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여행)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목포 온금동 그 정겨운 골목길.

2012. 3. 5. 23:30전라남도 견문록/목포 견문록

 

포토뉴스코리아 3월 출사가 전남 무안과 목포일원에서 열렸다.

이번 출사에는 모두 13명의 광주,전남 사진작가들이 참가하여 묵은 겨울을 흔쾌히 보내는 석별의 시간을 갖고

갯바람이 실어다 준 동백꽃 내음을 코끝으로 맡으며 청정 해변 조금나루를 거니는 봄맞이 시간도 함께 가졌다.

 

봄비와 함께 바다건너 제주에서 부터 꽃소식이 전해 왔건만 조금나루 해변은 막바지로 치닫는 겨울이

인적없는 모래사장을 아직까지도 황량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얼었던 땅에도 해빙의 기운이 감도는 3월 첫 주 일요일 조금나루 해변엔 작고 소담스러운 동백꽃이

꽃망울을 활짝 터트려 아직 쌀쌀한 출사여행중에도 큰 기쁨을 안겨 주었다.

 

첫 번째 촬영장소인 전남 무안군 망운면 송현리에 있는 조금나루 해변에서의 촬영을 마치고 일행은

두 번째 촬영장소인 유달산아래 목포 앞바다가 바라 보이는 목포 온금동 달동네로 들어섰다.

신안비치호텔에서 목포항으로 유달산 일주도로를 달리다 보면 준치회무침으로 유명한 조선횟집 뒤로

시커먼 굴뚝이 세개 보인다. 그곳이 목포의 마지막 남은 달동네 온금동 마을이다.

 

목포 온금동(溫錦洞)은 한자이름 그대로 따뜻한 햇볕으로 비단같이 아름다운 동네로 우리말로는 다순구미라고 한다.

진도 조도, 완도 노화도, 신안 암태도에 살던 뱃사람들이 목포가 도회지로 성장하기 전 부터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았다.

목포항에서 섬들이 가장 먼저 바라보이는 유달산 아래에서 목포의 주인으로 들어와 일가를 이루고 살다가

남자들은 삶의 터전인 바다로 나가고 아낙네들은 그물을 짜고 지금은 굴뚝만 댕그러니 남은 조선내화 공장에서 벽돌을 찍으며

생활하였다고 한다.

흉어때는 고기잡이 배를 못타서 집에서 지내던 뱃사람들이 그 시기에 아이들을 왕창 출산하여 낳은 아이들을 조금 새끼라고

불렀다는데 그 말의 어원도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온금동 마을 입구엔 지금의 유달산 일주도로 대신 째보선창이라 해서 ㄷ자형의 어선정박지가 있고

구불구불 골목길을 걸어올라 몬당에 올라서면 보리마당이라는 고개가 있다.

보리마당에 있던 봉수터를 관리하던 둔전병들이 생활하던 초소가 있었고 뒤로는 유달산 앞으로는 서산동, 온금동이 보이고

눈을 더 멀리하면 목포 앞바다는 물론이요 멀리 해남 화원반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그 온금동과 서산동의 오랜 역사가 이제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2002년부터 계획하였으나 수차례 표류하며 사업시행자를 확정짓지 못하다 2009년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하여

작년들어 재개발사업이 급물살을 타며 공청회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다.

2012년 첫 삽을 떠서 2018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서산 온금지구 재개발 사업은 3097가구 아파트에 9000여명이 입주한다고 한다.

 

그러나 서산·온금지구 재정비사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참여한 민간업자가 제대로 공사를 진행할지 여부와 일부 시민단체 등에서 제기하고 있는 유달산 조망권 및

난개발 우려 등에 따른 반발은 목포시와 이해 당사자들이 현명하게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될 것이다.

 

글쓴이의 카메라는 일반디지탈 카메라로 작가들의 카메라에 비하면 장난감에 불과하고 카메라 렌즈상태도 안좋지만,

열심히 그들의 뒤를 쫓아 다니며 흉내 내 보았다. 혹시 보시는 분 양에 차지 않아도 어여삐 봐 주시기 바란다.

 

항구도시 목포의 마지막 남은 달동네 온금동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은 10여년전부터 시작되었다.

목포항을 출발하여 제주도로 가는 스타크루즈를 타고 가다 보면 건설중인 목포대교 못가서 우측으로 유달산이 보인다.

산기슭을 가로 지른 유달로를 사이로 좌측엔 온금동 우측엔 서산동이다.

 

 

 

60~70년대 전형적인 달동네 풍경은 7080세대들에게는 진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지만

2030세대들에겐 왠지 낯설은 공간이기도 하다

1930년대에 세워진 조선내화 건물은 한 동안 이 곳 주민들의 애환어린 장소였지만 지금은 폐건물로 남아

이곳을 개발해야 한다는 당위성만 제공하고 있다.

