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밤. 경주야경의 1번지 동궁과 월지(안압지)

2014. 11. 13. 06:30대한민국 견문록/경상도 견문록

 

통일 신라의 시작과 끝이 되어버린 안압지는 다른 이름은 동궁과 월지이다.

처음에는 월지(月池=달빛이 고운 연못)라고 부르다가 후일에 안압지(기러기와 오리만 노는 연못)로 불렀다.

안압지란 기러기雁,오리鴨,연못池를 써서 신라가 망한 뒤 오랜세월 방치해 두는 바람에 갈대가 무성하고 자라고

달빛이 아름답던 연못에 기러기와 오리떼만 몰려와 살다보니 조선시대부터 안압지라 불렀다고 한다.

 

 

 

안압지의 낮 풍경은 지난 포스팅에서 일단 봤는데, 야경을 보고 싶다는 블친들의 민원이 쇄도해서

경주 답사때 찍은 야경을 별도로 포스팅하기에 이르렀다.

 

 

안압지라는 이름보다 동궁과 월지라는 이름이 훨씬 아련하게 들리는 것은 나 뿐만 아닐 것이다.

 

 

신라 흥망성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동궁과 월지.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달성한 676년 보다 2년 전인 674년 축조된 동궁과 월지는 신라가 없어질 때까지

임금들은 거처인 화려한 임해전에서 신라의 태평성대를 춤과 노래로 즐겼다.

지금은 야경이 훨씬 아름답지만, 당시에는 밤보다 낮에 여흥을 즐겼겠지? 

 

 

동창회 산악회의 총무로 같이 답사에 나섰던 후니.

이렇게 보니 확실한 미남이다.

 

 

 

안압지는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의 왕건이 모두 들렀던 곳이다.

견훤은 침략자로, 왕건은 구원자로...

 

 

왕건의 눈에 들기위해 경순왕은 이곳에서 지극정성으로 왕건을 받들어 모셨다.

 

 

결국 겨우 손바닥만한 땅떵어리로 전락한 신라는 왕건에 나라를 받치게 되고...

 

 

 

태자는 천년사직을 하루 아침에 버릴 수 없다고 반대하였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기울었으니...

 

 

 

결국 고려에 귀부(歸附)를 청하는 국서(國書)가 전달되었고...

 

태자는 통곡하며 금강산에 들어가 베옷을 입고 초근목피로 여생을 보냈으니, 그가 바로 경순왕의 장남 마의태자이다.

 

 

 

경순왕이 재물과 식솔을 데리고 안압지를 마지막으로 떠나면서 신라는 고려에 935년 통합되었으며,

이듬해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했다.

 

 

 

신라 천년의 시작과 끝이었던 안압지.

언제나 그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삼각대가 없어 팔각대에 의지한 채 찍은 사진이라 만족스러운 야경은 아니다.

 

 

 

안압지 입수구의 모습도 낮의 풍경과 많이 다르고...

 

 

 

안압지에 모든 건물들이 복원되면 아마 대한민국 최고의 절경 중 하나가 될것이라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모두 복원되어 촘촘하게 건물이 들어선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낮의 안압지와 밤의 안압지는 완벽하게 서로 다른 모습으로 같은 장소에 서 있었다.

 

동창회 산악회 1박2일 경북여행기

1.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대구 팔공산, 케이블카 동봉에 올라 갓바위까지 간 까닭은?

2.넉넉한 인심에 통큰 주인장, 포항구룡포 등대식당

3.가족이나 단체여행객에게 최고의 시설, 호미곶 하얀사랑연수원과 콘도형 펜션

4.호미곶의 아침, 동해바다에서의 힐링

5.등대의 역사를 알아보자. 호미곶 등대가 있는 국립등대박물관

6.8년 만의 나들이 경주 불국사

7.통일신라의 시작과 끝이 되어버린 안압지

 

 

(글 : 포토뉴스코리아, simpro)

트위터 http://twitter.com/huhasim

페이스북http://facebook.com/inseob.shim.7 

 

 


 

 

    (공지사항)

    1.본문 내용과 관련없는 복사댓글은 정중히 사양하며 방문하지 않습니다.(블로거 예절입니다)

    2.광고성 댓글은 예고없이 삭제합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3.제 글에 동감과 댓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일일이 답글을 달 수 없지만, 꼭 방문하겠습니다.

    4.추천과 즐겨찾기 없는 친구신청과 상업블로그의 친구신청은 정중히 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