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품같이 포근한 무등산의 봄

2014. 5. 8. 07:05한국의 산 견문록/무등산

 

무등산은 광주사람들에게는 어떤 산일까요?

혹자는 어머니 가슴처럼 포근하고 치맛자락처럼 넓은 산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삶에 지치고 고단하거나, 깊은 시름에 잠겼을 때 마음의 평온을 얻고자 오르는 산이 무등산이라고 합니다.

또한, 기쁜일이 있거나 희망에 찬 포부를 말하고자 할 때 오르는 산도 무등산입니다.

그렇게 수백년 광주의 아픔을 치료해주고 눈물을 닦아주었으며 기쁨을 들어준 무등산에 4월 26일 올랐습니다.

 

 

이번 산행은 친구 6명이서 조촐하게 치렀습니다.

무등산 원효사지구에서 만나 옛길 2구간으로 서석대에 올라 입석대-장불재-서인봉-새인봉삼거리-동적골로 내려오는 코스입니다.

원효사지구에서 4명이 출발하고 뒤늦게 합류한 2명이 증심사지구에서 반대로 올라와 장불재에서 합류할 예정입니다.

 

 

 

 

무등산 옛길 2구간은 원효사지구에서 서석대까지 4.12km입니다.

서석대에서 장불재-중머리재-서인봉-새인봉삼거리-동적골-동산마을은 약 5.5km로 오늘 걸을 거리는 약9.6km정도에

소요시간은 약6시간(점심시간 포함)되겠습니다.

 

 

 

옛길 2구간을 하도 오랫만에 걸었더니 가는 길이 처음 보는 길 같이 생경스럽습니다.

몇번이고 이 길이 맞냐고 물어볼 정도였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김덕령장군이 창과 칼을 만들었다는 제철유적지에서 본 무등산 북봉(누에봉)입니다.

무등산 분청사기 전시관이 있는 풍암제에서 시작해 원효계곡을 따라 오르는 무등산 의병길(3.5km)이 끝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제철유적지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주검동 유적지가 나옵니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김덕령 장군이 칼고 창을 만든 곳으로 의병활동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제공하고 무술을 연마하고 수련했던 곳으로

바위에 충장이란 시호로 보면 아마도 김덕령 장군이 충장공 시호를 받은 1788년 이후 김덕령 장군의 활약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후세사람들이 그가 활동한 이곳의 바위에 새긴 것으로 보입니다.

 

 

물통거리입니다.

옛날 나무꾼들이 숯을 나르고 군부대로 물품을 나르던 시절 잠시 쉬어가던 곳이죠.

 

 

치마바위라는 너럭바위입니다.

여기말고도 의병길에도 치마바위가 있습니다.

김덕령 장군의 누이가 치마가 감싸 올렸다는 전설이 있는 치마바위는 의병길에 있습니다.

 

 

무등산 원효계곡의 시원지입니다.

여기 위로는 계곡이 있음에도 물이 보이지 않고 여기서부터는 물이 보여 시원지라고 하는가 봅니다.

무등산 곳곳에서 원효계곡으로 물이 흘러들어 이곳부터 솟아납니다. 제법 수량이 많지요.

 

 

얼음바위와 옛길이 갈리는 삼거리입니다.

오른쪽으로 가면 해마다 11월부터 4월까지 얼음이 고드름이 되어 달려있는 얼음바위가 있지요.

얼음바위는 원효사지구에서 작전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나옵니다만 이렇게 옛길 2구간에서도 나가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무등산 상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있군요.

예전에 보지 못했던 산벚나무의 개체가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무등산도 이제 한라산이 자생지인 산벚나무와 친하고 싶은가 봅니다.

 

 

무등산 제비꽃입니다.

각시붓꽃과 헷갈리는 종으로 잎으로 구분하나 봅니다.

 

 

목교입니다.

이곳을 거쳐 서석대로 올라갑니다.

 

 

 

 

 

 

 

 

 

 

서석대에 오르면서 본 중봉과 사양능선입니다.

과거 군부대가 주둔했던 곳이 중봉 억새밭입니다. 당시만 해도 중봉이상은 군부대로 인해 출입금지 구역이었죠.

그래서 광주사람들은 무등산 중머리재 오르는 것을 무등산 간다고 했습니다.

학창시절 소풍도 모두 중머리재까지였죠. 그곳을 중봉으로 착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모두 천연기념물입니다.

지금으로보터 약 8,000만년 전 화산활동에 의해 생긴 것이 바로 무등산 주상절리입니다.

백두산은 쥐라기시대인 약 6억년 전 부터 화산활동이 시작돼 약 200만 년 전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고

한라산은 2만 5천년 전 쯤 지금의 모양을 갖추었죠.

그러나 무등산은 8,000만 년 전 화산활동이 끝났고 그 후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 주변 지형이 침식과 풍화작용에 의해

화구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 서석대나 입석대 같은 주상절리대는 풍화작용에서 살아남은 부분이죠.

또한, 무등산은 일반적인 화산폭발과 달리 화구 주변의 갈라진 틈으로 용암이 분출되었다고 합니다.