 

서산·온금지구는 목포항의 관문이자 유달산과 더불어 한국의 나폴리를 지향하는 미항 목포의 이미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고의 여건을 갖추었지만 개발에 따른 비용 부담과 유달산 조망권 등으로 사업을 처음 계획한

2002년부터 방향도 설정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표류해 오다 작년 말쯤부터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뱃사람들의 오랜 고향이자 원도심의 대표적 낙후지역인 이곳을 주거환경 개선과 도시기반 시설 확충 등을 통해

복합 명품주거단지로 조성한다는 목포시의 계획대로 구체적인 사업은 주민들로 구성된 추진위원회와 조합이 설립되어 있으니

향후 사업 이해 당사자들끼리 자주 만나서 합의점을 도출하고 조정을 이루고 나머지 후속 행정절차를 조속히 마무리 지어

올해쯤 실시설계 용역을 발주하여 2008년 완공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달동네의 하나인 목포시 온금동일대..

지금 이곳엔 1521가구에 3090여명이 살고 있다고 하며, 이 가운데 집주인은 187가구뿐이고,

나머지 1334가구가는 세입자라 한다.

집주인들도 개발이 완료되어 아파트로 입주할려면 1억원 정도 더 들여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세입자들은 그나마 임대아파트 분량도 적어 재개발이 끝나더라도 돌아올 수 없는 처지라 한다.

 

 

새로 지어질 아파트는 3097가구. 그 중 2651가구를 일반분양하고,

446가구를 임대로 입주시키기로 했다지만 집주인 187가구와 1334가구에 이르는 세입자 중

3분의 2가 넘는 원주민들은 이주지원비와 이사비로 1000만원 정도를 받고 결국 고향을 떠나야 한다.

그 돈에 얼마를 더 보태야 다른데로 가서 전셋방이나 얻을 수 있을까.

 

1938년에 세워진 조선내화 건물의 굴뚝이 이곳 달동네의 랜드마크이다.

제주도로 가는 스타크루즈호의 갑판에서 보면 달동네 아래 공룡의 목처럼 쭉 삐져 나온 굴뚝을 볼 수 있다.

거래소 상장기업인 조선내화의 오늘을 있게 만든 고향집이다.

조선내화(주)의 창업주이자 전남일보 발행인이었던 성옥 이훈동은 독립이후 환수된 일본인 재산들을 정부에서 매각하자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진 성산납석광산을 헐값에 불하 받고 완도 노화 광산까지 인수하여 시간만 나면 내화연와의 원료가 되는

납석과 점토, 규조토 등을 찾기위해 전국을 돌아 다녔다고 한다.

 

 

 

1938년 일본인 사토에 의해 설립된 조선내화공업 주식회사가 해방과 함께 미군정의 관재처로 넘어갔다가 정부에 의해

일반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가고 1948년까지 성산과 완도광산에서 채광한 납석과 고령토, 점토 등을 조선내화에 납품하던

성옥은 친구의 권유로 광산일을 제쳐두고 조선내화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6.25전쟁이 터지자 군사시설로 사용할 수 있지 모른다는 특수성 때문에 공장의 80%가 불타버리는 피해를 입자

당시 대표가 성옥에게 회사를 인수할 것을 제안하였고 조선내화를 살릴 수 있다는 확신 하나로 하루도 쉬지 않고

공장재건에 힘써서 결국 6년만에 연간1만5천톤의 내화연와를 생산해 내는 기적을 일구었다고 한다.

 

 

오늘의 조선내화를 있게 만든 온금동 조선내화 목포공장은 1994년까지 본사와 공장으로 운영되다,

70년대 포항공장이 준공되고 80년대 광양공장이 준공되면서 역사적인 목포공장시대의 막을 내린다.

우측사진의 폐공장은 두부공장으로 조선내화공장과 더불어 온금동 마을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고 한다.

 

 

70년대쯤 이 집 골목앞 창밑에서 수 많은 연서들을 주고 받았을 그 까까머리와 단발머리는 어디 갔는가...

 

                                                                                                       

 

서산초등학교 앞 유달로 몬당으로 올라가 본다.

 

 

이곳에서 보면 달동네 온금마을의 앞 뒤를 다 볼 수 있다.

 

 

폐가로 나뒹구는 두부공장의 힘겹게 버티고 선 대들보와...

 

 

대문앞 슬라브의 앙상한 뼈마디에서..

그리고 담장옆에 붙어 있는 변소에서....

 

 

전형적인 옥탑방에서...

개조심이란 메직글씨에서...

 

 

궁둥이 하나 포도시 밀고 들어갈 골목길에서...

마지막 남은 역사의 뒤안길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다...

 

 

어르신들의 맛갈스런 옛 이야기가 들려올 것 같은 나무의자에서...

벌써 몇 개째 도난당해 이제는 창살 두터운 감옥에 갇힌 공중전화에서...

 

 

달동네 온금동의 애환이 묻어 난다.

 

 

골목길을 따라 그 옛날 봉수대가 있었다는 보리마당까지 올라가 보자.

 

 

비가 오면 이 골목으로 넘쳐나는 빗물이 온 방안에 밀려들어 허탈한 한숨소린 창문너머로 힘겹게 기어 나오고

녹슬은 쇠창살이 가로막고 있는 폐두부공장에선 콩익는 냄새와 아짐들의 왁자지껄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옛날 점방엔 물건들이 가지런하게 놓여있고...

