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下第一景 화순 이서적벽을 보노라니...

2015. 10. 7. 06:30전라남도 견문록/화순 견문록

 

육당 최남선이 화순 이서적벽을 조선 10경 중 하나라고 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서적벽을 구경하려면 인고의 시간을 대기해야 한다.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화순이서적벽 투어. 그곳을 지난 9월 초에 다녀왔다.

 

원래 이곳은 15개 마을이 모여 평화롭게 농사를 짓던 곳으로 1982년부터 85년까지 동복호 개발로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묶이면서 원주민이 지금의 이서면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 후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는데, 30년간 비무장지대같이 낯선 존재였던 화순 이서적벽이 통금된지 30년 만인 지난해부터 제한적이나마 일반인에게 그 비밀스러 경치를 보여주었다.

 

2014년 10월 광주광역시와 화순군의 협의로 이서적벽을 인터넷 사전 예약을 통해 일반인에게 개방하기로 하고 한달간 시범운영한데 이어 2015년 3월부터 화순적벽버스투어를 이용해 매주 수, 토, 일요일 등 1주일에 3일동안 하루 세차례만 이서적벽을 볼 수 있게 한 것인데, 기나간 예약시도 끝에 다녀오게 된 것이다.

 

 

 

 

 

 

화순이서적벽투어버스가 출발하는 곳은 금호화순리조트이며

(구)이서중학교앞에서도 탈 수 있다.

2015년 운영기간은 3월 21일부터 11월 29일까지 수,토,일요일이며

운영시간은 하루 3회(09:30, 13:00, 15:30)이다.

하루 이용가능인원은 384명으로 32인승 버스 4대가 동시투입되며

1회 관람 소요시간은 2시간이다.

 

이용안내 :

http://tour.hwasun.go.kr/www/cmd.do?opencode=pg_0201

요금은 1인당 5,000원으로 예약일로부터 2일 이내 16시까지 입금.

단체는 10인까지. 도보나 개인차량은 이용할 수 없고 오직 화순적벽투어

버스로만 이동한다.

 

화순적벽투어 영수증 소지자는 금호화순리조트 아쿠아나, 온천욕을

30%할인받을 수 있다.

 

쉬운 것 같지만, 사실 화순적벽투어를 인터넷으로 예약신청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데 관광버스로 오는 단체 여행객은 도대체 어떻게 신청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지금 보이는 건물이 (구)이서중학교 부지에 세워진 이서 뽕모실 커뮤니티센터로 뽕모실마을은 화순 이서면 야사리, 안심리,

영평리, 보월리, 인계리 등 5개 마을로 구성되었는데 조선시대부터 이곳의 잠업은 꽤 유명했다고 한다.

고품질의 뽕과 누에를 가공하여 누에환, 건누에, 천연화장품 등 다양한 상품을 생산하며 쌀, 율무, 고추 등 친환경 농산물도

재배한다고 하는데 이서면을 적벽투어와 함께 더 빛나게 만드는것 같다.

 

 

 

 

화순이서적벽투어는 적벽하나만 본다면 많이 실망할 수 있다.

시작한지 이제 1년이 되가지만 적벽투어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멀리서 조선 10경 중 하나를 보러 온 관광객들에게 화순 적벽을 왜 봐야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즉,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이서면이 갖고 있는 멋진 자연환경과 연계한 상품이 개발되어야 한다.

 

 

 

 

 

(구)이서중학교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쌍둥이 느티나무로 화순야사리느티나무라 부르며 도기념물 제235호이다.

학교 운동장 한 가운데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어 학교가 처음 세워졌을 때부터 이 느티나무를 야외교실의 하나로 여긴듯하다. 

멀리서 보면 한그루처럼 보이지만 다가서면 이렇게 몇 백년을 서로 마주보며 서 있는 부부인 것이다.

수고는 25m, 줄기둘레가 7m로 수령은 400살 정도 된다.

이 느티나무와 다음에 볼 천연기념물 야사리 은행나무, 그리고 야사리 들판에 있다는 느티나무 등 세그루가 모두 당산나무로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제사를 지내며 한 해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한다고 한다.

