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여행)전북의 최대가람 고창 도솔산 선운사

2012. 3. 14. 01:00전라북도 견문록/고창 견문록

 

 

禪雲寺 洞口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미당 서정주

 

지금 선운사에 들르는 우리도 서정주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선운사 동백꽃은 춘백(春柏)으로 겨울 끝자락에 피어 3월까지 여수 오동도를 온통 붉게 만들어 버리는 동백(冬柏)꽃이

낙화암의 삼천궁녀가 강물에 몸을 던지듯이  그 통통한 꽃잎을 통채로 일제히 떨구어 버리는 4월에서야 핀다.

뻔히 그런줄 알면서도 미당처럼 우리도 선운사를 휘감아 도는 동백꽃 군락지를 속절없이 바라만 봐야 했다.

 

비록 미당의 싯귀에 나오는 막걸리집 여자는 60년전 이미 죽고 없지만 그녀를 추모하며 지은 시 답게 동백꽃을 못 본 아쉬움과

육자배기를 들려주던 주모를 그리워하는 내용이 목이 쉴 정도로 남아 있는 시비를 보며 선운사에 들어선다.

 

 

선운사는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한다.

어른 3,000원 중고생 2,000원 초등생 1,000원 30인이상 단체는 500원 할인이고

만 65세이상이나 조계종 신도증 소지자, 복지카드 소지자, 국가유공자, 초등학생 이하는 무료입장이다.

 

물론 사찰을 들르지 않고 선운산에 간다고 해도 문화재 관람료는 내야한다.

사찰앞을 지나면서 들르지 않더라도 보기는 하니까..그래서 입장료가 아닌 관람료로 쓴다.

대부분의 유명사찰은 이렇게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한다. 많게는 일년에 십억에 가까운 관람료가 사찰의 유지보수를 위해 사용되니

흔쾌히 내지만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찰이나 암자에게도 이런 대형사찰에서 받은 문화재 관람료의 일부라도

나눠주어 사찰을 유지보수 하는데 쓰였으면 좋겠지만 실상이 그러한지 알 수는 없다.

 

오늘 선운사 탐방은 선운산 산행에서 내려오면서 들렀지만 사진의 순서를 되돌려 일주문부터 선운사 경내 끄트머리까지

순서대로 정렬해 보기로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운사는 선운산 선운사가 되어야 하나 일주문에는 도솔산(兜率山) 선운사(禪雲寺)라고 쓰여있다.

원래 옛 산이름은 도솔산이다. 백제 위덕왕 24년 (577년)에 고승 검단선사(檢旦, 黔丹)가 창건한 선운사(禪雲寺)가 있어

선운산이라 널리 불리게 되었지만 지금도 선운사는 도솔산 선운사라 부른다.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을 가리키며 선운이란 구름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으로 현판글씨는

일중 김충현 선생(1921~2006)의 작품이다.

한국 근대 서예를 대표하는 일중은 특히 사찰이나 정자의 현판에 글씨를 많이 남겼다고 하며 선운사도 그 중 하나다.

 

 

 

매표소를 지나면 우측으로 부도전이 나온다.

입구에 빙둘러 담장을 쌓았는데 예전에 없던 담장으로 몇 해 전쯤 쌓은 듯 하다.

전나무숲을 배경으로 멋들어진 장소에 부도가 있었는데 일각문과 담장으로 경계를 세워 놓아

그 멋스러움이 예전만은 못하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개의 세계가 지나간다.

속세에서 들여다 보면 그대로 밀고 들어가는 자유가 보이고

사바세계에서 들여다보면 잡아 당기며 한 걸음을 쉬게 하는 여유가 있다.

 

 

 

이곳 부도전에는 유명한 비석이 하나 있다.

추사 김정희가 백파선사를 기리는 글을 새긴 백파율사비가 그것이다.

진품은 탐방객들의 무분별한 탑본과 자연풍화에 의한 비문의 마모되거나 탈락되는 현상이 생겨

원형보존을 위하여 2006년에 선운사 성보박물관으로 이전하여 보관하고 있고 그 자리에는 원형보다

5%정도 축소한 모조품을 2008년에 세워놓았다고 하니 진품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사찰의 첫 건물인

성보박물관으로 가면 된다.