 

 

멀리 보이는 저수지는 성산호입니다.

무등산 가사문학권이 있는 곳이죠.

 

 

무등산 상봉에서 북봉까지 매끈한 허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때나 가보지 못한 무등산 상봉입니다.보이는 곳이 인왕봉이고 좌측 살짝 보이는 곳이 지왕봉입니다.

천왕봉은 그 너머에 있어 보이지 않군요.

천왕봉은 군부대 시설로 인해 상당부분 깎여 나가 실질적인 최고봉은 지왕봉입니다.

그리고 민간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봉은 서석대죠.

 

 

서석대까지 오르는 길 암벽들도 신기한 모습들입니다.

 

 

무등산 비룡대입니다.

낙석위험때문에 비룡대 바로 밑은 출입금지입니다.

 

 

무등산 서석대 병풍바위입니다.

위태롭게 서 있는 주상절리들의 높이는 30여m에 이릅니다.

다음에 볼 입석대가 이 서석대의 미래죠. 또한 지공너덜이나 덕산너덜은 입석대의 미래입니다.

앞으로 수백만년 후의 일이죠.

 

 

서석대에서 내려뻗은 주상절리가 마치 공룡 등뼈처럼 중봉을 향해 있습니다.

 

서석대 아래에는 너덜겅이 있습니다.

모두 서석대의 주상절리가 떨어져 나가면서 생긴 너덜겅이죠.

아마 수백만년이 지나면 이 돌들도 잘게 부서져 거대한 너덜겅이 될 것입니다.

 

 

풍화작용에 의해 주상절리 아래부분이 떨어져 나간 곳은 위태롭게 걸려있습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광주를 빛고을이라 부르는 것은 석양무렵 이 수병풍바위에 노을이 지면 햇빛이 반사돼 수정처럼 빛이 나기 때문입니다.

육당 최남선은 '좋게 말하면 수정병풍을 둘러쳤다 하겠고, 박절하게 말하면 해금강 한 귀퉁이를 떠 왔다 하고 싶은 것이 서석'이라고

감탄을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마지막까지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 진달래입니다.

아직 철쭉은 피지 않았었죠.

 

무등산 상봉에 자리한 군부대가 언제쯤 광주시민들에게 자리를 비켜줄까요?

 

 

 

서석대에서 바라본 무등산 상봉입니다.

여기서는 천왕봉이 보입니다.

오른쪽 너덜겅이 지공너덜로 천왕봉 주상절리가 떨어져 나가 생긴 곳입니다.

 

 

무등산 서석대 주상절리대 바로 위 부분입니다.

데크길이 따로 있어 주상절리를 보호하고 있으니 서석대 주상절리대 위로 올라가는 것을 삼가해야 할 것입니다.

 

무등산 서석대(1100m)상단입니다.

민간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봉입니다.

 

 

광주시가지가 시원하게 보이는 곳 무등산 서석대입니다.

 

 

KT와 KBS중계탑이 있는 장불재입니다.

청심봉에 있는 MBC, KBC중계탑과 북봉에 있는 중계탑 등 모두 한 자리에 모아 놓으면 안될까요?

아님 청심봉과 북봉에 있는 중계탑을 철거하고 이 시설을 임대하면 안될까요? 개발만능시대에 만들어진 중계탑이

무등산의 흉물이 되고 있습니다.

 

 

가운데 민머리가 바로 중머리재입니다.

중머리재 지나 서인봉, 그리고 오른쪽으로 새인봉이 보이군요.

 

서석대를 뒤로 한 채 무등산을 내려섭니다.

 

입석대로 내려가는 곳입니다.

이곳은 장불재에서 출발한다면 완만하게 올라올 수 있습니다.

 

승천암입니다.

과거 임진왜란 당시만 해도 무등산 입석대와 승천암 부근에는 수 많은 암자가 있었죠.

승천암 부근에 있던 암자로 산양 한 마리가 뛰어 들어와 스님이 숨겨주었는데 스님의 꿈에 이무기가 나타나

산양을 잡아먹고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데 네가 훼방을 놨다 그러니 종소리가 나지 않으면 너라도 잡아먹고 하늘로

올라가야겠다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곧바로 종소리가 나고 이무기는 스님을 놔두고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

입니다.

 

 

입석대 뒤로 명자꽃이 피어났군요.

 

 

 

수 많은 암자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움푹 파진 주춧돌 놓는 바위입니다.

제봉 고경명 선생의 유서석록에 보면 16세기 경 이곳에는 불사의사, 염불암 등 절과 암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전에는 입석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죠.

 

무등산 입석대.

참 신기하죠?

 

 

화순 안양산에서 부터 시작한 무등산 백마능선입니다.

 

안양사는 철쭉으로 유명하죠.

그 철쭉은 백마능선을 타고 장군봉까지 오릅니다.

5월 중순이면 연분홍 철쭉으로 불타오르는 곳입니다.

 

 

입석대는 5~8각형 돌기둥이 반달같은 모양으로 둘러서 있습니다.