아름다운 미소로 곱게 늙어가는 어머니가 쌀쌀한 비를 피해 손목을 붙잡고 뜨거운 커피를 내 놓는다.

 

 

골목길 담장너머 동백꽃도 아직 떠나기 싫은가 보다.

지붕까지 뚫고 나와 건물이 뜯기는 것을 온 몸으로 막아서고 있다.

 

 

골목의 끝까지 가면 번화한 세상과 소통되어지는 계단이 나오고..

 

 

보리마당으로 가는 길목에서 보면 온금마을 앞으로 미항 목포의 아름다운 뱃길과 고하도가 보인다.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지금같이 목포 앞바다가 보일 수 있겠는가.

하물며 스타크루즈를 타고 제주를 오가는 사람들이나 미항 목포로 들어오는 외국인들에게

유달산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줄 수 있겠는가. 유달산은 보여지기를 원한다.

목포의 렌드마크는 서산.온금지구 재개발사업이 아닌 유달산 그 자체가. 목포는 곧 유달산이며 유달산이 목포인 것이다.

그런 유달산을 재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온통 아파트로 둘러 안보이게 한다면 그것은 진정 목포시민들이 바라는 재개발은

아닐 것이다.

목포에서 자라 목포에서 공부하고 목포에서 살며 목포에서 죽을 목포 시민들은

지금 유달산이 앞으로 당할지도 모를 그 처연한 숙명앞에서 큰소리로 외치고 있다한다..

유달산을 내 맘대로 보게 해줘~~~..또 유달산에서 목포항구를 보게 해줘~~~라고.

 

 

좌 서산동과 우 온금동을 가로지르는 유달로로 내려서서..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봉수터가 있었다는 보리마당앞을 가로질러 차로 돌아온다.

보리마당도 들려보고 싶지만 훗날 좋은 날 택해서 다시 한 번 이곳으로 출사여행 오기로 약속을 하니

한 결 마음이 편하다.

 

한국관광공사가 2011년 3월의 가볼만한 곳으로  ‘달동네의 그림 같은 변신, 청주 수암골(충북 청주)’과 ‘근대문화유적과 다순구미 골목을

거닐다, 목포 온금동(전남 목포)’,  ‘참가자미의 찰지고 고소한 맛에 빠지다, 울산 정자항(울산광역시)’, ‘지심도 동백숲에서 시작되는

남해의 봄(경남 거제)’ 등 4곳을 각각 선정, 발표하였었다.

 

그런 연고로 온금동은 가끔 달동네를 취재하거나 촬영하여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기려는 기자나 사진작가들. 그리고 젊음을 벗삼아

낭만의 흐름을 쫓아 오는 나그네들이 주로 찾아 온다고 한다.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원주민들의 애환을 잘 살펴보고 볼성사나운 모습과 시끄러운 언동은 최대한 자제하여야 하며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살았고 내가 태어난 고향집이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사라지는 아픔을 같이 나누는 아름다운 자세로 촬영과 취재를

하여야 할 것이다. 언제 내 몰릴지 모르는 막연한 두려움을 같이 공유하다 보면 나의 분신이 되고 나의 삶이 될 것이니까...

 

오늘 포토뉴스코리아 3월 출사에서 광주 전남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님들의 뒷모습을 열심히 따라 다니며

똑딱이에 정성껏 담아보았지만 실력이 변변치 못해 사진 올리기가 영 민망스럽다.

하지만 배우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 하랴..매도 일찍 맞는게 낫고 욕도 일찍 듣는게 낫다는 심정으로 끝을 맺는다.

 

 

온금동 가는길

네비게이션 주소 : 전라남도 목포시 온금동 122-9 조선회집

목포항에서 신안비치호텔 방향으로 약 1km 진행 우측 유달로를 사이로 좌측은 온금동, 우측은 서산동

 

썩어도 준치인 준치회무침 전문점 조선회집에 대한 글은 내일 발행될 예정이고

다음 여행은 3월8일 부터 10일까지 제주도 여행이다.

여행사를 하는 친구의 갑작스런 해외출장으로 평소 여행하면 사족을 못쓰는 날 꼬드겨 제주도 단체일행의 인솔을 맡겼다.

다행히 회사에서도 흔쾌히 허락을 하여 금요일까지 해야 할 일을 수요일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코피 터지는 일복이 터졌지만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는 기쁨이 드는 것은 숨길 수가 없다.

 

이번에 제주도에 가면 첫날은 절물자연휴양림, 둘쨋날은 송악산과 유채꽃밭, 강정마을 구럼비,

세쨋날은 굼드레물길로 아침을 연 후 한라산 다섯 등산코스중 아직 미답인 영실코스 탐방,

소깍과 사려니숲길을 거닐어 볼 생각이다.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곳..그곳으로

 

그리고 제주도에서 돌아오는 일요일엔 동창들과의 고창 선운산 산행이 약속되어 있다.

오랜 블친 파워님과의 우연한 느낌으로 멋진 상봉을 기대하고 고대하며 글을 맺는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 굿뉴스피플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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