 

 

   왼쪽은 백파율사비 진품으로 현재 성보박물관에 보관중이고          

  우측사진은 모조품으로 현재 부도전에 전시중이다.

 

 

선운사앞을 도도히 흐르는 이 냇물은 거의 마르지가 않는다.

가을에 오면 물빛에 투영된 파란 하늘빛과 빨간 단풍물로 냇물은 오색물감을 풀어 놓은듯 물들어 버린다.

손가락을 담그면 빨간 단풍물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냇물..

 

 

성보박물관.

2007년에 개관하여 매년 특별기획전을 열고 박물관 사보도 발행한다.

지하1층은 창고 지상1층은 전시실과 학예실 사무실이 있고 지상2층은 수장고로 쓰인다.

이곳에 가면 전북유형문화재 제122호인 벽파대선사비의 진품을 비롯한 선운사 소장 유물들을 볼 수 있다.

개관시간은 오전9시 폐관시간은 오후5시이고 점심시간 1시간동안 중간 폐관하며 매주 월요일이 정기 휴관일이다.

 

 

템플스테이 건물과 왼쪽의 동삼실.

 

 

천왕문을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사찰탐방은 시작된다.

천왕문은 2층으로 1층엔 사천왕상이 2층엔 선운사 범종이 달려있다.

 

 

천왕문내에는 동방 지국천(持國天)이 검(劍)을, 북방 다문천(多聞天)이 비파(琵琶)를,

서방 광목천(廣目天)이 탑을, 남방 증장천(增長天)이 용을 쥐고 불법을 수호하고 있다.

 

 

일요일임에도 경내는 굉장히 조용하다.

선운사는 대웅보전 뒤쪽에 있는 동백꽃 군락지에 피빛으로 처연한 동백꽃이 활짝 피어야 제격이다.

아직 3월도 초순경이라 오동도의 동백은 제철을 만나 맘껏 꽃자랑 하고 있지만 선운사의 동백은 춘백이라

아직 꽃 봉우리는 꽉 닫혀있다. 더군다나 오늘은 꽃샘추위까지 몰아와 더욱더 웅크리고 있는 듯 하다.

 

 

대웅보전앞의 만세루는 일반 신도들이 차도 마음대로 마시고 스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정유재란 당시 본당만 빼고 모두 소실되었다가 1613년(광해군5년) 무장() 현감 송석조()가

승려 일관()·원준() 등과 함께 3년에 걸쳐 대웅전·만세루·영산전·명부전 등을 건립하였는데 그 때 당시의 건물로

넓은 평면에 비해 높이가 낮은 비규범적인 누()의 구조와 불규칙적인 부재() 사용으로 정제된 법식을 따르지 않았으며,

세련되지 못한 건물로, 다른 건물을 건립하고 남은 목재로 건립하였다는 전설과 선운사앞의 노적봉의 기운이 너무 강해

그 기운을 차단하기 위해 대웅보전 바로 앞에 만세루를 세웠다는 전설도 있다.

 

 

대웅보전 우측으로 관음전이 있다.

원래는 대웅보전과 영산전 사이의 요사채를 관음전으로 사용하다가 이를 허물고 1990년 지금의 자리에 신축하였다.

선운사 사적기에 1474년 관음전을 완공하였다는 기록과 정유재란으로 폐허가 된 이후 1705년에 중창당시에도 관음전을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하니 수세기를 걸쳐오면서 위치가 바뀌고 쓰임새로 달리하여 옛 모습은 찾을 수 없다.

그럼 원통전이라고도 부르는 관음전에는 어느 부처님이 계실까?

 

 

 

여러 기록에는 관음전에 보물 제279호로 지정된 금동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고 하지만 관세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어 사찰정보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

그럼 그 유명한 금동지장보살좌상은 어디로 모셨을까?