최고 15m에 이르는 돌기둥은 질서정연하게 서 있습니다.

 

 

용암이 급속하게 식으면서 수축되고 냉각면이 수직방향으로 갈라지면서 생긴 주상절리는 수직방향의 틈새로 비나 눈이 오랫동안

스며들면서 팽창과 수축작용으로 바위틈을 벌리게 됩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돌기둥들은 각자 독립된 모양을 갖게 되었죠.  이러한 과정은 앞으로도 계속되어 수백만년이 지나면 덕산너덜이나 지공너덜처럼 잘게 부서진 너덜겅이 될 것입니다.

 

입석대의 전체적인 모양은 선돌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서석대에 천제단을 두어 가뭄이나 역병이 돌때 하늘에 제사를 지냈죠.

이 천제단은 그 후 사람의 출입이 용이한 입석대까지 내려왔고 결국 지금 천제단자리까지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무등산 입석대에 다녀간 옛 사람들의 낙서가 보입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개국 과정에서 손에 묻힌 피를 씻기 위해 왕사 무학대사와 같이 팔도의 명산 명찰을 찾아 기도하던 중,

이성계로 하여금 3일간의 기도를 물리치고 6일간 머리를 조아리게 한 산이 바로 무등산입니다.

호남정맥의 중심 무등산 상봉에 있던 천제단에 머리를 조아린 이성계는 '피로 물들인 죄업을 사(赦)해주시고 태평성대를 이루게 해 주소서'라는 3일간의 기도를 마치고 하산하던 중 돌 뿌리에 넘어지는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세군데에 찰과상을 입는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무학대사가 '기도가 부족하니 3일간 더 기도 하라는 하늘의 뜻입니다.'라고 말하니 이성계는 일정에 없던 기도를 3일을 더 하였죠. 훗날 임금이 곤룡포를 입고 찾아와 기도를 하는데 들어주지 않고 3일을 더 기도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무악산, 서석산이라 불리던 이름을 뺏기고 무등산으로 산이 강등된 것입니다.

 

 

어느새 장불재까지 내려왔습니다.

아..저 보기 싫은 중계탑들..왜 하필이면 무등산에 있나고요.

 

 

백마능선을 따라 올라오는 사람들이 마치 개미떼가 기어오는 것 같습니다.

 

 

장불재 근처에는 이제 철쭉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일보직전입니다.

 

장불재에서 바라본 무등산 상봉입니다.

 

 

증심사지구에서 출발한 두 친구와 장불재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이제 하산합니다.

 

하산코스는 용추삼거리를 거쳐 중머리재-서인봉-새인봉삼거리-동적골-동산마을입니다.

 

 

중머리재의 약수입니다.

이곳에서 장불재쪽 용추계곡 상단에 광주천 발원지인 샘골이 있습니다.

물론 중머리재 약수도 용추계곡으로 흘러들어갑니다.

 

 

중머리재에 도달했습니다.

좌측이 용추계곡이고 오른쪽이 증심사계곡입니다.

중머리재 다음 봉우리가 서인봉이고 그 오른쪽 능선의 봉우리가 새인봉입니다.

 

중머리재에서 오늘 산행에 나선 친구들을 모아봤습니다.

 

 

서인봉을 거쳐 새인봉으로 내려섭니다.

새인봉 삼거리에서 오른쪽 약사사 쪽으로 하산하지 않고 좌측 동적골쪽으로 하산합니다.

동적골 튤립꽃동산이 4월 30일까지 열리기 때문입니다.

 

동적골로 내려서면서 본 무등산 새인봉

정상의 바위모습이 임금의 옥새와 같다고 하여 새인봉(璽印峯)또는 인괘봉(印掛峯)이라 부르고

군신봉조형(君臣奉朝形)으로 새인봉이 천제등을 향해 엎드려 있는 사인의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사인암(舍人岩)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동적골로 내려왔습니다.

튤립꽃동산이 열리는 곳으로 좌우는 모두 철쭉길입니다.

 

무등산 동적골 튤립꽃동산의 튤립도 이제 거의 다 시들었군요.

지난 4월 초순에 왔을 때가 절정이었습니다. 그래도 휴일을 맞아 수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동적골로 내려서는 길은 지난 무등산 산행의 역방향이었습니다.

그때는 철쭉이 피지도 않았었는데 금새 피어나서 이제는 끝물이 되고 말았네요.

돌아오는 일요일에는 무등산 순환버스를 타고 안양산 휴양림에서 백마능선을 타고 다시 무등산에 갈 예정입니다.

안양선 철쭉이 지난 5월 5일 절정이었는데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선선하기에 아직 지지 않았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후로도 최근 무등산을 몇 차례 더 갔습니다.

그만큼 무등산은 광주시민들의 슬픔과 기쁨을 어루만져주는 어버이 같이 포근한 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날입니다. 멀리계신다면 이른 아침 고향의 부모님께 안부전화 드리는 거 꼭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 광주문화재단 문화관광탐험대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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