 

 

 

 

이제 이서면에 있는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를 만나러 간다.

(구)이서중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아 투어버스 기다리는 시간동안 다녀올 수 있다.

 

 

 

(구)이서중학교에서 이서우체국을 끼고 우측으로 돌아가면 천연기념물 야사리 은행나무가 나온다.

야사리 쌍둥이 느티나무와 같이 마을 당산나무이다.

 

 

나무 밑둥둘레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데, 화순이서적벽투어보다 사람이 더 몰리는 재미난 현상이 있다.

 

 

 

 

야사리 은행나무는 1982년 천연기념물 제303호로 지정된 수령 500살의 노거수이다.

높이는 27m, 줄기둘레가 9.12m, 가지는 동서로 24.3m, 남북으로 27.7m로 조선 성종(1469년) 때 마을이 형성되면서

심어져 지금까지 마을의 수호신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음력 정월 보름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당산제를 지낸다.

이 나무가 유명하게 된 것은 천연기념물이기도 하지만 바로 나무 네군데에 남근(男根)모양의 줄기가 있어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이

나무앞에서 기도를 하면 아이를 낳게 해 준다는 전설이 있다는 거...

 

 

 

화순군은 동복현, 화순현, 능주현이 모여 화순군이 되었다.

이서면은 그때까지 동복면, 남면, 북면과 같이 동복현에 있었지만 이후 화순군에 편입되었다.

곡성을 골짝 고을이라고 하는데, 화순 이서면도 옛 곡성땅이라는 듯 지금도 교통이 불편한 골짝마을이다.

 

무돌길과 이서적벽으로 인해 최근 많은 사람들이 화순이서를 찾는다는데, 적벽투어에 머물지 말고 이서면의 유명한 나무

두그루를 꼭 만나보길 권하며 정문 앞에 있는 규남 하백원 선생 기념관도 들러보시길...

규남 하백원은 이 동네 출신으로 여암 신경준, 존재 위백규, 이재 황윤석과 함께 호남 4대 실학자 중 한 분이었다는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무려 51년이나 앞서 동국지도를 제작하였고 세계전도, 쌍작도 등 지도제작을 한 실학자로 유명한 분이다.

 

 

 

이제 이서적벽을 만나러 출발한다.

(구)이서중학교 정류장을 출발해 30년간 굳게닫혔던 철대문을 열고 통금지역으로 올라간다.

길이 좁아 차 한대 겨우 다닐정도로 위험한 곡선구간에는 가드레일을 설치해 안정성을 높였다.

 

 

 

전망대에서 잠시 멈춘다.

멀리서 이서적벽을 보게함이지만 차량 1대에서 내린 사람들이 순서대로 오르다보니

엇갈리고 시간도 지체되고...ㅎㅎ 

 

 

 

전망대에서 본 화순이서적벽이다.

날이 좋았다면 시원스럽게 조망되겠지만, 불행하게도 날이 잔뜩 흐려 기대만큼 풍광이 보이지 않는다.

적벽을 거느린 산은 화순 옹성산으로 몇년 전 옹성산에서 동복호를 바라보며 언제나 저곳에서 이서적벽을 바라보나 했더니

바로 오늘이 그날이었다.

 

 

 

옹성산에서 바라본 화순이서적벽 조망처인 망향정.

그날도 오늘처럼 뿌연 연무가 끼어 조망이 시원치 않았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화순이서적벽

 

 

 

망향정이 있는 곳

그리고 그 너머 이서적벽과 옹성산. 

 

 

 

 

전망대에서 내려와 망향정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천제단도 있고...

 

 

 

적벽동천(赤壁洞天)

석천 임억령은 이곳을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적벽동천이라 이름지었는데

하서 김인후가 적벽시를 읊으면서 조선의 명승지가 되었다고 전한다.

 

 

망향정.

 

 

 

화순이서적벽의 대부분은 물에 잠겨있다.

