처럼 휘어져 늘어진다고 합니다.

 

 

이제 운림산방을 나와 소치미술관으로 가서 남종화의 맥을 찾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운림산방은 어느 계절에 가도 좋으나 운림산방앞 연못위의 섬에 있는 베롱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날에 가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글, 사진 : 포토뉴스코리아, 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탐험대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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