 

2010년 11월에 극락교 낙성법회와 관음전 낙성법회가 열려 보물로 지정된

금동지장보살좌상을 성보박물관으로 이운하고 새롭게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선운사 금동지자아보살좌상은 그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이름이 나 있으며

넓적하게 살찐 얼굴에 작은 눈과 코, 입 그리고 목이 짧은 중년 여인처럼

통통한 몸매를 하고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지장보살이 일본인에 의해 도난당해 일본으로 넘어갔다가

지장보살을 소유한 사람들의 꿈에 "내가 있을 곳은 조선 고창땅 도솔산이니 그리 데려다

줄것"을 요구받고 또 소유자들의 신변과 재산에도 알게 모르게 고통과 우환이 찾아와 
당시 고창경찰서에 모셔갈 것을 신고하여 도솔산 선운사 스님들이 도난당한지 2년만인

1938년 11월에 일본까지 가서  다시 찾아 모셨다한다. 

(사진출처: 전통사찰관광정보)


 

대웅보전.

보물 제290호로 선운사의 본전(本殿)으로 신라 진흥왕 때 세운 것으로 전하나 시대적 지리적 추정으로는 백제위덕왕24년(577년)

고승 검단선사가 세운것이 정설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 성종 3년(1472)에 중건하여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광해군 5년(1613)에 다시 지은 것이다.  

 

 

법당 안에는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하여 좌우 협시로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가 모셔져 있다.
일반적으로 비로자나불이 주존이면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좌우 협시로 모시고 대웅보전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선운사는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를 모시고도 대웅보전의 명칭을 사용하였다.

 

원래는 5여래(아미타불, 석가모니불,비로자나불,노사나불,약사여래불)6보살(대세지,관음,문수,보현,일광,월광보살)을

한꺼번에 모신 선운사의 중심법당이었으나 정유재란때 피해를 입어 삼존불만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삼존불상 뒤의 후불벽화는 1688년(숙종14년)에 조성한 것으로 중앙의 비로자나불회도를 중심으로 좌 아미타회상도.

우 약사회상도가 위치해 있어 삼존불상과 일치한다.



당간지주와 6층석탑

6층석탑은 창건당시부터 있었던 것을 추정되고 원래는 9층이었는데 현재는 6층만 남았다고 한다.

사적기에는 조선성종때 행호선사가 옛 선운사부지에 홀연히 남아 있는 이 9층석탑을 보고 중창을 시작했다고 한다.

 

 

 

대웅보전앞에는 당간지주와 석등 그리고 6층석탑이 만세루를 사이에 두고 질서정연하게 서 있다.

 

 

배롱나무 사이로 수녀님들의 모습도 보이고..

 

 

만세루에서는 차 공양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선사들의 설법도 들을 수 있다.

시간이 넉넉하거든 만세루에 올라 앉아 보살님께 차 한잔 청해보길...

 

 

가지런히 놓인 찻잔과 반들반들한 마루바닥이 정감스럽기만 하다.

 

 

 

영산전은 영산회상의 줄임말로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던 당시의 법회모임을 뜻한다.

원래이름은 장육전(丈六殿)이라 하며 태학대사가 1471년에 2층 전각형태로 조성하였으나

1614년에 건물이 기울어져 단층으로 축소 중건하였고 1800년대에 2번의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장육전이란 6척이나 되는 불상을 모셨기에 2층전각으로 지었으나 다른 부처님을 모시면서 단층으로 축소 중건했다고 한다.

 

 

장육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미륵, 재화 갈라 양 보살과, 16나한상을 모셔 영산회상을 이루고 있다.

 

 

일요일임에도 평일같은 고요가 깃든 고창 선운사 전각의 지붕은 참으로 단아하게 느껴진다.

 

 

산신당안에는 봉래산,영주산,방장산을 배경으로 호랑이를 거느린 산신의 모습을 그린 탱화를 모신다.