댐이 들어서기 전에는 이곳으로 동복천이 흘렀고 그 강에서 바라본 적벽은 그야말로 조선 10경 중 하나였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선조 때 광주목사를 지낸 임훈은 고경명등 선비들과 함께 5일간 일정으로 무등산을 넘어 적벽을 여행했으며,

고경명은 유서석록이라는 기행문을 남겼겠는가.

 

 

 

 

화순이서적벽에 적벽이란 이름을 붙인 사람은 1519년 기묘사화로 동복현에 유배된 최산두가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14년간 동복현에서 유배생활을 했는데 어느날 동복천을 거슬러 오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밑으로 파란물이 흐르는

선경을 발견하고  <신재집>에서 "백로 고기 엿는 모습 강물이 백옥을 품은 듯 하고, 노란 꾀꼬리 나비 쫓는 모양은 산이 황금을

토함 같네"라는 시로 적벽을 노래했다.

 

 

 

 

중국 삼국시대 주유가 조조를 대파한 적벽대전의 적벽은 양쯔강변에 있으며, 그외 적벽이라 부르는 곳이 중국에 세군데가 더 있는데

화순 적벽도 중국처럼 네곳의 적벽이 있다. 바로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 등이다.

지금 보는 이서적벽을 노루목적벽이라고 한다.

 

 

 

화순이서적벽을 노래한 문인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호남 사림의 대부 하서 김인후, 송강 정철, 실학자 홍대용, 다산 정약용의 시에서의 적벽사랑은 유별나다.

특히 방랑시인 김삿갓은 적벽의 절경에 반해 무려 세번을 찾았고 생의 마지막도 이곳에서 마감했다.

 

 

 

적벽을 안고 있는 화순 옹성산

 

 

 

 

동복댐이 건설되기 전까지 양반문인들은 적벽에 흐르는 동복천에 배를 띄워 선유를 즐겼고, 정자에서는 적벽시사나 동인시회가

열렸다고 한다. 

또한, 석가탄신일에는 농민들의 사물놀이를 즐겼고 절벽 위 낙화대에서는 풀섶에 불을 붙여 강으로 날리는 낙화 놀이가 유행했다고

하는데, 이 광경을 보려고 동복면, 북면은 물론 담양에서까지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했다고 한다.

강변 잔디밭과 모래사장에는 천막을 치고 마을 단위로 주민들이 화전을 부치고 물고기를 잡아 어죽을 끓여 먹으며 밤을 지새웠다고

하니 적벽은 말그대로 천하제일경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수몰되어 적벽상부만 겨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화순이서적벽은 높이가 약 100m에 이르며 길이도 400m에 이르는 퇴적암층이다. 

 

 

 

호남정맥이 무등산을 거쳐 백마능선을 타고 안양산으로 흐르다 옹성산에서 불끈 솟아올라 

그 기세가 녹아 든 곳이 바로 화순이서적벽이다.  

 

 

 

광주시민들의 먹을 물을 담은 동복댐.

1971년 처음으로 댐을 만들었을 때 적벽의 대부분은 수면위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985년 댐높이를 19.7m에서 44.7m로 올리면서 적벽의 절반이 물에 잠기고 만 것이다.

 

 

 

 

화순이서적벽, 옛 모습을 그려보면 참으로 대단했을 것이란 느낌이 든다.

적벽아래로 푸른강이 흐르고 그 강에 배를 띄워 노래를 하며, 인근에서 몰려온 백성들이 강가에 앉아 전을 지지고 어죽을 끓여먹고,

어두컴컴한 초저녁 불 붙은 풀섶이 적벽아래로 떨어지는 광경이 눈에 선하다.

화순이서적벽투어가 화순군의 지역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좀더 다양한 관광상품과 접목시키고 개발해

단순한 적벽투어에만 그치지 말고 직접 옛 문인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처럼 위험한 낭떠러지 구간을 차량으로 움직이는 것 보다 친환경 유람선을 띄워 바로 앞에서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것도 필요하며

도로정비를 통해 비가 오면 투어가 중단되는 상황도 타개해 나가야 한다.

 

화순이서적벽. 과연 우리 세상에 온전한 적벽의 모습을 볼 날이 과연 오기나 할까? 궁금해 지는 대목이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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