 

산신당 내부

 

 

대웅보전 뒤쪽에는 천연기념물 제184호인 수령 500년 동백나무가 15,000여 평에 300여 그루의 동백꽃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해마다 5월 5일이 되면 한 달동안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만개했던 꽃이 떨어질 무렵 선운사 뒤뜰에 단을 차리고 축을 지어 올리는

동백연(청소년 문화예술 경진대회)과 검단, 학명, 백파, 영호 등 대스님을 기리는 보은에 제를 올린다고 한다.

선운사 뒷뜰을 가득 들어선 동백꽃이 일제히 꽃을 피울 4월이 기다려 진다. 4월15일이 지나면 선운산 각 등산로도 모두 개방되므로

동백꽃도 보고 보은의 길도 걸으면서 도솔암까지 걸어보고 싶다.



 

팔상전은 정유재란때 소실되었다가 1706년에 행성. 심경스님이 중건하였고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8점의 탱화를 보관하고 있다.

 

 

석가여래 좌상을 주존으로 모셔져 있고 뒤에 걸린 탱화는

1901년에 조성한 영산회상도가 걸려있고 좌우를 빙돌아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명부전.

대게의 명부전이 대웅전 우측에 위치하나 선운사의 명부전은 좌측에 있다.

 

 

유명계(幽冥界)를 상징하는 당우로 지장전이라고도 한다.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어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을 주불로 좌 도명존자 우무독귀왕을 협시로 봉안되어 있다.

 

 

 

조사전은 최근에 지어졌다.

2009년 3월 기공식을 거쳐 2010년 4월 낙성식을 봉행했다.


 

조사전 내부에는 선운사 창건주인 검단스님을 비롯하여 의운, 설파, 백파, 경담, 환웅, 석전스님 등

7분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범종각의 법전사물인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있다.

그러나 유형문화재로 등록된 선운사 범종은 천왕문2층에 따로 걸려 있다.

천왕문이 2층으로 되어 있어 1층엔 사천왕상이 2층엔 범종이 달려있다.

 

 

선운사 감로수로 목을 축이고... 가지런히 놓인 등산화의 주인은 지금 명상중일까?

 

 

선불장과 강원이 있는 곳으로는 지금도 한창 불사가 진행중이다.

 

선운사는 대가람이다 보니 아담한 규모의 사찰에 비해 그 규모가 상당히 넓다.

넓다는 것은 그만큼 부처님의 바다와 같은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한편으론 시원스럽지만

학교 운동장 만큼이나 넓은 경내로 인해 당우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없어 집중력은 떨어진다.

보통의 사찰이 좁은 폭으로 산자락을 향해 길게 놓여 있는 것에 비해 선운사는 동백꽃 군락지를 따라 산자락을 넓게 사용하여

사찰이 지어지다 보니 너비와 길이가 상당하다. 금산사와 더불어 전북 최대규모의 사찰답게 드넓은 경내가 학교운동장처럼

넓어 보이지만 법회가 열릴때면 이 넓은 경내도 신도들로 꽉 차고도 부족하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

 

대가람의 진면목을 천천히 살펴보았다면 어느 여자에게 이런 길이 있다면 다시 살림을 차리겠다는 김화영 시인의

'꽃이 지고 있으니 조용히 좀 해 주세요'의 싯귀처럼 아름다운 도솔암 가는 길을 거닐고 고창의 유명요리인  풍천장어로

허기를 달래며 미당의 선운동구의 여인을 생각해 보는 운치도 느껴보자.

 

오늘 비록 선운산 산행에 이어 30여분 짧막하게 선운사에 머물며 그것을 다 들어내기엔 턱도 없이 부족하다.

선운사춘백이  그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입산통제가 해제되는 4월15일 이후 다시 선운사를 찾아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도솔암까지 가는 길을 거닐며 다시 살림을 차려도 좋을 만큼의 감정을 느껴보기로 한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 굿뉴스피플 simpro)

 

simpro의 프로야구 이야기

simpro의 길(路) 이야기

트위터 ☞ http://twitter.com/huhasim       

 

               ↓ 로그인이 필요없는view on꾹 눌러서 추천과 구독을 해 주시면 글쓴이에게 큰 격려가 됩니다. ^_^